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협재해수욕장에서 나오자 한림공원이 보인다. 호기심이 동한 울 신랑, 무조건 차를 주차장에 댄다. 난 공원은 관심이 없다. 인위적으로 다듬고 꾸며 번지르르하게 해 놓은 경치는 별로 매력이 없기 때문이다. 남들이 멋이 없다고 할지언정, 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져서 돌보는 이 없는 곳일지라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나는 좋다.

한림공원 입구...
▲ 한림공원 한림공원 입구...
ⓒ 이현숙

관련사진보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울 신랑 명함을 내밀었는데, 흔쾌히 통과가 되었다. 그러나 역시 선입견대로였다. 그나마 협재, 쌍용 동굴이 있고, 제주민속촌인 재암민속마을이 있어 옛날 제주를 엿볼 수 있었다.

차귀도가 있는 고산쪽을 향해 달리는데, 용수리 해안도로라는 이정표가 있다. 이정표를 그냥 지나칠 리 없다. 마라도를 들어가려면 서둘러야 하는데 이 남자 자꾸 샛길로 들어간다. 내가 운전하는 게 아니니 제지할 방법도 없다. 그런데 용수리 포구를 거쳐 해안도로로 빠져나올 즈음, 좌측으로 멋있는 건물이 보인다. 한눈에도 심상치 않아 보이는 건물이다.

용수리 어귀에 있었다.
▲ 김대건신부 표착기념관과 성당 용수리 어귀에 있었다.
ⓒ 이현숙

관련사진보기


건물 정면에는 제주 김대건 신부 표착 기념관이라고 쓴 긴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성당인지 옆에 흰색건물이 있고. 우리는 차를 세웠다. 여행 땜에 주일 미사도 잘 못가는 엉터리 신자지만 천주교에 관련된 것이라면 잠시라도 보고 가야 한다.

여행을 하다보면 예상치 못한 것들과 마주칠 때가 많다. '한경면 용수리'라는 포구도 그랬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가 풍랑을 만나 표착했던 포구란다. 상하이에서 사제서품을 받은뒤 귀국하던 길에 풍랑을 만났다는 것이다.

앞에 보이는 섬이 차귀도
▲ 고산 바닷가 앞에 보이는 섬이 차귀도
ⓒ 이현숙

관련사진보기


고산에 도착한 것은 점심 시간이 지나서였다. 그곳엔 석양이 아름다운 차귀도라는 섬이 바로 앞에 있다. 그 섬에도 들어가고 싶었지만 욕심이다. 기간을 고무줄처럼 주욱 늘려서 사용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니 아쉬움만 크다. 그곳은 <이어도>라는 영화 촬영지라 제법 사람들로 붐볐다.

해안가에는 상가가 형성돼 있었는데 그 앞에는 한치를 구워파는 포장마차도 늘어서 있었다. 차귀도에 들어가고 싶어, 어떻게 들어가냐고 물으니 어선을 빌려 타고 건너가야 한단다. 낚시꾼들이 많이 들어간다는데, 아마도 그런 방법으로 가는가 보다. 하지만 그 방법도 우리는 곤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점심 때가 지나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이제 진짜 모슬포항으로 달린다. 모슬포항에 도착하니 3시 40분. 부랴부랴 여객선 매표소를 찾아들어갔다. 마지막 4시 배가 있단다. 성수기가 아니니 일찍 끊어지는 모양이다. 마라도는 배가 들어가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다. 1시간 후에 다시 가서 승객들을 싣고 나와야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4시 배로 들어가면 5시 20분쯤에는 배가 우리를 데리러 와야 한다.

전동카와 자전거가 즐비하게 늘어서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 마라도 전동카와 자전거가 즐비하게 늘어서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 이현숙

관련사진보기


마라도에 도착하자 우리를 기다리는 건 자전거와 전동카. 정말 뜻밖의 풍경이다. 그것들은 길 양쪽에 쭉 늘어서서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게다가 어떤 차는 그 유명한 마라도 자장면을 팔기 위해 공짜 운행하는 것 같았다. 이곳에도 상혼이! 하기야 먹고 사는 일인데 여기라고 다를까마는.

학생수가 두 명뿐인 초미니 학교...
▲ 마라분교 학생수가 두 명뿐인 초미니 학교...
ⓒ 이현숙

관련사진보기


그런데도 씁쓸했다. 7년 전엔 맘놓고 뛰어도 좋고 걸어도 좋은 사람들만을 위한 길이 있었다. 그러나 이젠 전동카와 자전거가 그 길을 차지해 버렸다. 한 시간이면 다 돌아볼 수 있을 만큼 작은 마라도.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여유를 갖고 즐기기에는 부족한 시간이다. 자연 시간에 쫓겨 자장면을 먹기도 애매하다. 아마도 그래서 전동카와 자전거가 등장했을 거다. 걷는 대신 전동카를 이용하고 남는 시간에 자장면을 먹으라는, 무언의 제안이다. 내 짐작이다. 직접 들어 본 이야기는 아니고. 주민들 편에서야 전동카 빌려줘서 수입올리고, 자장면 팔아 수입 올리니, 일석이조일 것이다.

초콜렛 박물관과 방송국
▲ 초콜렛박물관 초콜렛 박물관과 방송국
ⓒ 이현숙

관련사진보기


마라도에 자생하는 선인장.
▲ 마라도 마라도에 자생하는 선인장.
ⓒ 이현숙

관련사진보기


우리는 노약자가 아닌고로 튼튼한 두 다리로 걸었다. 제일 먼저 만난 곳은 학생이 두 명뿐이라는 마라분교. 작지만 아름다운 학교다. 길을 따라 돌다보면 하나씩 만나지는 건물이 있다. 초콜릿 박물관과 마라도 방송국, 기원정사, 그리고 교회와 성당과 등대다.

마라도 등대...
▲ 등대 마라도 등대...
ⓒ 이현숙

관련사진보기


마라도의 대표, 갯바위...
▲ 갯바위 마라도의 대표, 갯바위...
ⓒ 이현숙

관련사진보기


그밖에 숙박시설도 생겼고 편의점도 생겼고 자장면집도 늘었다. 대한민국 최남단이고 언론에 자주 나오니 가 보고 싶은 사람도 많을 것이고, 편의 시설이 늘어나는 건 당연한 일. 7년만에 이렇게 변했으니 앞으로는 또 어떻게 변할까? 혹시 그땐, 도시가 하나 들어와 떡 자리잡고 있는 건 아닐지. 정말 이런 생각을 하면 심사가 복잡해진다.

갯바위는 여전하고 낚싯꾼도 여전했다. 바람도, 바다도 여전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관광자원이 되지 않는가 보다. 사실 여행을 다니다보면 그런 불만들이 쌓인다. 어쩌면 변하지 않길 바라는 내 마음도 이기심인지 모르지만…. 암튼 전동차를 타지 않고 걷는 바람에 나도 자장면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언젠가 <오마이뉴스>에 소개된 마라원 자장면 집은 바로 입구에 있었다. 난 은근히 그 집을 찜해놓고 부지런히 걸었다. 그러나 마라도가 처음인 울 신랑은 마라도를 즐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이산가족이 되긴 싫었고. 간신히 끝 지점에 다다라 혼자 자장면집으로 달렸고 주문을 했지만, 자장면이 나오자마자 뱃고동 소리가 들렸다.

이것 때문에 마음이 바빴다
▲ 마라도 자장면... 이것 때문에 마음이 바빴다
ⓒ 이현숙

관련사진보기


겨우 한 젓가락 맛만 보고 돈을 냈다. 주인은 돈을 받기가 미안했던지 생수를 한 병 내밀었다. 목마르던 차에 아주 고마웠다. 상혼에 물든 마라도, 그래도 인심은 아직 남은 것 같아 적잖이 위안이 되었다.

그 집에서 나와 바람을 맞으며 뛰는데, 울 신랑 마누라 버리고 갈까봐 걱정되었는지 반대편에서 달려왔다. '에구, 다음엔 시간 좀 넉넉히 갖고 와야지.' 늘 시간에 쫓기느라 바쁜 여행, 마라도까지 와서 허덕이다니,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 제주에는 10월 초에 다녀왔습니다



태그:#제주, #고산, #마라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