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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 한국 우파, 문근영을 쏘다


"죽는 날까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적으로 한평생 살다 죽은 류낙진의 외손녀 문근영은, 그(외할아버지 류낙진)에 대한 자신의 견해와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다."

17일 <조선닷컴>에 실린 기사 '문근영 기부는 빨치산 심리전?'에 한 누리꾼이 단 댓글이다. 좌익 운동을 했던 외할아버지에 대한 문근영의 '커밍아웃'을 강요하고 그를 통해 사상검증을 하겠다는 것이다.

첨단을 달리는 21세기에 읽기조차 민망하고 거북스런 글이다. 하지만 이 댓글은 18일 오전 10시 현재 해당 기사에 달린 411개 댓글 중 가장 많은 찬성표(73개)를 얻었다. 기사에는 이런 댓글도 있다.

"예전에 연탄을 북으로 보낼 때 알아봤다. 한국에도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 수억인데, 왜 굳이 연탄을 북으로 보내나 했더니 역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네."

끝난 줄 알았던 연좌제와 사상검증, 그리고 색깔론 칼날은 여전히 일부의 사람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유용한 도구로 남아 있는 듯하다. 그 일부는 바로 보수우익 쪽 사람들이다.

"문근영, 외할아버지에 대한 견해 밝혀라"... '조선닷컴' 최다 찬성 댓글

 <바람의 화원>에서 신윤복 역의 문근영
 <바람의 화원>에서 신윤복 역의 문근영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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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보수우익 성향의 누리꾼들은 문근영씨의 가족사를 들먹이며 인터넷 공간에서 수많은 악플을 달고 있다. '문근영은 국민여동생이 아닌 좌익의 딸'이라느니 '문씨의 기부는 좌익의 전술'이라는 식이다.

이런 악플과 비난글은 보수 언론사 및 우익 인사 홈페이지에 차고 넘친다.

최진실씨 자살 사건 이후 사이버 모욕죄, 이른바 '최진실법' 도입에 적극 찬성했던 보수 우익 성향의 사람들은 정작 문근영씨에게는 '댓글 테러'를 자행한다. 

<조선>의 기사에서 시대착오적 댓글이 가장 많은 찬성표를 얻은 건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조선>의 주요 독자층이 바로 보수 우익들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군사평론가 지만원씨는 지난 10월 4일 '국민은 악플러에게 분노해야' 라는 글을 올려 '최진실법'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이 '기부천사' 문근영을 향한 인터넷 악플에 동조하는 건 아니다. <조선>은 "문씨를 기부 천사로 만드는 것은 빨치산을 미화하려는 좌익세력의 작전"이라고 주장한 지만원씨를 비판했다.

19일자 신문에서는 사설을 통해 '이례적으로' 보수우익 진영의 악플에 우려를 표했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인터넷 악플 대책의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간 <조선>의 이념편향적인 보도태도를 보면 이런 주장이 진실인지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다.

[장면 2] 우파의 대부 <조선>의 과거와 현재

지난 2005년 7월 '통일의 꽃'으로 불리던 임수경씨의 아들이 사망했다. 이 소식을 전한 <조선>의 기사에는 "빨갱이 자식 잘 죽었다" "인과응보, 사필귀정" 등의 댓글이 달렸다. 조선닷컴의 댓글은 실명제인데도 이랬다.

임씨는 정도가 심한 누리꾼 25명을 고소했다. 악플 때문에 누리꾼들이 대량으로 고소된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다. 수사 결과 이들 다수는 대학교수와 대기업 임원 등이었다.

당시 <조선>은 기사 '악의적 댓글 악플 교수님까지…'를 통해 "일부에서는 이번 사건처럼 너무 악의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인터넷 댓글을 사법 처리 대상으로 삼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므로 인터넷 실명제를 획일적으로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고 전했다.

"너무 악의적인 경우가 아니라면"이라는 전제가 붙었지만 인터넷 댓글 사법 처리는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밝힌 것이다.

3년 만에 <조선>의 견해는 크게 달라졌다. 어찌 보면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보수우익 진영의 문근영씨를 향한 악플은 '빨갱이 굴레' 씌우기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사회에서 색깔론 공세로 가장 큰 재미를 본 집단은 '문근영 악플'을 걱정하고 있는 <조선>을 비롯한 보수언론들이다.

최근 보수우익 누리꾼들이 '빨갱이의 딸'이라는 댓글로 문씨를 공격하듯, <조선> 등은 오랜 세월 '좌익' '친북좌파' 등으로 반대편에게 '주홍 글씨'를 붙여왔다.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조선>은 노무현 후보 장인의 좌익 경력을 크게 문제 삼았다. 당시 노 후보는 "<조선>과 <동아>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떼라"고 외칠 정도로 이들의 색깔 공세는 집요했다.

또 <조선>이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좌파 정권'이라고 부른 건 오래된 일이다. <조선>의 지난 4월 5일자 사설 '육사생도들까지 오염시킨 좌파 선전선동'을 통해 "얼마 전까지 우리 사회엔 반미하고 친북하는 것이 유행병처럼 번졌다, 반미와 친북의 불을 지른 것은 지난 10년 간의 두 정권이었다"며 "지금부터 그 해독을 빼내야 한다"고 밝혔다.

이밖에 <조선>은 지난 5월에서 7월까지 계속된 촛불집회를 두고 "친북 좌파의 선동"이라는 식으로 보도했고,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역사교과서에 대해서도 늘 '친북', '좌파'라는 수식어를 빠뜨리지 않고 있다.

지난 9월 6일 KBS <미디어 포커스>가 공개한 통계 자료만 봐도 <조선>이 이념과 색깔과 관련된 보도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알 수 있다. 이 통계에 따르면, 2007년 9월 1일부터 올해 8월 31일까지 '좌파'라는 단어가 들어간 기사는 <조선>이 209개, <동아>가 243개였다. 이는 <한겨레> 91개, <경향> 93개에 비하면 월등히 높은 것이다.

문근영 악플- <조선> 기사 '일란성 쌍둥이'

이렇게 보수우익 진영의 악플을 이용한 '문근영 사냥'과 <조선>을 위시한 보수언론의 모습은, 댓글-기사-말이라는 방식만 달랐을 뿐 이념 공세라는 측면에서는 일란성 쌍둥이다.

보수우익은 인터넷 공간에서 자신들을 비판하는 이들을 옥죌 목적으로 사이버 모욕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우리 사회의 악습인 색깔 공세는 제일 선도적으로 퍼부었다. 그리고 이는 보수 언론사 홈페이지에 실린 문근영 관련 기사에 넘치는 독자들의 색깔론 댓글에서 분명하게 확인된다.

이런 보수우익의 습성에 지금 문근영씨가 당하고 있는 것이다. '문근영씨 댓글 사태'의 핵심은 잘못된 인터넷 문화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한국 보수우익의 '못된 버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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