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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조선일보>는 재미있는 기사를 실었다.

"'불신(不信) 전염병'… 세계가 IMF쇼크 맞은 듯"이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미국발 경제위기'를 전한 다른 매체들의 기사들과 별 차이가 없지만, '경제 튼튼한 한국은 왜?'라는 하단부의 소제목 때문에 눈에 띈다.

"한국은 미국의 부실 금융회사에 물린 것도 적고, 부동산 값 하락도 본격화되지 않았는데 세계에서 가장 강한 충격파에 시달리고 있다. 왜 그럴까"라는 것이다.

<조선닷컴>은 이날 오전 이 기사를 "'튼튼한 한국 경제' 시달리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머리기사로 올렸다.

이 정부의 방향타로 꼽히는 <조선일보>가 이명박 정부 이전에 이미 "한국경제가 튼튼한 상태였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고유가에 원자재 가격 상승, 촛불시위에 시달린 이명박 정부 7개월 동안 "한국경제가 튼튼해졌다"고 주장하는 건 아닐 테니까 말이다.

조선닷컴의 이 기사에는 114개의 댓글이 달렸는데, 이 중 '이경(softop)'씨가 쓴 "너희들의 무능을, [국제적 추세]로 희석하는, 더러운 기사입니다"가 '찬성순'에서 24개로 1위였고, 김광민(k41027)씨가 쓴 "한국경제가 튼튼해???? 얼마 전까지는 망했다고 난리쳤었잖아???? 잃어버린 10년이라며 이제 와서는 튼튼하다고???? 다급하니까 이제 솔직히 인정하는구나"가 19회의 찬성으로 2위였다.

<중앙> "우리 경제 실력 과거와 달라"... '잃어버린 10년'의 시작, DJ 상찬도

경제정책 리더십을 비판한 <중앙일보> 10월 25일자 1면 머릿기사
 경제정책 리더십을 비판한 <중앙일보> 10월 25일자 1면 머릿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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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만이 아니다. <중앙일보>는 25일자 1면 머리기사로 "골병 든 한국경제…리더십이 문제다"를 올리면서 이렇게 썼다.

"우리 경제의 실력은 과거와 다르다. 기업의 부채비율은 외환위기 당시 400%에서 지금은 96.4%로 낮아졌다. 삼성전자·포스코 등 세계적인 기업도 나왔다. 은행들의 자기자본비율(BIS)도 평균 10.5%로 국제기준 8%보다 높다."

'잃어버린 10년'의 시작점인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연이어 '상찬'을 보냈다. 중앙의 일요판인 <중앙선데이>는 26일자에 "일면식 없던 이규성 발탁 '일 잘한다 해서 뽑았소'-97년 외환위기 조기 졸업 이끈 김대중 리더십"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다음 날 중앙일보는 "DJ 때는 실력 위주'…'MB는 인연 중시"라는 제목으로 DJ의 IMF 외환위기 극복 과정을 칭찬하면서 이명박 정부 경제팀의 무능과 혼란, 위기관리능력 부재를 대비시켰다. 김대중 정부의 1기 경제팀을 "'혼성군'이었지만, 각 분야에서 누구나 수긍할 만한 실력자이기도 했다"고 평가한 데 비해 현 정부 경제팀에 대해서는 '경제계 인사'의 입을 빌어 "지금이라도 경제 라인을 바꾸는 게 시장의 신뢰를 얻는 첫걸음"이라고 비판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조중동의 넘버1과 넘버2가 지난 10년이 '잃어버린 기간'만은 아니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다는 원죄를 안고 있는 <조선>과 <중앙>이 지금의 경제위기는 당시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려다 '속마음'을 드러낸 것일까.

한나라당은 일본의 1990년대 경제위기 상황을 표현한 '잃어버린 10년'이란 구호를 빌려와 큰 재미를 봤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기의 경제 상황을 비판한 것에서 시작된 이 구호는 조중동과 결합하면서 남북관계, 국가정체성, 빈부격차 등 모든 분야에서 지난 10년 동안 후퇴 내지 정체됐다고 규정하는 의미로 확장됐다.

이 대통령 "기업과 금융기관 체질 몰라보게 튼튼해져"

<조선>과 <중앙>의 코치를 받아들인 것일까. '잃어버린 10년'론의 최대 수혜자인 이명박 대통령 자신의 '고백'도 나왔다.

이명박 대통령은 27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많은 분들이 이번 위기를 10년 전 외환위기와 비교하는데 단언컨대, 지금 한국에 외환위기는 없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27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많은 분들이 이번 위기를 10년 전 외환위기와 비교하는데 단언컨대, 지금 한국에 외환위기는 없다"고 말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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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우리가 지금 어렵긴 하지만, IMF 외환 위기 당시와는 상황이 많이 다릅니다. 외환보유고는 2400억 달러 수준에 이르고 있고, 이 돈도 모두 즉시 쓸 수 있는 돈입니다. 1997년에 비하면 스물 일곱 배나 많습니다. 기업과 금융기관의 체질도 몰라보게 튼튼해졌습니다." (13일 라디오 연설)
"한국은 1997년도 아시아 금융위기 때 직접적인 당사국으로서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경제성장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모범적으로 이뤄냈습니다." (22일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 인터뷰)

"우선 외화 유동성 문제는 지금 보유한 외환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금년 1월에서 9월까지 유가 폭등과 외국인의 주식 매도로 경상 수지, 자본 수지가 모두 적자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외환보유고는 2600억 달러에서 2400억 달러로 약 8% 감소하는 데 그쳤습니다." (27일 국회 연설)

경제위기에 대한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거듭 "(그동안 모아둔) 외환보유고가 충분하기 때문에 걱정 없다", "우리 경제는 튼튼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외환보유고는 이 대통령 취임 직전인 올해 초 2622억 달러에서 9월 말 현재 225억 달러 줄어 약 2397억 달러가 남아있다.

 "(IMF위기 때) 37억 불 밖에 없던 국고를 내가 노무현 대통령한테 넘길 때 1천4백억, 노무현 대통령이 다시 또 이명박 대통령한테 넘길 때 2천6백억, 이렇게 둘이가 1천3백억씩 벌어가지고 넘겨줬다. 그런데 요새 지금 외환위기가 오는데 정부가 2백억 쓰고 3백억 쓰고 이렇게 마음대로 쓰는 것은 우리가 벌어다 준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23일 MBC 라디오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인터뷰)

이런 상황 때문일 것이다.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잃어버린 10년'이란 표현을 쓰지 않겠다", "경제장관 같은 경우에 참여정부나 DJ정부에서 유능했던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28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는 "우리는 과거에 비해 건실한 경제토대를 갖추고 있다…경제투명성과 관리능력, 위기경보시스템도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이 대통령과 같은 말을 했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야당이 쌓아온 대북정책의 노하우를 존중하면서 협조를 구하겠다"고도 했다.

여권 스스로 어쩔 수 없이 시인하는 역전된 상황. 이 때문에 지난 대선에서 "경제를 살리겠다"는 구호를 주창하고, "MB는 경제대통령"이라고 추켜세웠던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자신들의 무능으로 인해, 대표 구호였던 '잃어버린 10년'을 잃어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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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잃어버린 10년, #경제위기, #경제리더십,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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