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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경계문화펄프연구소가 이사를 했지요. 이사 후 처음으로 공개되는 작업실, 나는 공항으로 곧 착륙하니 손님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 츄리닝바람 작업실, 나는 공항 무경계문화펄프연구소가 이사를 했지요. 이사 후 처음으로 공개되는 작업실, 나는 공항으로 곧 착륙하니 손님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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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사서 보는 사람이 없다는 출판계에 놀라운 일이 있었지요. 2003년 대한매일(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경주의 첫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랜덤하우스. 2006)가 무려 1만부가 넘게 팔렸거든요. 그는 젊은 시인으로서 주목받으며 문학계에 혜성처럼 등장하였지요.

그의 글이 조금 난해한 느낌도 없잖아 있어도 대중들에게 통하는 이유가 있더군요. 그는 무경계문화펄프연구소 <츄리닝바람>을 운영하면서 끊임없이 세상의 흐름을 주시하고 즐거운 상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츄리닝바람>은 시, 소설, 문학, 디자인, 사진, 설계, 연극, 음악, 영화, 미술 등을 하는 예술문화인들이 모인 문화인 모임(culture group)이에요.

경제는 울상 짓고 정치는 엉망이고 무시무시한 일들이 날마다 일어나는 세상 일을 보니 절로 한숨이 나와 재미난 일을 찾아봤지요. 마침 <츄리닝바람>이 새롭게 작업실을 옮겼다고 해서 놀러갔지요. 숫자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만남은 늘 그렇듯 많은 자극과 감동을 주니까요.

24일 오후 이사한 뒤 처음 언론에 공개한다는 새로운 작업실 '나는 공항'으로 들어서는 순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더군요. 겉에서 보면 반지하 허름한 집처럼 보였는데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데 신기하고 놀랍더군요. 아직 정리가 덜 되었다고 하지만 깔끔하면서도 아늑한 작업실이었어요. 작은 공연장도 갖춘 '나는 공항'에서 연구소장 김경주와 모임 맏형 박리안과 이야기를 나눴어요.

- 왜 이름이 <츄리닝바람>인지
"츄리닝 옷차림을 '츄리닝바람'이라고 하잖아요. 이 말은 번역도 하기 어려운 한국만의 독특한 정서가 밴 말이에요. 편하면서도 자기 색깔이 뚜렷하고 주류와는 다른 냄새를 풍기지요. 그 말이 좋고 저희만의 길을 찾겠다는 의미에서 츄리닝바람이지요." 

동아시아 문학포럼 선상낭독회, 이효석 문화제 기획

무경계펄프문화연구소장 김경주. 그는 문화저격수들을 이끌고 오늘도 즐거운 상상을 펼치고 있지요.
▲ 김경주 무경계펄프문화연구소장 김경주. 그는 문화저격수들을 이끌고 오늘도 즐거운 상상을 펼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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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츄리닝바람>이 한 일이 있다면
"동아시아 문학포럼이 있었는데 저희는 선상낭독회를 기획하고 진행했어요. 내로라하는 한중일 문인들 사이로 츄리닝을 입고 돌아다녔지요. 얼마나 재미있던지. 또 최근에 메밀꽃 필 무렵의 고장 봉평에서 '이효석 문화제'를 기획하고 진행했어요."

- 비주류 문화, 인디 문화의 매력이 있다면.
"인디란 말은 어폐가 있는 말이에요. 미국인이 서부침략을 하면서 거기서 살던 원주민들을 많이 학살했지요. 그때 수많은 원주민족들이 있었는데 뭉뚱그려 독립인(Independent)라고 해서 인디란 말이 나왔지요. B급이란 말도 문제에요. B급이란 말은 A급을 인정한다는 얘기인데, 저예산에 규모가 작으면 B급인가요? 대체할 특별한 말이 나오지 않아 쓰고 인디가 갖고 있는 독립정신을 존중하지만 검토해야 하는 말들이지요. 비주류는 스스로 소신이 있고 어디에 소속되지 않고 자기 뜻을 펼칠 수 있어야 해요."

- 개성강한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갈등이 많을 텐데
"사람들이 모여 집단이 생기면 갈등이 생기지요. 어떻게 보면 작업의 갈등을 즐기려고 공동체 모임을 하는 거예요. 그 긴장감과 아슬아슬함을 즐기면서 서로 토론하고 양보하면서 작업을 하지요. 저마다 문화저격수로서 다 주특기가 있어요. 서로 자극을 하면서 공연을 만들죠. 갈등과 애로 점은 늘 있지요. 문화 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수익구조를 내면서 문화를 지향해야 하니까요. 우리 말에 '불구하고'가 있잖아요. 이 말이 문화 쪽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딱 맞는 말이에요. 불구하고 '하는' 사람들이지요."

- <츄리닝바람> 회원들은 어떻게 생활하는지
"기본으로 다들 자기 일로 생계유지하고 있어요. 보통은 저녁 때 모이고 공동 프로젝트가 생기면 더 자주모이죠. 저랑 <패스포트>(2007. 랜덤하우스) 책을 낸 사진작가 티양은 초등학교선생님이에요. 또 학교에서 조교하는 친구도 있고 베이시스트도 있고 음악제작 PD도 있고 다양하지요. 저는 7년 째 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고요.

저희는 무료공연도 많이 하고 기획을 해도 많이 받지도 않아요. 수익이 많으면 지향성이 달라졌을 수도 있겠지요. 새로운 사람 들어올 가능성은 늘 있지요. 정식 츄리닝바람은 아니어도 공동프로젝트 있으면 모이고 놀고 싶을 때 놀러 와서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을 각설탕이라고 불러요.

각설탕은 독립해서 활동하다가 긴요할 때 달콤함을 녹여내는 사람들이죠. 우리만의 색깔 보여주려고 사라져가는 아코디언 악사, 마임 배우들, 변사라 불리는 전기수 등 많은 분들을 모아요. 각설탕은 2000명 정도 모을 생각이 있어요."

그는 월간지 Text 객원기자로 시나리오도 쓰고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시대착오성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며 요즘은 홍콩영화뿐 아니라 모든 문화에서 느와르를 찾고 있지요.
▲ 박리안 그는 월간지 Text 객원기자로 시나리오도 쓰고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시대착오성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며 요즘은 홍콩영화뿐 아니라 모든 문화에서 느와르를 찾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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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설탕 심사 기준이 있다면
"먼저, 츄리닝이 잘 어울려야 해요.(웃음) 영화 시상식 때 츄리닝바람으로 올라갈 정도로.(웃음) 대기업에 츄리닝바람으로 출근하는 그날까지 츄리닝을 전파해야 해요. 다음으로 커트 코베인 유서를 읽고 감상문을 써오라고 해요. 가장 화려한 순간에 죽음을 택한 커트 코베인을 보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은 것이죠.

어린 친구들이 메일을 보내고 활동하고 싶다고 문의를 해 와요. 어떤 글이든 직접 쓴 글 한 꼭지를 받아봐서 살펴봐요. 저희는 유명한 사람들 모임이 아니라 가능성 있는 사람들이 모이기는 하지만 스스로 실력을 쌓으려는 자세가 있어야 하거든요. 글에는 그러한 실력과 열정들이 묻어나오죠.

각설탕은 1년에 3회 이상 참여하면 정식 츄리닝 바람으로 승격해요. 승격되면 자기 이름으로 책을 한 권씩 낼 수 있게 도와줘요. 주제를 좁혀주고 자세하게 도와주면서 출판사와 연결해주죠. 자기 이름으로 쓴 책 한 권, 20대에 해볼 만한 가장 괜찮은 일 아니겠습니까."

- 때가 가을인데, 계절의 영향을 받는지
"조금 더 감성이 예민해지죠. 더운 날씨에는 사색이 쉽지 않잖아요. 풍토에 영향을 받아요. 많은 작가들이 여름을 싫어해요. 저(김경주)도 여름에는 늘어지기 때문에 글을 거의 못 써요. 가을 겨울에 1년 치를 다 쓰죠. 신춘문예가 1월에 열리는 이유도 작가지망생들이 감성밀도가 가을 겨울에 높기 때문이기도 해요. 지역마다 공기가 달라요. 해가 뜨는 고도가 다르기에 빛도 다르지요. 절로 책을 읽고 싶어지더라고요. 작가들 말로 한국은 '콘크리트 문학, 아스팔트 문학'이라고 해요. 콘크리트에서 피어냈다는 얘기죠."

직장인에게 회식이 있듯이 문화인에게는 여행이

베니스 가면 축제때 쓰는 가면이 아주 마음에 들어서 3개나 사왔다는 그. 곧 이 가면들을 이용해서 작품에 올린다고 하네요.
▲ "이게 베니스 가면축제때 쓰는 가면이에요." 베니스 가면 축제때 쓰는 가면이 아주 마음에 들어서 3개나 사왔다는 그. 곧 이 가면들을 이용해서 작품에 올린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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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을 많이 다니네요
"직장인들에게 회식이 있듯이 저희에게는 여행이 있어요. 여행가서 쉬면서 일도 계속 하지요. 절대로 돈 많아서 가는 것 아니에요. 정보와 기획만 있다면 얼마든지 싸게 갈 수 있어요.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가는데 비행기 타고 가면 100만원도 넘게 들겠지만 저희는 속초에서 배타고 18만원에 갔어요. 지중해 가서도 배3등칸 제도가 아직도 있어요. 배 아무데서나 잘 수 있고 무척 싸지요. 그런 식으로 굉장히 싸게 돌아다녀요.

여행은 자기의 기준, 경계를 버리는 일이지요. 그러다보면 여행의 서열 같은 것은 사라지죠. 여기는 뭐가 좋고, 저기는 뭐가 좋으니 다 좋은 것이죠. 떠나는 것 자체가 좋으니까요. 여행은 조건이 맞으면 떠나려고 해요."

- 문화 예술인들을 사람들이 신기하게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
"누구나 자기중심으로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돈이 되냐?'고 물어보지요. 저희는 물질 추구보다 행복을 추구해요. 작업을 하면서 삶이 발전할 수 있는 것이죠. 문화집단은 특이한 집단이 아니라 문화 생산자일 뿐이에요. 물건을 생산하듯이 문화를 생산하지요. 이게 즐거워요. 특이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튀어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의 모습이에요. 오히려 하고 싶은 하는 일을 하기에 보통 사람들은 자신도 그렇게 살고 싶다며 부러워하는 감정이 있지요. 누구나 긴장이 떨어지는 삶을 살기는 싫거든요."

- 한국 페스티벌 1137개라는 조사결과도 있는데 문화기획자로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우선 페스티벌이라고 이름 안 넣어주면 지원이 안 나와 그렇게 페스티벌이 많아졌고요. 많은 페스티벌은 장단점이 있어요. 페스티벌이 많아지면서 서로의 페스티벌을 인식하게 되고 문화향유층이 높아지죠. 문화는 이식되기에 서로 배우고 전해지니까.

물론 많다보니 질이 떨어지는 면이 있지요. 외국인들이 대학로에 오면 2번 놀라요. 뉴욕의 브로드웨이(broadway)에 60개, 런던의 웨스트 엔드(west end)에도 30개 밖에 공연장이 없는데 100개나 되는 소극장에 놀라요. 그리고 그 많은 곳에서 다 똑같은 것만 한다고 2번 놀라지요. 기획자들이 주제를 정하고 제대로 준비를 한다면 특색이 있는 잔치가 생길 거예요. 조금 시간이 필요하지요.

베니스 가면축제를 가서 많이 배웠어요. 베니스는 오래된 항구도시잖아요. 승선이 들어오면 육지 사람들이 잔치를 벌여줬어요. 그때 가면을 쓰게 되는데 계급, 신분 떠나서 모든 일이 가능했지요. 가면을 만들면서 먹고 사는 사람이 생기고 몇 백년 된 축제가 되었지요. 한국은 전통축제하면 탈, 판소리, 사물놀이 밖에 내세울 게 없잖아요. 우리만의 내용과 기획력으로 세계에 내놓아야 해요."

홍대와 대학로 교류 통해 융화하고 싶어

한달에 한 번 동네 주민들에게 공연을 하고 싶다네요. 연습실로 사용하는 소중한 공간이라네요.
▲ 공연장 한달에 한 번 동네 주민들에게 공연을 하고 싶다네요. 연습실로 사용하는 소중한 공간이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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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홍대와 대학로에 교류가 없어요. 연극인과 음악가 사이에 만남이 없지요. 소극장은 죽어 가는데 연극만 올리란 법이 없지요. 낭독 공연도 하고 음악무대도 할 수 있지요. 반대로 클럽에서는 밴드만 하란 법 있나요. 많은 각설탕들이 활동하면서 소극장, 클럽 교류하고 싶고 융화시키고 싶어요.

문화구도는 자본이 아니라 아이디어와 기획에 의해 바뀌어요. 그래서 저희는 모여서 연구를 하고 생각을 합치죠. 클럽이나 소극장 사장들은 중과부적이지요. 바꿔보고자 하는 생각도 적고요. 이러한 구도를 바꿔야 해요.

또, 한 달에 한 번은 주민들 대상으로 공연을 하고 싶어요. 전국에 수많은 시낭독회가 있지요. 낭독공연은 지금까지 음악 틀어놓고 그냥 읽기만 했는데 저희는 시도 다 외우게 하고 배우처럼 낭독하게 해요. 공연처럼 연출도 하고요. 세계에 내놓아도 당당할 수 있는 작품이 되는 자랑스러운 시 낭독회를 하려 하지요.

낭독공연도 그냥 들고 읽는 문화는 유럽에서 이미 없어지고 넘어갔어요. 문학은 소리 내어 읽어야 제 맛이에요. 변사도 보고 읽으면 얼마나 재미없겠어요. 도덕교과서 읽는 느낌이겠죠. 외워서 소리와 함께 즉흥행위와 감정몰입이 필요해요. 읽기에 급급하면 읽는 사람은 읽는 내용도 파악을 못해요. 그러면 공연이 안 되고요."

자기만의 하늘 닿는 방식을 찾아야

- 문화 그룹들이 많이 생겨날 텐데,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일본에서 공부한 감독님이 계신데, 구로사와 아키라가 자신에게 이런 말을 했대요. '농부는 땅을 일구면서도 하늘에 닿을 수 있다' 이 말처럼 서두르지 말고 조급해하지 않았으면 하네요. 어떠한 방식으로든 닿을 수 있는 하늘이 있기에 자기만의 하늘 닿는 방식을 찾아야 해요.

인간은 욕망의 동물로 누구나 주목받고 싶고 노출되고 싶지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건 메이저나 마이너 다 똑같지요. 경계를 지키는 게 중요해요. 어떻게 보면 더 치열한 곳이 여기에요.한 우물도 파기 어려운데 이것저것 어떻게 하느냐 어려워마세요.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용기의 문제에요. 젊음은 원하는 것을 찾는 것이니까요. 용기를 내세요."

김경주 시인과 '나는 공항'에서 같이 밖으로 나왔지요. 오늘 새 책이 나온다며 출판사로 받으러 간다고 환하게 웃으며 얘기하네요. 다음 주에는 시집이 나오고, 그 다음 주에는 번역서가 나온다고 하네요. 오란 곳도 많고 연락도 여기저기서 오며 한창 바쁜 모습이더군요.

그는 대필작가, 야설작가로 오랜 시간 어려운 시절을 겪은 뒤에 이름을 얻었지요. 늘 밝고 활기차 보이지만 그늘에 있어본 사람만의 겸손함이 말투와 행동에 배어있네요. 유명세와 별개로 여전히 비주류로서 문화저격수들을 이끌고 '또 뭐 재미난 일 없나' 연구하는 그의 앞날이 궁금하네요.

<츄리닝바람>에서 산뜻하게 데이트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즐거운 상상을 해봐요. 영화제 시상식에서 세려된 츄리닝바람으로 멋진 영화배우가 수상하는 그림을, 각설탕들이 세상 곳곳에서 살맛나는 일들을 벌이는 모습을, 수많은 사람들이 가을에 시를 읽는 장면을. 유난히 쌀쌀한 날씨였지만 마음만은 훈훈하네요. 


태그:#김경주, #무경계펄프문화연구소, #박리안, #나는공항, #츄리닝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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