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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대'가 붙여진 속옷 가게. 이런 모습은 우리동네뿐 아니라 이웃동네에도 흔하게 보인다.
 '임대'가 붙여진 대전의 한 속옷 가게. 경기가 안 좋아서 영업을 중단하는 상인들이 늘고 있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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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그만두면서 퇴직금 100만원을 2년 동안 못 받았다. 회사가 어렵다기에 그런 줄만 알았는데, 사장은 이제 와서 중간정산 끝냈으니 줄 게 없단다. 억울해서라도 받아야겠다." (30대 여성 A씨)

"월세로 가게를 얻어 장사를 했는데, 경기가 안 좋아서 접기로 했다. 집주인은 보증금 돌려줄 돈이 없으니 세입자 들어올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한다. 이러다가 보증금까지 다 까먹겠다." (40대 남성 B씨)

"친구가 어렵다고 해서 300만원을 빌려줬는데, 갚을 생각을 안 하더라. 돈이 급해 어렵게 말을 꺼냈더니 친구는 '내가 언제 빌렸냐, 증거를 대라'며 오히려 큰소리를 친다." (30대 남성 C씨)

"생활비라도 보태려고 전단지 배포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파트 단지에 치킨집 광고를 하루종일 붙여봐야 2만원 정도 받는다. 그런데 누가 신고를 해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일거리 끊기고 전과자 되게 생겼다." (50대 여성 D씨)

이렇게 구구절절한 사연을 품은 사람들이 찾는 곳, 바로 법원이다. 예전 같으면 당사자 사이에서 해결될 일들이 경제난과 취업한파 속에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는 경우가 늘었다.

그중에서도 시군법원은 서민들의 법적 분쟁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다들 먹고 살기 어렵다는 요즘, 경기도 파주시 법원의 사건을 통해 '서민 재판'을 들여다봤다(시군법원은 법원 중에서 제일 규모가 작다. 전국 100여개의 시군법원은 중소도시와 군 지역주민들의 간단한 재판을 신속하기 해결하기 위해 운영되며, 2천만원 이하의 소액 민사재판, 가압류, 형사 즉결심판, 협의이혼 등의 재판을 담당한다).

요즘 소액재판 "없는 사람들끼리 싸우는 꼴"

지난 7일 오전 파주시 금촌동 파주시법원 법정 앞.

"당신이 정말로 나한테 돈 줬어? 줬냐고?"

재판을 마치고 법정을 나서던 30대 여성이 한 남자에게 다가가 소리를 지른다. 남자는 당황하면서 "왜 이래?" 하며 물러선다. 여자는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이 XX야, 왜 거짓말을 해?" 하며 욕설을 퍼붓는다.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한 노인이 "저래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 쯧쯧" 하며 혼잣말을 내뱉는다.

시끄러운 것은 법정 안도 마찬가지다. 오전 10시 30분경 법정은 40석의 좌석이 꽉 찼고, 물품대금 소송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판사님, 실제 거래는 있었는데 세금계산서를 안 끊어준 것뿐이에요. 피고는 그걸 악용해서 거짓말 하는 겁니다. 이 사람 사기꾼입니다."
"사기꾼이라니? 내가 이 나이 먹도록 소송 걸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야!"

당사자들의 언쟁을 지켜보고 있던 판사가 당사자들을 진정시킨다.

"싸울 거면 나가서 싸우세요. 이러면 재판 못합니다. 그러니까 원고의 주장은 무자료 거래이긴 하지만 실제 거래가 있었다는 거지요? 그런데 원고 말을 믿을 만한 증거가 없어요. 그걸 본 사람을 증인으로 신청하세요. 다음 재판은 4주 후입니다."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재판은 점심시간을 넘겨서까지 계속된다. 이날 하루만 오후 6시까지 100여 건의 재판이 열렸다. 

"경기가 좋았으면 소송까지 가지 않을 재판이 늘었어요. (가진 게) 없는 사람이 없는 사람을 상대로 싸우는 격이라고 할까요."

파주시 법원의 황대현 판사(48)는 경제난을 반영하고 있는 최근 소액 민사재판의 경향을 이렇게 표현했다. 앞서 소개한 C씨의 사례처럼 사정을 뻔히 아는 사람들끼리 법정에서 얼굴 붉히는 일이 늘었다는 얘기다.   

없는 사람들끼리 얼굴 붉혀야 하는 2008년 겨울

 밀린 퇴직금·월급을 청구하는 사건, 전세보증금, 공사대금을 달라는 사건도 제법 되고, 음식값, 물건값, 심지어는 밀린 우윳값 몇 십만원까지 소소한 청구도 많다.
 밀린 퇴직금·월급을 청구하는 사건, 전세보증금, 공사대금을 달라는 사건도 제법 되고, 음식값, 물건값, 심지어는 밀린 우윳값 몇 십만원까지 소소한 청구도 많다.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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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대상을 봐도 A씨처럼 밀린 퇴직금⋅월급을 청구하는 사건, 전세보증금·공사대금을 달라는 사건도 제법 되고, 음식값·물건값, 심지어는 밀린 우윳값 몇십만원까지 소소한 청구도 많다. 하지만 이런 재판도 간단하게 끝나지 않는다. 갚을 능력이 없는 피고가 인정하기는커녕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시간을 끌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가 B씨의 사례와 같은 전세보증금 반환 소송이다. 집주인이 답변서를 내면서 세입자 B씨의 주장을 부인하고 증인까지 세우는 바람에 몇 달이 훌쩍 지나갔다. 그러다보니 보증금을 월세로 다 까먹어버려서 돌려받을 돈이 거의 없게 되었다. B씨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승소판결을 받았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채무자가 순순히 돈을 갚지 않으면 압류를 해야 한다. 압류를 하려고 해도 채무자 앞으로 된 재산이 없으면 도리가 없다. 소액 사건 중에는 피고가 주민등록이 말소되고 사는 곳도 알 수 없는 '소재불명'도 허다하다. 이럴 때 법원은 '공시송달'이라는 방법으로 재판을 하고 판결을 내리지만, 채무자의 행방이나 재산을 찾아낼 수 없다면 채권자로서는 그야말로 '대략난감'이다. 

선처 판결 받았는데 "이거 또 할 거예요"

시군법원은 즉결심판(즉심)도 처리한다. 즉심은 형사사건 중에서 2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등 가벼운 죄를 처리하는 재판이다. 파주시 법원에서는 1주일에 8~10건 정도 재판을 한다. 무임승차, 무전취식, 도박, 광고물 무단부착 등이 주된 사건이다.

무임승차, 무전취식은 술에 취해 막무가내로 택시 요금을 지불하지 않거나 술값을 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다수는 파출소에서 실랑이가 벌어지는 선에서 끝나지만 결국 돈을 내지 않고 버티거나 비슷한 전과가 있는 사람은 법정까지 오게 된다. 처벌은 대개 벌금 5만원 선.

할머니들도 법정에 섰다. 죄명은 도박죄. 도박죄는 형법상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다. 할머니들은 심심풀이로 점당 100원짜리 고스톱을 쳤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압수된 판돈도 몇 천원에 불과했다. 심심풀이인지 도박인지 판단이 쉽지 않은 대목이다.

황 판사는 고심 끝에 벌금형의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선고유예'란 죄는 인정되지만, 여러 가지 사정을 감안하여 유예기간 동안 재발하지 않을 경우, 처벌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황 판사는 "하지만 경미한 도박이라도 전과가 있는 사람은 처벌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말했다. 

광고물 무단 부착은 전형적인 생계형 범죄라고 할 수 있다. 경범죄 처벌법은 다른 사람의 집이나 건물에 함부로 광고물을 붙이는 사람을 처벌하도록 되어 있다. 주부들이 취업이 어려워지자 불법인 줄 알면서도 그나마 손쉬운 광고 전단지 배포를 하게 되는 것이다. D씨가 바로 그런 사례이다.  

법원 직원이 들려준 일화 하나. 법정에서 D씨를 선처해주면서 판사가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아주머니, 남의 집에 광고물 붙이는 일은 죄예요. 또 하면 안 됩니다. 나중에 저한테 다시 오면 그 때는 구속될 수도 있어요."

그때 아주머니의 대답이 걸작(?)이었단다.

"저 이거 안 하면 못 먹고 살아요. 또 할 거예요."

처벌하자니 너무 가혹한 것 같고, 무작정 봐주자니 법을 우습게 여길 것 같아 판사의 고민은 커져만 간다.

소액재판·즉결심판 작년보다 10~20% 증가

 민사소액사건, 즉결심판파주시·전국  접수 건수 비교(1월-9월) 자료출처 : 대법원
 민사소액사건, 즉결심판파주시·전국 접수 건수 비교(1월-9월) 자료출처 : 대법원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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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시 법원엔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민사 소액사건이 2755건이 접수되었으며 판결 등으로 종결된 건수는 2930건에 달한다. 작년 같은 기간 2288건이 접수돼 2309건이 처리된 것에 비하면 20% 이상 늘어난 수치다.

사건 증가는 비단 파주만의 얘기는 아니다. 올해 9월까지 전국 법원에 접수된 소액사건은 72만1843건으로 작년(64만6441건)보다 7만여 건이나 늘었다.  

즉심 사건도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작년 한 해 파주의 즉심사건은 229건에 불과했으나 올해는 9월 말까지 벌써 280건이 넘어섰다. 전국으로 보면 작년 3만7524건에서 올해 4만4215건으로 늘었다. 

황 판사는 "사건수가 단순 증가한 것뿐 아니라 생계형 사건이 늘고 있는 것이 요즘의 추세"라고 분석했다. 그는 "소액 사건은 금액은 적고 입증할 자료가 없는 사건이 많다. 원고의 말이 맞는 것 같지만 증거가 없어 막막할 때도 있다"며 "그러다보니 왜 내 돈 받는데 이렇게 힘드냐고 따지는 일이 적지 않다"고 안타까워 했다.

황 판사는 끝으로 재판을 받으러 오는 시민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사람들이 100만~200만원 거래하는데 차용증·계약서 주고 받기는 사실 힘들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었다면 재판을 받을 때는 사실관계를 아무것도 모르는 재판장을 설득해야 합니다. 차용증·계약서 없으면 힘든 게 재판이구나, 이런 걸 알고 법원으로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유야 어찌됐든 거는 사람도 당하는 사람도 힘든 게 재판이다. 팍팍한 생활에 법원의 문까지 두드려야 하는 서민들의 겨울은 춥기만 하다.

덧붙이는 글 | 김용국 기자는 법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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