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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해서 정기예금 6000만원을 뺐다. 그 돈 절반은 펀드를 하고, 나머지 절반은 안전한 시중은행에 맡기겠다."

 

10월 31일 서울 여의도 J저축은행 앞에서 만난 김미진(가명·34)씨는 인근 증권사로 발걸음을 재촉하며 기자에게 이같이 말했다. 최근 주식시장이 상승하고 있다지만, 주식·펀드보다는 저축은행이 더 안전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김씨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는 "요즈음 저축은행이 어렵다는 얘기가 많이 나와 불안하고, 주변에서도 돈을 빨리 빼라고 했다"며 "주가가 지금이 바닥인 것 같아서 차라리 주식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 8.4%도, 최대 5000만원까지의 예금자 보호도 김씨의 해약을 막지 못했다.

 

최근 저축은행들이 경쟁적으로 8% 대의 고금리 정기예금 상품을 내놓고 있지만, 김씨처럼 예금을 찾아가거나, 만기된 돈을 다시 예치하지 않고 빼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고금리는 오히려 저축은행이 어렵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는 상황에서 8% 대 금리를 주는 저축은행에 사람이 몰리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30일부터 이틀간 서울 여의도, 마포 등지의 저축은행에서 만난 사람들도 "불안하다"는 속내를 감추진 않았다.

 

"이자를 덜 받더라도 맘 편한 게 낫다"

 

30일 오후 S저축은행 여의도지점에 최현자(가명·50)씨가 들어섰다. 다소 불안한 표정의 최씨는 창구 직원에게 "3000만원이 든 정기예금을 해약하러 왔다"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리곤 어제 개설했던 통장을 직원에게 내밀었다.

 

이에 창구 직원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저희는 자산 1조원 대의 대형 저축은행으로, 불안해하지 않으셔도 된다"며 "펀드하면 원금손실이 나지만, 저축은행은 5000만원까지 나라에서 보호해준다"고 강조했다.

 

이에 최씨가 "어수선해서…"라는 말을 내뱉기도 전에, 창구 직원은 "지금은 IMF 때와는 다르다, 그땐 금리를 20%까지 올릴 정도로 안 좋았지만, 지금의 경우 8%"라며 "이 금리는 오래 못 간다, 지금 가지고 있으면 재미 볼 수 있을 텐데…"라며 해약을 다시 한 번 만류했다.

 

하지만 창구 직원은 끝내 최씨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이후 최씨는 기자에게 "지금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제2금융권이 영향을 받는다고 하지 않느냐"며 "IMF 때처럼 저축은행들이 무너질까 너무 불안하다"고 밝혔다.

 

최씨는 통장 개설 하루 만에 해약한 이유에 대해 "이자를 덜 받더라도 맘 편한 게 낫다"며 "IMF 때 예금 지급 정지된 저축은행이 많았는데, 아무리 나라에서 보장해준다 해도 당장 돈이 필요할 때 돈을 못 찾으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말했다. '꿈을 드리는 은행'이라는 이 저축은행의 슬로건이 무색했다.

 

업계 최고 수준의 금리에도 이곳의 창구는 다소 한산했다. 지점 관계자는 "예전에는 금리를 0.1%p만 올려도 지점이 북적거렸는데, 최근 한 달 새 1%p 가까이 올렸지만 예전처럼 북적이지 않는다"며 "생각보다 고금리 효과가 그렇게 크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저축은행에 대한 불안감 확산... "일부 저축은행 무너질 수도"

 

모두 8개 지점을 가지고 있는 S저축은행에 따르면, 지난 24일 정기예금 수신 규모는 1조1477억원이었다. 이는 전날보다 24억원이 줄어든 것. 결국 S 저축은행은 27일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를 업계 최고 수준인 8.2%로 올렸고, 그날 하루에만 100억원이 S 저축은행으로 몰렸다.

 

하지만 그 약발은 오래가지 않았다. 27일 금리 인상 후, 정기예금 수신 증가액이 28일 77억원, 29일 69억원, 30일 44억 원으로 점점 줄어들고 있다. S저축은행은 지난 13일 금리를 올린 후, 2주일도 안 돼 수신 증가율이 마이너스로 돌아간 바 있어, 걱정이 크다.

 

다른 저축은행도 마찬가지다. Y상호저축은행의 경우, 28일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를 8.0%에서 8.2%로 올리자, 그날 42억원의 돈이 들어왔다. 하지만 29일과 30일엔 22억원과 26억원으로 대폭 줄었다.

 

이 저축은행 관계자는 "첫날(28일)과 비슷한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생각됐던 29~30일의 수신 증가액이 많지 않았다"며 "고객들이 '제2금융권이 어렵다'는 언론 보도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고 밝혔다.

 

M저축은행의 전략팀 과장은 "최근 예금이 많이 빠져나가, 며칠 전 1년 정기예금 금리를 7.3%에서 8.2%로 무려 0.9%p를 올리니 예금이 늘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은행의 건전성을 묻는 전화가 전보다 10배나 늘어, 고객들이 많이 불안해하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저축은행에 대한 우려를 두고 전문가들은 조심스러운 의견을 내놓았다. 이건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자금 조달 측면에서 어려움을 가진 저축은행이 상당수 있다"면서도 "대규모 부실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김장희 국민은행연구소 경영연구부장은 "저축은행 대출의 30%에 이르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12조원이 미분양 문제 등으로 떼일 위기"라면서도 "몇몇 저축은행이 무너질 수 있지만, 큰 위기로 번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8%대 고금리를 찾는 사람들도 불안감 호소

 

그러나 8% 대의 고금리가 저축은행으로 돈을 부르고 있는 건 사실이다. 특히 31일 저축은행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P저축은행 한 편에 붙은 게시물이 그 이유를 보여주고 있었다.

 

'적금 금리 인하(예정) 안내 0.5(↓) 시행예정일 : 2008년 11월 3일 (월)'

 

이 지점 관계자는 지점에 들어오는 고객들에게 "30~40분 기다려야 한다"며 "우선 인터넷으로 통장을 만들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만난 김민국(64)씨는 "통장을 몇 개 가지고 있는데, 다음 주 금리가 내려가기 전에 통장을 하나 만들려고 왔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김씨에게 불안감이 없는 건 아니다. 그는 "정부에서 5000만원을 지급 보증해주기 때문에 저축은행을 이용한다"면서도 "시중은행보다 저축은행의 신용도가 떨어지고, 위기에 더 흔들릴 수 있다는 것 알고 있어, 불안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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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저축은행, #제2금융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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