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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20대 중 직업이 없거나 취직을 아예 포기한 인구는 245만명이라고 합니다. 또 지난 16일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20대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62.7%로 떨어졌는데, 이는 1999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라고 하네요. 여기에 엎친 데 덮쳐 최근 구직활동을 하다 신변을 비관해 자살한 20대들의 소식이 신문 지면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현재 구직활동을 하고 있는 20대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편집자말]
경상대 취업면접경연대회 모습.
 경상대 취업면접경연대회 모습.
ⓒ 경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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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류전형도 통과 못하던 내게 찾아온 필기시험과 1차 역량평가의 기회. 다음 기회인 2차 역량평가를 치느냐 마느냐가 결정되는 순간이 곧 다가온다. 발표 1시간 전,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책도 눈에 안들어온다. 발표 30분 전, 아예 컴퓨터 앞에 앉아서 공지사항 페이지 새로고침만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드디어 발표. 합격자 수는 역시 적다. 이번 평가에서 가장 많이 떨어뜨린다더니, 그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믿고 싶지 않은 결과가 또 다시 나타났다. 그 명단 안에 내 수험번호는 없었다. 또다시 불합격. 쏟아지려는 눈물은 겨우 참아낼 수 있었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멍할 뿐.

백조 생활 1년 3개월, 현실의 벽을 실감하다

내 나이 25세. 오존학번이니 뭐니 하던 03학번. 고등학교에서 늘 듣던 '대학만 잘 가면 모든 게 다 해결된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 버린 바보, 정말 세상을 모르던 아이.

그래, 처음에는 다 해결될 줄 알았다. 토익 공부도 나중에 다 하면 될 것 같았고, 몇 번이나 재수강하고 학점 잘 받아야 한다고 교수님께 사정하는 사람들을 보면서는 '그냥 한 번 들으면 되지 꼭 저렇게 좋은 점수 받아야 하나' 이런 생각만 했다.

대학에서는 무엇보다 사람들 많이 만나는 게 최고라고 생각했기에 동아리 활동과 학생회 활동을 정말 열심히 했다. 그러면서 책이나 매체를 통해서만 접한 게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느끼게 되고, 그러다 보니 집회도 나가고… 여하튼 다른 이들보다 독특한 경험들을 많이 했고, 그게 내 자신의 아주 큰 재산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졸업과 동시에 그 재산은 쓰레기가 되어 버렸다. 졸업 후 나를 재는 잣대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 너무 달랐다. 학점이 3.0을 넘는가, 토익점수는 얼마나 되는가, 어떤 자격증을 갖고 있는가, 해외연수는 다녀왔는가, 공모전 수상경력은 얼마나 되는가 등등.

난 졸업하고 나서야 왜 사람들이 학점에 목을 매고, 교환학생이나 해외 인턴십 등을 가고 싶어하고, 공모전 팀원 모집 광고를 내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현실의 벽을 넘기 위해 그렇게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1년 3개월의 백조생활 속에서 겨우 그것을 직감한 나와는 다르게.

1년 3개월. 그저 토익 공부와 자격증에 매달리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던 나였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온갖 기업에 입사지원서를 넣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몇 군데서 연락이 왔다. 하지만 그것도 몇 번. 도대체 몇 개를 적었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 입사지원서. 그러나 내가 적은 그만큼의 입사지원서는 기업의 손을 거치자 아무 의미도 없는 휴지조각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캠퍼스까지 점령해 버린, 현실의 높은 벽

10월 중순, 서울 한 대학의 중앙도서관 풍경. 취업 준비에 중간고사까지 겹친 대학가 도서관은 날마다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기사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10월 중순, 서울 한 대학의 중앙도서관 풍경. 취업 준비에 중간고사까지 겹친 대학가 도서관은 날마다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기사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 송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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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도 식힐 겸 간만에 찾은 내 모교. 그곳에서 내가 활동했던 동아리 선후배들의 소식과 학교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들을 수 있었다. 들으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나처럼 현실감각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

내가 신입생일 때만 해도 도서관 열람실에서 같은 새내기를 찾기가 힘들었는데, 지금은 다른 학년보다 1학년들이 도서관 열람실에 가장 많다는 이야기. 그것도 전공수업 공부는 물론 토익책을 꺼내 공부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발견된다는 이야기. 영어 동아리나 과내 학술 동아리, 공모전 위주의 동아리에는 사람이 계속 늘어가는데, 그 외 동아리에는 등록만 해놓고 나오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이야기. 동아리 회장을 세워야 하는데 다들 공부한다고 하기 싫어해서 세울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 등등…. 정말 '나는 학교 다닐 때 뭐 했나' 싶을 정도의 이야기들이 내 귀와 머리를 망치로 때려댔다.

학교 곳곳에 있는 게시판에는 온갖 종류의 강좌 홍보 포스터가 빼곡이 붙어 있다. 토익 강좌, MOS 강좌, 각종 자격증 강좌, 공무원 시험 대비 강좌….

현실의 벽은 어느새 '진리의 상아탑'이라던 대학을 '취업을 위한 청년 양성소'로 바꿔 버렸다. 어디에도 인문학이나 사회 현상에 대해 침 튀기며 토론하는 곳은 없었다. 대신 그 자리를 취업 관련 강좌들이 고스란히 차지해 버렸다. 마치 그런 학문이나 사회 현상은 취업에 아무런 필요가 없다는 듯이.

날개를 접은 백조, 다시 날아오를 수 있기를

1년 9개월째 백수(청년실업자, 주로 남성)인 아들도 모자라 딸까지 백조(여성청년실업자)가 된 뒤로 어머니는 친구들과의 모임에 거의 나가지 않으신다. 모임 구성원 중 우리집에만 백수·백조가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가족들끼리 집에 모여서 식사를 하면 예전과 다르게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느낄 수 없다. 학교 다닐 때보다 줄어든 생활비 때문에 한 달 중 반 이상의 점심을 컵라면으로 때운 적도 있다. 길을 걸으면 모두 다 나를 비웃는 것 같다. 가끔은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언론에서는 연일 현재의 상황을 위기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화가 나면서 한편으로는 불안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취업 잘하는 주위 사람들을 보며 내 자신에게 화가 나고, 이러다 정말 몇 년 동안 백조로 사는 게 아닌가 싶어 불안하다.

1년 3개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이 시간 동안 '나'라는 백조 한 마리는 날개를 접고 물 위에 둥둥 떠 있었다. 내게 '취직'이라는 하늘은 그저 목을 쭉 빼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그 하늘을 날기 위해 날개를 열심히 움직여봐도 다시 물에 곤두박질쳐 버린다. 이제는 '날개를 펴고 날아야 한다'라는 생각까지 서서히 사라지고, 그냥 무감각해져 가고 있다. 과연, 난 다시 날개를 펼 수 있을까. 날개를 접은 백조, 다시 날아오를 수 있을까. 제발 언제, 어디라도 좋으니, 꼭 날개를 펴고 날 수 있기를. 다른 건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날아오를 수 있기를.

오늘도 소박하지만 잘 이루어지지 않는 이 소원을 가지고 하루를 마친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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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백조, #청년실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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