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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도 없다. 단지 출입문 유리창에 '소양밥집'이라고 쓰여 져 있는 게 전부다. 이 집에 들르게 된 건 아주 우연한 계기였다.

 

그때 유랑자는 아침밥을 먹기 위해 전주 남부시장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남부시장 뒤편으로 돌아가면 하천 따라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길이 나온다. 그 길에 섰을 때다.

 

서너명의 아저씨들이 시장 옥상으로 향해있는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었다. 느낌상 그들은 식사를 하러 가는 중으로 보였다. 만약 유랑자가 그 아저씨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거기에 식당이 있을 것이라곤 전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아저씨들을 뒤따르면서도 확신은 가지지 못했다. 아마 그대가 그 상황이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거짓말처럼 밥집이 있었고, 아저씨들은 그 식당 문을 열고 막 들어가는 중이었다. 난 멈칫거렸다. 누추하기 짝이 없는 외관만 봐서는 선뜻 들어설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였다. 유랑자의 눈에 들어온 건 밥집 앞에 놓여 져 있는 장독들이었다.

 

 

장독들이 왜 그 자리에 놓여 있는지는 햇볕이 말해주고 있었다. 따사로운 햇볕이 장독이 있는 그곳에만 내리쬐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독은 유랑자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었다. '그래, 장독 있는 식당이라면... 믿고 먹어보자.'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어느새 밥집 문을 열고 있었다.

 

내부 분위기는 예상대로였다. 상업화와는 전혀 상관없는 밥집에서 역시 그 밥집을 닮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다가 유랑자를 쳐다본다. 그들의 표정 어디에서도 나를 손님으로 대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실례를 한 건 아니다.

 

거긴 그들만의 밥집이었고, 난 손님이 아니라 그들의 공간을 침범한 이방인에 불과했다. 그렇게 그 밥집은 철저하게 외부세계와 차단되어 있는 섬과도 같은 존재였다.

 

구석 테이블에 죄인 아닌 죄인의 심정으로 앉았다. 잠시 후 백반 한상이 차려진다. 밥과 김칫국, 김자반, 오뎅볶음, 백김치, 아주까리나물, 토란대나물, 무생채, 검정깨가 송송 박힌 배추김치, 하나같이 평범하기 짝이 없는 반찬들이다.

 

 

그런데 평범함 속에 비범함이 숨어있다고 일반 식당 음식과는 뭔가 달랐다. 거기에는 깊은 맛이 내재되어 있었다. 때문에 집에서 어머니가 차려주는 밥상과 하나 다르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식당에서 집 밥 같은 이 맛을 본 게 정말 얼마만이던가? 약간 간간한 게 흠이긴 하지만 집밥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그건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평범한 찬이지만 다른 식당의 평범한 음식과 다른 건, 아마도 들어오면서 봤던 장독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화학조미료가 아닌 직접 띄운 된장, 고추장, 간장으로 음식의 간을 맞출 터이니 말이다. 식사를 마칠즈음, 누룽지와 따끈한 슝늉이 나온다. 이만하면 왜 소양식당이 아니고 소양밥집인지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으리라.

 

셈을 치르고 나서 밖에 있는 장독이 궁금하다고 말했다. 주저 없이 장독 뚜껑을 열어보여 주는데, 그 안에는 이집 음식 맛의 비법들로 가득했다. 특히 간마늘을 잔뜩 넣어 해를 넘겨서 묵힌 고추장은, 일반식당에서 비법이라고 밝히기를 꺼려하는 허접 레시피보다 훨씬 진솔하고 값어치 있게 느껴졌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맛집, #소양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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