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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라고 데려 왔더니, 오자마자 벽에 손 짚고 비실대더니, 그냥 쓰러지더라고. 여기 저기 병원 데리고 다닐 땐 정말 이러다가 송장 치우는구나 싶었는데, 그래도 사람 하나 살렸으니 됐죠. 허허."

 

웃고는 있었지만, 퇴원 수속을 하며 540만원의 분할 지급 약속을 하는 그의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경기도 안성에서 자동차 부품업체를 하는 K사장은 외국인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아흐마 솔레(27)를 고용했다가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그가 복막염으로 수술 받는 통에, 병원을 네 군데나 옮기며 그간 회사 일을 접어야 했었다.

 

아흐마의 퇴원을 앞두고 만난 K사장은 요즘 경기가 좋지 않아 여윳돈이 없는데, 지급 보증을 하고 퇴원시킨다는 게 여간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라고 하소연했다.

 

"솔직히 말해서 생면부지의 사람 아녜요. 계약서에 잉크도 마르지 않은 사람인데, 오자마자 그 일을 당했으니 억울하죠. 그래도 사람은 살리고 보는 법이잖아요."

 

"그런데 어이없는 건 저 친구 데려올 때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받은 '외국인근로자 건강진단서'엔 종합판정, '정상입니다'라고 쓰여 있었어요. 그런데 아파서 병원 입원했다고 연락했더니, "근무에는 지장 없을 것으로 사료되나 정기적 관찰요망"이라고 종합판정을 써서 건강진단서를 다시 보내 왔더라고요. 사람 목숨 가지고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참"

 

회사에 데려오자마자, 아흐마 솔레가 쓰러지면서 K사장은 안성의료원, 천안 단국대병원을 거쳐, 장기전문병원이라는 또 다른 병원을 거쳐 수원 아주대병원까지 열흘 내내 수술 전까지 급하게 병원을 오가야 했다. 그런데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 사람이라, 아흐마 솔레를 인계받았던 중소기업중앙회에 하소연했더니, 달랑 '외국인근로자진단서'만 종합판정 내용을 달리해서 보내놓고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고, 나 몰라라 하는 통에 분통을 터트려야 했다고 한다.

 

그래도 아흐마 솔레를 응급실에 입원시킬 때, "생사를 가늠할 수 없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지급 보증을 섰던 터라, 무사히 수술이 끝나고 퇴원까지 하게 되어 그나마 숨을 돌린다는 K사장은 앞길이 더 막막하다고 했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주문이 들어오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돈이 돌지 않아서 수금조차 쉽지 않은 상황에서 분할 지급하기로 하고 퇴원시켰지만, 일감이 없어 제대로 갚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다. 하지만 K사장은, "입원할 때 보증을 선 마당에 퇴원을 안 시킬 순 없죠. 그래도 병원 측에서 편의를 봐 줘서 병원비도 감면해 주고, 분할 납부까지 하도록 해 주니 고맙죠. 평상시 같으면 큰 걱정할 돈은 아닌데" 하며 측은하게 아흐마를 바라보는 그의 어깨는 축 늘어져 있었다.

 

반면 근 사십일간의 병원 생활을 마치고 퇴원하는 아흐마 솔레는 뼈만 앙상하게 남아있긴 했지만,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의 여유랄까, 차분해 보였다. 그리고 아흐마 솔레를 간병했던 결혼이주민 출신의 민다씨도 "아흐마씨, 좋은 사장님 만나서 다행이야. 나중에 고맙다고 꼭 인사해"라며 그의 퇴원을 진정으로 축하해 주었다.

 

비록 말이 통하지 않는 두 사람이었지만, 간병을 했던 민다씨의 마음을 옆에서 읽을 수 있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K사장 역시 헛헛하며 웃고 있었다.

 

한편 아흐마 솔레가 퇴원할 즈음에 국립병원인 서울대병원 앞에선 의정부성모병원에서 서울대병원으로 앰뷸런스로 이송하여 긴급하게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 이주노동자를 놓고 연대보증을 섰던 한 시민단체 활동가, 이성환씨에 대한 서울대병원 측의 강제차압 문제로 시민단체들의 규탄 기자회견이 있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당시 입원 수술했던 사람은 병세가 호전되지 못하고 사망하였는데, 총 진료비는 4천여만 원이 나왔고, 이성환씨가 속한 센터에서는 2천2백만 원을 납부하였다. 하지만 해당 센터는 남은 진료비를 납부할 여력이 없고 또한 죽은 사람을 위해 모금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연대보증이 위법이라는 복지부장관의 국회 발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불을 강요받고 있다고 한다.

 

같은 병원인데, 어떤 병원은 병원비를 감면해 주며 분할 납부까지 배려해 주는데, 어떤 병원은 가난한 시민단체에서 인류애를 실천하던 활동가가 단지 연대보증을 섰다는 이유로 강제차압 위협을 하고 있는 현실이 한 하늘 아래서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묻고 싶다. 강제차압을 하겠다는 병원에. 생사를 앞두고 입원하는데 보증 회피할 사람 있을까? 사람은 살리고 보는 법인데.

덧붙이는 글 | 현재 아흐마 솔레는 퇴원 후 용인이주노동자쉼터에서 요양하고 있다. 


태그:#서울대병원, #이주노동자, #병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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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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