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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조원에 가까운 돈이 재벌들의 손에 들어가는 거예요. 그 때는 정말 재벌이 법 위에 있을 것이고, 재벌공화국이 완성되는 것이죠. 하지만 결국 재벌도 망하게 될 것이고, 국민에겐 운하 이상의 국가적 재앙이 될 겁니다."

 

인터뷰 내내 나즈막하던 그의 목소리가 어느새 올라가 있었다.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61·경제학)를 지난 6일 오후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 한파에 정부가 연일 경제대책을 쏟아내고 있는데 이에 대한 평가와 전망을 듣기 위해서다.

 

그는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출범한 김대중 정부 초기에는 청와대 경제수석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을 지냈다.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 동안 그는 현 정부의 경제위기 관리 능력에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특히, 감세와 재정지출을 통한 경기부양책에 대해 "소수 부유층과 특정 재벌을 위한 정책일 뿐"이라며 "경기를 살리는 효과보다 오히려 재정 악화, 거품경제 유지 등으로 더 큰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지금 같은 위기 때는 경제안정화 정책을 통한 구조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하지만 현 정부는 투기와 부패를 조장하고, 재벌체제를 강화시키는 구조개악 정책을 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의 날선 비판은 정부가 추진 중인 각종 규제완화 정책에 대해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국민의 막대한 세금으로 재벌 건설회사의 경영 실패를 메워주거나(미분양 아파트 매입), 부동산 투기꾼의 불로소득을 정부가 나서서 보장해주는(재건축 규제 완화) 것 등이다.

 

게다가 미국식 금융시스템의 붕괴를 보면서도, 금산분리 완화 등 현 정부가 무리하게 금융규제를 풀어헤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재벌의 은행 지분 소유 확대를 허용하는 금산분리 규정 완화에 대해 김 교수는 한반도 대운하보다 더 큰 국가적 재앙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야구로 치면 1회? 이미 3회 정도 지나고 있다"

 

우선, 그는 현재 한국경제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의 상황에 대해 "야구로 치자면 1회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의 말이다.

 

"국내 경제의 부진은 이미 올 1/4분기부터 시작됐어요. 그 때 성장률이 0.8%였는데, 이것을 1년으로 따지면 올해 3.2% 성장이죠. 2분기 때도 0.8%, 3분기 땐 0.6%였죠. 4분기 때는 더 안 좋겠지. 이미 1월부터 9개월 이상 경기부진이 계속됐는데도 대응을 제대로 못 했다고 봐야지."

 

그는 "이미 시장으로부터 신뢰를 잃은 정부의 경제수장이 현재 위기가 야구로 치면 1회라고 했는데, 내 생각엔 이미 3회 정도는 지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어찌보면 내 생각이 (강 장관보다) 낙관적일 수도 있다"며 웃음을 짓기도 했다.

 

- 내년에 더 나빠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정부의 (경기부양) 대책 효과를 봐야겠지만 더 나빠질 것이다. 아마 내년에 연 2% 성장을 유지하기도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 정부가 최근 감세와 재정지출 확대 등 대책을 내놓으면서, 내년 4% 성장을 예상했다.

"정부 말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 올 상반기에는 '경제 위기 아니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위기라면서 각종 대책 내놓고…. 4% 성장할 수도 있겠지만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정부가 내놓은 경제위기 극복 대책에 대한 평가로 이어졌다. 그는 한마디로 "정부의 위기 진단과 처방이 잘못됐다"고 말했다.

 

"투기와 부패를 조장하는 정부"

 

"33조원을 들여서 경기를 살리겠다고 하는데, 도대체 누굴 위해, 어떻게 살리겠다는 것인지 잘 와닿지 않아요. 기초생활수급자의 대학생에게 전액 장학금을 준다는 것만 빼고…. 사회간접자본 확충에 돈을 어마어마하게 쓴다고 하는데 지역 국회의원들과 건설사들만 좋아할 뿐이에요."

 

- 감세 효과에 의구심을 나타내는 사람이 많다.

"종합부동산세나 기업들의 법인세 낮추는 것이 누구에게 혜택이 돌아가나. 대기업·고소득자들이다. 이들은 경기가 좋을 땐 부동산 폭등으로 이익 보고 불경기 땐 정부의 감세 조치로, 특히 항구적으로 세금을 깎아주기 때문에 혜택을 보고 있다."

 

- 정부쪽에선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위해 각종 규제를 풀고 있다.

"이제 부동산 거품이 꺼져가는 과정인데…. 한마디로 그들만의 잔치를 벌이고 있다. 종부세나 상속증여세, 법인세 깎아주고 재건축까지 풀어주면서 막대한 부동산 불로소득을 정부가 보장해주는 꼴이 된다."

 

- 부동산 거품 붕괴가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부동산 부자들은 그럴지 모른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부동산 거품이 꺼지는 상황에서 우리만 거품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지금은 그동안 부동산 투기를 조장한 건설사의 과잉투자에 대한 책임을 따져야 할 때다. 그런데, 정부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그는 "선진국에선 재정과 금융 등에서 안정화 정책(stabilization policy)을 통해 구조개혁을 추진한다"면서 "하지만 현 정부는 소수 부유층이나 일부 대기업의 이익만 보장해주는 구조개악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정책으론 경기를 살리기보다 오히려 국가 재정 악화를 초래하고, 거품경제를 유지하면서 장기적으로 더 큰 부작용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금산분리 완화는 대운하 이상의 국가재앙 될 것"

 

그가 우려하는 '큰 부작용'에는 무분별한 금융규제 완화도 포함돼 있다. 정부는 올해 안에 21개에 달하는 각종 금융관련 규제완화 법률을 처리할 방침이다. 산업은행의 민영화를 비롯해 산업자본(기업)의 은행 지분 소유를 확대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그의 날선 비판이 이어졌다.

 

"우리나라는 이미 금산 '분리'가 아니라 '일치(一致)'가 심하게 돼 있는 나라예요. 재벌들이 은행 빼고 안 가진 것이 무엇이 있어요. 증권·보험·카드회사 등…. 여기에 은행까지 손에 넣겠다는 것인데, 이것은 박정희·전두환 독재자 시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거예요."

 

김 교수의 재벌에 의한 은행지배 반대 소신은 확고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그가 직접 눈으로 보고 느낀 경험도 한 몫 했다. 그의 말을 다시 옮겨 본다.

 

"멀리 갈 것도 없어요. 당장 5년 전에 은행보다 훨씬 쉬운 카드사업을 국내 1·2위 재벌그룹들이 망쳐놓았잖아요. 수백만의 국민들이 얼마나 고통을 당했어요. 외환위기 이후에 각종 투자금융회사를 운용했던 재벌들은 어떻게 됐어요? 다들 망했어요."

 

그는 금산분리 완화로 인해 "1000조원에 달하는 예금이 재벌들의 손으로 들어가게 된다"면서 "은행의 사금고화를 통한 재벌 공화국의 완성"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재벌이 은행을 갖는 것이 처음엔 좋아보일지 모르지만 이는 독이 든 술을 마시는 것과 같다"면서 "결국 재벌도 망하게 될 것이고. 이는 국민경제에 대운하 이상의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아시아 국가 중 통화스와프 위해 동분서주하는 나라 있나"

 

그는 산업은행을 민영화해 투자은행으로 전환하려는 것도 백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미 세계적인 투자은행이 쓰러지고 사라지는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금융시스템이 붕괴되고 이에 대한 규제와 감독 기능이 강화되고 있다는 점을 제대로 바라봐야 한다는 충고도 이어졌다.

 

- 국내 금융 규제 시스템이나 감독 기능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현재 금융위원회를 폐지해야 한다. 감독정책은 금융감독원이 수행하면 되고 금융정책도 기획재정부가 하면 된다. 굳이 금융위라는 조직을 만들 필요가 없다. 오히려 정책 혼선만 가중되고, 시장의 불신만 쌓이고 있다."

 

- 최근 들어선 금리정책 등을 책임지고 있는 한국은행의 독립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은행감독 기능을 중앙은행이 갖는 것이 옳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권한이 없다. 게다가 한은 총재의 발언이 현 정부와 맞지 않으면 총리가 호통치는 후진적인 나라다. 한은 총재가 청와대 회의에 들어갔다 온 후에 곧장 임시 금통위 회의를 열고 금리를 대폭 내리는 모습도 중앙은행의 신뢰도에 그리 좋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한 때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으로 있었던 그였기에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남다른 애착과 시각을 갖고 있었다. "중앙은행은 시장 경제의 파수꾼이지, 정치의 시녀가 아니다"고 김 교수가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금통위의 파격적인 금리인하에 대해서도 김 교수는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을 수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향후 물가나 환율 안정을 위해서 과도한 금리인하는 자제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한미간 통화스와프 등 외환-환율정책에 대해서도 그의 쓴소리는 계속됐다. 김 교수는 "세계 6대 외환보유국이라면서, 미국과 통화스와프에 목을 매는 것 자체가 그만큼 현재 상황이 위급하다는 것"이라며 "중국과 일본 등과 추가로 달러 스와프를 체결하려고 하는 것은 더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통화 스와프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아시아 나라가 우리 말고 있는가"라고 반문하면서 "다른 나라보다 단기 외채 비중이 큰 현재의 구조적 상황을 해결하지 않고선 이같은 외환위기 가능성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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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김태동, #금융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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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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