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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드라마 '바람의 화원' 신윤복(문근영)
 SBS드라마 '바람의 화원' 신윤복(문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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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막을 내린 SBS 드라마 <바람의 화원>은 과연 어떤 작품으로 대중들의 기억 속에 남게 될까. 분명 이 작품은 과거에 보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팩션' 사극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여 이 작품은 걸작의 반열에 오르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베토벤 바이러스>나 <바람의 나라> 같은 경쟁작들에 밀려 시청률 경쟁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남장 여인으로 탄생한 '신윤복'이라는 캐릭터는 인물 그 자체로서보다는 문근영의 소녀적인 이미지와 스타성에 가려졌고, 박신양이 연기하는 김홍도의 비중은 어정쩡했다. 드라마는 중반부터 신윤복과 김홍도의 극적 비중과 관계의 진화를 설득력있게 담아내지 못하여 극의 균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소녀같은 신윤복, 어정쩡한 김홍도

무엇보다 이 드라마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신윤복과 김홍도의 그림 세계에서 나타난 당대의 시대상, 천재 화가들의 예술혼, 사제와 연인, 동성애와 이성애, 신분과 계급을 넘나드는 각 인물들의 다층적 애증 구도, 정조와 사도세자를 둘러싼 역사적 미스터리에 이르기까지.

이정명 작가의 원작이 내포하고 있는 수많은 텍스트들을 영상물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미처 교통정리되지 못한 이야기는, 결과적으로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다 오히려 어느 하나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는 과유불급으로 이어졌다.

<바람의 화원> 최종회를 보면서, 어딘지 모르게 장태유 PD와 박신양의 전작이던 <쩐의 전쟁>의 결말이 오버랩되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바람의 화원>은 대단원에 이르러 미처 벌여놓은 이야기를 허겁지겁 마무리하기에도 호흡이 가빴다. 사도세자를 둘러싼 미스터리가 해결되는 극적인 클라이맥스와 반전의 쾌감도 갑자기 사라져버린 조연 캐릭터들에 대한 설명도 김홍도와 신윤복의 애절한 엇갈림이 남겨두는 여운을 곱씹을 여유도 주지 않았다.

1회 오프닝에 이어 엔딩 장면에서 다시 등장한 '미인도'와 김홍도·신윤복의 이별 장면은 급하게 마무리된 이야기로 인하여 애틋한 여운은 고사하고 억지로 결말을 유도하여 수미쌍관을 맞추려는 짜깁기의 느낌밖에 나오지 않았다. 과연 홍도와 윤복의 엇갈린 삶은 그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 시청자들이 그들의 운명과 선택에 감정적으로 몰입할 틈도 주지않고 드라마는 후다닥 엔딩 크레딧을 올려버린다.

<쩐의 전쟁> 때도 그랬다. 시청자들이 정서적으로 아무 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엉뚱한 타이밍에 주인공 금나라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어때 기막힌 반전이지?"하고 허무하게 이야기를 끝내버린다. 외화 <소프라노스>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라면, 한마디로 불친절하고 무성의한 결말의 연속이다.

신윤복을 위한 문근영, 혹은 문근영을 위한 신윤복

당초 <바람의 화원>은 하반기 최고의 화제작으로 기대를 모았다. 지난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쩐의 전쟁>의 장태유 PD와 박신양이 다시 손을 잡았고, 성인이 된 이후 첫 주연작으로 사극을 선택한 왕년의 국민여동생 문근영의 안방극장 복귀, 출판계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당시 벌써 영화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이정명 작가의 베스트셀러를 실사로 구현한다는 점에서 초미의 관심을 모으기 충분했다.

<바람의 화원>은 올해 대중문화계의 트렌드라고 할 수 있는 '팩션' 장르와 원소스 멀티유즈 마케팅 전략을 타고 등장한 작품이다. 역사에 오로지 화려한 작품들만을 남기고 잊혀진 '신윤복'이라는 미스터리한 천재화가를 21세기에 새롭게 재조명하는 작업을 통해 하반기에 팩션 사극의 돌풍을 일으키는 데 기여했다.

드라마는 신윤복이 남장여자라는 파격적 가정하에 다채로운 역사적 미스터리와 상상력, 한국화의 아름다움이 물씬 묻어나는 영상미를 결합시켜 새로운 형태의 사극을 만들어냈다. 신윤복과 김홍도의 그림세계로 대표되는 한국화의 세계와 조선시대 미술사에 대한 문화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 드라마의 최대 의의라 할 만하다.

신윤복의 성정체성에 대한 역사적 진실 여부와는 별개로 그의 그림세계는 현대 대중문화의 자유분방한 히피 정서와 맞닿아있다. 소설과 드라마·영화는 각각 미스터리적 구조와 성장담이라는 두 가지 틀 속에서 진행된다. 그리고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고 직설적인 성적 묘사를 통해, 남장여인으로서의 신윤복이 남성중심적 사회구조에서 겪었어야할 억압과, 예인의 삶으로 대변되는 ‘자유에의 의지’을 그려낸다.

영화 <미인도>에서 영화속 김민선의 신윤복은, <바람의 화원>과는 별개의 스토리이지만, 마찬가지로 신윤복의 그림세계에서 나타나는 억압된 자아를, 자유주의적인 성적담론의 관점에서 풀어낸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하여,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자신의 성정체성을 지우고 남자로 살아가야하는 윤복의 아이러니한 운명은, 성적 자유를 억압하는 사회에 대한 저항의 코드로 읽혀진다.

그러나 드라마가 재해석한 신윤복은 문근영이라는 스타의 그늘에 가려지며 캐릭터의 표현영역이 오히려 한정되어 버린 느낌이다. 남장여자가 되었어도 이루지 못할 사랑에 마음아파하고, 그림에의 열정으로 가슴태우는 화원이 되었어도 타고난 동안과 앳된 목소리는 극중인물에서 온전히 신윤복을 보기보다는 앳되고 여린 배우 문근영의 이미지가 먼저 두드러졌다.

10대 시절 '국민 여동생' 신드롬을 일으키며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했으나, 어느덧 성숙한 20대 여인으로 돌아오며 새로운 포지셔닝을 찾는 데 고민하던 문근영에게, <바람의 화원>은 성인 연기자로 진화할 수 있는 가교를 마련해준 작품이었다. 촬영 도중 코뼈 부상이라는 악재와 드라마 외적인 개인 기부활동을 둘러싼 '색깔 공세' 등으로 본의 아니게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도 끝까지 투혼을 발휘하며 연기자로서 한 단계 성숙해진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배우의 노력과는 별개로, 문근영의 신윤복은 그리 인상적이지 못했다. 예술가로서의 자의식과 부친에 대한 복수심, 김홍도·정향과의 엇갈린 삼각관계가 주는 정체성의 혼란, 이 세 가지 요소 사이에서 길을 잃은 드라마 속 신윤복은, 오직 문근영의 '로리타'적인 기존 이미지에만 기대어 '덜 자란 미소년'의 수준에서 그친다. 정향이 윤복에게 빠져드는 감정이라든가, 스승 김홍도와 윤복의 정서적 교감 등은 그리 디테일하게 묘사되지 못했다.

여기에는 박신양과 문근영 조합의 부조화도 한몫을 담당했다. 따로 떼어놓으면 확실한 존재감을 발휘하는 배우들이지만, 그들을 한 화면에서 묶어놓았을 때는 시너지 효과보다는 오히려 두 배우가 연기가 주는 단점만이 부각됐다. 사제나 연인이라기보다는 삼촌과 조카를 보는 듯한 어색함도 그들의 연기에 몰입하기 어렵게 만든 원인이었다.

빼어난 영상미와 이색적인 소재, 신선한 상상력만으로 만족할수 있다면, <바람의 화원>은 충분히 올해 대중문화 지형도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품임이 사실이다. 그러나 드라마 자체로만 놓고봤을 때 가장 훌륭한 작품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각색 과정에서 시나리오 한계와 생방송 시스템으로 대변되는 한국 드라마의 열악한 현실속에 용이 되지못한 이무기로 그치며, 걸작의 조건은 갖췄으나 정작 평작에 그친 수많은 용두사미 드라마의 목록에 이름을 추가해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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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드라마, #신윤복, #문근영, #바람의 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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