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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철부터 철새들이 장관을 이루는 나포 십자들녘. 소들의 겨울 먹이인 볏짚이 추수가 끝난 들판에 널려 있는 모습이 무척 한가롭게 보입니다.
 가을철부터 철새들이 장관을 이루는 나포 십자들녘. 소들의 겨울 먹이인 볏짚이 추수가 끝난 들판에 널려 있는 모습이 무척 한가롭게 보입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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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동(立冬)이 지나고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엔 소들의 겨울 먹이인 볏짚이 말라가며, 밭에서는 알이 꽉 찬 배추를 묶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소설(小雪)을 일주일 앞둔 요즘은 캄캄한 밤까지 콤바인을 운전하던 농부들도 일손을 털고 한숨 돌리는 시기입니다.

입동과 소설이 함께 들어 있는 이달은 양력으로 11월이지만 음력으로는 10월입니다. 음력 10월은 추수를 끝내고 곳간이 가득해서 걱정 없이 놀 수 있는 달이라 하여 '상달'이라 했고, 일하지 않고도 먹을 수 있다고 해서 '공달'이라고도 했습니다.

주부들은 이때 김장을 담그고 농촌에서는 햅쌀로 밥을 해먹으며 벼 건조와 저장하기, 사료용 볏짚 모으기, 시래기 엮어 달기 등 조촐한 일이 있을 뿐입니다. 저도 며칠 전 방아를 찧은 햅쌀 80kg들이 한 가마를 사놓고 기름기가 흐르는 밥을 해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오곡백과가 풍성한 가을임에도 막상 밥을 먹으려면 무엇하고 먹을까 망설여질 때가 자주 있다는 것입니다. 반찬 때문에 생기는 고민은 20억짜리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나 2천만 원 전셋집에 사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라 사료되는군요. 

해서 오늘은 다른 생선에 비해 가격이 저렴해서 부담 없이 사먹을 수 있고 요리도 손쉽게 할 수 있으며 맛도 좋아 늦가을의 별미인 '마른 박대구이'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늦가을의 별미 '마른 박대구이'

불에 타지 않고 잘 구워진 마른 박대. 생김새는 우습게 생겼지만 맛은 그만이랍니다. 싱싱할 때 말린 거라서 색깔도 예쁜데요. 늦가을의 별미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불에 타지 않고 잘 구워진 마른 박대. 생김새는 우습게 생겼지만 맛은 그만이랍니다. 싱싱할 때 말린 거라서 색깔도 예쁜데요. 늦가을의 별미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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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전어가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말을 유행시켰다면, 박대는 '시집간 딸에게 박대를 선물하면 버릇이 되어 친정에 자주 들른다'라는 말을 만들어 냈을 정도로 맛이 그만입니다.  

저는 밥맛이 없거나 반찬을 만들기가 귀찮을 때, 무엇을 만들어 먹을지 생각이 나지 않을 때는 냉동실에 넣어둔 마른 박대를 꺼내 구워 먹습니다. 고소한 냄새를 맡으며 굽는 재미도 쏠쏠하거든요.

특히 몸에 냉기가 돌고 쌀쌀한 기운이 느껴질 때 밥을 뜨거운 숭늉에 말아 노릇노릇하게 구운 박대를 찹쌀고추장에 찍어 알타리무 김치를 곁들여 먹는 맛은 늦가을의 별미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마음이 흐뭇해지면서 '이런 게 먹는 행복이로구나!'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니까요.   

알타리무 김치와 공기밥. 고소한 박대와 찹쌀고추장, 알타리무 김치가 함께 입으로 들어가면 서로 맛을 돋워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더라고요.
 알타리무 김치와 공기밥. 고소한 박대와 찹쌀고추장, 알타리무 김치가 함께 입으로 들어가면 서로 맛을 돋워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더라고요.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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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와 금강이 만나는 곳 군산에서는 얇고 납작한 생선인 박대, 광어, 서대, 넙치 가운데 반찬으로는 박대를 으뜸으로 칩니다. 찌개든 구이든 조림이든 비린내가 나지 않고, 반찬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술안주로도 그만이거든요.

군산의 마른 박대가 유명한 가장 큰 이유는, 싱싱한 박대를 바닷물로 씻어 바닷바람에 말리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옛날 동네 어른들 사이에 '군산의 짠맛. 째보선창의 짠맛을 보여줘야 한다'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는데 그냥 생겨난 말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해풍에 꾸둑꾸둑하게 말린 박대를 약한 불에 올려놓고 노릇노릇하게 구워 찹쌀고추장을 찍어 먹으면 밥 한 공기는 게 눈 감추듯 사라집니다. 밥그릇이 작게 느껴질 정도이니까요. 그러나 빈속에 식사하거나 위장약을 복용하는 분들은 주의해야 합니다. 침샘의 활발한 활동으로 더욱 고소해진 맛에 취해 매운 고추장을 듬뿍 찍어 먹고 이튿날 속이 쓰리다고 하는 사람을 여럿 봤거든요.

마른박대는 약한 불에 은은하게 구워야 고소한 맛이 도망가지 않으며 손으로 찢으면 가시와 살이 쉽게 분리되어 맛도 좋고 먹기도 좋습니다.
 마른박대는 약한 불에 은은하게 구워야 고소한 맛이 도망가지 않으며 손으로 찢으면 가시와 살이 쉽게 분리되어 맛도 좋고 먹기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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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이나 채소나 싱싱해야 제 맛이 나는 법, 박대 역시 냄새가 나지 않고 꼬들꼬들하게 잘 말라 빛깔이 뽀얘진 걸 골라야 조리하는 과정에 냄새가 역겹지 않고 고소해서 식사를 즐겁게 할 수 있습니다. 

육류든 생선이든 수컷보다는 암컷의 육질이 연하고 깊은 맛도 더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박대도 마찬가지여서 배에 선홍색 줄무늬가 있는 것으로 골라야 합니다. 알을 품고 있었다는 징표거든요. 

싱싱한 박대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묵은 김치를 넣고 찌개를 끓여 먹기도 하는데요. 특유의 고소한 맛과 김장김치에서 나오는 단맛이 일품입니다. 국물이 얼큰하고 김치의 개운한 맛이 생선과 어울리면서 고소한 맛이 더욱 살아나고 개운한 맛도 배가되지요.

박대는 어떤 생선?

박대라고 하니까 '문전박대'를 떠올리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는데요. 바다에서 잡히는 어류 중에 유달리 '각시' 성(姓)을 가진 게 박대입니다. 박대도 윤기가 돋고 맛이 좋은 '참박대'와 약간 검은 색을 띤 '보리박대'가 있는데, 몸통에 색동처럼 줄무늬가 있는 '각시박대'는 요즘 보이지 않더라고요. 참박대와 보리박대는 암컷과 수컷에 그렇게 이름을 지어 부르지 않았나 싶습니다.

가자미목 참서대 과에 속하는 박대는 갯벌이 많고 수심이 얕은 서해안에서 많이 잡힙니다. 참서대과 어종이며 몸이 매우 납작하고 머리와 눈이 이상할 정도로 작아 처음 보는 이들에게 웃음을 선물하는 생선이기도 하지요.  

박대는 다 커야 40cm가 넘지 않는 소형어종인데요. 남서해안 지역에서는 박대와 참서대를 구별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크기와 생김새가 비슷한 데서 오는 착시현상으로 보여집니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을 비롯한 경상도 강원도 쪽에서는 박대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생선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맛이 좋다는 게 알려지면서 지금은 서민 대중의 기호식품으로 자리 잡아가는 것 같습니다.

참서대와 함께 저서성 어류의 우점종인 박대는 군산을 비롯한 전북 연안 주민들 밥상에 자주 오르는데, 고소하고 담백해서 제사상에도 빠지지 않는 어종입니다. 그런데 불법어업과 개발사업 등으로 해마다 어획량이 감소하여 최근에는 예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불법어로를 막으면 어민이 울고 그냥 놔두면 어류의 씨가 마를 것 같고,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박대 껍질은 묵을 만들어 먹기도 하는데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말린 박대 껍질을 쌀뜨물에 하루 정도 담그고 나서 방망이로 두들겨가며 검은색 비닐과 같은 껍질을 제거하여 깨끗이 헹군 뒤 적당량의 물을 부어 푹 고아낸 후 묵 틀에 부어 식히면 굳으면서 투명하고 뽀얀 박대묵이 되는데요. 메밀묵을 무칠 때처럼 썰어 식초 양념장을 끼얹어 먹으면 입안에 개운한 맛이 감돕니다. 

요리를 하기 전 박대. 작지만, 배 부분에 선홍색 줄무늬가 있는 싱싱한 암컷인데요. 적당히 잘 익으면 머리와 몸통이 분리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요리를 하기 전 박대. 작지만, 배 부분에 선홍색 줄무늬가 있는 싱싱한 암컷인데요. 적당히 잘 익으면 머리와 몸통이 분리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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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마른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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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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