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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 전 국무총리도 이 집 해장국 맛에 반했다?
▲ 해장국 고건 전 국무총리도 이 집 해장국 맛에 반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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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다. 늦가을이 채 떠날 채비를 끝내기도 전에 갑자기 밀어닥친 강추위와 펑펑 쏟아지는 눈보라가 세상을 꽁꽁 얼리고 있다. 코트 깃을 바짝 추켜올리고 시린 손을 허연 입김으로 호호 녹이며 온몸을 고슴도치처럼 한껏 움츠려보지만 이마와 목덜미로 파고드는 바늘바람은 엄청 따갑기만 하다.

이런 때 허연 김을 풀풀 피워 올리며 뽀글뽀글 끓는 해장국 한 그릇이 몹시 그립다. 이 시린 소주 한 잔에 선지와 콩나물이 듬뿍 든 뜨거운 해장국 한 그릇 후루룩 후루룩 먹고 싶다. 그리하면 간밤 마신 술로 쓰리고 더부룩한 속과 꽁꽁 얼어붙었던 몸이 스르르 녹아내리면서 강추위마저 끽 소리를 내며 주저앉을 것만 같다.   

해장국은 말 그대로 '숙취를 푸는 국'이다. 숙취란 몸이 이기도 못할 만큼 많이 마신 술과 이 술 저 술 가리지 않고 마구 섞어 먹은 술이 '요놈! 맛 좀 봐라' 하며 낳은 일종의 '술병'이다. 특히 요즈음처럼 강추위가 휘몰아칠 때 술병까지 나면 온몸이 더욱 오슬오슬 추워지면서 겨울철 불청객인 감기까지 걸릴 위험이 높다.

그렇다고 술좌석을 무조건 피할 수는 없다. 너무 춥다고 호들갑을 떨며 따뜻한 방 안에서 이불을 포옥 덮고 엎드려 있을 필요도 없다. 이른 아침마다 속을 마구 후벼 파는 못된(?) 술이 있으면 반드시 그 술 꽁무니를 세차게 후려치는 암행어사 역할을 하는 해장국이란 음식이 여기 떡 버티고 있으니깐.

벽면 곳곳에 이 집 해장국 찬사와 함께 여러 사람들 사인이 빼곡하게 붙어 있다
▲ 해장국 벽면 곳곳에 이 집 해장국 찬사와 함께 여러 사람들 사인이 빼곡하게 붙어 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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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잡는 보약' 해장국, <해동죽지>에 처음 나와

우리나라 신토불이 음식 해장국은 종류가 너무 많아 일일이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서울 경기 사람들이 즐기는 선짓국에서부터 전주를 비롯한 전라도에서 즐기는 콩나물국밥과 추어탕 연포탕, 충청도에서 즐기는 올갱이(다슬기)국, 경상도에서 즐기는 재첩국 복국 따로국밥, 강원도에서 즐기는 오징어물회, 제주도에서 즐기는 갈칫국과 성게국 등.

'술 잡는 보약' 해장국은 1925년 최영년이 지은 풍속서 <해동죽지>에 처음 나온다. 이 책에 나와 있는 해장국 이름은 '효종갱'('갱'은 '국')이다. 양반들이 즐겼다 하여 '양반장국'으로도 불리는 효종갱은 경기도 광주에서 배추속대와 콩나물, 송이, 표고, 쇠갈비, 해삼, 전복 등을 토장에 섞어 하루 종일 푹 곤 뒤 밤에 이 국 항아리를 솜에 싸서 서울에 보냈다.

<해동죽지>에는 "이 국이 우리나라 해장국의 시초"라고 씌어져 있다. 효종갱이란 새벽종이 울릴 때 서울에서 받아먹는 국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요즈음 우리가 흔히 먹는 해장국은 1883년 인천 개항과 함께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때 인천항에는  항구건설과 화물출입 등으로 수많은 서양인들과 조선인들이 들끓었다.

이때 쇠고기를 주로 먹는 서양인들 때문에 인천항 주변에서는 다른 지역보다 훨씬 많은 소를 잡아야 했다. 그리하여 서양인들이 등심과 안심을 가져가고 나면 이른 아침 일터로 나가는 조선인들이 남은 잡육과 내장, 뼈를 국으로 끓여 허기를 채웠다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먹는 해장국의 시작이란다.

청진동 해장국 뿌리는 이와는 좀 다르다. 일제강점기 때(1937년) 이간난(1989년 작고)씨가 종로구청 앞에서 나무꾼을 상대로 '평화관'이라는 국밥집을 연 것이 처음이다. 그때 해장국은 소뼈국물에 감자, 콩나물 등을 넣어 얼큰하게 끓인 '술국'이었다. 그 뒤 한량들이 이 집에 기웃거리면서 음식이 변하기 시작해 지금의 해장국이 되었다는 것이다.

밑반찬이라고 해봐야 김치, 깍두기, 마늘조림, 무말랭이무침, 이 네 가지 찬에 송송 썬 매운고추뿐이다
▲ 해장국 밑반찬이라고 해봐야 김치, 깍두기, 마늘조림, 무말랭이무침, 이 네 가지 찬에 송송 썬 매운고추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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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 선지와 소양, 콩나물, 우거지 4가지만 쓴다
▲ 해장국 한우 선지와 소양, 콩나물, 우거지 4가지만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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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 전 국무총리도 이 집 해장국 맛에 반했다?

"저희 집 해장국 맛국물은 그날그날 서울에서 배달되어 오는 싱싱한 한우 머리의 핏기를 뺀 뒤 여러 가지 한약재와 물을 붓고 5~6시간 동안 우려내서 사용해요. 재료도 한우 선지와 소양, 콩나물, 우거지 4가지만 써요. 그래서 그런지 손님들이 국물이 텁텁하지 않고 뒷맛이 아주 깔끔하다고 그래요."

15일(토) 오후 5시. 시인 홍일선 이승철 박선욱 유승도 윤일균, 한복희 가족, 작가 강기희 유시연, 가수 김현성 인디언 수니 등과 함께 홍천관광호텔에서 열린 '작가 이종득 장편소설 <길, 그 위에 서서> 출판기념회'에 갔다가 이튿날 아침 일행들과 함께 들른 강원도 홍천 진리에 있는 해장국 전문점. 

이 집 주인 허경영(45)씨는 "선지는 그날그날 잡은 싱싱한 한우 선지를 써야 제맛이 난다"고 말한다. 허씨는 "해장국에 들어가는 콩나물과 우거지, 밑반찬은 모두 밭에서 직접 기른 무공해 채소만을 사용한다"며 "다른 집 해장국이 약간 느끼하게 느껴지는 것은 소 내장이나 곱창, 살코기 등을 함께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귀띔한다.

허씨는 "이 자리에서 제과점을 15년 넘게 하다가 지난 3년 전부터 해장국 전문점으로 업종을 바꾸었다"며 "제과점을 오래 하다 보니 웬만한 음식에 따른 노하우가 저절로 터득되었다"고 말했다. 또한 "고건 전 국무총리를 비롯한 배구·핸드볼 감독님들과 자전거·오토바이 산악회 팀들이 아침 해장국으로 즐겨 찾는다"고 자랑했다. 

보글보글 피어오르는 동글동글한 작은 국물방울들

송송 썬 매운고추 반 수저쯤 김에 희부옇게 가려진 해장국에 올린 뒤 숟가락으로 두어 번 휘이 저어 국물 맛을 본다
▲ 해장국 송송 썬 매운고추 반 수저쯤 김에 희부옇게 가려진 해장국에 올린 뒤 숟가락으로 두어 번 휘이 저어 국물 맛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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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장국집, 해장국 너무 맛있네요.-영화평론가 000"
"맛있어요. 그리고 속풀이로 최고-00대학교 무용학과 교수 000"
"맛있는 무김치와 따끈따끈한 해장국 끝내줘요-000"
"정말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맛있네요.-00산악회 일동"

일행들과 자리에 앉아 식당 벽을 바라보니 벽면 곳곳에 이 집 해장국 찬사와 함께 여러 사람들 사인이 빼곡하게 붙어 있다. "대체 이 집 해장국이 얼마나 맛있기에 각계각층에서 내노라 하는 저리도 많은 사람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을까?"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밑반찬이 먼저 나온다.

밑반찬이라고 해봐야 김치, 깍두기, 마늘조림, 무말랭이무침, 이 네 가지 찬에 송송 썬 매운고추뿐이다. 소박하다. 하지만 이 모든 밑반찬이 주인이 밭에서 직접 농사를 지은 무공해 채소라고 하니 젓가락이 절로 갈 수밖에. 김치 맛을 본다. 아삭아삭 씹히는 매콤한 맛 속에 달착지근한 맛이 은근하게 배어 있다. 

깍두기도 새콤달콤 뒷맛이 깔끔하다. 그렇게 쫄깃하게 씹히는 무말랭이무침와 사각사각 씹히는 향긋한 마늘조림을 골고루 맛보고 있을 때 허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해장국이 식탁 위에 놓인다. 선지와 콩나물, 소양, 우거지를 헤집으며 뽀글뽀글 피어오르고 있는 동글동글한 작은 국물방울이 정겹다.

홍천 해장국 한 그릇에 추위마저 달아난다

곱슬곱슬 잘 지은 쌀밥 한 공기 말아 선지, 소양, 콩나물, 우거지를 한 수저 떠서 입에 넣는다
▲ 해장국 곱슬곱슬 잘 지은 쌀밥 한 공기 말아 선지, 소양, 콩나물, 우거지를 한 수저 떠서 입에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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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송 썬 매운고추 반 수저쯤 김에 희부옇게 가려진 해장국에 올린 뒤 숟가락으로 두어 번 휘이 저어 국물 맛을 본다. 시원하고 깔끔하다. 무엇보다 입맛을 더욱 강하게 끌어당기는 것은 국물맛이 비릿하거나 느끼하지 않고 매콤한 감칠맛이 무르익어 있다는 데 있다. 곱슬곱슬 잘 지은 쌀밥 한 공기 말아 선지, 소양, 콩나물, 우거지를 한 수저 떠서 입에 넣는다.

선지의 담백한 맛, 소양의 구수한 맛, 그 맛 사이를 한껏 헤엄치며 아삭아삭 씹히는 향긋한 콩나물,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우거지가 한데 어우러져 몇 번이나 혀를 까무러치게 만든다. 해장국 듬뿍 떠서 김치나 깍두기를 척척 올려먹는 맛도 그만이다. 특히 선지, 소양와 함께 먹는 마늘조림 맛은 별미 중 별미다.

'후루룩~ 쩝쩝! 후루룩~ 쩝쩝!' 그렇게 정신없이 몇 숟가락 떠먹고 나자 이내 이마와 목덜미에 굵은 땀방울이 송송송 맺히기 시작한다. 손수건으로 이마와 목덜미를 몇 번 훔친 뒤 시꺼먼 뚝배기를 양 손에 들고 마지막 남은 해장국 국물까지 후루루룩 다 마시고 나자 간밤 새벽까지 마신 술이 확 깨면서 더부룩한 속이 확 풀린다.

이승철 시인은 "이 집 해장국 한 그릇 먹고 나니 추위마저 싹 가셨다"고 말한다. 이 시인은 "이 집 다녀간 사람들이 사인을 남길 만하구먼"이라며 "강원도 홍천에서 파는 해장국은 서울에서 파는 해장국과는 맛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물 맑고 공기 좋은 강원도 맛이 그대로 배어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술로 쓰린 창자를 푼다'는 '해정'(解酊)이라는 글자에서 따왔다는 우리 고유 음식 해장국. 철분과 단백질, 무기질, 섬유소 등이 듬뿍 들어 있어 숙취해소에 그만이라는 해장국의 황제 선지해장국. 길라잡이는 홍천 해장국을 '술 잡는 암행어사' 혹은 '추위 잡는 암행어사'로 이름 짓는다. 술 좋아하는 분, 추위 많이 타는 분들은 가서 드셔 보시라. 그 해장국 앞에서는 술, 추위가 끽 소리를 내며 그대로 주저앉으리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태그:#해장국, #홍천, #고건 전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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