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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인정의 취지를 훼손하는 교육과학기술부의 수정권고를 거부한다."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가 10월 30일 공개한 교과서 수정권고안에 대해, '한국근현대사 집필자 협의회 참가 교수 9명'이 수정권고 거부 의사를 밝혔다.

 

한국근현대사 집필 교수 9명은 4일 오전 11시 서울 세실레스토랑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근현대사 집필에 참여한 우리들은 기본적으로 교과서 검인정제도의 취지를 훼손하는 교과부의 수정권고를 거부한다"며 "특히 교과부의 수정권고안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저해하고 대한민국 국민의 자긍심을 훼손했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엔 주진오 상명대 교수, 한철호 동국대 교수, 홍순권 동아대 교수가 참석했다.

 

집필자 교수 일동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한국의 교육을 책임지는 주체로서의 책임을 망각하고 현 정권의 성향에 맞춰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이하 교과서)를 수정하겠다는 것은 교과서 검인정제를 도입한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고 비난했다.

 

이들은 "현재 6종의 교과서들은 모두 1997년 김영삼 정권에서 마련한 교육과정에 입각해 집필되었고 합법적으로 교육부의 검인정 과정을 통과하였다"며 "사용 전부터 한나라당과 일부 '보수' 이념세력에 의해 '김대중 정권에 아부하는 교과서' 또는 '좌편향, 친북반미'라는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고 지적했다.

 

"집필자들에게 회의록 제출하라고 압력"

 

 한국근현대사 집필자 협의회 참가 교수들이 교육과학기술부의 일방적 교과서 수정권고를 거부한다고 밝히는 기자회견을 4일 세실레스토랑에서 열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왼쪽부터) 한철호 동국대 교수, 주진오 상명대 교수, 홍순권 동아대 교수.

이어 이들은 "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 특정 보수 언론과 단체들과 결탁하여 교과서에 대한 전방위적 공세를 가했고 이에 호응한 김도연 전 교과부 장관이 그 동안 교과서에 문제가 없다던 교과부의 기존 입장을 번복하면서 교과서에 대한 편향 시비가 정부 차원에서 나타난 것"이라며 "더욱이 장관은 물론, 대통령까지 나서서 현재의 교과서가 '좌편향'이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하고 있다고 규정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 집필자 교수들은 "특히 교과부는 특정 이념단체들의 주장에 대해 그 부당성을 지적하고 상황을 진정시키기는커녕 일부 '보수'적 단체들의 요구를 수용하도록 유도하는 한편, 대한상공회의소라는 특정한 사회세력을 대변하는 경제단체가 작성한 내용까지 집필자들에게 전달하면서 통상적인 전례와 달리 회의록을 제출하라고 압력을 가했다"고 폭로했다.

 

이어 이들은 "지난 정권 시절에 교과서에 대한 특정 이념세력이 시비를 할 때마다 교과서의 내용과 검정 과정에 문제가 없다던 교과부가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좌편향' 논란에 가세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이번 수정권고는 앞으로도 정권이 바뀌면 제도를 무시하고 교과서를 수정할 수 있다는 전례를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의 오점이라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집필자 교수들은 "그것은 국정제도로의 회귀에 다름없는 역사교과서 정책의 후퇴이며 또다시 역사교육을 정권의 입맛에 맞게 길들이려는 시도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집필자 교수들은 교과부가 ▲ 검인정제를 훼손하는 수정 권고를 철회하고 집필자의 자율적 판단에 맡길 것 ▲ 교과서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했다고 규정한 대통령과 교과부 장관의 사과 ▲ 교과부가 그 동안 정권과 여당에게 받아온 압력의 실체와 과정을 밝힐 것을 요구했다. 또 교과부가 집필자들과 대화와 토론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수정권고 철회하고, 대통령과 교과부 장관 사과하라"  

 

기자회견에 참여한 홍순권 동아대 교수는 "교과서에 보면 조선 총독부가 항복 조인식을 하면서 일장기 대신에 성조기가 올라갔다고 돼 있는데, 교과부는 이 대목에 대해 태극기가 아니라 성조기가 올라간 게 우리 민족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서술에 적합하지 않다며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며, "그건 엄연히 역사적 사실로, 해방 직후 우리나라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도움을 주기 위한 참고 자료"라고 지적했다.

 

 한국근현대사 집필자 협의회 참가 교수들이 교육과학기술부의 일방적 교과서 수정권고를 거부한다고 밝히는 기자회견을 4일 세실레스토랑에서 열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왼쪽부터) 한철호 동국대 교수, 주진오 상명대 교수,  홍순권 동아대 교수.

이어 홍순권 교수는 "나머지는 우리가 봤을 때 쟁점이라고 할 수 없다"며, "표현상 문제라든가, 교과서 서술 이후 북한의 달라진 상황 등을 교과부가 지적했다"고 말했다.

 

또 교과서 집필자 교수들은 현 교과서 검인정 제도의 문제를 지적했다. 주진오 상명대 교수는 "검인정 뒤 벌어지는 상황은 어떻게 할 것인가, 명확한 지침이란 게 없다"며, "매년 교과서 집필자들은 수정해야하는 건지, 일정 기간 뒤에 교과서에 반영할지 정확히 이야기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매년 수정 요구가 오면 집필진이 모여 협의하고 수정 요구가 타당한지 역사학자의 양심을 갖고 검토한다"며 "그 제도가 보장된다면 지금 문제될 게 없는데 갑자기 정권이 바뀌고 정치적 논리가 앞서면서 예단하는 게 문제가 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교과부의 현 교과서가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한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대한민국 국민인데 대한민국 정통성을 왜 부정하겠냐?"며 "(교과부가) 역사학자나 역사 관련 분들의 의견 수렴은 않은 채 정치적 성향 띤 단체들 입장을 받아들여 수정을 요구했다"고 지적했다.

 

주 교수는 이어 "'교과서포럼'쪽에서는 이쪽을 죄편향이라고 몰아붙이는데, 그렇다면 엄밀히 말하면 그쪽은 우편향이지 않느냐"고 반박했다.

 

이어 그는 "적어도 집필자들과 허심탄회하게 토론하고 합의점을 찾아나가지 않고, 일방적으로 권고안을 마련해 발표하고 수용하라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철호 동국대 교수는 "가장 무서운 조항으로 '검정 취소'에 관한 규정, 자체수정에서 직권 권고로 가고 받아들이지 않을 때 검정 자체를 취소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는데 거기까지 가지 않기 바란다"면서 "한 단계 나아간 역사 교육의 기틀을 마련했는데, 직권 수정으로 가서 국정으로 회귀하는 듯한 분위기 된다면, 이는 온 국민이 어렵게 얻은 역사적 자율성 해석에 대한 훼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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