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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옥상텃밭의 역사는 올해로 20년을 맞이했다. 1988년, 식탁에 싱싱한 푸성귀도 올리고 심심풀이도 할 겸 시작한 자그만 옥상텃밭이 20년 세월의 연륜이 쌓이는 동안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도심에서 보기 드문 커다란 텃밭이 되었다. 20년의 세월, 여전히 옥상텃밭에는 신기하리만큼 채소와 과일이 풍성하게 맺힌다. 그 비법 다섯 가지를 공개한다.

 

[비법 하나] 방수처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

 

가장 쉬운 방법은 화분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커다란 양동이도 흙만 채우면 화분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화분을 이용할 때는 고임목이나 벽돌을 이용해서 옥상과 화분 사이의 공간을 만들어 주면 된다. 그러나 좀 더 규모 있는 텃밭을 가꾸려면 커다란 상자를 만든다고 생각하면 된다. 상자의 재료는 나무, 비닐, 앵글 등 주변의 다양한 재활용품들을 활용하면 된다. 상자를 만들되 바닥과 사이를 충분하게 두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집의 경우, 서서 일하기 편할 정도까지 높여서 바닥방수 문제를 해결했다. 물론 건축할 때 아예 옥상에 텃밭을 만드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옥상에서 채소를 기르려면 여름철에는 아침저녁으로 물을 흠뻑 주어야 한다. 배수가 잘되지 않으면 흙도 썩게 되고 애써 만든 옥상텃밭이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가 있다.

 

 

[비법 둘] 옥상텃밭의 생명은 지력을 유지하는 일이다

 

흙이 건강해야 그 흙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채소도 튼튼하다. 애써 옥상텃밭을 만들어 놓고 몇 년 가꾸다 채소가 잘 자라지 않는다고 포기하는 분들도 있다. 가장 편안한 방법은 화원 같은 곳에서 유기질비료를 구입하여 섞어주는 것이겠지만, 어머님은 지난 20년간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지력을 유지시켜 오셨다.

 

'동네 한약방에서 나온 한약찌끼, 동네 식당에서 나온 비지, 집에서 발생한 음식물 쓰레기, 기름집에서 얻어온 깻묵' 등이 주된 재료이다. 냄새를 방지하기 위하여 햇볕에 고슬고슬 말린 다음 사용한다. 잘 말린 것을 골고루 섞어 비닐봉지에 넣어 발효시키면 아주 좋은 비료가 된다. 집에서 나온 소량의 음식물 쓰레기는 그냥 텃밭에 묻어도 된다.

 

이렇게 지력은 유지하지만, 흙의 유실은 있기 마련이다. 비뿐 아니라 아침저녁으로 물을 줄 때 조금씩 흙이 씻겨나가기 때문이다. 시골에 갈 일이 있을 때면 작은 봉지에 흙을 조금씩 담아온다. 그냥 한 손에 들기 편할 정도로. 맨 처음 텃밭을 만들 때에는 흙이 많이 필요하지만 한 번 만든 후에는 유실되는 흙의 양과 발효시킨 비료의 양이 조화되면서 평형을 유지한다.

 

 

[비법 셋] 순환을 잘 시켜주는 것이 중요하다

 

옥상에는 채소 말고도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꽃도 많다. 관상용 식물은 주로 작은 화분에 심고 채소나 나무는 큰 화분이나 텃밭에 심는다. 그런데 옥상텃밭은 공간을 늘릴 수가 없다. 그러므로 시기에 따라 씨를 뿌리는 일이 상당히 중요하고, 번갈아가면서 작물을 심는 일도 중요하다. 상추를 심었던 곳에는 콩을 심는다든지, 파를 심었던 곳에는 토마토를 심는다든지 하는 것이다.

 

겨울철에는 텃밭이 쉬는 계절이다. 옥상텃밭 중 두어 곳에는 마늘을 심었지만, 나머지 밭들은 쉬고 있다. 쉬는 밭은 흙을 뒤집어 일광욕을 시켜준다. 그리고 이른 봄, 겨우내 준비해 두었던 비료를 섞어주고, 흙을 고슬고슬하게 만들어주는 일도 중요하다. 이런 방법을 통해서 큰 화분에 심은 귤나무 10여 그루를 통해서 10년 동안 변함없이 새콤달콤한 귤을 얻고 있다.

 

 

[비법 넷] 옥상텃밭에 화학비료나 농약을 사용하겠습니까?

 

옥상텃밭이라고 해충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느 해는 배추벌레가 기승을 부리기도 했고, 고추가 탄저병에 걸리기도 했다. 옥상텃밭의 묘미는 무엇보다도 깨끗한 것(clean)을 식탁에 바로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내가 밥상을 차릴 때 옥상에 올라가서 풋고추와 상추를 솎아와 흐르는 물에 살짝 씻어 먹으면 30분 이내에 수확한 것을 우리 몸속에 모시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깨끗할 뿐 아니라 좋은 것(good)이요, 산지에서 식탁까지 배송 거리(?)도 짧아 공정한(fair) 음식이 되어 '슬로푸드(slow food) 운동'의 조건을 다 갖추는 것이다. 어머님은 슬로푸드운동이 뭔지 모르시지만, 옥상텃밭의 농법은 완전한 슬로푸드의 전형이다.

 

배추벌레를 나무젓가락으로 일일이 잡아내는 방법, 진드기가 생기면 마늘과 생강을 빻아 즙을 내어 물에 희석시켜 뿌리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과 함께 나눠 먹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 알은 공중의 새를 위하여, 한 알은 땅속의 벌레를 위하여, 한 알은 자신의 몫으로 삼는 '콩 세 알'의 농심을 간직하는 것이다.

 

 

[비법 다섯] 옥상텃밭의 채소는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

 

농군의 발걸음 소리를 자주 듣는 채소와 그렇지 않은 채소의 성장을 비교해봤더니 발걸음 소리를 자주 듣는 채소가 더 잘 자랐다는 보고가 있었다. 음악을 들려준 채소와 그렇지 않은 채소의 성장이 달랐던 것과 같은 보고다.

 

옥상 텃밭의 채소가 잘 자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다른 것보다도 부모님들의 정성이다. 새벽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옥상에 올라가서 채소들과 인사를 나누시고, 행여 며칠 외출을 하실 때면 자식들에게 옥상텃밭 관리에 대해 신신당부를 하신다. 따먹는 재미에만 길들어 있다가 옥상텃밭 관리를 하다 보면 노동의 강도가 만만치 않음을 금방 깨닫게 된다.

 

어머님의 옥상텃밭 덕분에 우리 집 옥상에서는 잠자리, 나비, 벌은 물론이고 씨앗을 뿌리고 나면 그것을 탐하는 비둘기, 참새가 난다. 물론 배추벌레가 생기면 그것을 잡아먹으려고 새들이 아침인사를 하기도 한다. 어디서 생겼는지 달팽이도 있고, 옥상환경이 좋다 보니 올해는 도둑고양이까지 올라와서 새끼를 치기도 했다.

 

 

'옥상텃밭' 가꾸는 어머니는 '슬로푸드 운동가'

 

1986년, 이탈리아에서는 패스트푸드점인 맥도널드 지점이 생기는 것에 반대하여 언론인과 지역운동가 등 60여 명이 모임을 했다. 그리고 그 모임은 주창자 카를로 페트리니의 주도하에 '슬로푸드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그들이 주창하는 음식은 좋고('good'), 깨끗하고('clean'), 공정한 ('fair') 음식들이다.

 

우리나라에도 '슬로푸드 운동'이 최근 들어 개별적으로 일어나고는 있지만 아직은 유기농 정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것도 산업화된 유기농이 아니면 성공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는 종 다양성 파괴와 외국인노동자들을 통한 저임금실현 등으로 위의 세 가지를 만족시키지 못했을 뿐 아니라, 돈 있는 부자들이 유기농 채소를 장악해 가난한 이들은 여전히 불안한 음식을 먹게 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어머님은 옥상텃밭을 통해서 끊어버리신 것이다. 어머님은 '슬로푸드'라는 단어조차 알지 못 하신다. 그러나 어머님이 인식하고 계시든 아니든 이미 어머니의 삶은 철저한 '슬로푸드 운동가'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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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옥상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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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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