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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미포조선 이홍우 조합원의 투신사건 당일의 사진이 실린 현수막 .
ⓒ 박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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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싱싱함을 자랑했던 은행잎은 이제 소임을 다한 듯하다. 황금색을 뽐내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바싹 마른 모습이다. 이제 나무에 매달릴 기운도 없는 그들은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하나 둘 툭툭 떨어져버린다. 차량이 쌩하고 지나갈 때마다 노란 물결은 거리 한 귀퉁이 담벼락 밑으로 내몰린다. 나목이 즐비한 거리엔 쓸쓸함이 가득하다. 

며칠 전, 울산인권운동연대에서 현대미포조선 앞 농성장을 방문했다. 회사 담벼락 앞 가로수에는 이홍우 조합원의 쾌유와 회사의 노동탄압을 중단을 요구하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사건 당시 이홍우 조합원의 처참한 현장사진에 고개가 절로 돌아간다.

온기 하나 없는 농성장이 썰렁하다. 유난히 덤프트럭이 많이 달리는 대로변엔 추위를 막아 줄 비닐도 없다. 달랑 돗자리하나만 깔려있었다. 가난한 노동자들의 농성장은 늘 똑같다. 라면상자와 물, 낡은 담요, 휴대용 가스버너가 보인다. 그 곳엔 현대미포조선 김순진 현장활동가와 지지방문 온 지역의 노동자들이 함께였다.  

농성장은 현대미포조선 3개의 현장조직과 지역 노동자들이 교대로 지킨다고 한다. 이 날 농성장에선 '현장의소리' 김순진 의장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밤 집회 때 분노에 찬 표정으로 발언하던 모습과는 사뭇 인상이 달랐다. 집회현장에서 몇 번 뵈었지만 영 다른 사람인 것 같아 김순진 동지가 맞느냐고 물었다. 지역 동지들과 대화를 나누는 표정이 무척 순박하다. 그의 이름이 '순진' 아닌가. 순진한 사람이 동료의 고통 앞에 회사의 부당한 탄압에 강철 같은 투사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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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인권운동연대 최민식대표와 현대미포조선 김순진 조합원이 담소를 나누고있다 .
ⓒ 박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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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조직 활동가들은 저녁엔 촛불문화제에 참가하고 밤엔 철야농성에 들어간다. 철야농성하면 하루 정도 쉴 수 있을까. 중식선전전과 출, 퇴근투쟁을 하고 날마다 촛불문화제에 참가해야 해서 쉴 수 없었다. 그야말로 오늘도, 내일도 날마다 투쟁의 연속이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 고생하면서도 먹고 자는 일도 형편없다. 끼니는 도로변의 새까만 먼지가 내려앉은 음식과 컵라면 등으로 대충 때우기 일쑤다. 수면은 돗자리 위에서 잠시 눈 붙이는 게 전부다. 농성장에 앉아 있으니 차량소음도 만만치 않다. 스트레스와 누적된 피로로 건강이 나빠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현장 활동으로 정직1개월 통보를 받은 김순진 의장은 오는 15일 첫 출근이라고 한다.

지난 9월부터 세 조직으로 구성된 현장 활동가들은 중식시간과 퇴근시간을 이용해 회사 안팎에서 선전전을 하고 있다. 이홍우 조합원의 투신사건이 있기 전에는 활동가들에 대한 회사의 탄압이 심했지만 현재는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고.

현대미포조선에는 노동조합이 존재한다. 노조는 이홍우 조합원의 사건에 회사 측에 적극적으로 대응할까? 전혀 아니다. 현장조합원의 투신에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수수방관이다. 그 뿐 아니다. 오히려 노조는 현장 활동가들에게 중식선전전과 촛불문화제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노조를 공격하면 예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100퍼센트 징계조치 당할 것이라고 한다. 조합원의 사건에 이렇게 무심한 노조와 삼성 무노조의 다른 점은 과연 무엇일까.

현실이 이렇다보니 노동자들은 몸도 지치고 마음도 편치 않다. 회사를 위해 청춘을 바쳐 일했건만 돌아오는 건 탄압뿐이다. 일하다 다쳐도 제대로 된 치료도 못 받는다. 기계는 고장 나면 고쳐 쓴다. 그러나 노동자는 다치면 천덕꾸러기로 전락한다. 산재인정 받는 일도 하늘의 별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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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미포조선 앞 농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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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노동자는 기계만도 못한 존재인가? 오는 10일은 세계인권선언 60주년 기념일이다. 어떻게 된 게 60년 전이나 지금이나 노동자의 인권은 온데간데없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소모품 취급하지 말고 내 가족이라는 인식을 가졌으면 한다.

다음 집회 때 또 오겠다며 농성장을 빠져나오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유난히 을씨년스런 거리풍경에 마음이 더욱 울적해지는 하루였다.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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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울산인권운동연대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노동자 인권 , #현대미포조선 , #농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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