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13일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날이자 헌법재판소가 종합부동산세의 위헌 여부를 결정한 날이었다. 헌재는 세대별 합산 과세는 '위헌', 거주 목적의 1주택 장기보유자 과세는 '헌법불합치'라는 결정을 내렸다.  

 

그런 와중에 한나라당 정책통을 자부하는 이혜훈 의원은 이날 재빠르게 보도자료를 냈다. 자신이 대표 발의한 종부세법 개정안이 헌재의 결정 내용과 똑같다는 내용이었다. 

 

실제 이 의원은 지난 5월 30일 '개인별 합산 과세'와 '거주목적 1가구 1주택자 종부세 면제'를 골자로 하는 종부세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이 의원은 이것을 "18대 국회 1호 법안"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자신이 대표발의한 법률 개정안이 헌재 판결로 법률적, 사회적 의미를 얻었다는 점을 홍보하는 것이야 적극 권장할 일이지 나무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종부세 개정안과 관련된 이 의원의 전력을 생각하면 이날 뿌린 보도자료는 '낯 뜨거운 자화자찬'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2005년, 세대별 합산 과세 등이 포함된 종부세 개정안 대표 발의

 

이혜훈 의원은 이미 17대 국회 시절인 지난 2005년 9월 '종부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개정안에는 지난 13일 헌재가 위헌판결을 내린 세대별 합산 과세 등이 핵심 내용으로 포함돼 있었다.

 

당시 종부세법 개정안 발의에는 이 의원 외에도 김병호·김양수·김태환·김학송·박재완·서병수·안택수·안홍준·임인배·정갑윤·정희수·최경환·허태열 의원 등 13명의 한나라당 의원이 참여했다.

 

이 가운데 현재 허태열 의원은 최고위원, 최경환 의원은 제3정조위원장, 안홍준 의원은 제5정조위원장, 서병수 의원은 국회 기획재정위원장, 김학송 의원은 국방위원장, 박재완 전 의원은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을 맡고 있다. 이는 쟁쟁한 한나라당 인사들이 '세대별 합산 과세' 등에 동의하고 있었음을 뜻한다.  

 

노무현 정부는 2005년 당시 제정된 종부세법에서 개인별 합산을 과세방법으로 채택했다. 하지만 개인별 합산 과세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드러냈다. 이런 와중에 정책통이었던 이 의원이 세대별로 합산해 과세해야 한다는 종부세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이다. 

 

이 의원이 이러한 종부세 개정안을 발의하게 된 이유를 간추리면 이렇다.

 

"2005년에 신설된 현행 종부세는 개인별로 부과됨에 따라 부부가 공동명의로 공시가격 9억 초과의 주택을 소유하는 경우 내지는 부부가 개인별로 공시가격 9억 이하의 고가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경우 과세되지 않는 등 미비한 점이 많아 본래의 도입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종부세를 개인별 과세에서 세대별 합산과세로 전환해 투기를 목적으로 하는 부동산 보유자들이 종부세 과세를 회피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또한 이를 통해 부동산에 대한 투기수요를 억제하여 점차 심해지고 있는 부동산 소유의 양극화를 방지하여 집값 안정에 기여하고 궁극적으로 올바르고 건전한 부동산시장을 정립하고자 한다."

 

이는 마치 현재 '종부세 존속'을 주장하고 있는 민주당의 견해를 보는 듯하다. 이 의원이 대표발의한 '2005년도 종부세법 개정안'은 헌재가 위헌결정을 내린 현행 종부세법과 거의 같다.  

 

물론 이 의원의 종부세 개정안은 통과되지 않았다. 당시 김종률 의원 등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세대별 합산 과세 등을 골자로 한 또다른 종부세 개정안을 발의했고, 이것이 국회에서 의결되면서 이 의원의 개정안은 자동폐기된 것이다.

 

건설경기 부양 등 경제적 명분만 남은 '2008년도 개정안'

 

이 의원이 대표발의한 '2005년도 종부세법 개정안'에 따르자면, 세대별 합산 과세와 주거목적 1주택 보유자 종부세 과세 등은 법적, 현실적 논리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이 의원은 2008년 5월 이러한 논리를 뒤집는 종부세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이 의원이 국회에 제출한 '2008년도 개정안'의 핵심은 세대별 합산 과세를 개인별 합산 과세로 바꾸고, 1세대 1주택 소유자에게 부과되는 종부세를 면제하자는 것이다. 이는 자신이 대표발의했던 '2005년도 개정안'을 완전히 뒤집는 셈이다. 

 

이 의원은 '2008년도 개정안'을 발의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종부세는 부동산 소유에 대한 조세부담의 형평성을 제고하기 위해 고액의 부동산 보유자에게 부과하고 있으나, 현행 종부세법은 주택분 종부세를 세대별로 합산해 부과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 혼인과 가족생활을 보호하고 국가로 하여금 이를 보장받도록 하는 헌법상 국민의 권리를 침해할 위헌 소지가 있다.

 

또한 현행 종부세법은 주택소유의 방법이나 목적에 관계없이 고액 주택을 소유한 자에게 모든 종부세를 부과하고 있어 투기와 관계없이 거주를 목적으로 하는 1세대 1주택 소유자들에게 지나친 세부담이 되고 있다."

 

이 의원은 이러한 입법취지를 바탕으로 "과세방법을 세대별 합산에서 개인별 합산으로 변경해 이와 관련한 위헌 논란을 없애야 한다"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1세대 1주택 소유자를 종부세 납부의무자에서 제외시켜 서민들의 세 부담을 완화하고 부동산 거래 및 건설경기 위측을 방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경제적 논리로 접근했던 '2005년도 개정안'에는 ▲투기 목적의 부동산 보유자 과세 회피 방지 ▲부동산 투기 수요 억제 ▲부동산 소유 양극화 방지 ▲집값 안정 등의 명분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2008년도 개정안'에는 ▲부동산 거래 활성화 ▲건설경기 부양이라는 '경제적 명분'만 남아 있다.

 

행정법원 판결 하나에 정책적 소신 버리나?

 

물론 이 의원에게도 '할 말'은 있다. 지난 4월 서울행정법원이 "종부세법의 세대별 합산규정이 혼인과 가족생활을 보호하고 국가로 하여금 이를 보장할 것을 규정한 헌법 36조 1항에 위반된다고 볼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이 의원 자신은 서울행정법원의 '세대별 합산 과세의 위헌 가능성' 판결을 반영해 '2008년도 종부세 개정안'을 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이 의원의 주장대로 입법기관인 국회가 사법부의 판결을 입법 활동에 반영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행정법원의 판결 하나만으로 자신의 정책적 소신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은 '정책통답지 못한 행위'로 비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보도자료를 내서 2005년도 종부세법 개정안의 취지와 논리, 명분 등을 완전 뒤집은 2008년도 개정안을 자화자찬하는 것은 너무 낯뜨겁다. 

 

[최근 주요 기사]
☞ [20대 펀드 투자기] 한국의 "워렌 버핏", 다시 신입사원 되다
☞ ["디자인 서울" 논란] "간판 개선? 굶는 판에 "명품" 입으라는 격"
☞ MB "지금은 성장 전망이 중요한 게 아니다"
☞ [우리 시대의 진상] 극장 아르바이트생이 "진상" 고객 만났을 때


태그:#이혜훈, #종부세법, #새대별합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