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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극심한 경기 침체로 마이크로크레디트(무담보 소액대출)가 영세민 생활안정 대책의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기업들의 기부금 축소와 제도 미비 탓에 민간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관들이 어려워지면서 영세민들에 대한 충분한 지원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몇 차례에 걸쳐 마이크로크레디트의 실태와 대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김종진 사회연대은행 팀장(왼쪽)이 4일 저녁 서울 성동구 왕십리 이모네 곱창 가게에서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으로 자활자립에 성공한 김옥연 대표의 상담을 들어주고 있다.
 김종진 사회연대은행 팀장(왼쪽)이 4일 저녁 서울 성동구 왕십리 이모네 곱창 가게에서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으로 자활자립에 성공한 김옥연 대표의 상담을 들어주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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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저녁 8시 칼바람이 불던 서울 왕십리의 한 곱창집. 오전 10시부터 하루를 꼬박 함께한 김종진 사회연대은행 팀장은 기자에게 술을 따르며 말했다.

"우리가 고생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우리가 아니라 마이크로크레디트 지원받은 분들 얘기 써주세요. 그래야 마이크로크레디트가 사회에 더 잘 알려지고 후원도 더 많이 들어오니까요."

기자는 그의 당부를 웃음으로 받아넘겼다. 'RM(Relationship Manager)'인 김 팀장이 맡고 있는, 지원대상자에 대한 사후관리자이자 심리적 지지자 역할이 마이크로크레디트 핵심인 탓이다. 2002년 설립된 사회연대은행이 올해 9월 말까지 130억원의 창업지원자금을 지원한 가게 639곳 중 85% 이상이 제때 상환하고 있는 건 RM의 노력 덕택이다.

이날 김 팀장은 창업지원사업 지원자에 대한 현장실사와 창업자 상담을 하러 비바람과 칼바람을 뚫고 지하철로 서울 곳곳을 누볐다. 김 팀장을 처음 만난 건 이날 오전 10시 상계역이었다.

[오전 10시 상계동] 눈물 쏟는 지원자... 냉정함 잃지 않는 김종진 팀장

김종진 사회연대은행 팀장이 서울 상계동의 한 가게에서 창업지원사업 지원자를 대상으로 현장 실사를 하고 있다.
 김종진 사회연대은행 팀장이 서울 상계동의 한 가게에서 창업지원사업 지원자를 대상으로 현장 실사를 하고 있다.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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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지원사업 지원자인 최인학(53·가명)씨 부부는 상계역에서 500m 떨어진 한 가게로 김 팀장을 이끌었다. 최씨는 "이 가게가 보증금 2000만원·월세 100만원·권리금 500만원이다. 보증금이 매우 싸서 돈을 털어 가계약했다"며 "창업자금을 지원해준다면, 지인으로부터 빌린 300만원을 더해 이 가게를 임대해 비빔국수 가게를 열고 싶다"고 말했다.

빚 800만 원이 있다는 그는 "몇 해 전 동대문에서 비빔국수 가게를 열었지만 사기를 당했다. 포클레인 기사 자격증도 땄지만 나이가 많아 취직이 안 된다"고 하소연했다. 최씨의 부인은 "고3 딸은 돈이 없어 대학진학을 포기했고, 장애가 있는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며 눈물을 훔쳤다.

김 팀장은 최씨 부부의 개인적인 사정보다는 그들의 창업 준비 상황을 살폈다. 그는 "주변 아파트 세대수를 조사했느냐?", "경쟁 점포 분석을 했느냐?", "저녁 메뉴는 개발했느냐?"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1시간 실사가 끝난 후, 김 팀장은 "여러 단계를 거쳐 한 달 후에 통보가 갈 것"이라며 끝까지 냉정함을 유지했다.

돌아오는 길, 기자는 김 팀장에게 "사연이 딱하다"고 말하자 "정말 안 어려운 분들이 없는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어 그는 "어렵다고 다 지원해줄 수 없어 안타깝다"며 "우리가 냉정함을 유지해야, 준비가 잘된 사람들을 선발해 자활자립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낮 12시 종로] "빈 점포 많은 곳에 가게 연 건 실수"

김 팀장은 종로의 한 대형 오피스텔빌딩 지하에 위치한 대구탕집으로 향했다. 가게 주인 김형석(가명)씨가 김 팀장을 환하게 웃으며 반겼다. 경기 한파로 점심시간인데도 빈자리가 눈에 띄었다.

김씨는 지난해 2월 사회연대은행으로부터 창업지원자금을 받아 설렁탕집을 열었지만 고객을 끌지 못해 최근 대구탕집으로 바꿨다. 현재도 확실히 자리를 잡지 못한 터라 김 팀장은 가게 곳곳을 꼼꼼히 살펴보는 등 더욱 신경 쓰는 눈치였다. 그는 자책하는 말투로 기자에게 말했다.

"이곳은 주인이 설렁탕집에서 20년 일했다는 경험으로 설렁탕집을 창업했지만, 한정된 자금으로 창업을 했기에 맛과 직결되는 좋은 재료에 대한 투자가 어려웠다. 또한 공실률이 20~30%인 상가에서 가게를 연 것도 실수였다. 처음엔 잘됐지만, 이를 보고 주변에 음식점이 많이 입점해 고객이 분산됐다."

[오후 2시 충무로] "전문적인 서비스 지원 못해 아쉽다... 성공 창업자 보면 희열"

사회연대은행 사무실 내에 출장보드판. RM들은 대부분 출장 중이다.
 사회연대은행 사무실 내에 출장보드판. RM들은 대부분 출장 중이다.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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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팀장은 쉴 새가 없다. 점심을 먹은 후 바로 실사 내용 정리를 위해 서울 충정로 사회연대은행 사무실로 향했다. 기자가 그에게 "RM들이 춥고 궂은 날씨에도 너무 바쁘게 일한다"고 말을 건네자, 그는 손사래를 치며 "더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지 못해 아쉽다"고 밝혔다.

"RM 숫자가 부족하다보니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없고, 시간도 부족해 집중도가 떨어져 상담·창업지원 등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해 아쉽다. 차라도 있으면 더 많은 지원자를 만날 수 있겠지만…. 전문성 강화를 위해 공부를 더 해야 하는데, 사비로 해야 하니 부담이 많이 된다."

그에게 최근 월급이 제때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려 하자, 그는 웃음으로 받아넘겼다. 그는 "그래도 창업자의 성공을 보면 굉장히 뿌듯하고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2~3년 만에 2억원을 번 창업자와 가끔 통화하는데, 서로 고맙다고 한다. 입지 선정에만 9개월이 걸리는 등 어려움 속에서 성공한 그분의 모습을 보면 내 일인 것처럼 희열을 느낀다. '정말 이런 사례가 나오는구나, 이분을 모델로 더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겠구나'하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

[오후 4시 방이동] "시장조사 했나요?" - "둘러보긴 했는데..."

이번엔 송파구 방이동으로 향했다. 한 카페에서 만난 강미숙(가명·54)씨는 오전에 만난 최씨 부부와 마찬가지로 창업지원자금 지원자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수천만원 빚을 진 후, 개인 파산을 신청한 그는 "칼국수집을 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실사 분위기는 좋지 못했다.

김 팀장 "칼국수는 맛있게 잘 만드세요? 직능검사 때 직접 만들어야 하는데."
강씨 "여의도에서 일할 때 배우긴 했는데, 집에서만 연습한 거라…."
김 팀장 "시장조사는 좀 하셨나요?"
강씨 "둘러보긴 했는데…."
강 팀장 "요즘 밀가루값이 얼마인지 아세요?"
강씨 "글쎄요. 지금은 잘 모르겠네요."

1시간여의 현장 실사 뒤 강씨가 "무척 떨린다, 다른 데서는 돈을 빌리기 어렵다. 마지막 기회인데 잘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김 팀장은 냉정함을 유지한 채 "곧 직능평가와 관련해 연락이 갈 것"이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실사가 끝난 후 기자가 김 팀장에게 "떨어지면 많이 항의할 것 같다"고 말하자 "그런 경우가 가끔 있다"고 답했다. 김 팀장은 "그분들한테는 마지막 기회이다 보니 탈락하면 '청와대에 민원 넣겠다'며 계속해서 강하게 항의하는 사람들이 많다, 참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오후 6시 왕십리] 성공 창업자 "돈보다도 RM의 심리적 지지가 더 큰 힘"

이날 김 팀장의 마지막 일정은 왕십리 곱창골목에 있는 '이모네 곱창'의 김옥연(54) 대표를 만나는 일이었다.

여성가장 김 대표는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으로 자활자립을 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하지만 최근 경기 한파로 하루 100만원이었던 매출이 30만원으로 줄어들었고, 뉴타운 개발로 곧 가게를 옮겨야 한다. 이 때문에 김 대표가 김 팀장에게 상담을 요청한 것.

이날 상담은 손님들 때문에 길게 이뤄지지 못했다. 김 팀장은 "오늘은 손님이 좀 있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런 김 팀장을 두고 김 대표는 기자에게 "너무 고마운 사람"이라고 귀띔했다.

"처음 창업을 할 때 전 주눅이 들고 찌그러져 있었던 풍선 같았는데, 김종진 팀장을 만나 부푼 풍선이 됐다. 남인데도 힘들고 두렵고 답답할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으로 나의 버팀목이다. 돈보다도 RM들의 심리적인 지지가 홀로서기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RM들이 우리 사회의 희망이다."

김종진 사회연대은행 팀장(왼쪽)이 4일 저녁 서울 성동구 왕십리 이모네 곱창 가게에서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으로 자활자립에 성공한 김옥연 대표에게 음식맛에 대해 조언을 해 주고 있다.
 김종진 사회연대은행 팀장(왼쪽)이 4일 저녁 서울 성동구 왕십리 이모네 곱창 가게에서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으로 자활자립에 성공한 김옥연 대표에게 음식맛에 대해 조언을 해 주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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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마이크로크레디트, #마이크로크레딧, #사회연대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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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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