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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집요한 퇴진 압력을 받아왔던 박래부 전 언론재단 이사장을 마지막 근무날인 17일 오후 태평로 언론재단 이사장실에서 만났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집요한 퇴진 압력을 받아왔던 박래부 전 언론재단 이사장을 마지막 근무날인 17일 오후 태평로 언론재단 이사장실에서 만났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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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취임하는 쪽보다는 퇴임하는 쪽 인터뷰를 더 많이 하게 됐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언론은 보통 취임하는 쪽에 포커스를 맞춘다. 앞으로의 일에 대한 관심이 일차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권력의 역학관계와도 같다. 항상 새로운 권력에 힘이 쏠리기 마련이다.

상대적으로 퇴임하는 쪽은 별로다. 하지만 퇴임하는 쪽이야말로 그 공과에 대해서든, 그동안의 성취 등에 대해서든, 혹은 그 한계에 대해서든 사실은 알아볼 게 많다. 그러나 보통은 덮고 넘어간다. 언론도 굳이 지난 세월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려 하지 않는다.

박래부 전 언론재단 이사장은 그런 점에선 조금 예외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정부 쪽으로부터 집요한 퇴진 압력을 받아왔던 박래부 전 이사장은 지난 17일 다른 3명의 이사들과 함께 결국 사임했다.

그가 사임하는 날 <경향신문>과 <한겨레>에는 그의 인터뷰 기사가 났다. 그리고 그가 사무실을 비우는 날 필자를 비롯해 또 다른 인터뷰가 있었다. 아마도 정부의 퇴진압력에 맞서다가 퇴진하는 그에게 남은 말이 적지 않으리라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무실을 비우는 날 박래부 이사장(당시 만났을 때의 직책으로 쓴다)을 만나기로 한 것은 그러나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권력 교체와 함께 한국 사회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풍경, 그 한가운데 있었던 소회를 들어보고 싶었던 이유가 더 컸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먼저 물을 필요는 없었다. 그 날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그런 이야기부터 시작됐다.

[#1] 언론재단 이사들이 끝내 퇴임식 거부한 이유

박래부 전 이사장은 결국 퇴임식 없이 언론재단을 떠났다.
 박래부 전 이사장은 결국 퇴임식 없이 언론재단을 떠났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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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부 이사장은 이 날 퇴임식을 하지 않았다. 직원들이 "간부들은 그래도 퇴임식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권유했다. 마음이 불편하시면 퇴임사도 써드리겠다는 간부도 있었다. 하지만 거부했다.

모든 이사들의 생각이 똑같았다. 결국은 강제로 쫓겨나는 마당에 위선적일 수 없었다고 했다. 또 직원들에게 면죄부를 줄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떠나는 마당에 직원들에게 대놓고 또 뭐라 할 수도 없었다고 했다.

너무 속좁은 처사일까? 떠나는 마당에 꼭 그렇게 해야 했을까? 세월이 지나면 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잊게 될 터인데, 그 때가 되면 세상은 또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얽히고설켜 돌아갈 텐데, 이리 강퍅하게 서로 상처를 확인하며 떠날 일이 뭐 있을까?

하지만, 박래부 이사장은 그러지 못했다. 모든 이사들이 "그럴 수 없었다"고 했다. 상처는 상처대로 서로 안고 가는 것이, 불편한 관계라면 또 불편한대로 헤어짐이 맞다고 생각한 듯하다. 불편한 관계, 불편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안고 가기로 작심한 듯 하다.

그것은 '부당한 퇴진'에 대한 무언의 항변일 수도 있겠다. 그것은 또 언론재단 사람들에게서 받은 상처가 그만큼 깊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에 대한 불신과 환멸은 무척 커 보였다.

"노조까지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로 옆에서 보좌하던 간부들까지도, 평소 언행대로라면 도저히 그러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사람들까지도 막무가내로 나오는 것을 보면서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꼈다."

박 이사장은 다른 자리에서 언론재단 간부 가운데 단 몇명이라도 상식적으로 합리적으로 이 사태에 대응할 수 있었다면 결코 지금처럼 그만두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나마 양심을 지킨 극소수 간부들은 있었지만 "그 누구 하나 문화부의 이사진 흔들기에, 문화부와 권력의 말도 안되는 위협에 제대로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없었다."

박래부 한국언론재단 이사장이 이명박 정부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고 있던 지난 8월 재단 노조는 이사장 등 임원진 퇴진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박래부 한국언론재단 이사장이 이명박 정부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고 있던 지난 8월 재단 노조는 이사장 등 임원진 퇴진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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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부 이사장은 17일 그만두기로 했지만, 당초 18일 이사회까지는 이사장으로서 마지막 역할을 할 생각이었다. 후임 이사장 선출 등을 위해 소집되는 이사회였다. 하지만 문화부는 끝내 누가 이사장 후보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문화부도 최종적으로 누구로 확정됐는지 모르는 듯 싶었다. "이사회 당일까지 누가 후보인지조차 모르고 이사회를 열 수 없다"는 뜻을 전했다. 이것으로 언론재단 이사장으로서 공식적인 업무는 마무리했다.

"언론재단 이사장 같은 경우 앞으로는 공모제 같은 방식을 통해 언론계 전체가 관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이 좋을 것 같다."

'공모제' 또한 얼마나 요식적일 수 있는지, 몰라서가 아니다. 그나마 그런 방식으로라도 형식을 갖춰나가는 것이 자신이 겪었던 것과 같은 소모적 논란을 줄이고, 권력의 입김에 좌우되는 것을 그나마 줄일 수 있는 방안이 아닐까 싶어서다.

박래부 이사장은 지난 국감장에서 자신 또한 이른바 '낙하산 인사'일 수 있음을 시인했다가 많이 "깨졌다." 어떻게 언론재단 이사장직을 제안받았냐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질문에, 당시 청와대 윤승룡 수석으로부터 제안을 받고 고민 끝에 수락했다고 선선히 밝혔던 것. 경위 자체가 그랬으므로.

"지금도 사정은 마찬가지 같다. 인선은 청와대에서 이뤄지고, 문화부는 연락 창구 정도 역할만 하고 있는 것 같다. 나도 처음엔 별 생각이 없었지만, 또 공모제라는 것 역시 낙하산 인사를 위한 요식절차가 돼버릴 가능성이 있지만, 그래도 그런 방식이 지금보다는 한 단계 개선된 방식이 아닐까 싶다."

박 이사장은 "한국 언론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곳은 아마도 언론재단 뿐일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언론계 전체의 관심과 참여 속에 언론재단 이사장이 선출됐으면 하는 희망을 피력하는 주된 이유다.

하지만 그럴 수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요원해 보인다. 언론재단은 신문법 개정 등을 통해 법정기구가 될 개연성이 적지 않다.

그러면 그런 언론재단은 어떤 기구가 될까? 한국 언론의 미래를 고민하는 대표 기구가 될 수 있을까? 생존을 이유로 권력의 요구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사람들이 언론과 저널리즘의 미래에 대한 논의를 감당할 수는 있는 것일까?

[#2] 신재민 차관과의 대화 아닌 대화, 그 이면의 풍경은?

언론계 생활 30년째인 박래부 이사장을 몰아낸 것은 후배 신재민 차관이었다.
 언론계 생활 30년째인 박래부 이사장을 몰아낸 것은 후배 신재민 차관이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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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부 이사장은 12월 1일로 언론계 생활 30년째를 맞는다. 언론재단 이사장으로 부임해 겪은 지난 10개월을 돌아보자면 참으로 신난한 30주년을 맞게 된 셈이다. 무엇보다 그의 거취가 논란이 되면서 새삼 확인하게 된 언론계의 살풍경한 모습을 돌아보자면 더 그렇다.

박 이사장의 퇴진을 공식 요구한 것은 바로 <한국일보> 후배이기도 한 신재민 문화부 차관이었다. 신 차관은 박 이사장을 만나 "자리에 대한 압력을 크게 받고 있다"고 말하면서 퇴진을 요구했다고 한다. 권력으로 간 후배가 권력 핵심의 의중을 대변해 선배 몰아내기에 나선 것이다. 어지간하면 피하고 싶었을 악역이었을 텐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뿐인가. 박 이사장이 "80년대 강제해직 때가 생각난다. 계속 강권할 경우 언론에 공개해 공론화할 수밖에 없다"고 하자 신 차관은 "공개하면 나는 사실을 부인할 것이다"고 말했다. 상상해보라. 명색이 기자 출신 선후배가 만나 그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살풍경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박래부 이사장이 논설위원실장으로 신문사 생활을 마감했던 <한국일보>의 한 논설위원은 노무현 정권 임기 말 무리한 코드인사였다면서 박 이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사설과 칼럼을 쓰기도 했다.

박래부 이사장은 나름대로 소신 있게 언론인의 길을 걸어왔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는 지난 1월 발간된 실제 그의 글 내용을 놓고 시시비비를 따져볼 수는 있겠으나, 그의 행적을 두고 언론인의 길에서 어긋남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권력으로 간 후배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언론 현직에 남아 있는 후배까지도 권력의 부당한 퇴진압력에 대해 애써 눈감은 채 되레 '코드'를 거론하면서 권력을 편드는 모습까지 보이고 나선 것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것도 기자로서 박 이사장의 행보를 주변에서 오랫동안 지켜봐 왔던 동료·후배 기자들이 그럴 때 과연 어떤 생각이 들까.

박래부 이사장은 이런 시대적 풍경의 요인으로 동업자 의식과 기자정신의 약화 내지는 실종, 이 두 가지를 꼽았다. 언론사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이념적 분화가 뚜렷해지면서 기자들의 동료의식, 동업자의식은 크게 약화됐다. 대신 자사이기주의라는 분열되고 파편화된 '집단의식'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했다는 것.

이와 더불어 88년 <한겨레신문>의 창간 등을 기점으로 언론사에 따른 이념적 분화도 가속화됐다. 여기에 소유구조의 문제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80년대 초까지 그래도 유지되던 기자사회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었던 기자정신 같은 것도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됐다는 진단이다.

"언제부턴가 기자들은 자기가 속한 회사의 이념에 함몰되기 시작했다. 각자가 속한 언론의 지형도, 자사의 지향성에 자신의 입장을 맞추고, 그것을 자신의 이념과 삶의 방향인 것처럼 당당하게 표출하는 그런 정서와 분위기다. 이런 정서와 분위기에선 선후배 간의 인간적인 유대나 끈끈한 관계는 기대하기 어렵다."

박 이사장은 신 차관이 자신에게 그렇게 대할 수 있었던 것도 아마 이런 정서와 분위기에 따른 것일 거라고 유추했다.

한 마디로 상당수 기자들은 저널리스트로서 '독립적 인격체'라기보다는 소속 언론사의 이념과 행동양식을 그대로 내면화한 조직원이 돼 있다는 이야기다. 조직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말할 나위 없이 조직에 대한 충성심일 것이다. 충성심이 앞서는 조직원 문화 속에서 저널리스트에게 요구되는 독립적인 영혼은 기대 난망이다.

[#3] 언론재단 이사장, 그 이후

박래부 이사장은 '전업주부'로 살까, 아니면 언론운동에 나설까
 박래부 이사장은 '전업주부'로 살까, 아니면 언론운동에 나설까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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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할 거냐고 물었다. 두 가지 길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언론계와 완전히 '굿바이' 하는 일이다. 전혀 새로운 이모작 인생을 사는 길이다. 박 이사장은 언론계 생활 그 이후에 대해 비교적 많은 준비를 해온 듯했다. 버섯농사, 헌책방 운영을 한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전업주부'로 살아볼 요량이다. 그 가능성이 지금으로선 가장 높다고 했다.

또 하나의 길은 언론운동에 힘을 보태는 일이다. 언론의 오늘과 미래를 걱정하는 언론인들의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다면 기꺼이 동참할 생각이다. 아마도 지난 10여개월 겪은 개인적인 일도 일이지만, 최근 사회 전반의 흐름을 볼 때 한국 사회가 중대한 고비에 서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내가 앞장서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지금 꼭 필요하고, 또 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

언론단체는 이미 많이들 있다. 언론인 단체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그는 언론인 네트워크를 만들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왜 그런 필요를 느끼는 것일까.

"정치적 상황이 과거와 다르다. 그런데 대응은 과거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새로운 각오와 발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진용을 새롭게 갖춰야 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어떻게 갖출 것인가? 그것은 그에게도 숙제로 남아있다. 다만, 그는 일단 언론부터 시작해야 하겠지만, 언론과 언론인을 넘어서는 보다 광범위한 네트워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시작은 언론부터, 그리고 언론이 중요하다고 보지만, 지식인, 정치인들까지 함께하는 방안을 생각해야 할 때이다. 지금 상황이 그렇다."

그렇지 않으면, 가령 KBS·YTN·MBC 등 방송 문제를 비롯해 언론의 문제를 단지 '언론'이라는 협소한 시각의 문제로 접근하거나, 하나하나 단편적으로 대응해서는 대책 없이 패배할 공산이 높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퇴행적 흐름에 대한 저지선을 어떻게 펼 수 있느냐에 대한 정치적 고민이 필요하다는 논지인 듯싶다.

박래부 이사장은 개인적으로 언론의 오늘과 내일에 관해 조금 무거운 책을 써보려 한다고 했다. "지금은 언론을 통한 기고 활동도 기고 활동이지만 책 쓰기가 필요한 때"라고 했다. 언론인들도 뜻과 힘을 모아 주제를 정하고 이를 단행본으로 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공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오후 3시부터 두 시간여에 걸친 인터뷰 동안 언론재단 이사장실로 찾아온 언론재단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인터뷰 도중 한 이사가 먼저 사무실을 떠난다고 인사를 왔을 뿐이다. 또 다른 이사들은 인터뷰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은 그냥 각기 헤어지기로 했다는데, 발길이 먼저 떨어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같이 인터뷰한 다른 기자가 언론재단 이사장으로서 마지막 한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인터뷰하고 있잖아요."

마지막 이야기는 '촛불'이었다. 그는 지난 5·6월 '촛불'들의 들고 나섬에 대해 그 어느 것도 믿을 수 없는 데 대한 결핍, 갈망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았다. 언론도 지식인도 정치인도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의지할 수 없다는 결핍과 갈망의 촛불이었다고 본다. 바로 그런 결핍의 갈망에 응답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지난 6월 촛불, 그냥 지나가버린 일인 것 같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 갈증은 그렇게 끝나버릴 수 없는 일이다. 결국은 다시 제기될 것이고, 언론을 비롯해 그것에 응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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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박래부, #언론재단, #신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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