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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이라고 하지만 한 가지 상상을 해보자. 우리가 지난 수십년간 윤봉길 의사라고 믿었던 사진의 주인공이 윤 의사가 아닌 엉뚱한 인물이었으면 어떨까. 후세 사람들은 물론이고 하늘에 계신 윤 의사에게도 그 이상의 실수가 없을 것이다.

지난 8일 국가보훈처는 논란이 되던 윤봉길 의사의 홍코우 공원 체포 사진이 윤 의사가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문제가 된 사진은 의거일(1932년 4월 29일) 이틀 후인 1932년 5월 1일자 <아사히신문> 1면과 2면에 실린 사진이다.

1999년 강효백 교수는 1932년 5월 1일 <아사히신문> 1면에 실린 이 사진속 인물이 윤의사가 아니라고 주장했는데, 최근 국가보훈처는 윤봉길의사가 맞다고 발표했다
▲ <아사히신문>에 실린 윤봉길 의사 체포 추정사진 1999년 강효백 교수는 1932년 5월 1일 <아사히신문> 1면에 실린 이 사진속 인물이 윤의사가 아니라고 주장했는데, 최근 국가보훈처는 윤봉길의사가 맞다고 발표했다
ⓒ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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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신문 2면에 실린 '윤봉길 의사 의거' 관련 사진.
 아사히신문 2면에 실린 '윤봉길 의사 의거' 관련 사진.
ⓒ 아사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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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범죄수사연구소가 사진속 인물의 윤곽을 바탕으로 그린 몽타쥬다
▲ 사진속 체포 인물 몽타쥬 상하이범죄수사연구소가 사진속 인물의 윤곽을 바탕으로 그린 몽타쥬다
ⓒ 상하이범죄수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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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사가 의거 전 김구 주석과 찍은 사진
 윤봉길 의사가 의거 전 김구 주석과 찍은 사진
ⓒ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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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백 교수 "사진 속 인물, 윤 의사 아니다"-보훈처 "맞다"

그런데 이 사진의 의문점을 발견한 강효백(경희대) 교수가 당시 원자료 등을 토대로 해 이 사진이 윤 의사가 아닐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이후 이 주장은 기정사실화되어 교과서에서 삭제됐고 지금은 거의 통용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국가보훈처가 이 사진속 인물이 윤봉길 의사라고 밝힌 것이다.

보훈처가 내세운 논거는 "독립기념관에 이 사진을 의뢰한 결과 사진 속 인물이 윤봉길 의사라는 답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독립기념관이 이번에 확증을 한 근거는 "1976년 문제의 사진을 본 윤 의사의 부인 배용순(1907~1988) 여사와 동생 윤남의(1915~2003) 선생이 '사진 속 인물이 윤봉길 의사가 맞다'고 증언한 것도 이 같은 결정의 근거로 작용했다"는 등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번 논거에는 새로운 사실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김구 선생의 책 '도왜실기'에도 같은 사진이 실렸다는 근거 또한 오래된 것이다. 문제는 그 사진도 일본의 통신사인 니혼 뎀포의 사진을 받아서 쓴 것이라는 점이다. 결국 독립기념관과 국가보훈처는 전혀 새로운 사실이 제시되지 않은 가운데 이런 의견을 밝힌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1999년 당시 상하이영사관 문화관이었던 강효백 교수가 이 의견을 밝힌 후 계속해서 이 사진의 주인공이 윤봉길 의사가 아니라는 견해가 늘어났다는 점이다. 특히 사진을 기재한 아사히신문의 고위 관계자 역시 취재진들의 의견에 착오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논란의 소지가 있다.

이 의견이 나온 후 김준엽(전 고려대 총장) 사회과학원 이사장이나 김학준(현 동아일보 회장) 등이 강 교수의 발굴에 많은 지지를 보냈다. <윤봉길 평전>의 저자로 당시 인천대총장이던 김학준 회장은 발굴 직후 편지를 통해 "윤봉길 의사에 대한 국내의 분분한 주장과 오류를 바로잡는 데 크게 공헌하였음을 알려 드립니다"라는 문구를 통해 공감을 표시했다.

1999년 강효백 교수가 사진 문제 제기를 했을 때 김학준 동아일보 회장(현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장)이 보낸 감사 편지
 1999년 강효백 교수가 사진 문제 제기를 했을 때 김학준 동아일보 회장(현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장)이 보낸 감사 편지
ⓒ 강효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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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 당시 기사 내용과 사진 불일치가 실마리

그뿐 아니라 2007년 3월 1일 MBC <오늘 아침>에 출연한 조철현 성형외과 전문의 등은 두 사진을 비교한 후 그들은 "문제의 사진의 인물은 턱이 가늘다"며 "골격 자체가 변할 리는 없다"고 밝혀 다른 인물 사진일 가능성을 제기하는 등 분석에 참여한 성형 전문의가 모두 다른 인물이라고 분석했다. 이밖에도 이용헌 중앙대 사진학과 교수나 상하이 화동대학 정형외과 팀 등 전문가 그룹은 대부분은 이 사진 속 인물이 윤 의사가 아니라고 밝혔다.

또 2008년 6월 15일 SBS 스페셜에서 방송한 '윤봉길은 이렇게 총살됐다'의 취재진이 <아사히 신문>에 들러 사진과 기사의 불일치에 대해 취재할 때 고위관계자가 "그건 우리도 의문을 가지만 왜 그것이 그렇게 표현이 되었는지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계속 검증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라고 문제를 시인했다.

당시 아사히신문을 취재했던 SBS 김천홍 부국장은 "지금 바쁜 취재가 끝나면 강 교수 등과 함께 이 사진의 진위 여부에 관한 기자회견을 열 생각을 갖고 있다. 다만 소모적으로 이 소식이 보도되기 보다는 논리적으로 이 사안을 풀어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봉길 의사의 처형 장면 사진
 윤봉길 의사의 처형 장면 사진
ⓒ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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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검거 사진의 진위 여부를 판가름할 때 이때 나온 기사와 사진의 불일치는 이 사진 속 인물을 판단할 때 중요한 근거가 된다. 당시 나온 기사(상하이타임즈, 차이나프레스 등)의 대부분에는 사건 직후 윤 의사가 현장에서 무참하게 구타당해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고, 차의 트렁크에 짐짝처럼 실려서 끌려갔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사진 속 주인공은 인상 착의는 물론이고 중절모를 집어 들었을 뿐만 아니라 윤 의사가 입은 적이 없는 바바리코트를 입고 있다.

윤 의사의 옷에 관한 문제는 1999년 강효백 교수가 사진 문제를 제기하기 전에도 한겨레(1992년 5월), 한국일보(1995년4월29일) 등에서 수차례씩 제기됐던 문제점이다. 또 윤 의사의 6촌 동생으로 생전에 윤 의사와 12년간 생활한 윤명의옹 등이 "윤 의사가 생전에 입지 않았던 바바리코트를 입고 있다"며 윤 의사 실제 모습과 닮지 않았다고 지적했었다. 

강효백 "상식 뒤엎는 발표"... 독립기념관 "내부회의서 결정, 확신"

10월 8일 국가보훈처가 이 의견을 발표한 이후 강효백 교수는 이번 발표는 "상식을 뒤엎는 발표일 뿐"이라며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강 교수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난 상식 선에서 접근해 1차 자료인 당시 보도들을 토대로 했다. 또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했다. 당시 보도한 신문들은 중국 신문도 있지만 미국이나 영국계 신문들도 있었다. 이들이 사건 현장을 보고 반일감정을 자극할 의도로 보도할 리 만무하다. 나는 이런 논거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통해 이 사실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국가보훈처나 독립기념관의 견해는 기존의 견해에서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번에 독립기념관 의견을 낸 김용달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이번 결정은 수석연구원이어서 내 이름을 썼을 뿐 개인의 의견은 아니다"고 전제한 후 "내부 회의에서 결정한 만큼 사진 속 주인공이 윤봉길 의사가 맞다는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또 기사와 사진이 다른 것은 "당시 상하이 신문들이 반일 감정을 고조시키기 위해 감정적인 기사를 써서 그렇게 보인다. 우리는 윤봉길기념사업회의 요구로 보훈처에서 요청해와 의견을 밝힌 것뿐이다. 결론을 내리기 이전에 신용하 교수 등의 의견을 청취했다. 또 12월에 윤의사 관련 학술회의가 열리는데 이 자리에서 강효백 교수도 모셔 다양한 의견을 청취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이 학술회의에서는 단국대 역사학과 한시준 교수가 윤봉길 의사 관련 당시 보도 내용을 발표한다. 한시준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일단 당시 보도들을 보면 체포된 인물이 윤 의사가 한 명이 아니라 여섯 명에서 그 이상으로 나와 있어 강 교수의 의견이 타당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실신할 정도로 구타했던 인물이 윤 의사인지는 불투명해서 어떤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다만 사진을 본 동생 등이 윤 의사가 맞다는 의견을 낸 이상 어떻게 확증하기 어렵다. 이번 회의에서도 이 사진의 진위는 의견을 내놓기 어렵고 우선은 당시 보도 내용을 중심으로 밝힐 것이다"고 말했다. 또 "만에 하나 이 사진이 윤 의사가 아닐 경우에 가져올 수 있는 엄청난 파장을 생각하면 함부로 단정 내릴 사안은 아니다"고 말했다.

한편 강효백 교수가 사진 속 인물이 윤 의사가 아닐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을 때 감사의 편지를 쓴 김학준 동아일보 회장(현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장)은 최근 이사회에서 "본인도 이 사진의 진위여부가 아직도 의문이지만 유족들이 이렇게 강경하게 의견을 내놓은 상태여서 쉽게 말하기 어렵다"다고 말했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강효백 교수는 이런 주장들에 대해 "상하이타임즈(미국신문), 차이나 프레스(미국신문), 노스차이나 데일리(영국신문)는 모두 중국신문이 아닌데 중국신문이 반일감정을 자극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맞지 않다. 또 유족들의 의견도 다르다. 윤 의사와 12년 동안 산 윤명의옹 등 다수의 유족들이 동상 문제로 수차례 인물 문제를 제기했는데 묵살하는 등 유족간에도 인물사진에 대한 이견이 많다"고 말했다.


태그:#윤봉길, #강효백, #국가보훈처, #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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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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