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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 빠지고 없으면

잇몸으로 씹어라 했는데

고놈 참!

잇몸도 저리 가라 하네

 

이 없으면 왕따 당하는 세상에

잇몸조차 없으면 파산되는 세상에

고놈 참!

구세주가 따로 없네

 

-이소리, '순두부' 모두  

 

해마다 손발이 꽁꽁 얼어붙는 겨울철이 되면 몹시 그리워지는 음식들이 있다. 값도 싸고 맛이 너무 좋아 가난한 서민들이 즐겨먹는 따끈한 국물 음식들이 그것이다. 김치찌개를 비롯해 순대국, 갈비탕, 설렁탕, 쇠고기국밥, 동태국, 대구탕, 콩나물 해장국, 청국장, 된장찌개, 비지찌개, 우동, 오뎅 등등.     

 

겨울을 상징하는 이러한 국물 음식들은 얼큰하면서도 따끈따끈한 국물이 아주 시원하면서도 구수한 감칠맛으로 사람들 입맛을 사로잡는다. 모락모락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는 이러한 국물 음식들은 입으로 몇 번 후후 불어 몇 수저 입에 떠 넣으면 얼어붙은 몸과 마음이 순식간에 포근하게 녹아내리면서 매서운 추위까지 싸악 가시게 해준다.

 

그중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음식이 순두부찌개이다. 순두부는 두부를 만들기 위해 갈아놓은 콩물이 서로 엉겨 붙었을 때 물기를 빼지 않고 그대로 먹는 물두부를 말한다. 순두부는 물이 많이 들어 있어 일반 두부보다 훨씬 부드럽고 콩 향기까지 그대로 살아 있어 입맛이 없을 때 자주 찾는 음식이다. 

 

씹을 것도 없이 부드럽게 그냥 술술 넘어가기 때문에 어린이나 노인들이 즐겨먹는 음식으로 자리 잡은 순두부찌개. 순두부찌개는 이 물두부에 묵은지와 돼지고기를 송송 썰어 넣은 뒤 조갯살, 고춧가루, 양송이버섯 등과 함께 갖은 양념을 넣고 팔팔 끓이다가 마지막에 달걀 하나 풀어 넣어 마무리하는 조선 토종 음식이다. 

 

 

이 빠진 외할아버지께서 즐긴 음식 '순두부'

 

"옴마! 오늘 머슨(무슨) 날이가?"

"와?"

"옴마가 맷돌에 콩을 갈고 있는 거 본께네(보니까) 조푸(두부) 만들라꼬 하는 거 아이가"

"너거 외할배가 요새 이가 없어 식사를 제대로 못한께(못하니까) 조푸라도 맨들어(만들어)야 안 되것나"

 

1960년대 허리춤께. 나그네가 초등학교에 마악 입학을 앞둔 그해 겨울, 어머니께서 오랜만에 두부를 만들기 위해 앞마당에 덕석을 펴놓고 맷돌로 불린 콩을 갈고 있었다. 그해 늦가을에 접어들면서 외할아버지께서 몇 개 남지 않은 이가 마구 흔들려 끼니 때마다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께서 손두부를 만드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게 보였으나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어머니께서는 콩을 물에 담궈 하루 정도 불린 뒤 맷돌 구멍에 불린 콩 서너 알을 끊임없이 집어넣으며 천천히 갈았다. 그렇게 불린 콩을 다 갈고 나면 무명천 위에 콩물을 붓고 거른 뒤 걸러진 콩물에 소금물을 붓고 콩물이 엉길 때까지 기다렸다.

 

어머니께서는 그렇게 엉긴 콩물(순두부)을 몇 바가지 펴내 장독에 담고, 남은 콩물은 무명천을 씌운 사과박스에 차례차례로 부었다. 그리고 엉긴 콩물을 부은 사과박스 위에 또다시 무명천을 덮은 뒤 판자를 얹고 무거운 돌을 여러 개 얹어 반나절을 또 기다렸다. 어머니표 손두부는 그렇게 긴 시간이 흘러야 맛 볼 수 있었다.    

 

그때부터 외할아버지께서 즐겨 드신 음식이 순두부였다. 우리 가족들은 외할아버지 덕택에 그 맛난 손두부를 자주 먹을 수 있었다. 사실, 손두부는 우리 마을에 잔치가 벌어져야 맛 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하지만 우리 마을 사람들은 두부를 '조푸'라 불렀다. '조푸'란 줏대가 없거나 성격이나 행동이 물러터진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다. 이가 없어도 먹기 좋은 조푸처럼, '조푸'란 닉네임이 붙은 사람들은 늘 남에게 당하기 일쑤였다. 

 

 

순두부 돌솥밥, 쌀 주식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딱 맞는 음식궁합

 

"순두부는 콩의 영양가를 가장 이상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음식입니다. 콩을 순두부로 만들어 먹게 되면 콩에 들어 있는 영양가 95% 가까이 흡수된다고 그래요. 콩에 들어 있는 단백질은 40%에 가깝고, 여기에 섬유질과 칼슘, 회분, 철분, 필수 아미노산까지 풍부하기 때문에 쌀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궁합이 딱 맞다고 봐야죠."

  

전남 순천에서 상사호로 가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낙안과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온다. 그 삼거리 들머리 왼 편 널찍한 주차장이 있는 공터에 순두부 돌솥밥을 전문으로 조리하는 식당이 하나 있다. '콩은 생명이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이 식당은 주인이 밭에서 직접 기른 우리 토종 콩으로 직접 순두부를 만드는, 요즈음 보기 드문 순두부 전문점이다.

 

이름과 나이를 밝히기 꺼려하는 이 집 주인은 나그네에게 "기사 좀 알아서 잘 써줘요. 쓰기 싫으면 말고"라고 당당하게 말할 정도로 순두부 돌솥밥에 대한 자부심이 넘친다. 50여 평 남짓한 널찍한 식당 안에는 "요즈음 날씨가 추워지면서 손님이 부쩍 늘기 시작했다"는 이 집 주인 말처럼 오후 3시가 지난 시간인 데도 여기 저기 손님들이 꽤 있다.

 

순두부 돌솥밥(5천원)을 준비하고 있는 주방 앞에는 '이른 아침 순 우리 콩으로 직접 만든 신선하고 고소한 최고급 순두부입니다'란 글씨가 길게 걸려 있다. 50대 남짓한 여 종업원에게 순두부 돌솥밥과 막걸리 한 뚝배기를 시키자 밑반찬을 열 가지나 넘게 식탁 위에 주섬주섬 올린다. 부추전, 김치, 물김치, 열무김치, 잡채, 시금치나물, 감자조림, 도라지무침, 배추 속, 풋고추, 상추, 갈치속젓 등 일일이 맛보기도 쉽지 않다.

 

 

고소하고 부드럽게 술술 잘도 넘어가는 순두부찌개

 

누룩내가 훅 풍기는, 달착지근하면서도 톡 쏘는 맛이 나는 막걸리 한 잔을 벌컥벌컥 들이킨 뒤 부추전 한 점 뜯어 입에 물자 바삭바삭 고소한 맛이 젓가락을 자꾸 가게 만든다. 아삭아삭한 김치와 열무김치, 물김치도 새콤달콤 맛이 깊다. 닭고기로 만든 잡채도 미끌미끌 부드러운 감칠맛 감추며 잘도 넘어간다.

 

이윽고 이 집이 자랑하는 나무뚜껑이 덮인 돌솥밥과 겨울노을빛을 닮은 순두부찌개가 식탁 위에 올라온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순두부찌개 한 술 떠서 입에 넣는다. '앗! 뜨거!'. 순두부찌개가 입천장을 데일 정도로 뜨거운 데도 얼큰하면서도 고소한 맛에 정신을 빼앗겨 자꾸만 숟가락이 간다. 

 

고소하고 부드럽게 술술 잘도 넘어가는 순두부찌개를 먹으며 돌솥밥 나무뚜껑을 열자 거기 윤기가 자르르하게 흐르는 밥알 곳곳에 노오란 조와 감은 콩이 보석처럼 촘촘촘 박혀 저마다 독특한 빛을 내고 있다. 돌솥밥을 그릇에 퍼낸 뒤 돌솥에 물을 붓고 다시 나무뚜껑을 덮는다. 누룽지 숭늉을 만들기 위해서다.

 

곱슬곱슬한 돌솥밥과 함께 떠먹는 순두부찌개 맛은 환상 그 자체다. 돌솥밥 한 숟가락 입에 넣고 매콤하면서도 고소한 순두부찌개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자 몇 번 씹을 틈도 없이 그냥 술술 넘어가 버린다. 가끔 노오란 배추 속잎과 상추 잎에 돌솥밥을 얹고 갈치속젓과 함께 쌈을 싸먹는 맛! 짭쪼름하면서도 구수하게 입을 가득 채우는 감칠맛도 끝내준다.  

 

 

삶은 돼지고기를 두부와 함께 먹는 맛도 쫄깃쫄깃 고소하다. 순두부찌개 속에 든 쫀득한 조갯살과 향긋하게 씹히는 양송이버섯을 순두부와 함께 떠먹는 맛도 별미 중 별미다. 마지막으로 돌솥에 담긴 고소한 누룽지와 숭늉을 먹고 나면 이 세상 부러울 게 하나도 없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셀프서비스인 식혜와 수정과까지 먹어야 식사가 모두 끝이 난다.

 

찬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는 땡겨울에 더욱 생각나는 순두부 돌솥밥. 따끈따끈한 순두부가 얼어붙은 몸과 마음에 선물하는 부드럽고도 고소한 맛은 가난한 서민들 씀씀이처럼 소박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입천장을 데이는 줄도 모르고 곱슬곱슬한 돌솥밥과 함께 먹는 그 순두부찌개 감칠맛 하나는 부잣집 밥상 저리 가라다.

 

올해 내내 이어지는 돈가뭄에 그 어느 해보다 유난히 춥고 배가 고픈 올 겨울, 가족들과 식탁 위에 오순도순 둘러앉아 순두부 돌솥밥 한 그릇 나눠먹어 보자. 몸과 마음을 꽁꽁 얼어 붙이는 강추위가 어느새 꽁무니를 감추리라. 생활고에 따른 여러 가지 시름이 한순간이나마 저만치 사라지리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태그:#순두부 돌솥밥, #순천 상사호 가는 길목, #콩은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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