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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청사 앞에 늘어서있는 달리트들의 천막집.
 정부 청사 앞에 늘어서있는 달리트들의 천막집.
ⓒ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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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볕이 내리쬐는 여름날이 몇 달째 지속되었습니다. 몸을 뉘는 곳은 먼지 날리는 길바닥, 햇볕을 가리는 것은 낡아빠진 천막과 헌 옷가지들, 마실 물이라곤 고장난 화장실에 딸린 수돗물. 구자라트 부크나 마을 열 아홉 달리트 가족이 마을을 떠나 바나스칸타 지역자치정부 청사 앞 길바닥에 앉은 것도 벌써 열 달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땅도 목숨도 모두 상층카스트 손아귀에

부크나 마을의 코히야가 처참하게 살해당한 것은 지난해 8월. 평소처럼 아침 일찍 논일을 하러 가는 길, 마을의 상층카스트인 아홉 명의 라지풋들이 나무 몽둥이와 쇠로 만든 날카로운 농기구를 들고 달려들었습니다. 함께 얻어맞던 코히야의 동생이 도망쳐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구하러 갔지만 이미 때는 늦고 말았습니다.

라지풋들은 부크나 마을에서 가장 힘있는 상층카스트입니다. 대부분의 농지를 소유하고 있는 라지풋들은 마을 내의 모든 일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상층카스트라는 카스트내 최고의 위치와 달리트라는 카스트에 속하지도 않는 인간 이하의 지위는 신의 섭리와 자연의 질서로 여겨집니다. 부크나 마을처럼 상층카스트들은 달리트들의 일상생활에 대한 통제를 통해 삶과 죽음마저 휘어잡고 있습니다.

2년 전 라지풋 출신인 70살의 피라지는 코히야네에 손바닥만한 땅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기 시작했습니다. 마을의 달리트들 중 어느 누구도 농지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달리트들에게 땅이라곤 집을 지어놓은 대지뿐이었고, 공동체 구역 내에 포함되어 있는 공유지가 전부입니다. 라지풋의 유지라고 할 수 있는 피라지는 라지풋들이 이용하도록 길을 만들기 위해 코히야네 집 앞의 부지를 요구했고, 급기야 다른 라지풋들과 함께 물리적으로 위협과 폭력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두려움을 느낀 코히야는 문제를 법원으로 가져갔습니다. 힘이 없는 달리트들이 의존할 수 있는 건 그래도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게 적용될 여지가 있다고 믿는 법뿐. 법정은 코히야의 손을 들어주었고 피라지의 항소는 기각되었지만 법의 힘은 판결 뒤 코히야네 가족에게 매일 일어나는 살인 협박에까지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지역 경찰서에 고발도 해보았지만 고발등록만 되었을 뿐 아무도 가족들을 보호해주지 않았습니다.

천막집에서 출산한 뒤 건강이 악화된 달리트 여성.
 천막집에서 출산한 뒤 건강이 악화된 달리트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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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히 햇볕을 가리고 있는 여성과 아이.
 간신히 햇볕을 가리고 있는 여성과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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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운명은 달리트 공동체 전체의 운명

죽음의 화살은 단지 코히야에게로만 향하지 않습니다. 한 명의 달리트에게 협박과 폭력이 행사될 때, 이는 전체 달리트 공동체들에 대한 경고와 협박을 의미합니다. 어느 나라든지 군사독재 하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은 안전을 보장받지 못합니다. 하지만 달리트들 삶의 불안전성은 국가체제가 독재이든 민주주의든 혹은 식민상태이든 상관없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코히야와 그의 가족에 대한 협박은 같은 공동체 내 다른 달리트들에게도 두려움을 주었고 이들은 함께 마을을 떠났습니다. 코히야의 목숨은 언제 빼앗길지 몰랐고, 재수없으면 다른 누군가가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들과 할아버지들도 모두 그 운명 속에서 살다가 갔다는 걸 모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갈 곳 없는 이들은 지역자치정부 청사 앞에 천막을 치고 간절한 마음으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자치정부와 지역경찰 당국은 이들을 보호해 주겠다는 약속을 하며 마을로 돌려보냈습니다. 딱 2주 동안 두 명의 경찰이 코히야네 집 근처를 순찰했습니다. 그러나 별 문제 없다고 판단한 경찰들이 순찰을 끝내고 마을을 떠난 그 순간, 코히야는 농기구로 온몸이 찍혀 사망했습니다. 

천막에서 출산하는 여성들, 학교도 못다니는 아이들

코히야가 죽은 뒤, 달리트들은 다시 지역자치정부 청사 앞에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대로 살다가는 다른 누군가가 또 살해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입니다. 경찰에도 신고했지만 경찰은 9명의 공동살해혐의자 가운데 3명만 체포했습니다. 그 이상의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지역자치정부 청사는 마을에서 버스를 타고 몇 시간이 걸리는 상당히 먼 거리입니다. 집도 일도 포기하고, 아이들은 마을 내 학교를 뒤로 하고, 몇몇 임신한 여성들은 출산에 대한 위험도 감수한 채 마을을 떠났습니다.

바나스칸타 지역자치정부가 한 최소한의 노력은 이 달리트들에게 토지를 제공해 달라고 주정부 관할 부서에 요청 서한을 보낸 것뿐이었습니다. 그나마 이 작은 노력도 자치정부 장관이 달리트 출신이기 때문이라는 게 달리트 인권활동가의 설명이었습니다. 달리트 출신이 아니라면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을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요청 서한을 보낸 뒤 세 달이 지났지만 하염없이 기다리고만 있는 자치정부.

서한이 주정부의 어디에서 처리되고 누가 담당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확인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도, 인권활동가들은 달리트 출신의 정부관료가 직면하고 있는 관료사회 내에서의 차별과 어려움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달리트 출신이라지만 정부관료로서 당신 지역 주민을 위해 요구해야 할 것을 더 분명히 말해야 한다고 외쳐야 할지, 힘들더라고 좀더 노력해달라고 격려를 해야 할지.

코히야네 가족이 지내는 천막 안에 앉아 있는 딸. 다른 가족들은 일을 찾아 나가고 없다.
 코히야네 가족이 지내는 천막 안에 앉아 있는 딸. 다른 가족들은 일을 찾아 나가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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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도 가지 못하고 지내는 아이들. 마냥 천진하게 놀고 있다.
 학교도 가지 못하고 지내는 아이들. 마냥 천진하게 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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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생활을 하는 달리트들 가운데 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몇몇 여성들은 이렇게 천막생활을 하다가 출산도 했습니다. 몇몇 여성들은 현재 임신 중으로 머지 않아 아이를 낳게 될 상황입니다.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아이들과 여성들은 스스로 돌볼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도움을 주지 않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천막 주위에서 시간을 보내며 교육을 받지 못 한 지 몇 달째 되고 말았습니다.

죽거나 혹은 쫓겨나거나

마을의 다른 달리트들과 함께 마을에서 떠나 온 발리(오른쪽, 40)와 나레쉬(왼쪽, 18)
 마을의 다른 달리트들과 함께 마을에서 떠나 온 발리(오른쪽, 40)와 나레쉬(왼쪽,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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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이나 폭력사건이 일어나면서 살던 마을을 떠나 평화로운 마을에서 살기를 꿈꾸는 달리트들이 이곳 부크나 마을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얼마 뒤 구자라트의 수렌드라 나가르 지역의 가우탐가드 마을의 발리와 그녀의 아들 나레쉬도 마을의 상층카스트들에게 심하게 구타당한 뒤 쫓겨나야 했습니다.

달리트에 대한 폭력은 상층카스트들이 자신의 토지가 아닌 토지에 대한 소유욕을 갖게 될 때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을에서 토지는 경제력 증대의 수단이자 권력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마을의 상층카스트인 아빈드는 마을의 공유지를 갈아 야채를 심으면서 그 토지 주변에 거주하고 있는 달리트들이 공유지에 접근하거나 이용하는 것을 금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빈드는 마을에서 대부분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상층카스트인 다바르에 속해 있습니다. 그 공유지의 바로 옆에서 살고 있던 발리네 가족들은 그곳을 지나기도 하고, 때론 물을 버리곤 했습니다.

아빈드는 이 행위에 대한 대가로 발리의 남편이 잠시 일을 하러 나간 사이, 다른 다바르들과 함께 발리와 나레쉬를 두꺼운 각목과 필드하키 채(참고: 인도의 대표스포츠는 필드하키이다)로 구타해서 18일 동안 병원 신세를 지게 했습니다.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죽었을 수도 있었고 몸 어느 곳이 부러졌을 수도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병원비는 한화로 40만 원이 넘어가는 큰 돈이었습니다. 경찰에 고발을 해서 체포된 4명의 다바르들은 며칠 뒤 바로 보석 석방 되었습니다. 발리의 가족들과 이웃한 달리트들은 누가 다시 얻어맞을까 두려웠습니다. 어디든 폭력과 차별 없는 평화로운 마을에서 살고 싶어 마을을 떠났습니다.

수렌드라 나가르 지역 정부기관 앞에서 노숙하는 달리트들.
 수렌드라 나가르 지역 정부기관 앞에서 노숙하는 달리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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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하는 달리트를 감시하는 경찰.
 노숙하는 달리트를 감시하는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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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의 약속은 사라지고 남은 건 기약 없는 재판

처음에 발리네 가족들과 몇몇 달리트 가족들은 마을에서 좀 떨어진 친척들 집으로 가서 지냈습니다. 사건이 고발되고 달리트들이 폭력에 대한 두려움으로 마을을 떠나자, 마을 사람들이 지역의 공무원들과 함께 모여 해결책을 모색했습니다. 상층카스트 출신 8명과 발리네 가족이 속하는 달리트인 방카르(직조공들로 구자라트 지역에서 달리트에 속한다) 12명, 그리고 5명의 지역 공무원과 경찰이 참석했습니다.

애초에 마을의 공유지였던 토지였지만, 마을 사람들 간 토지권을 보다 명확하게 만들기 위해 공유지로 확인되면 토지를 점유하고 있던 아빈드 및 상층카스트들의 토지 이용을 즉각 금하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달리트들이 거주하는 지역의 다른 문제들도 제기되어 논의가 되었습니다. 마을의 폐수가 달리트들의 집안으로 흘러 들어가지 않도록 처리하는 것, 달리트들 중 가난하고 굶주리는 사람들을 위해 6개월 동안 식량을 제공해주는 것, 발리와 나레쉬가 지불한 병원비를 지급해 주는 것, 폭력을 행사한 상층카스트 사람들이 발리네 가족의 집 근처에 접근하지 않는 것, 그리고 방카르 공동체 구역에 식수를 공급할 수로를 개통해 주는 것. 이러한 약속들은 그 동안 마을의 달리트들이 직면해온 몇 가지 문제점들을 드러내주었습니다.

약속들은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발리와 나레쉬에게만 관련 법령(The Scheduled Caste and the Scheduled Tribes (Prevention of Atrocities) Rules, 1995)에 따라 돈이 지급되었지만, 그 금액은 전체 병원비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지역정부나 경찰당국도 다른 달리트들은 마을에서 문제없이 살고 있으니 돌아가라는 말만 되풀이 합니다. 남은 건 보석석방이 된 가해자 상층카스트들에 대한 재판뿐입니다. 언제 열릴지조차도 알 수 없는 재판은 달리트들의 평화로운 삶을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부크나 마을을 떠난 달리트들에게도 평화로운 땅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인도의 국기가 휘날리는 지역정부 청사 앞에서 천진하게 노는 아이가 평화롭게 자랄 수 있는 작은 공간을 거대한 인도 내에서 찾을 수 없을까요? 배가 고프더라도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곳, 설령 차별이 일상을 지배하고 있더라도 동등한 기회가 오는 곳이 없을까요? 달리트들을 위한 평화의 땅은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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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달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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