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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에서만 맛 볼 수 있는 메밀국죽
▲ 메밀국죽 강원도에서만 맛 볼 수 있는 메밀국죽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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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은 다섯 가지 빛깔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우리 선조들은 메밀을 청엽(푸른 잎, 동쪽), 홍경(붉은 줄기, 남쪽), 백화(흰 꽃, 서쪽), 흑실(검은 열매, 북쪽), 황근(노란 뿌리, 방향 사이) 등 다섯 가지 색을 갖춘 '오방지영물'(五方之靈物)이라 하여 먹을거리 이상으로 몹시 귀하게 여겼다. 강원도 냄새를 맡으려면 메밀국죽을 먹어라."

강원도 정선 출신 작가 강기희(44)가 정선 오일장 먹을거리 골목에 있는 허름한 식당 2층에 앉아 막걸리 한 잔 앞에 놓고 메밀국죽을 먹으며 한 말이다. 이는 김치와 두부, 콩나물, 메밀 등을 넣고 포옥 끓인 강원도 전통음식인 메밀국죽을 먹어보지 않으면 강원도에 얽힌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알 수 없다는 말과 같다.  

<네이버> 백과사전에 따르면 메밀국죽은 '메밀찐쌀에 감자, 두부, 콩나물을 넣고 쑨 죽'이라고 나와 있다. 하지만 강원도 정선에서 조리하는 메밀국죽은 이와는 좀 다르다. 정선에서는 메밀국죽을 만들 때 묵은 김치와 두부, 콩나물, 메밀 등을 넣고 국물멸치를 통째 던져 넣어 오래 포옥 끓여 만든다.   

아라리 고장 정선에서 맛보는 메밀국죽 맛이 다른 고장 메밀국죽 맛과 다른 까닭이 여기에 있다. 특히 찬바람이 슬슬 부는 늦가을 저녁, 왁자지껄한 정선 오일장터 골목에 앉아 막걸리 한 사발과 함께 먹는 메밀국죽 맛은 칼칼하다 못해 속에서 땀까지 출출 흐르는 듯 시원하다. 요기도 하고 해장도 하는데 이만한 음식을 찾기 힘들다는 그 말이다.

강원도 정선 5일장터 안 골목에 있는 메밀국죽 전문점
▲ 정선 오일장 먹을거리 골목 강원도 정선 5일장터 안 골목에 있는 메밀국죽 전문점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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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평 남짓한 이 집에 들어서자 주방 한 켠에 발그스레한 메밀국죽이 뽀글뽀글 끓고 있다
▲ 메밀국죽 2~3평 남짓한 이 집에 들어서자 주방 한 켠에 발그스레한 메밀국죽이 뽀글뽀글 끓고 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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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산간지방 사람들은 추운 겨울을 어떻게 날까  

"메밀은 주식으로 이용되는 곡물에 비해 우수한 단백질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플라보노이드 화합물인 루틴(rutin, 혈관계 질환 치료제)을 함유하고 있다. 한방에서 메밀은 이질과 대하증을 멎게 하고 해독, 창종(피부에 생기는 부스럼 병), 위장염, 대장염, 기억력 등에 좋은 건강식품이다." -<네이버> 백과사전

메밀은 예로부터 강원도 먹을거리라 할 정도로 강원도 산간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곡류이다. 때문에 강원도 산간지방에서는 메밀을 맷돌에 갈거나 절구통에 빻아 가루로 만들어 죽이나 국수, 부침개 등으로 만들어 먹었다. 강원도 산간지방 곳곳에 메밀로 만든 여러 가지 음식이 흔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메밀에 들어 있는 단백질은 밀처럼 끈적끈적한 끈기가 있지 않기 때문에 면으로 만들려면 메밀가루에 밀가루를 조금 섞어서 반죽해야 차지게 된다. 메밀국수를 만들 때 밀가루를 약간 섞는 것도 이 때문이다. 껍질을 벗기지 않고 빻은 메밀가루도 좋다. 메밀껍질에는 소화가 잘 되지 않는 섬유질이 많아 변비에 뛰어나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그렇지 않겠지만 메밀은 곡류가 아주 귀한 강원도 산간지방에 사는 사람들에게 끼니를 때워주는 중요한 먹을거리였다. 특히 재료가 그리 많이 들어가지 않고,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 있는 따끈따끈한 메밀국죽은 몹시 추운 겨울을 나는 강원도 산간지방 사람들 몸과 마음을 한꺼번에 데워주는 살가운 음식이라 아니할 수 없다.    

밑반찬이라고 해 봐야 갓김치와 국물 김치, 김치, 양념간장, 송송 썬 매운 고추 한 종지뿐이다
▲ 메밀국죽 밑반찬 밑반찬이라고 해 봐야 갓김치와 국물 김치, 김치, 양념간장, 송송 썬 매운 고추 한 종지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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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 메밀부침은 메밀가루 반죽을 납작납작하게 늘여 기름에 부친 뒤 배추, 김치와 함께 강원도에서 나는 여러 가지 나물을 소로 넣어 돌돌 말아 만든다
▲ 메밀부침 이 집 메밀부침은 메밀가루 반죽을 납작납작하게 늘여 기름에 부친 뒤 배추, 김치와 함께 강원도에서 나는 여러 가지 나물을 소로 넣어 돌돌 말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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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국죽은 강원도에서 나는 갓김치와 함께 먹어야

"우리 정선에서는 메밀국죽을 만들 때 넣는 메밀을 '넣는다' 하지 않고 '푼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메밀국죽을 만들 때 '푸는' 메밀을 '미친 X 널뛰듯이 뿌려야 제 맛이 난다'고 하지요. 한 가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메밀로 만든 음식을 먹을 때는 반드시 강원도에서 나는 갓김치와 같이 먹어야 궁합이 맞습니다." - 강기희

1일(토) 저녁 6시. 10월 31일(금)부터 1일(토)까지 이틀 동안 강원도 정선 동면 몰운 곤드레만드레마을(한치마을) 일대에서 열리는 '2008 정선 몰운대 문학축전'에 갔다가 여러 문우들과 함께 들른 강원도 정선 5일장터 안 골목에 있는 메밀국죽 전문점. 2~3평 남짓한 이 집에 들어서자 주방 한 켠에 발그스레한 메밀국죽이 뽀글뽀글 끓고 있다.

매콤하면서도 구수하게 풍기는 메밀국죽 향이 어느새 입에 침을 가득 고이게 만든다. 식당 들머리 유리창 곁에 붙어 있는 손칼국수·만두국·콧등치기·메밀국죽·메밀부침·올챙이국수라 쓰인 차림표도 정겹다. 마치 옛 고향 시골마을에서 열리는 4일 장터에 온 듯하다.

작가 박도·시인 이승철·박선욱·유승도·손세실리아·윤일균·한복희 여사 가족 등을 포함해 일행은 모두 15명 남짓. 이 비좁은 곳에 어찌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앉을 수 있으랴 싶어 여기 저기 엉거주춤 서 있는데 작가 강기희가 2층으로 올라가자고 한다. 젊은 날 여러 가지 추억이 서려 있는 곳이 이 집 2층이라며.

"정선 5일장에서 메밀국죽 파는 집은 우리 집밖에 없어"

이 집 주인은 김옥련(75) 할머니다
▲ 김옥련 할머니 이 집 주인은 김옥련(75) 할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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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에서 나는 갓은 남도 갓과는 맛과 향이 달라. 우리 정선 사람들은 메밀국죽을 먹을 때 반드시 갓김치하고 같이 먹어. 칼칼하면서도 구수한 메밀국죽이 각시라면 매콤하면서도 향긋한 맛이 나는 갓김치는 신랑 격이지. 정선 5일장에서 메밀국죽을 파는 집은 우리 집밖에 없어. 주로 옛날 음식이 그리운 노인네들이 자주 찾아와." 

이 집 주인은 김옥련(75) 할머니다. 얼굴이 곱다. 75살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머리가 까맣고 얼굴에 주름살도 별로 없다. 이 집에서만 10년 넘게 식당을 꾸리고 있는 김 할머니는 "메밀국죽은 한 그릇 후루룩 먹고 나면 배가 든든한 것 같지만 소화가 너무 잘 돼 돌아서면 금세 배가 고파져"라고 말한다. 

2층 비좁은 다락방에 올라가 자리를 잡고 앉자 갑자기 작가 강기희가 일어나 다락계단으로 향한다. 이 집에서는 다락 계단에 앉아 있다 음식이 올라오면 얼른 받아 들고 스스로 차려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재미있다. 마치 어릴 때 마을에 잔치가 벌어진 날, 길게 줄을 서서 국밥 한 그릇 받아들고 뿌듯한 미소 짓던 그때 그 추억이 재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엄청나게 큰 그릇에 나온 메밀국죽
▲ 메밀국죽 엄청나게 큰 그릇에 나온 메밀국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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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작가가 커다란 국자를 들고 그릇 그릇 메밀국죽을 가득 담아낸다
▲ 메밀국죽 강 작가가 커다란 국자를 들고 그릇 그릇 메밀국죽을 가득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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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칼하면서도 은근하게 혀끝에 착착 감기는 고소한 맛!

그때 "얼른 받어" 소리와 함께 강 작가가 비좁은 다락 계단에서 김 할머니가 건네주는 메밀부침과 밑반찬 서너 개 담긴 커다란 쟁반을 받아든다. 밑반찬이라고 해 봐야 갓김치와 국물 김치, 김치, 양념간장, 송송 썬 매운 고추 한 종지뿐이다. 메밀부침을 안주 삼아 막걸리 한잔 쭈욱 들이킨다.

양념간장에 찍어먹는 메밀부침 맛이 독특하다. 짜지도 싱겁지도 않고, 고소하지도 않으면서도 뒷맛이 고소하고, 향긋한 것 같지 않으면서도 얕은 향이 혀끝에 남는, 그야말로 처음 느껴보는 희한한 맛이다. 이 집 메밀부침은 메밀가루 반죽을 납작납작하게 늘여 기름에 부친 뒤 배추, 김치와 함께 강원도에서 나는 여러 가지 나물을 소로 넣어 돌돌 말아 만든다.

이윽고 엄청나게 큰 그릇 가득 담긴, 강원도 가을노을 빛을 닮은 메밀국죽이 올라온다. 허연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게 늦가을 밤 쌀쌀한 강원도 날씨를 비웃는 듯하다. 강 작가가 커다란 국자를 들고 그릇 그릇 메밀국죽을 가득 담아낸다. 이내 방 안에 매콤하면서도 구수한 메밀국죽 향이 퍼진다.

메밀국죽 위에 송송 썰어놓은 매운 고추 조금 올려 휘이 저은 뒤 한 술 떠 입으로 가져간다. 칼칼하면서도 은근하게 혀끝에 착착 감기는 고소한 맛! 갓김치 한 조각 올려 다시 입으로 가져간다. 아삭아삭 씹히는 갓김치의 향긋한 맛과 메밀국죽이 풍기는 구수한 감칠맛이 어울려 입속에서 보리쌀알처럼 구르는 메밀을 톡톡 친다.

'술술 넘어 간다'는 낱말이 딱 어울린다
▲ 메밀국죽 '술술 넘어 간다'는 낱말이 딱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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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편부터 작가 박도, 한 사람 건너 시인 윤일균, 손 세실리아, 유승도, 한복희 여사
▲ 메밀국죽 오른편부터 작가 박도, 한 사람 건너 시인 윤일균, 손 세실리아, 유승도, 한복희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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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세게 살아가는 강원도 사람들의 대명사 '메밀국죽'

'술술 넘어 간다'는 낱말이 딱 어울린다. 가끔 떠먹는 시원한 국물 맛도 끝내준다. 그렇게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나자 이마와 목덜미에서만 땀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숙취에 시달려온 속에서도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듯하다. 갑자기 온몸이 강원도 산 봉오리 위로 훨훨 날아갈 듯이 가벼워진다. 강 작가 말마따나 정말 '해장국에 딱'이다.    

이 집 메밀국죽은 국물멸치와 새우를 통째 넣고 된장을 살짝 푼 뒤 메밀, 김치, 두부, 콩나물, 대파, 마늘 등 갖은 양념을 넣고 1시간 남짓 센불에 포옥 끓여 만든다. 포옥 끓이지 않으면 메밀이 제대로 퍼지지 않아 입에 넣으면 메밀이 빙빙 맴돌기만 하면서 잘 씹히지도 않고 소화도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박도 선생은 "만주에 가니까 메밀을 참 많이 심더라"라며 "메밀은 메마른 땅에서도 싹이 아주 잘 트고 생육기간이 60∼100일이기 때문에 이모작이 가능한 식물"이라고 말한다. 박 선생은 "메밀은 특히 불량환경에 적응하는 힘이 강하기 때문에 척박한 환경에서도 굳세게 살아가는 강원도 사람들의 대명사"라고 말했다.

강 작가는 "지난 70년대 끝자락까지만 하더라도 강원도 사람들은 메밀국죽과 메밀부침을 끼니 대신 먹었다"고 설명한다. 강 작가는 "메밀국죽이나 메밀부침은 강원도가 아니면 결코 맛 볼 수 없는 음식"이라며, "강원도를 제대로 알려면 메밀국죽과 메밀부침을 강원도 막걸리와 함께 취하도록 먹어 보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원도에서만 맛 볼 수 있는 메밀국죽. 뫼가 높아 새들도 쉬어가고,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구름도 놀다간다는 첩첩산골 강원도 사람들의 삶과 역사가 서린 강원도 음식 메밀국죽. 2008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만산홍엽으로 불타고 있는 강원도 정선에 가서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메밀국죽 한 그릇 맛보는 것은 어떨까.


태그:#메밀국죽, #메밀부침, #정선오일장,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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