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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발낙지는 이 지역 남도 사람들이 '갯벌의 산삼' 이라고 부를 정도로 뛰어난 스태미나 식품의 황제
▲ 세발낙지 세발낙지는 이 지역 남도 사람들이 '갯벌의 산삼' 이라고 부를 정도로 뛰어난 스태미나 식품의 황제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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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그리워 개펄로 가고파
바다빛 하늘과 개펄빛 구름 쫘아악 감는 너
요놈! 하며 순식간에 나무젓가락에 돌돌돌 말아
소금 친 참기름에 포옥 찍어 입에 넣는다
고소하고 상큼하게 맴도는 전라도 맛
온몸이 짓물러지고 끊겨도 미끌미끌 용케 빠져나가
입천장과 볼따구니에 쩍쩍 들러붙는 너
-세발낙지는 머리부터 꼭꼭 씹어야 한당게
-빨판이 목구녕에 들러붙어 큰일 칠 수도 있당게
씹어도 씹어도 끝까지 몸부림치다
한순간 퇴출되는 삶
-능력 없는 남자는 싫어
-어려울수록 서로 기대고 살자
말 한 마디에 신용불량 된 내 사랑
내 삶도 세발낙지처럼 파산되고 있을까

-이소리, '세발낙지를 먹으며'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먹을거리에 따른 여러 가지 속담을 많이 남겼다. '봄 도다리, 가을 전어'라는 말이 있는가 하면 '초봄 주꾸미, 초겨울 세발낙지'라는 말도 있다. 이는 봄에는 도다리와 주꾸미가 살이 통통하게 올라 맛이 있고, 가을과 초겨울에는 전어와 세발낙지가 가장 맛이 좋은 때라는 말이다.  

세발낙지가 제철을 만났다. 초겨울, 날씨가 점점 추워지면서 세발낙지가 많이 잡히는 목포와 무안 등 서녘바다에는 밤마다 낙지잡이 어선들이 내뿜는 불빛들로 가득하다. 이는 세발낙지가 야행성이어서 낮에는 개펄 속에 꼭꼭 숨어 있다가 캄캄한 밤이 되어야 먹이를 찾아 개펄 밖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요즈음 들어 세발낙지가 특히 많이 잡히면서 전국 곳곳에서 세발낙지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앞 다투어 목포와 무안 앞바다로 몰려들고 있다. 특히 드넓고 깊은 개펄이 많은 목포와 무안 앞바다에서 잡히는 세발낙지는 발이 길고 부드러운데다 개펄 빛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것이 척 보기에도 먹음직스럽다.

목포와 무안 세발낙지는 쫀득쫀득 씹히는 감칠맛뿐만 아니라 입 안 가득 채우는 상큼한 바다향도 깊다. 목포 북항회센터 한 귀퉁이에서 무안 세발낙지를 전문으로 팔고 있는 남 아무개(54)씨는 "게르마늄 성분이 들어있는 무안 갯벌에서 자라는 세발낙지는 생명력이 아주 강하다"며 "시세에 따라 값이 다르지만 마리 당 3천~7천 원 정도"라고 말했다.

해남에서 목포 가는 길에 만나 바닷가
▲ 세발 낙지 해남에서 목포 가는 길에 만나 바닷가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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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흔히 머리라고 부르는 달걀 모양의 동그란 부분은 세발낙지 몸통이다. 세발낙지 머리는 아래쪽에 있고, 입을 중심으로 8개의 다리가 붙어있다
▲ 세발낙지 사람들이 흔히 머리라고 부르는 달걀 모양의 동그란 부분은 세발낙지 몸통이다. 세발낙지 머리는 아래쪽에 있고, 입을 중심으로 8개의 다리가 붙어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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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대표적인 음식, '개펄에서 나는 산삼' 세발낙지

한자어로 '석거'(石距), 장어(章魚), 낙제(絡蹄)라고도 부르는 낙지. 그 중 세발낙지는 '낙지 발이 3개'라서 부르는 이름이 아니라 '낙지 발이 가늘다'(細)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세발낙지가 흔히 '개펄에서 나는 산삼', '초겨울 바다 맛의 황제'라 불리는 것도 겨울철 땡추위를 이길 수 있는 강력한 스태미너 식품이기 때문이다.

다산 정약용(1762~1836년) 형 정약전(1758~1816)이 쓴 <자산어보>에는 "낙지는 맛이 달콤하고 회, 국, 포를 만들기 좋다"며 "말라빠진 소에게 낙지 서너 마리만 먹이면 곧 강한 힘을 갖게 된다"고 적혀 있다. 조선시대 명의 허준(1539~1615) 이 쓴 <동의보감>에도 "낙지는 성(性)이 평(平)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다"고 나와 있다.

원기회복에 그만이라는 낙지. 낙지는 전라남북도에서 많이 잡히는 먹을거리이다. 이는 옛 문헌에 전라도 대표적인 음식으로 낙지를 소개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낙지에 얽힌 우스꽝스런 이야기도 있다. 옛 사람들은 낙지를 '낙제어'라 불렀는데, 이 이름 때문에 과거를 준비하거나 수험생들에게는 낙지를 먹이지 않았다는 설도 있다.

전남 목포가 고향인 권승일(50, 건설업) 사장은 "남도에서는 소가 새끼를 낳거나 여름에 더위를 먹고 쓰러졌을 때 큰 낙지 한 마리를 호박잎에 싸서 던져준다"고 말한다. 권 사장은 "어릴 때 할아버지께서 집에서 키우는 소가 비실비실할 때 호박잎에 낙지를 싸서 던져주곤 했는데, 이 낙지를 먹은 소가 금세 기운을 차리는 것 같았다"고 귀띔했다.

세발낙지는 산 채로 썰어 소금 뿌린 참기름에 찍어먹는 쫄깃한 맛이 가장 좋다
▲ 세발낙지 세발낙지는 산 채로 썰어 소금 뿌린 참기름에 찍어먹는 쫄깃한 맛이 가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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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발낙지 이게 그만큼 몸에 좋은 게 찾는 것 아니것어"
▲ 세발낙지 "세발낙지 이게 그만큼 몸에 좋은 게 찾는 것 아니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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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깃하게 씹히는 고소한 맛과 향긋한 뒷맛이 그만

"낙지는 저칼로리 스태미나 식품으로 콜레스테롤을 억제하고 빈혈을 예방하는 효과가 뛰어나지라. 특히 무안 개펄에서 자란 세발낙지는 쫄깃거리는 담백한 맛이 일품이제. 어디 그 뿐인가. 단백질, 인, 철, 비타민 성분 등 무기질 성분도 많이 들어 있어 허약체질에도 아주 좋고 피로회복에도 그만이제."

지난 10월11일(토) 저녁 7시. 목포역에서 10여 분 거리에 있는 북항회센터 한 귀퉁이에 있는 자그마한 세발낙지전문점을 찾았다. 무안에서 나는 세발낙지만을 전문으로 팔고 있다는 이 집 주인 남 아무개(54)씨는 "무안에서 잡히는 세발낙지는 부드럽게 씹히는 쫄깃함에서 배어나는 고소한 맛과 향긋한 뒷맛이 그만"이라고 말한다.

남씨는 "세발낙지는 이 지역 남도 사람들이 '갯벌의 산삼' 이라고 부를 정도로 뛰어난 스태미너 식품의 황제"라며, "사람들이 흔히 머리라고 부르는 달걀 모양의 동그란 부분은 세발낙지 몸통이다. 세발낙지 머리는 아래쪽에 있고, 입을 중심으로 8개의 다리가 붙어있다"고 설명한다.

남씨는 "예전에는 출산을 하고 나면 최고로 치는 음식이 세발낙지를 넣고 끓인 미역국이었다"고 귀띔한다. 남씨는 이어 "일반 낙지는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먹지만 세발낙지는 산 채로 썰어 소금 뿌린 참기름에 찍어먹는 쫄깃한 맛이 가장 좋다"며 "감기에 걸렸거나 속이 더부룩할 때에는 세발낙지를 살짝 끓여 연포탕을 만들어 먹으면 아주 좋다"고 말했다.

입천장에 쩍쩍 달라붙는 그 향긋한 감칠맛
▲ 세발 낙지 입천장에 쩍쩍 달라붙는 그 향긋한 감칠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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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남씨가 이리저리 토막 낸 뒤 참깨를 뿌린 세발낙지 한 접시를 밥상 위에 올린다
▲ 세발낙지 주인 남씨가 이리저리 토막 낸 뒤 참깨를 뿌린 세발낙지 한 접시를 밥상 위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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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발낙지 이게 그만큼 몸에 좋은 게 찾는 것 아니것어"

"올 겨울을 춥지 않게 속 편안하게 날려면 세발낙지 서너 마리 정도는 미리 먹어놔야제. 세발낙지 요놈이 매일매일 잡히는 양에 따라 값도 천차만별이고, 쫌 비싸기는 혀도 추운 겨울철을 앞두고 모른 척하고 넘어갈 순 없잖은가. 아, 전국 각지 사람들이 세발낙지를 먹기 위해 왜 이 먼 목포까지 오것는가. 그만큼 몸에 좋은 게 찾는 것 아니것어."

이 집은 앉을 자리가 따로 마련되어 있는 게 아니다. 커다란 수족관 한 귀퉁이에 자그마한 밥상 하나가 올려져 있는 평상 두어 개 있는 것이 모두다. 편안하게 자리에 앉아 차림표를 바라보며 주문만 하면 밑반찬과 음식이 차려져 나오는 그런 음식점이 아니라 세발낙지를 음식점에 도매로 파는 곳이란 그 얘기다.  

자그마한 밥상을 가운데 두고 자리에 앉자 주인 남씨가 소주병과 함께 "맛이나 보라"며 수족관에서 세발낙지 한 마리를 꺼내 권 사장 손에 쥐어준다. 권 사장이 세발낙지를 손에 쥐고 그대로 입으로 가져가 다리 하나를 끊어 입에 물고 우물거린다. 맛이 기가 막히다는 듯한 흐뭇한 표정이다. 

이윽고 주인 남씨가 이리저리 토막 낸 뒤 참깨를 뿌린 세발낙지 한 접시를 밥상 위에 올린다. 밑반찬은 아무 것도 없다. 그저 소금 뿌린 참기름 한 종지에 송송 썬 마늘과 풋고추, 상추가 모두다. 소주 한 잔 입에 털어 넣고 열심히 꿈틀거리는 세발낙지 한 점 나무젓가락으로 집어 참기름에 포옥 찍는다.

소주 한 잔 입에 털어 넣고 열심히 꿈틀거리는 세발낙지 한 점 나무젓가락으로 집어 참기름에 포옥 찍는다
▲ 세발낙지 소주 한 잔 입에 털어 넣고 열심히 꿈틀거리는 세발낙지 한 점 나무젓가락으로 집어 참기름에 포옥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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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발낙지를 살짝 삶은 붉으스레한 국물, 뜨겁고도 아주 시원한 연포탕을 수저로 떠먹는 맛도 기막히다
▲ 세발낙지 세발낙지를 살짝 삶은 붉으스레한 국물, 뜨겁고도 아주 시원한 연포탕을 수저로 떠먹는 맛도 기막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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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천장에 쩍쩍 달라붙는 그 향긋한 감칠맛

세발낙지의 힘이 너무 세다. 나무젓가락에 빨판을 대고 붙은 세발낙지가 입으로 몇 번 훑어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겨우 입에 넣어 천천히 씹기 시작하자 세발낙지 빨판이 입천장과 볼따구니에 쩍쩍 달라붙어 요동을 치다가 뚝뚝 떨어진다. 그래. 누군가 딱딱 달라붙는 이 맛에 세발낙지를 먹는다고 했던가.

쫀득쫀득 씹히는 향긋한 감칠맛 속에 은근하게 느껴지는 고소한 맛! 소주 한 잔 더 털어넣고 다시 세발낙지 한 점 참기름에 찍어 입에 넣는다. 이번에는 서녘바다와 게르마늄 갯벌이 한꺼번에 입에 쏴아아 파도처럼 밀려온 듯 씹을 때마다 바다 향과 갯벌 향이 혀를 끝없이 톡톡 친다. 갑자기 온몸에 힘이 불끈불끈 솟는 듯하다.             

세발낙지를 살짝 삶은 붉으스레한 국물, 뜨겁고도 아주 시원한 연포탕을 수저로 떠먹는 맛도 기막히다. 숙취에 지친 속뿐 아니라 고달픈 세상살이에 지친 마음마저 확 풀리는 듯하다. 언뜻 보기에 달걀껍질을 빼다 박은 세발낙지 몸통을 먹물 그대로 먹는 맛도 구수하고 깔끔한 뒷맛이 아주 깊다.

살아 꿈틀거리는 세발낙지 한 접시와 시원하고도 개운한 연포탕 그리고 소주잔이 마주치는 목포에서 깊어가는 늦가을 밤. 시장 상인들의 구수한 입담과 살가운 벗들이 툭툭 던지는 눈웃음 속에 어느새 세발낙지 한 종지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다. 소주도 사라지고, 불황에 따른 시름마저 사라지고 없다.

그대여! 몸과 마음이 추운 요즈음, 살가운 벗들과 함께 목포로 가서 소주 한 잔에 세발낙지 한 점 나눠 먹으며 힘겨운 속내를 있는 그대로 털어보라. 살아 꿈틀거리는 세발낙지가 세상사에 몹시 지친 그대 몸을 일으켜주고, 소주잔을 넘나드는 살가운 이야기 속에 추운 그대 마음이 어느새 포근해지리라.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세발낙지, #목포 북항회센터, #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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