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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일요일은 좋다>의 한 코너인 '패밀리가 떴다'. 앞으론 즐겁게 TV를 보다, 중간광고 때문에 짜증이 날지도 모르겠다.
 SBS <일요일은 좋다>의 한 코너인 '패밀리가 떴다'. 앞으론 즐겁게 TV를 보다, 중간광고 때문에 짜증이 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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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같은 주말. 좋아하는 TV프로그램인 KBS2 <해피선데이> '1박 2일'을 보고 있다. 프로그램이 시작한 지 한 15분 정도 지났을까? 한창 하던 게임을 멈추고 사회자 강호동이 '여러분 잠시 뒤에 뵙겠습니다'라며 포즈를 취하자 화면 이내 잡다한 광고로 바뀐다.

'에이… 막 재미있어지려고 했는데, 짜증나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분노가 일었다. 리모컨을 든 손이 '케이블로 가자'고 몸부림을 쳤지만, '그래도 주말 이 시간대는 지상파 방송이지'라는 생각에 SBS <일요일이 좋다> '패밀리가 떴다'를 보기로 한다. 역시 채널을 바꾼 지 10분 정도 만에 광고로 넘어간다. 결국 짜증이 나서 영화나 보기로 했다.

그렇다. 지금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가상의 상황이 더 이상 상상에서 끝나지 않고 우리에게 닥쳐올지도 모른다.

10년 전, 한 남자의 일생을 하나의 TV프로그램으로 만든 <트루먼 쇼>라는 영화가 만들어졌다. 이 영화는 미디어에 희생당하는 사람들을 세밀하게 그려내 꽤 큰 반향을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영화를 통해 미국 방송엔 우리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프로그램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중간에 내용을 툭툭 끊으면서 '커밍 순(COMING SOON)'이라는 자막과 함께 광고들이 뜨는 것 말이다.

난 영화를 보는 내내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집중하고 보고 있는데 마구잡이로 끊는 것을 제일 이해할 수 없었고, '광고도 좋지만 시청자들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건 아닌지'라는 불쾌감도 들었다. 이는 모두 방송사의 수익을 최대로 고려한 '중간 광고'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이다. 

시청자들이여 긴장하라, 중간광고가 온다

아직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형태인 프로그램 도중 광고를 넣는 '중간광고'가 이미 케이블을 넘어 어쩌면 지상파 프로그램 상에서도 곧 시행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지난 14일 지상파 중간광고 관련 공청회를 열었다. 제목 자체부터가 남달랐다. '지상파방송 중간광고 허용 범위 확대 방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라니. 아무런 합의도 없이 이미 지상파방송의 중간광고를 기정사실화한 채 '허용 범위 확대'에 관한 논의를 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1994년 방송위원회가 공보처에 중간광고 허용을 건의한 이래로 현재까지 중간광고 허용 합의를 위한 그 어떤 국민적 토론회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단지 방송위의 '광고규제완화 실무간담회' 등과 같은 국민을 제외한 이해관계자만이 알 수 있는 자리가 몇 번 있었을 뿐이다.

이날 찬성과 반대의견이 맞서 공청회는 아무런 합의점도 찾지 못한 채 끝났다. 어쩌면 내년부터 시청자들은 프로그램 도중에 광고를 봐야하는지도 모른다. 국민들의 의사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진행을 하는 것도 문제지만 지상파 중 민영과 공영 구분 없이 모조리 중간광고를 도입한다는 발상 또한 문제다.

시청자도, 국회도 반대하는 '중간광고'를 방통위는 도대체 왜 시행하려고 하는 것일까. 전파의 주인은 국민이다. 단지 전파 자원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실주인인 국민을 대신해서 정부가 방송사에 배분하는 것이다. 때문에 방송사들은 실주인인 국민들을 위해서 방송의 공익성과 공공성을 지켜야하는 의무가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중간광고 시행은 실주인에게 허락도 맡지 않고 멋대로 공익성과 공공성을 무시하는 처사이며 시청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수신료 올리더라도 기업적 변질하는 것 막아야"

이미 케이블에선 중간광고가 허용되고 있다. 케이블 방송프로그램인 <올리브쇼>.
 이미 케이블에선 중간광고가 허용되고 있다. 케이블 방송프로그램인 <올리브쇼>.
ⓒ 올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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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지상파를 제외한 케이블방송 등 상대적 약세 미디어 업계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케이블방송들은 그간 낮은 시청률을 중간광고라는 형태로 상쇄시켜 광고를 끌어왔는데, 만약 지상파에 중간광고가 허용이 된다면 모든 광고가 지상파로 쏠려버릴 수도 있다. 결국 지상파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허용한 중간광고가 다른 약세 미디어들의 생존권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지상파 방송의 경제적 어려움에 대해 "미디어 환경 변화에 맞춰 지상파에 중간광고나 간접광고를 도입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물론 지상파의 적자 위기가 몇 백 억대를 넘나드는 시점에서 마지막 동아줄이라도 내밀어 주고 싶고, 또 그것을 잡고 싶은 심정은 시청자들도 이해하겠다. 하지만 그 동아줄이 썩은 것인지 온전한 것인지는 잡아도 될 만한 것인지 충분히 고심해야 한다. 중간광고 도입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지상파가 그동안 지녔던 좋은 이미지마저 갉아먹어버릴 수 있다.

대학생 최정준(25)씨는 이에 대해 "케이블 볼 때도 중간광고 보면 짜증났는데 지상파까지 그런다면 시청자 입장에서 더 불쾌할 것 같다"며 "지상파는 아무나 진입할 수 없도록 케이블에 비해 우위를 주었는데 재원 때문에 중간광고 도입을 하려는 것이라면 먼저 지상파의 우위점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차라리 수신료를 올리더라도 공익성을 포기하고 기업적으로 변질하는 것을 막아야한다"라고 덧붙였다. 

방송사 지망생인 대학생 박성민(26)씨는 "케이블 볼 때 거부감이 들게 했던 것이 중간광고였는데 지상파가 중간광고를 도입한다면 포맷 상으로 차별성 없어질 것이고, 무분별한 광고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시청자가 인식하기에 지상파 프로그램이 계속 양질을 추구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박씨는 이어 "중간광고가 도입된다면 프로그램 제작자 입장에서 당연히 흐름이 끊긴다는 것을 감안하고 만들어야 되기 때문에 영향 받을 수밖에 없다"며 "어쩔 수 없이 맞춰 가야 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것 같다"고 주장했다.

중간광고보다, 제작비 거품 걷는 게 먼저 아닐까

지상파의 안정적 재원마련이 시급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중간광고를 도입한다고 해서 광고량이 늘어나고 안정적인 재원을 구축할 수 있을까? 불황이 닥쳐 기업들도 앞다퉈 광고비용부터 줄이는 요즘, 광고를 통해서 재원을 먼저 조달하고 보겠다는 생각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방송국들도 중간광고가 아닌, 제작비 거품을 걷는 등의 가시적인 노력을 먼저 하는 것이 옳다. 방송국 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대책으로 느닷없이 중간광고 도입하는 것이 시청자들을 다른 미디어로 내몰 수도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시청권을 침해하는 것을 달가워하는 시청자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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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최시중, #중간광고, #방통위, #시청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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