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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진 머리 뒤에 비녀를 꽂아 고운 인상의 여점남 청소원. 말투와 행동에 겸손함이 배어있고 고객중심의 서비스 정신이 있으시더군요.
 쪽진 머리 뒤에 비녀를 꽂아 고운 인상의 여점남 청소원. 말투와 행동에 겸손함이 배어있고 고객중심의 서비스 정신이 있으시더군요.
ⓒ 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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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일 화장실문화시민연대 소개로 '만남의 광장' 휴게소 화장실 관리원 여점남(63)씨를 만나러 갔습니다. 여 선생님은 18년 4개월 동안 일을 하였으며 제9회 우수화장실 관리인 시상식에서 전국 최우수 관리인으로 뽑혀 행정안전부장관상을 받고 사례 발표를 하는 분이지요.

첫인상은 비녀를 꽂은 머리에 맑고 고운 얼굴이시더군요. '선생님'이란 소리를 하지 말라고 '아줌마'라고 부르라고 말씀하시는데 행동이나 말씀에 오랜 시간 겸손하려고 한 자세가 배어있으시네요. 성내천이나 근처 공원에서 말씀을 들으려 했는데, 날씨가 쌀쌀하다고 선생님 집으로 가자고 하십니다. 

말씀을 나누다보니 여선생님은 고객님이라고 '님'을 꼭 붙여 말하시고 마음가짐이나 생활태도가 화장실 청소 달인 수준이시더군요. 강산이 2번이나 변할 시간 동안 더러운 화장실을 청소하신 분답더군요. 불평불만이 생기지 않도록 스스로 생각을 꽉 잡고 있으시네요. 여선생님에게서 듣는 화장실 꼴불견과 고생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짠했습니다. 

- 최우수 관리인으로 뽑혀 장관상을 받으시는데 소감은 어떠세요?
"만남의 광장에서만 18년을 했지요. 일을 할 때, 고객님이 시선을 주고 가족처럼 대해줘서 고마워요. 만남의 광장은 자꾸 오시는 분들이 많으세요. 저 역시 가족처럼 고객님들을 대하지요. '곱던 얼굴, 이젠 할머니가 됐네요'라고 서로 농담 주고받지요. 고객님들이 나를 만남의 광장에 붙들어요. 이렇게 오랫동안 저를 믿어주고 일하게끔 한 회사도 고마워요."

- 하루에 일은 얼마나 하세요?
"청소란 것이 제가 찾으면 많고 안 하면 적은 것이지요. 많다 적다 얘기할 게 아니죠. 주어지는 것에 최선을 다할 뿐이죠. 제가 생산자라면 완벽한 정품을 만들겠지만 청소원이기에 완벽한 화장실을 만들려고 해요. 고객님들 마음으로 화장실을 살피죠. 어느 곳을 보고 참 좋아하실까 늘 생각해요. 붓으로 난을 그리듯 정성을 들이지요. 그런 마음 없으면 짜증만 나지요. 일주일에 하루 쉬고 하루에 12시간 정도 일을 합니다."

남자 40%는 대변 안 내리고 침, 담배꽁초, 팬티까지 버려

- 남자화장실과 여자화장실을 둘 다 청소하실 텐데, 차이가 있나요?
"이 세상에 여자분들 없으면 나라가 안 됩니다. 남자화장실과 여자화장실 비교가 안 돼요. 놀라버렸어요. 처음에는 여자들이 생리 때문에 더 지저분할 줄 알았는데, 남자화장실은 말도 못해요. 담배, 침에 다른 분들을 생각 안 하세요.

남자 40%는 대변을 안 내려요. 들어가면 깜짝 놀라요. 세면대에 있는 침도 놀랄 정도에요. 수세미로 닦아내죠. '얼마나 바쁘면 이렇게 하십니까, 편안히 가십쇼, 제가 해드리겠습니다'하죠. 화장실 곳곳 안 보이는 데에다가 침, 담배꽁초, 심지어 팬티도 버려요. 저는 그런 거 치우면서 '나 좋은 일 많이 했다' 여기지요.

아침에 출근해서 3시간은 허리를 못 펴고 일을 해요. 솔로 안 벗겨져 손으로 수세미를 잡고 일일이 박박 문질러 닦아야 하거든요. 소변기 앞쪽 바닥에 오줌이 찐득하게 붙어있어서 엎드려 닦아야 해요. 화장실 소변기에 하수구로 빠질 때 있는 돌 있잖아요. 그것은 수세미로 이빨 닦듯이 하나 하나 닦아줘야 해요. 그걸 들어보면 침이랑 가래가 고여 있어요. 물을 퍼붓고 소독약 묻혀서 돌을 닦은 뒤 다시 물 부어야 고여 있는 것들이 내려가요.

더구나 타월, 세제, 휴지, 바가지, 양동이 안 가져가는 게 없어요. 어떤 남자 분은 창고에 들어가서 똥을 싸기도 해요. 면도는 기본이고, 화장실에서 상체 훌러덩 벗고 머리 감고 바닥에 물을 흠뻑 적시기 일쑤지요. 그럼 저는 그러지요. '고객님, 하루 종일 하셔도 좋은데 혹시나 바닥이 물이 있어 다른 고객님이 미끄러질 수 있으니 천천히 해주세요.' 다른 고객님들이 그렇게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하면서 나가면 저는 그러지요. '오죽하면 하겠습니까, 고객님이 이해하세요.'"

"웃고 살아야 하지만 때로는 몰래 울어요"

선생님도 몸 관리 잘하세요. 대변을 보면, 남자 80%가 설사에요. 변기를 보면 여기저기에 다 튀었어요. 그것을 보면서 '고객님 어디가 이렇게 편찮으셔서 이렇게 내놓고 가셨습니까'라는 생각이 들죠. 마르면 잘 닦아지지 않기에 나만 손해에요. 물도, 세제도 더 들어가지요. 그래서 완벽한 청소를 하루에 3번씩 꼭 해주고 수시로 들어갈 수밖에 없어요. 다른 고객님들이 편안하게 일을 볼 수 있게끔 화장실을 마련해야 하잖아요.

여자들은 깔끔해요. 어쩔 수 없이 여자화장실보다 남자화장실에 온종일 붙어서 일할 수밖에 없지요. 대소변이야 급하면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침을 함부로 뱉으면 다른 고객님들에게 오염이 될 수 있잖아요. 침은 얼마든지 자기가 관리할 수 있으니까요. 완벽하게 청결하게 하려면 시간도 오래 걸려요. 그냥 쉽게 무엇을 바라고 육신이 일을 안 하면 모르지만 항상 즐겁게 일을 하려고 해요. 그래도 회사물건을 파손 안 했으면 좋겠어요. 웃고 살아야 하지만 때로는 몰래 울어요."

- 처음 남자 화장실 들어갔을 때 당황하거나 모욕감을 느끼지는 않았는지요.
"남자화장실을 청소하라고 해서 멋모르고 갔는데 군데군데 구더기 마른 것들이 있고 남자들과 마주치니 얼굴이 홍당무가 되고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고요. 처음에는 엄청 울었지요. 그러다 회사에서 나를 믿고 보냈는데 이렇게 할 수 있나 싶었죠. 내가 할 수 있는 사람이라 보낸 거잖아요.

서비스정신으로 고객님들이 들어오면 '어서 옵쇼' 인사를 했지요. 먼저 손을 내밀고 응대를 했지요. 외국 고객님이 저를 잡기에 제가 무슨 잘못했나 싶었는데 옆에 통역사가 최고라고 해주더라고요. 한국의 자랑이 된 것 같아 기뻤지요. 쑥스럽다, 더럽다 불평불만 할 수 없지요. (그런 감정이) 있으면 지금까지 버티지 못했겠죠.

모욕감은 이제 없어요. 넓은 화장실에서 제가 청소하는데 많은 분들은 멀리 떨어져서 일을 보세요. 그래도 옆에서 일을 보시면 제가 비켜드리죠."

화장실 청소 18년, 얼어버린 두 손

18년 화장실 청소로 손목까지 색깔이 변해버린 여점남 청소원의 두 손.
 18년 화장실 청소로 손목까지 색깔이 변해버린 여점남 청소원의 두 손.
ⓒ 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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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어떤 점이 힘든가요?
"손이 제일 고통스러워요. 따뜻한 곳에 가면 손이 퉁퉁 부어올라요. 무척 아리지요. 바닥을 만져 보세요. 냉골이죠. 한 번도 불을 안 떼었어요. 손과 얼굴이 부어오르거든요. 너무 춥다싶으면 잠깐 틀었다 끄고 이불에 의존해서 잘 수밖에 없어요. 따뜻한 곳, 사우나 이런 데 들어가는 건 상상도 못해요. 얼굴이 시려가지고 목도리를 두를 수밖에 없어요. 오랜 시간 일하는 시간보다 손이 더 고통스럽습니다.

또, 차가운 곳에 가면 완전히 잉크색이 되어요. 그래서 직원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제 손을 보면서 직원들이 어디 가서 보상받느냐고 안쓰러워하세요. 새벽 4시가 되면 어깨가 욱신욱신 쑤셔서 잠을 더 잘 수 없어요. 손으로 혼자 몇 십분 동안 주물러서 풀지요. 그러다가 출근 준비를 하지요. 그래도 바라는 거 없습니다. 몸 허락하는 날까지 일하고 싶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 청소라도 있는 게 고맙지요. 회사에서 일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지요."

- 선생님은 정규직이신가요?
"벙어리, 귀머거리처럼 살고 싶어요. (법이나 규정을)알면 마음이 아프니까요. 3년 전부터 비정규직이 되었어요. 그래도 회사에서 용역회사로 넘겨준 것만 해도 고맙지요. 일만 시켜줘도 그게 어디에요. 월급이요? 월급은 많이 줄었지요. 일하는 것만 해도 고맙지요. 월급은 줄었지만 1년 더 일하면 되지 않겠어요. 이런 마음을 갖고 편안히 살고 싶어요. 고객님들 인상 찌푸리지 않게끔 일하고 건강하면 되었습니다."

- 꿈이 있다면?
"죽는 날까지 주어진 일하면서 건강하고 편안히 사는 것이에요. 가족 건강하고 잘 지내는 것 말고 바랄 게 더 있겠어요. 나중에 몸 아프신 분들 뒷바라지해주고 도우며 살고 싶어요."

자기 어머니가 청소를 한다면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나가려 하는데 원래 밥을 사주려고 밖에서 만나자고 한 거였다며 밥을 먹고 가라고 자꾸 잡으시더군요. 말씀만으로 충분히 감사하고 마음만으로도 배부르다며 애써 사양하는데 미안하더군요. 들어가시라고 해도 멀리 나와서 배웅을 해주시는 여 선생님을 보며 어머니 같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오랜 시간 찬물에서 일을 해 너무나 달라진 두 손이 떠오르네요. 얼어서 색깔이 달라진 두 손. 따뜻한 곳에 들어가면 퉁퉁 부어올라 너무 아린 두 손. 차가운 곳에 가면 잉크색으로 변하는 두 손. 마음이 아프네요.

가장 더러운 곳을 아름답게 가꾸는 여 선생님의 두 손이야마로 가장 고귀한 꽃이겠지요. 고객들을 자식처럼 여기고 희생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자기 어머니가 청소한다고 생각한다면 과연 그렇게 더럽게 화장실을 쓸까요. 화장실 청소원을 자기 어머니로 여기고  화장실을 쓴다면 그녀의 손이 덜 아플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화장실청소원, #여점남, #화장실문화, #여성화장실,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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