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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를 되돌아보면 여러 가지 단어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경제위기, 쇠고기파동, 촛불문화제, 좌우대립, 남북관계단절, 청년실업, 명박산성 등등 좋은 단어보다 안 좋은 단어들이 먼저 떠오른다. 이런 단어들이 기억 속에 떠오른다는 것은 올 한해 얼마나 극심한 혼란의 시기였는지 보여주는 증거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올 한해를 완벽하게 정의할 수 있는 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지난 시절 되돌아보면 나는 사회문제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런 나의 생활은 올 한해를 정리하는 단어를 찾는데 더욱더 곤혹스럽게 한다. 그런데 갑자기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다. 바로 촛불문화제다.

 

자신의 일 외에 모든 사회적인 사건에 무관심했던 내가 스스로 촛불문화제에 참여했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엄청난 행동이었다. 서울지역만큼 모이지 않았다 해도 부산지역 역시 뜻있는 사람들의 촛불문화제는 상당기간 지속되었다. 물론 지금생각해보면 매 집회마다 촛불문화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항상 스스로 우익이자 보수라고 생각했던 나의 이런 소극적인 행동은 적지 않은 자기충격이자 파괴였다.

 

나에게 올해를 대표하는 단어는 생각해보면 촛불문화제와 쇠고기파동이 되어야 마땅할 것 같다. 하지만 이 모든 사건이 일어나게 한 가장 큰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바로 도덕성이라는 단어다. 올해를 정리하는데 이 단어만큼 가슴에 와 닿는 단어는 나에게 없을 것 같다. 이 중요한 단어를 우리사회가 잃어버리고 살았기에 모든 문제는 시작되었다. 도덕성이란 어떤 의미인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그 의미를 찾아보았다.

 

도덕적 가치, 판단, 그 행동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서 한 개인의 성격에서부터 구체화되는 행동이 사회적인 가치기준으로 판단되는 시점에 도덕성이 개입한다.

 

칸트는 어떤 행위가 도덕법에 대한 존중의 차원에서 이루어졌을 때만 도덕적 가치를 두었다. 반면 표면적으로 나타난 결과가 도덕법에 부합되었지만 행위의 동기가 고려되지 않을 경우에는 도덕적 가치를 두지 않았으며 이를 도덕성과 구별하여 적법성이라 불렀다. 즉 칸트는 행위의 동기를 매우 중요시했으며 이것은 도덕성이 외면적인 규율이라기보다는 내면적인 가치기준인 것을 강조했다. 오늘날에는 도덕성의 평가가 행위의 동기와 실제행동, 갈등상황에 대한 판단과 그 실천 등 다양한 측면에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출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우리사회는 언제부터 도덕성이란 단어를 아주 쉽게 생각했다. 사회근간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단어, 사회가치를 나타내는 핵심적인 단어, 사회양심을 나타내는 청결한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이 단어는 우리사회에서 중요한 단어가 되지 못했다. 도덕성이란 단어가 존중받지 못한 사회는 이미 스스로 부패하고 깨끗하지 못한 집단임을 자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툭하면 정치인들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그들의 자질을 논하고 그들을 평가하며 때로는 비난한다. 하지만 정치인들의 도덕성이 땅에 떨어진 것은 우리사회구성원들 스스로 그들에게 명분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여야를 떠나 도저히 정치인으로 해서는 안 되는 말과 행동을 한 사람들조차 버젓이 또 다시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때론 그 보다 더 높은 위치에 당선된다. 그들 모두는 우리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국민들 동의하에 당선된 것이다. 그런 선택을 한 사람들은 정치인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다.

 

정치인들의 수준은 그 나라 국민수준이란 말이 있다. 정치인들의 도덕적 타락은 결국 국민들 스스로 여러 사회분야에서 도덕적 타락을 묵인해주었기에 가능했다. 우리 스스로 도덕적 타락을 묵인하고 관대함을 보여주면서 스스로 화를 자처한 것이다.

 

도덕성이란 분명한 원칙과 기준이 있어야한다. 이런 사회적 원칙을 세우는 것은 정치인이나 힘 있는 몇몇 사람들이 아닌 사회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개개인의 암묵적인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다. 결국 어떤 사회가 부패하고 깨끗하지 못한 것은 우리 스스로 이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합리한 일에 대해 묵인해주고 동의하면서 스스로 도덕성에 상처를 주었기 때문이다.

 

도덕성이란 한번 상처 입게 되면 쉽게 그 가치를 회복할 수 없다. 이 중요한 단어가 어떤 사회에서 상처 입었다는 것은 대다수 사회 구성원들 스스로 그 가치를 평가절하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결국 우리사회는 구성원들 스스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부패정치인들과 도덕적으로 부적합한 인물이 사회지도층으로 활동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런 도덕성 상실은 우리 사회의 이중적 잣대를 보면 더욱더 명확해진다. 최근 일어났던 모 재벌의 불법적인 행위는 분명이 지탄받고 어떠한 경우에도 엄정한 법의 잣대를 받아야했다. 일반인보다 사회를 이끌어가는 최상위층 사람이 보여준 도덕적 해이는 더 큰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 대부분 선진국이다. 하지만 재벌의 처벌에 있어 우리 사회는 각자의 목소리를 내었다. 오히려 내부고발자를 지탄하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당장이라도 한국경제가 파탄날 것 같은 위기감이 여기저기 고조되면서 우리 사회구성원 대다수는 이일에 무관심하거나 그들에게 완벽한 도덕적 책임을 묻지 않았다. 미래를 생각하면 소탐대실임에도 불구하고 무감각하게 이일을 받아들였다.

 

재벌들의 비리사건이 계속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대한 처벌을 내리고 있다. 잘못된 기업인 한명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음에도 단지 지금 발생할 수 있는 당장의 어려움 때문에 우리 모두 눈감아주고 있다. 사회구성원들 스스로 이런 사건에 철저한 도덕성을 요구했다면 법원이나 정부에서 이렇게 관대한 처벌을 내리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몇 개의 단체와 몇 명이 분개한다 해서 이런 현실이 근본적으로 변할 수 없다. 사회구성원다수의 동의와 자정 노력이 없다면, 도덕성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다면. 한국사회에서 이런 일은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한국사회의 도덕성 상실이 비단 재벌뿐이겠는가? 우리는 지금도 쉽지 않게 정치인, 공무원, 법조인등 사회에서 모범이 되어야할 사람들의 부정비리 사건을 무수히 목격하고 있다. 이런 사회상위층의 도덕성 상실은 단지 그 사람들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다. 그들이 같은 비리를 계속 반복할 수 있게 만든 현실은 바로 우리가 함께 만들어 놓은 공동의 책임이다. 그리고 어디 사회지도계층만 이런 비리와 부정의 온상이겠는가? 지금도 각종 포털사이트에서 비리와 부패로 검색을 하면 수많은 기사들이 넘쳐나고 있다. 한국사회 전반에 얼마나 많은 부정비리가 은폐되고 서로 눈감아주고 있는지 충분히 확인해볼 수 있는 양의 기사다. 이미 우리사회의 도덕성 상실은 심각한 수준에 와있다. 모두들 그 심각성을 알고 있지만 여전히 모른 척 눈감고 있다.

 

2007년 10월부터 한 달 동안 “일본 청소년연구소”가 한중일 고교생 1000여명에게 설문조사한 내용은 상당한 충격이었다. 한국의 고교생들은 부자를 존경하며 돈이면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믿는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한국 고교생들은 돈만 있으면 권력도 살 수 있으며, 결혼상대자도 부자가 좋다는 응답자 비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두 배나 높았다. 이런 조사는 앞으로 한국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바뀌게 될지 보여주는 단면이다. 사회를 이끌어가는 어른들 스스로 도덕성에 대한 개념이 점점 모호해지면서 청소년들마저 극단적인 성향으로 바뀌고 있다.

 

한국사회의 도덕성 상실은 결국 사회가 건전한 방향으로 가지 못하고, 스스로의 생체기도 치유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사회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주며 자멸의 길에 들어서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2008년 한해 과연 한국사회의 도덕성 상실 문제가 근본적인 인식변화가 있었는지 자문한다면 참담한 마음 표현할 길이 없다. 우리가 그토록 욕하고 싫어하는 우리 사회의 모든 요소들이 결국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괴물이란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한국사회는 더 이상 희망이란 것이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올 한해 뜨겁게 달구었던 경제위기, 쇠고기파동, 촛불문화제, 좌우대립, 남북관계단절, 청년실업 등등 여러 가지 산적한 문제를 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 스스로 철저하게 도덕성이 뛰어난 사람들이 사회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는 풍토이다. 지난 과거를 되돌아보면 흰고양이든 검은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논리가 우리사회전반을 지배해왔다.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과정과 방법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좋은 결과만 나오면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던 무엇을 하던 상관이 없었다. 결국 이런 판단의 착오는 국민들 스스로 모든 책임을 떠 앉아야 됨을 2008년 한해 몸으로 확실히 체험학습 하였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도덕성이 없는 인물들이 사회지도자가 되면 그 사회는 필연적으로 혼란스러워지고 부패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눈앞에 작은 이익을 위해 큰 것을 버리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우리사회는 여지 것 많은 사건을 통해 계속된 사전 학습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같은 문제를 노출했다. 재벌과 정관계 인사들의 대형비리 사건을 끊임없이 봐왔지만 쉬지 않고 계속 반복해서 일어난다. 이런 현상이 계속 반복될 수 있었던 원인이 무엇인지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스스로 그런 일을 용인하고 묵인해주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한 올해 도덕성이란 단어가 더 가슴에 와 닿는 해였다. 우리 스스로 문제점을 알고 있으면서 고치지 않았던 모든 것들이 사회문제화 되어 올 한해 붓 물처럼 터져 나왔다. 2008년 한국사회는 여러 가지 문제로 극심한 내홍을 겪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작은 위안이 있다면 촛불문화제를 주도한 청소년들을 보면서 작은 희망을 가져본 것이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촛불문화제를 태동시킨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사회가치관을 남겨주기 위해 어른들 스스로 도덕성 부재에 대해 철저히 반성해야한다. 우리 주위에 일어나는 모든 불합리한 일에 대해 스스로 저항할 의지가 없다면 우리 사회는 앞으로 계속 지금과 같은 현상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사회의 가치관을 올바르게 확립시키는 것은 촛불문화제를 태동한 청소년들이 아닌 어른들이 솔선수범해야 될 일이다. 분명 아직 늦지 않았다. 올 한해 청소년들을 통해 희망을 보았다. 2009년 한국사회에서 어른들의 노력으로 도덕성 회복의 바람이 불기를 기대하며 이 글을 끝맺고자한다.

덧붙이는 글 | '올해의 단어 응모글'입니다.


태그:#도덕성, #촛불문화제, #쇠고기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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