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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 6시 서울시 교육청 앞, 차도를 가운데 두고 좌우로 1천여개의 촛불이 일렁였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과 학부모, 각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이 참여한 촛불문화제는 '서울시민 촛불 기자회견'이라는 생소한 이름을 달고 3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심야시간에는 문화제도 허용할 수 없다는 경찰이 이날 수백여명의 병력과 살수차까지 동원한 채 수차례 해산을 명령했지만 이들을 흩어놓을 수는 없었다.

 

주제는 명확했다. 촛불은 각 발언이 끝날 때마다, 노래가 멈출 때마다 "불법징계 철회하고 일제고사 중단하라" "아이들과 함께라면 징계도 감미롭다"고 외쳤다. 이날 '징계대상 교사'에서 '해임·파면 교사'로 확정된 교사 7인도 무대에 올라 "내일도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학교로 가겠다"고 선언했다.

 

"저도 가정통신문 보냈습니다"

 

'촛불'들은 아프고 화가 나 있었다.

 

이번 파면·해직 교사 중 3명의 교사를 가르친 한홍구 교수는 "지난 10월 강연 때부터 전교조에 해직교사가 나온다고 했지만 이렇게 빨리, 그리고 제 밑에서 배웠던 이들이 해임될지 몰랐다"고 한탄했다.

 

한 교사는 "저도 징계교사들이 한 것처럼 학부모들에게 일제고사의 부당함에 대한 가정통신문을 보냈다"고 밝혔다. 그는 "이렇게 밝히는 것이 저를 덮어주신 교장·교감선생님에 대한 배신이 될 수도 있지만,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침묵하는 담임이 되고싶지 않다"며 자신이 써온 글을 읽다가 "다만, 아이들의 졸업을 못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라며 끝내 울음을 참지 못했다.

 

거원초등학교 학부모 김현종(46)씨는 "아이들이 '박수영 선생님은 우리들의 꿈과 미래다', '박수영 선생님과 졸업하고 싶어요'라고 적힌 글을 교장실에 내밀 때 우리들은 눈물을 참지 못했다"며 "선생님으로서 선생의 역할을 한 게 죄가 되냐"고 물었다.

 

노회찬 진보신당 공동대표는 "선생님들이 해임된 것은 이명박 정부가 일제고사를 통해 초중등교육 전반을 사교육시장으로 내몬다는 천기를 누설했기 때문"이라며 "이제 우리가 일곱 분 선생님들이 학교로 빨리 돌아올 수 있도록 앞장서서 천기를 누설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징계도 감미롭다"

 

 

그러나 누구보다 이날 아팠을 교사들은 당당했다.

 

7명 모두 조금씩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이날 교문 안으로 들어서서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었듯 다음 날도 인사를 나눌 것이라 다짐했다.

 

"오늘 학교에 가니 교감 선생님이 제 책상에 앉아있었다. 그 분이 '최 선생. 마무리 아름답게 해야지, 내려가서 통지서 받으시라'고 했다. 아이들 이름 하나하나 부르고 감싸 안는데 마지막 40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그러나 내일도 아이들을 만나러 갈 것이다." - 최혜원(길동초)

 

"아침에 해임통보를 받았지만 4교시까지 수업을 끝내고 아이들에게 숙제를 내줬다. 내일 숙제 검사하러 갈 것이다." - 박수영 교사(거원초)

 

"급훈이 '굴복하지 말고 살자'다. 그렇게 가르친 제가 그렇게 행동하지 못하는 게 잘못된 것이다." - 윤여강 교사(광양중)

 

출근투쟁만이 이들의 해법은 아니었다. 이날 모인 교사들과 학부모들은 중학교 1·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제고사가 치러질 23일, 모두의 '행동'으로 이들에 대한 징계를, 그리고 일제고사를 걷어내자고 다짐했다.

 

89년 전교조 집단 해고 사태 때 해임당했다가 이번 일제고사 사태로 파면을 맞은 송용운 교사(선사초)는 "징계위원회가 열리고 일주일만에 징계통보…, 이들이 이렇게 서두르는 이유는 23일 치를 일제고사 때문이다"며 "너희들도 해임·파면되기 싫으면 나서지 말라고 겁주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송 교사는 이어 "23일 전국에서 체험학습의 물결을 일으키자"며 "이 물결이 해일이 된다면 징계의 칼날을 휘두르는 자도 쓸려나갈 것이고, 교사들과 아이들의 미래도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이날 촛불문화제에 이어 오는 20일 서울 광화문 열린시민마당에서 '전교조 탄압 중단 및 일제고사 반대, 부장징계 철회 요구 전국교사 결의대회'를 열기로 했다.

 

태그:#일제고사, #해임 파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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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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