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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위는 농구장 바로 앞에 선 사람들. 9시 이전에 도착했다. 당연히 입장을 했다. 가운데 그룹은 11시 이전, 맨 아래는 축구장까지 길게 줄을 늘어 선 사람들로 입장을 못했다.
 맨 위는 농구장 바로 앞에 선 사람들. 9시 이전에 도착했다. 당연히 입장을 했다. 가운데 그룹은 11시 이전, 맨 아래는 축구장까지 길게 줄을 늘어 선 사람들로 입장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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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년 만에 방문한 대통령 후보

미국 대통령 선거를 겨우 1주일 남긴 10월 28일 화요일. 인구 5만이 채 안 되는 버지니아주의 작은 도시 해리슨버그는 이른 아침부터 술렁였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유력한 차기 대통령으로 점쳐지고 있는 민주당 대선후보인 버락 오바마가 이곳을 방문하기 때문이었다. 대통령 후보가 해리슨버그를 방문했던 것은 지금으로부터 150여 년 전인 1860년.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스티븐 더글러스가 해리슨버그에서 유세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대통령 당선은 노예해방을 내걸었던 에이브러햄 링컨이 차지했다.

그리고 150여 년이 지난 2008년 10월. 이번 오바마의 방문은 이른바 격전지로 불리는 '스윙 스테이트' 가운데 하나인 버지니아에서 1964년 민주당의 린든 존슨 후보가 승리한 이후 44년 동안 한 번도 공화당을 이겨보지 못한 민주당이 최근의 우세를 굳히기 위한 것이었다.

현재 로이터∙조그비 및 워싱턴포스트 등의 여론조사는 이곳 버지니아주에서 오바마가 매케인을 7~8%P 가량 앞서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런 만큼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한 오바마의 해리슨버그 방문은 중대한 역사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이번 유세를 앞두고 해리슨버그 시에서는 대중교통을 증편하고 유세장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운영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시민들도 가급적 대중교통을 이용해 줄 것을 당부했다. 도로 일부는 폐쇄되고 유세장 가까운 상가 건물 주차장은 시민들을 위한 주차장으로 쓰인다는 안내문도 일찌감치 발표되었다.

유세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시민들뿐 만이 아니었다. 대학생은 물론이려니와 고등학생들도 유세에 참가하기 위해 당당하게(?) 수업 불참 계획을 선언하기도 했다. 학생들의 수업 불참은 며칠 안 남은 대선에서의 유력 후보 유세를 듣기 위해서 학생들 스스로 결정한 것이기도 했지만 일부 학교에서는 교사들의 권유가 있기도 했다.

해리슨버그 고등학교에서 'AP(대학에서 학점을 인정받게 되는) US Government(미국 정치)'를 수강하는 학생들이 바로 그 예. 이들은 수업 시간에 공부한 미국 정치를 직접 현장에서 체험하기 위해 담당 교사인 베스 선생님 인솔 아래 유세장을 찾기도 했다.

오바마 유세가 벌어진 제임스메디슨 대학교(JMU) 컨보케이션 센터는 8천 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농구장이다. 작년 9월에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데스몬드 투투 주교가 와서 연설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수만 명의 관중이 올 것으로 예상된 유세 현장으로는 너무 협소하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경비 문제에 어려움을 들어 그대로 진행이 되었다.

기온이 내려가고 바람이 강하게 불어 체감온도가 낮았던 그날, 담요를 뒤집어 쓴 '담요공주'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기온이 내려가고 바람이 강하게 불어 체감온도가 낮았던 그날, 담요를 뒤집어 쓴 '담요공주'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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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빼먹고 아침 7시에 왔어요"

오바마의 유세는 오후 5시 15분에 예정되어 있었고 출입문은 2시간 전인 3시 15분에 열기로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선착순 8천여 명만 입장할 수 있는 유세장에 입장하려면 도대체 몇 시부터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이번 오바마 유세를 취재하기 위해 기자는 오전 10시 조금 넘은 시각에 유세장 근처를 돌아보았다. 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진을 치고 있었다. 출입문 바로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대학생 커플을 만났다.  JMU에서 호텔경영을 전공하는 2학년 패트릭과 로리엘이었다. 이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 몇 시에 도착했는가?
"7시."

- 오늘 수업이 없는가?
"(웃으며) 수업 있는데 빼먹었다. 교수님도 이해하실 거라 믿는다."

- 원래 민주당을 지지하는가?
(패트릭) "나는 민주당원으로 등록했다."
(로리엘) "나는 중도파다. 그래서 아직 누구를 찍을지 결정하지 않았다. 오늘 오바마 연설을 들어본 뒤 결정하려고 한다."

- 오늘 바람이 많이 불고 추운데 이렇게 오랫동안 기다릴 가치가 있다고 보는가. 더구나 수업까지 빼먹었다면서?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본다. 좋은 자리에 앉아서 그가 말하는 희망과 변화를 들으려고 한다.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변화다. 오바마는 워싱턴 정가뿐 아니라 미국 전역에 새 바람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나는 그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 아직도 입장하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식사와 화장실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가?
"먹을 것을 미리 준비해왔다. 이 자리를 벗어나면 안 되기 때문에 싸온 음식을 먹었다. 화장실? 좋은 질문이다. 나는 아직 한 번도 안 갔다. 로리엘만 한 번 다녀왔다. 가능하면 적게 먹고 적게 마시면서 견디려고 한다. (웃음)"

"오바마가 잘 보이는 좋은 자리에 앉기 위해 아침 7시에 왔어요." 패트릭과 로리엘.
 "오바마가 잘 보이는 좋은 자리에 앉기 위해 아침 7시에 왔어요." 패트릭과 로리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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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바마를 지지하는 이유 3가지

'내가 오바마를 지지하는 이유 3가지'를 즉석에서 적고 있는 아나.
 '내가 오바마를 지지하는 이유 3가지'를 즉석에서 적고 있는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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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가운데 추위를 견디기 위해 담요를 뒤집어 쓴 여대생을 만났다.

JMU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는 3학년 아나 영(19)이었다.

왜 오바마를 지지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나는 기다렸다는듯 준비된 답이 술술 터져 나왔다.

그래서 기자는 취재 수첩을 들이밀고 '내가 오바마를 지지하는 이유 3가지'를 적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아나는 즉석에서 시험 문제 답안을 작성하는 학생처럼 이유 3가지를 간결하게 적어주었다.

- 첫째 이유: 중산층을 도울 것이다.
- 둘째 이유: 이라크 전쟁을 종식시킬 것이다.
- 셋째 이유: (대학 등록금을 내려) 좀 더 여유 있게 대학을 다니게 할 것이다.

온 가족이 오바마 배지 달고 참가

이번 유세에는 오바마 배지에 오바마 티셔츠를 입은 가족들의 참여가 많았다. 스탠튼에서 왔다는 셜 가족은 엄마 태리가 아들 샘(5), 루크(8), 워너(11)를 데리고 유세장에 왔다. 셜 가족 외에도 가족 단위로 참석한 경우가 많았는데 웨인스보로에서 왔다는 67세 딜린 부부도 가슴에 오바마 배지를 달고 유세에 참석했다.

하지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과는 상관없이 유모차를 끌고 가는 부부도 눈에 띄었다. 키이스 존슨과 키야나 존슨 부부였다. 이들은 이곳에서 1시간 30분 걸리는 엘리가니 카운티에서 왔다고 했다. 17개월 된 쌍둥이 딸을 데리고 유세 현장을 찾은 이들은 아이들이 아직 어린 만큼 그냥 현장의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물론 오바마 지지자였다. 

"저 사람들이 오바마를 지지하는 건 실수하는 거예요. 전 매케인을 지지해요."
 "저 사람들이 오바마를 지지하는 건 실수하는 거예요. 전 매케인을 지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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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지'에서 매케인 점퍼를?
유세장에는 오바마 지지자들만 온 것이 아니었다. 기자 앞을 지나가는 한 대학생의 점퍼가 눈에 띄었다. 그의 등뒤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밸리(해리슨버그 인근 지역)는 매케인을 찍는다."

친구와 함께 오바마 유세 현장을 돌고 있는 대학생 피터는 수많은 인파가 모인 현장을 보니 마음이 불편하다고 했다. 하지만 오바마 지지자가 전부인 적지(?)에서 겁없이 매케인 점퍼를 입고 돌아다니는 이유를 물었다.  

"저들에게 오바마를 선택하는 것이 대단히 큰 실수라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입니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나의 정치 철학"

"전 정치에 관심 없어요. 그냥 재미로 와서 기다리는 거예요. 바람이 많이 불고 눈까지 온다고 하니까 텐트를 준비했어요." 경영학 전공 4학년 나다니엘.
 "전 정치에 관심 없어요. 그냥 재미로 와서 기다리는 거예요. 바람이 많이 불고 눈까지 온다고 하니까 텐트를 준비했어요." 경영학 전공 4학년 나다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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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유세 현장에는 '변화와 희망'의 메시지만이 돌고 있는 건 아니었다.

사람들의 긴 행렬 한 가운데 눈에 띄는 텐트 하나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누군가 텐트 안에서 편하게 누워 출입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열어보고 싶었지만 그의 평화를 깨트리고 싶지 않아 기다렸다.

그런데 조금 시간이 지난 뒤 텐트를 철거하고 있는 임자를 만났다. JMU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는 4학년 나다니엘 배니스터였다.

- (웃음) 텐트까지 준비하고 아주 극성이다.
"오늘 일기예보를 보니 날씨가 춥고 바람도 많이 불고 눈까지 온다고 했다. 그래서 텐트를 준비했다."

- 오바마 교도(?)인가?
"오, 노! 천만에. 나는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다."

- 에엥, 놀랍다. 그런데 텐트까지 철저하게 준비를 해 오다니….
"텐트? 이거 그냥 재미로 해 본 것일 뿐이다. 단순한 재미! 다시 말하지만 나는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다. 무관심이 나의 정치 철학이다."

사람들 모이는 곳에 돈도 모인다

오바마를 팔면 돈이 보인다. 오바마 티셔츠, 오바마 배지, 오바마 스티커, 오바마 자석 등.
 오바마를 팔면 돈이 보인다. 오바마 티셔츠, 오바마 배지, 오바마 스티커, 오바마 자석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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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만 명이 운집한 이곳에도 오바마를 팔아(?) 돈을 벌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이들이 파는 대표적인 상품은 오바마 티셔츠, 오바마 배지, 오바마 스티커, 오바마 자석 등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바락 오바마만 이런 상품에 등장하는 것이 아니었다. 부인인 미셸과 두 딸인 말리아, 사샤도 이미 오바마 패밀리로 잘 팔리고 있었다.

청중들을 사로잡는 웅변가인 오바마.
 청중들을 사로잡는 웅변가인 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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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 좀 한 번 잡아줘요. 무등까지 탔잖아요." 팔을 뻗어 오바마의 손을 잡으려고 하는 청중들.
 "내 손 좀 한 번 잡아줘요. 무등까지 탔잖아요." 팔을 뻗어 오바마의 손을 잡으려고 하는 청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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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오바마 입장하다

유세장 출입문이 열린 시각은 오후 3시 15분. 지루한 기다림 끝에 긴 행렬을 접고 사람들은 일사분란하게 출입문을 향해 움직였다. 유세장 입구에서는 철저한 검색이 이루어졌다.

오후 4시 15분, 기도로 시작된 유세 현장은 미국 국가 연주와 국기에 대한 맹세가 이어졌다. 버지니아 주지사인 팀케인과 버지니아 상원의원 출마 예정자인 전 주지사 마크 워너도 소개되었고 이윽고 오바마가 등장했다. 

"오.바.마! 오.바.마!"

현장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가 한 목소리로 "오바마"를 연호했다. 모두가 마치 오바마 교도라도 되는 양 기뻐하며 흥분했다. 오바마는 이날 40여분 동안 계속된 연설에서 평소 그가 주장해 왔던 경제와 이라크 전쟁, 교육 문제 등을 다뤘다.

그는 미국 국민의 95%를 위해 세금 부담을 덜겠다고 주장하여 큰 박수를 받았고, 또한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이라크 전쟁을 종식시킬 것을 약속했다. 교육 문제에 대해서도 모든 미국의 자녀들에게 세계적 수준의 교육을 제공할 것을 약속했다.

연설 중간 중간에 사람들은 그의 주장에 대해 환호하면서 그의 이름을 연호하기도 하고 "옳소" "아멘"을 연발하기도 했다.

특히 젊은층이 많이 참석했던 유세였던 만큼 휴대폰과 디지털 카메라의 액정화면은 쉴새 없이 켜졌다 꺼졌다 하곤 했다. 여기 저기서 오바마를 찍기도 하고 오바마를 배경으로 자신의 셀카를 찍기도 하는 등 유세장 안은 대단히 흥겨운 분위기였다.

오바마는 연설의 귀재답게 청중들의 동의를 구하면서 50회 이상의 박수를 받아냈고 부시 대통령과 매케인의 이름을 언급할 때는 청중들로부터 야유를 얻어내기도 했다.

또한 유세장이 JMU였던 만큼 이 대학의 마스코트 개인 듀크독에 대한 적절한 농담으로 청중들을 즐겁게 하기도 했다.

"듀크독을 대통령으로 뽑자는 운동이 일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듀크독은 투표용지에 없으니 대신 저, 버락 오바마를 찍어주세요."

오바마가 연설을 마친 시각은 오후 5시 40분. 오바마는 다음 연설 장소인 버지니아주의 노폭으로 떠나기 전 현장에 모인 많은 사람들과 악수를 나눴다.

오바마가 떠난 뒤 기자가 만나 본 사람들은 직접 오바마를 보게 되어 기쁘다며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어떤 사람들은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하며 감격스러워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오바마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남은 기간은 겨우 엿새. 미국은 과연 오바마가 주장한 대로 희망과 변화를 선택할 것인가. 오바마는 과연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될 것인가. 흥미롭게 지켜볼 일이다.

오바마가 떠난 뒤 오바마/바이든을 치켜든 JMU학생들. "오바마, 멋있어요."
 오바마가 떠난 뒤 오바마/바이든을 치켜든 JMU학생들. "오바마, 멋있어요."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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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오바마, #미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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