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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이 다 가도록 더운 날씨가 계속되더니 저번 주말부터 갑자기 추워지기 시작했다. 장롱을 열어 가을 점퍼를 꺼내기는커녕 한낮에는 버스에서 에어컨을 틀어주는 기가 막힌 이상 고온현상이 계속되더니 어느새 으슬으슬 추워지는 게, 하루아침에 가을을 건너뛰고 여름에서 막바로 겨울로 옮겨간 듯하다. 일기예보에서는 한 차례 비가 온 후 차가운 대륙 고기압이 확장하면서 기온이 크게 떨어졌다고 말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고3 수험생들은 갑자기 늦여름에서 초겨울이 된 날씨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아, 이제 곧 수능이구나.'

내신 낮은 학생이 합격? 어떻게 된 거지?

수능시험 준비하는 수험생들
 수능시험 준비하는 수험생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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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입시의 계절이 찾아왔다. 그 포문을 연 건 대학들의 2학기 수시모집 합격자 발표였다. 그런데 요 며칠 사이 수시모집 합격자 발표로 세간의 논란거리로 떠오른 대학이 있었으니 바로 고려대학교다. 고려대는 지난 23일 2학기 수시모집 1차 합격자 발표를 했는데, 이 과정에서 특목고 학생 다수가 이들보다 내신 점수가 더 좋은 일반고 학생들을 제치고 합격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고려대가 특목고와 일반고의 내신을 다르게 평가하는, 이른바 고교등급제를 시행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논란거리는 하나 더 있다. 같은 고교에 다니는 두 학생이 같은 학과를 지원했는데 내신 성적이 뛰어난 학생은 탈락하고 그보다 낮은 성적의 학생이 합격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수험생과 학부모, 교사들은 대체 합격 기준이 뭐냐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고, 고려대 홈페이지에는 이와 관련한 항의 게시물이 빗발치고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해 고려대 측의 태도는 분명하다. 자신들은 모집 전형대로 공정하게 평가했을 뿐, 고교등급제는 터무니없다며 일축하고 나선 것이다.

고려대 2학기 수시 모집 1단계는 오로지 '학생부'만을 반영한다. 그 중에서 교과영역이 90%, 비교과영역이 10%의 비율로 반영되는데, 문제는 이 90%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교과영역, 즉 내신에서 900점 만점에 895점이 기본 점수로 부여되는 상황이다 보니 변별력이 떨어지는, 이른바 내신 무력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고려대는 내신 성적 산출 방법에서도 특정 학교 학생들의 성적 편차가 적을 경우 과목 등급을 재산출하는 '내신 보전제도'를 2008년 입시부터 사용해 특목고 학생들이 내신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조정해 왔다.

경기도의 모 외고에서는 이번 고려대 수시 모집 1차 단계에 무려 150여 명이 합격했다고 한다. 이 외고의 국내대학 진학반 정원이 200여 명이라고 하니 내신 6~7등급을 받은 학생들도 합격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반면에 내신 1등급을 받은 일반고 학생은 탈락했다고 하니, 이런 결과를 보면 90% 비율의 내신보다 10% 비율의 비교과영역에서 당락이 좌우된다는 주장이 맞는 듯하다. 그런데 이 비교과영역이라는 것은 토익, 토플같은 공인영어성적이나 수학·과학 경시대회, 논술대회 같이 공교육으로는 습득하기 어려운, 사교육의 의존성이 높은 것이 대부분이다. 일반 인문계 학생보다 특목고 학생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 영역인 셈이다.

사실 고려대를 비롯한 이른바 '명문대'들의 특목고 사랑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2004년에는 고려대와 연세대, 이화여대가 수시 모집에서 고교등급제를 시행하다 적발당해 그 후로 2년 동안 정부로부터 재정지원액이 10억 원씩 삭감되는 제재를 당한 적이 있다. 수시 모집에서는 글로벌 인재전형, 국제학부 특별전형, 과학영재 특별전형과 같이 특목고 학생에게 유리한 전형이 다수 존재하고 있다. 또한 작년에는 수능의 변별력 약화가 목적인 수능등급제가 실시되었지만 오히려 대학 측에서는 수능우선선발 제도를 도입해 수능의 영향력을 더욱 키웠고, 정시 모집에서 내신 등급 간 점수 차이를 없애거나 최소화하는 방침으로 내신 무력화를 꾀하는 등, 대학의 특목고 사랑은 가히 눈물겨운 수준이다.

대학이 특목고를 우대하고 내신을 무력화하는 이유는, 첫 번째 뛰어난 인재를 독점하기 위해서이다. 공부 잘하는 학생이 더 많이 입학하여 그들의 학문적 성과와 업적으로 학교를 발전시키고 이름을 드높이며 위상을 격상시켜, 세계 속에서 경쟁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요즘 우리나라 대학의 지상과제이기 때문이다. 매년 발표되는 세계대학 순위에 대학 간 희비가 교차하는 만큼, 뛰어난 인재 확보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두 번째, 대학이 내신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선 고교에서 횡행하고 있는 '치맛바람 내신'이나 '퍼주기 내신'같은 악습은 내신의 신뢰성을 떨어트리는 대표적인 사례다.  대학 입장에서는 뛰어난 인재를 선별하기 위해 학교별, 지역별 편차가 크고 공정성도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내신의 반영률은 낮추고 대신 수능이나 토익, 토플같은 공인인증시험의 반영률을 높일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고려대, 대학 자율화할 자격 있나"

고려대학교 전경
▲ 고려대학교 전경 고려대학교 전경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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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대학에는 뛰어난 학생을 선발할 권리만큼이나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사회적 책임과 의무가 있다. 특목고 및 자사고 문제, 국제중 신설과 고교선택제, 끝 모르고 치솟는 사교육비 등등… 사실상 '대입'이라는 관문 때문에 이 모든 교육 문제가 야기된다고 볼 수 있는 상황에서 그만큼 대학의 처신은 늘 신중하고 공정해야 한다. 대학이 교육적 양심으로 사회적 책무를 다할 때, 비로소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현 정권은 인수위 시절 '대입 자율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사실상 대입 문제에 대한 권한을 대학에 넘겨줬다. 당장 올해부터 대입 업무가 교과부에서 대교협으로 이양되면서 이번 고려대 사태도 대교협 대학윤리위원회에서 조사에 착수했다. 당시 인수위는 이 대입 자율화 3단계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그 목적이 공교육을 살리고 사교육비를 줄이는데 있다고 했다. 또 단계별로 시행하되, 여건이 충분히 성숙하는 시점에 전면적 대입 자율화를 시행하겠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여건의 성숙이란 대학이 스스로의 책임이 무거워졌음을 인지하고 그에 어울리는 행동을 취하는 것을 뜻한다. 자율성이 신장되는만큼 사회적 책무도 커진다는 것을 깨닫는 시점이 바로 전면적 대입 자율화를 시행할 때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때가 대체 언제가 될 것인가. 대입 자율화 첫 해에 고려대의 고교등급제 의혹이 불거진 걸 보면, 그 때가 그리 빨리 찾아올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고려대는 이미 수시 모집에서 글로벌 인재전형을 통해 특목고 학생들을 우대하고 있다. 또한 그렇지 않아도 수능의 비중이 절대적인 정시 모집에선 아예 정원의 절반을 수능 성적만 보는 수능우선선발제도로 뽑겠다고 했다. 수능 성적에 비해 상대적으로 내신에서 불리했던 특목고 학생들을 위한 제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제는 수시 모집 일반전형에서까지 특목고 학생이 유리하도록 만들어 놨다. 모집 요강에는 내신 성적을 90% 반영한다고 했지만 기본 점수를 높게 주는 꼼수를 부린 덕에 실질 반영률은 20% 정도 밖에 안 된다고 한다. 고려대가 사회적 책무의 무게를 느낀다고 생각할 수 없는 대목이다. 고려대에 묻고 싶다.

"대입 자율화를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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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고교등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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