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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껏 사랑해줄 주인을 기다리는 기타들 일년 넘게 폐업 중인 대전 콜텍 공장에는 저렇게 주인을 찾고 있는 기타들이 가득했다. 폐업만 아니었으면 이미 누군가의 손에서 한가득 사랑을 받고 있을 그 기타들이 안쓰럽다.
▲ 마음껏 사랑해줄 주인을 기다리는 기타들 일년 넘게 폐업 중인 대전 콜텍 공장에는 저렇게 주인을 찾고 있는 기타들이 가득했다. 폐업만 아니었으면 이미 누군가의 손에서 한가득 사랑을 받고 있을 그 기타들이 안쓰럽다.
ⓒ 노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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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만약 무인도에 혼자 떨어져야 한다면 제일 가져가고 싶은 물건은?'

우스갯소리로 주고받곤 하는 이런 질문, 한두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그리고 내 답은 두말할 것 없이 언제나 '기타'였다.

기타? 잘 못 친다. 그럼에도 정말 좋아한다. 무인도에 혼자 떨어져도 기타랑 함께 있으면 그 시간들 외롭지않게 보낼 수 있겠다는 상상을 할 만큼. 기타는 나한테 그런 존재다.

기쁠 때 슬플 때 늘 곁에 있어주는, 어수룩한 실력 덕에 수도 없이 줄이 끊어져도 내 두드림을 받아주는, 친구 같은 존재. 그렇게 기타를 칠 때 그 소리는 내 웃음이었고 때론 내 눈물이었다. 물론 늦은 밤 그 친구를 그냥 두지 못하고 마구 쳐대는 바람에 이웃 사람들한테 몇 번 경고를 받기는 했지만.

이렇게 기타를 좋아하는 나지만, 한·번·도 기타 만드는 노동자들을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기타랑 함께 보낸 시간이 십년도 넘는데, 마치 밥을 먹으면서 나물을 먹으면서 그 쌀과  채소가 밥상에 올라오기 전에 어떤 '노동'이 있었는지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것처럼.

전자기타를 전문으로 만드는 콜트악기라는 회사가 있다. 인천에 공장이 있다. 통기타를 전문으로 만드는 콜텍이라는 회사도 있다. 대전에 공장이 있다. 이 두 회사는 박영호라는 한 사람 소유란다. 기타하면 '세고비아' 말고는 아는 게 없던 나한테 그 이름은 낯설었다.

알고 보니 주문제작(OEMO)으로 세계 기타 시장 점유율이 30%나 되는 아주 내실있는 회사였다. 그냥 그뿐이었으면 좋았을 걸, 낯선 그 이름 '콜트·콜텍'은 짧은 시간에 내 마음을 완전히 장악해 버렸다. 왜?

기타 만드는 노동자들이 더 궁금해 찾은 공장

양화대교 근처 송전탑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기타  지난 15일부터 양화대교 근처 송전탑에서는 콜텍 지회장이 고공 농성을 펼치고 있다. 송전탑 옆에는 이렇게 기타 모양을 한 선전물이 놓여 있다.
▲ 양화대교 근처 송전탑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기타 지난 15일부터 양화대교 근처 송전탑에서는 콜텍 지회장이 고공 농성을 펼치고 있다. 송전탑 옆에는 이렇게 기타 모양을 한 선전물이 놓여 있다.
ⓒ 조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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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 입에서 우연히 들었다. 콜트악기와 콜텍 노동자들이 박영호 사장의 무자비한 정리해고와 위장폐업과 노조탄압에 맞서 일터로 돌아가기 위한 투쟁을 긴 시간 벌이고 있다는 것을. 

그 이야기를 맨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그래요? 와~ 기타 만드는 노동자들이 있었군요, 어쩜 그건 생각조차 못했어요"하는 감탄사만 나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감탄사는 곧바로 지나친 호기심으로 이어졌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들이 싸우고 있다는 그 사실은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사건이었다. 궁금했다. 알고 싶었다. 싸움의 내용보다는 기타를 만드는 노동 , 그 자체에 대하여.

기회는 왔다. 10월 21일 열리는 '콜트·콜텍 위장폐업 철회와 원직복직을 위한 촛불문화제'를 준비하는 분과 인연이 닿은 것이다. 그 인연 덕에 나는 대전 계룡시에 있는 콜텍 공장 방문길에 동행하는 행운을 얻었다.

함께 가보자는 제안에 처음엔 망설였다. 일년 넘게 폐업중인 공장이라는데, 제 아무리 기타를 만드는 곳이라 해도 두려움이 앞섰다. 하물며 공장이라 이름붙인 곳엔 가본 적도 없는데. 하지만 그 두려움도 '기타를 만드는 노동'에 대한 내 궁금증을 이기지 못했다. 그래서 함께 떠났다. 3일 전인 10월 17일에 벌어진 일이었다.

서울에서 출발해 세 시간 넘게 걸려 도착한 대전 콜텍 공장. 산과 나무에 둘러싸인 첫 풍경은 아늑했다. 넓은 마당, 삼각형 모양의 독특한 공장 겉모습. 악기 만드는 곳답게 조금은 멋스러운 분위기까지 풍겼다. 매우 한적하고 아늑한 풍경에 '정말 싸우는 곳 맞아'하는 생각마저 들었으니. 공장 안에 들어가기까진 그렇게 다분히 낭만에 잠겨 있었다. 곧 닥쳐올 마음의 혼란은 짐작도 하지 못한 채.

기타 하나 만드는 데 이렇게 많은 과정이 필요하다니!

기타 속에 이런 비밀이… 기타 안을 단단히 보듬어 주는 부분을 꽉 붙이기 위해 저렇게 일일이 두꺼운 핀셋으로 고정시켜 놓았다. 저 작업만해도 얼마나 많은 손길이 필요한 것인지….
▲ 기타 속에 이런 비밀이… 기타 안을 단단히 보듬어 주는 부분을 꽉 붙이기 위해 저렇게 일일이 두꺼운 핀셋으로 고정시켜 놓았다. 저 작업만해도 얼마나 많은 손길이 필요한 것인지….
ⓒ 조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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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앞판을 가득 메운 본드 액 기타는 처음부터 한 몸뚱이가 아니었다. 앞판 뒤판 모두 따로 떨어져 있던 것을 저렇게 본드로 붙여야 한다. 기타 앞뒤판에 흘러내린 저 본드를 깨끗이 닦아내기 위해 또 얼마나 많은 노동이 필요했을까?
▲ 기타 앞판을 가득 메운 본드 액 기타는 처음부터 한 몸뚱이가 아니었다. 앞판 뒤판 모두 따로 떨어져 있던 것을 저렇게 본드로 붙여야 한다. 기타 앞뒤판에 흘러내린 저 본드를 깨끗이 닦아내기 위해 또 얼마나 많은 노동이 필요했을까?
ⓒ 조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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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기를 이기지 못해 망가져버린 기타 악기는 습도가 무척 중요하다. 기타도 물론! 하지만 일년 넘게 공장 안에 방치된 저 기타들은 저렇게 본체는 너덜너덜, 목 부분은 쭈글해져 버렸다. 애써 만든 기타가 망가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노동자들의 마음은 얼마나 아플까?
▲ 습기를 이기지 못해 망가져버린 기타 악기는 습도가 무척 중요하다. 기타도 물론! 하지만 일년 넘게 공장 안에 방치된 저 기타들은 저렇게 본체는 너덜너덜, 목 부분은 쭈글해져 버렸다. 애써 만든 기타가 망가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노동자들의 마음은 얼마나 아플까?
ⓒ 조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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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텍 노동자 분을 따라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캄캄했다. 일년 넘게 폐업 중이라 작업이 이뤄지지 않는 곳임에도 매캐한 공기가 가득했다. 처음엔 그런 것쯤 아무렇지도 않았다. 기타를 만드는 공장에 내가 들어와 있다니, 그 사실만으로도 감격스러웠다. '감탄'을 연발하며 인솔하는 분 말씀을 따라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기타 하나를 만들기 위해 이렇게 많은 과정이 필요하다니! 놀라웠다. 완성된 모습만 보아온 그 기타가 앞판·뒤판·목·머리 부분, 기타줄들이 따로 떨어져 있었다. 그렇게 서로 다른 모습으로 떨어져 있는 부분들이 기타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서는 본드 붙이기를 비롯해 정말 많은 과정들을 거쳐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기타 모양새를 갖춘 뒤에도 치러야 할 공정들이 너무 많았다. 나무 결 다듬기, 물과 왁스로 광내기, 줄 끼우기, 조율하기….

너무 많아 미처 다 기억하지 못할 정도다. 눈으로 보기만 한 게 아니었다. 각 과정들이 어떤 노동으로, 어떤 어려움으로 이뤄지는지 콜텍 노동자분의 자세하고도 애정어린 설명까지 더해진 시간들이었다.

기타 본체 더미 앞에서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완성되기 전 기타  기타 만드는 노동자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이 기타 본체 더미 앞에서 나는 주저 앉아 울고야 말았다.
▲ 완성되기 전 기타 기타 만드는 노동자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이 기타 본체 더미 앞에서 나는 주저 앉아 울고야 말았다.
ⓒ 조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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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 시간 넘게 공장 여기저기를 돌며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시간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순간, 다른 부속들을 기다리고 있는 뻥 뚫린 둥근 기타 통들이 가득 쌓여 있는 공간 앞에서 나도 모르게 펄썩 주저앉았다. 눈물이 났다. 이렇게나 많은 손과 땀이 모여서 기타가 만들어지는 거였다니.

그 노동을, 그 땀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으면서 입으로만 '나는 기타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고 떠들어 댔으니. 정말 부끄러웠다. 그리고 나한테 그리 열심히 공장 여기저기를 설명해 주시던 그 노동자분이 정말 아름답게 보였다. 진심으로 고마웠다. 당신의 그 소중한 노동이 있었기에, 십몇 년 동안 내 소중한 친구가 되어 준 기타를 만날 수 있었던 거니까.

부끄러움과 고마움이 수도 없이 오고가는 그런 마음을 안고 공장 안에서 유일하게 불이 켜져 있는 곳, 직원 식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식당 끝에는 작지만 알찬 무대가 있었다. 피아노·기타·신디사이저·드럼을 비롯해 음향 시설과 조명 장치까지 '제대로' 갖춰 있는 곳이었다.

콜텍 공장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박영호 사장이 이곳에서 밴드 연주 듣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연주를 들으며 '우리는 가족'임을 강조했다던 그 곳에는 음악도 사람도 없이 먼지가 가득 덮인 악기만 놓여 있었다.

직원 식당에 자리한 아담한 무대 대전 콜텍 공장 직원 식당에는 직원들을 위한 아담한 무대가 있다. 악기에도 바닥에도 먼지만 가득한 저 곳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 직원 식당에 자리한 아담한 무대 대전 콜텍 공장 직원 식당에는 직원들을 위한 아담한 무대가 있다. 악기에도 바닥에도 먼지만 가득한 저 곳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 노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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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도 켜있지 않은 그 무대 위에 올라가 구석 자리에 놓인 기타를 들었다. 다행히 여섯 줄이 제대로 감긴 상태. 덩그러니 놓여있는 악보 대 위에 있는 종이 한 장을 꺼내보았다. 오래 전에 참 좋아했던 노래, 이치현의 '사랑의 슬픔'이다. 음을 낮추기 위해 악보 위에 볼펜으로 기타 코드를 바꿔 놓은 글자가 보인다. 여자 키에 맞추기 위해 그랬을까?

기타 줄이 맞는지 어떤지 살필 겨를도 없이 살포시 뜯어본다. 기타 소리가 탁한 것이 기타를 만진 지 꽤 오래 된 것 같다. 이 기타를 뜯던 손은, 가운데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던 저 드럼을 두드리던 손은, 구석 자리를 지키고 있는 피아노를 치던 손은, 지금 모두 어디로 갔을까? 예쁘장하게 생긴 그 작은 무대가, 거기에 놓인 먼지로 덮인 악기들이 너무 아깝고 안타깝기만 했다.      

30년도 넘은 이야기가 내 앞에서 재현되다니!

창문이 없는 기타 만드는 공장 콜텍 공장에는 창문이 하나도 없다. 노동자들이 잠시라도 한 눈 파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라고.
▲ 창문이 없는 기타 만드는 공장 콜텍 공장에는 창문이 하나도 없다. 노동자들이 잠시라도 한 눈 파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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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감정들에 휩싸여 두 시간 넘게 콜텍 공장을 돌아보던 난, 어쩔 수 없이 공장 바깥으로 나와야만 했는데. 그건 부끄러움에 사무쳐서도, 긴 시간 참았던 담배를 피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오로지 공장 안 공기가 견디기 너무 힘이 들어서였다.

회사의 일방적인 폐업으로 공장 가동이 멈춘 지 일년도 넘었건만 나한테는 두 시간도 버티기 힘들 만큼 공기가 안 좋았다. 알고 보니 공장 안에는 창문이 없었다. 오후 세시 쯤 도착한 그곳이었건만 그렇게 안이 어두웠던 것도 모두 그 때문이었다. 공장에 창문이 없다는 것, 그건 무엇을 뜻할까?

"비가 오면 비 보느라고, 눈이 오면 눈이 온다고 창밖을 볼 거 아니에요. 잠시라도 딴 눈 파는 걸 못하게 하는 거죠. 어디 그 뿐인가요. 집에서 가져 온 커피믹스 타먹는 것도 눈치봐야 해요. 그나마 노동조합이 생기면서 오전, 오후 15분씩 쉬는 시간이 생겼죠. 그전엔 남자들은 담배도 화장실에서 몰래 피워야 했는 걸요."

공장 안을 소개해주던 분이 해주신 말씀이었다. 문득 전태일이 떠올랐다. 글로만 만났던  청계피복 노동자들의 노동 현장이 생각났다. 이럴 수가. 30년도 넘은 이야기가, 마치 영화처럼, 하지만 생생한 현실로 내 앞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멈춘 지 일년도 넘은 공장, 떠도는 것은 먼지뿐일텐데, 그 곳에서 '단순히 구경'하는 것 뿐인데도 두 시간을 버티기가 나는 너무나 힘들었다. 두 번째 절망이고 부끄러움이었다.

'생산직 노동자들의 40%가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고, 59%는 유기용제 노출로 인한 직업병이 의심되며, 36%는 기관지 천식, 40%는 만성기관지염으로 나타났다'는 콜트악기 노동자들의 건강 상태를 조사한 자료가 헛말이 아니라는 걸, 그 짧은 시간에 온몸으로 느껴야만 했다. 

너무 높아 고개를 아무리 젖혀도 농성자들은 보이지 않고

송전탑에서 농성중인 콜텍 노동자들  콜트악기?콜텍은 지난 15일부터 서울 양화대교 근처에 있는 100m 높이 송전탑에서 '장기 투쟁 사업장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고공시위에 들어갔다.
▲ 송전탑에서 농성중인 콜텍 노동자들 콜트악기?콜텍은 지난 15일부터 서울 양화대교 근처에 있는 100m 높이 송전탑에서 '장기 투쟁 사업장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고공시위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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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트악기·콜텍은 지난 15일부터 서울 양화대교 근처에 있는 100m 높이 송전탑에서 '장기 투쟁 사업장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고공시위에 들어갔다. 자전거를 타고 한번씩 가벼운 마음으로 달렸던 그곳, 오늘은 다분히 무거운 마음을 안고 역시나 자전거를 타고 가보았다.

고압 전기가 흘러 위험하다는 그곳에는 하이텍 알시디 지회장, 콜텍 지회장 두 분이 올라가 계신다. 너무 높아서 고개를 아무리 뒤로 젖혀도 그분들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쭈뼛쭈뼛 송전탑 밑에 설치된 천막 근처로 가니 다행스럽게도 콜텍 공장을 소개해 준 조합원 언니가 계신다.

아는 얼굴이 왔다고, 때마침 밥시간이라고, 밥까지 챙겨주신다. 취사 금지 구역이라 멀리 대전 콜텍 공장에서 지어서 가져왔다는 그 땀 어린 밥을 염치없이 얻어먹던 그 순간, '기타'와 '기타 만드는 노동자'가 하나로 겹쳐진다.

천억 원대 재산가, 콜트악기·콜텍 사장이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과 각종 산업재해에 시달리면서도 묵묵히 회사를 지켜온 기타 만드는 노동자들을 정리해고 하고, 국내 공장을 모두 폐쇄하는 방식으로 노동자들을, 노동조합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있는 이 현실. 그 현실을 깨쳐나가기 위해 고압 송전탑 위에 올라가 있는, 멀리 대전에서 올라와 수많은 모기에 뜯기면서 밤을 지새우고 있는 노동자들.

목숨이 위험한 송전탑 투쟁 감전 사망과 추락 위험이 모두 도사리고 있는 송전탑 고공 농성.
▲ 목숨이 위험한 송전탑 투쟁 감전 사망과 추락 위험이 모두 도사리고 있는 송전탑 고공 농성.
ⓒ 조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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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현실과 그 노동자들을 외면하고서는 '기타를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더는 할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오늘(10월 21일) 오후 6시 청계광장에서 열리는 '콜트·콜텍 위장폐업 철회 및 노동권 쟁취를 위한 문화제'에 내 사랑하는, 하나뿐인 '기타'를 들고 혼자 찾아가 보련다. 비록 콜트·콜텍 제품은 아니지만, 기타 만드는 어느 노동자의 땀이 가득 서려 있을 그 기타를 들고.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아옌데 정부가 무너지던 1973년 9월, 역시나 쿠데타군의 기관총에 처형당한 칠레의 대표 민중가수 빅토르 하라(Victor Jara, 1935-1973)는 '선언'이라는 노래에서 기타를 이렇게 노래했다.

내가 노래하는 건 노래를 좋아하거나/ 좋은 목소리를 갖고 있어서가 아니지/ 기타도 감정과 이성을 갖고 있기에/ 난 노래 부르네/ 내 기타는 대지의 심장과/ 비둘기의 날개를 갖고 있어/ 마치 성수와 같아/ 기쁨과 슬픔을 축복하지/ 여기서 내 노래는 고귀해지네/ 비올레따가 말한 것처럼/ 봄의 향기를 품고/ 열심히 노동하는, 기타 

내가, 그리고 나보다 훨씬 더 기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둘러메고 가는 그 기타가 '소리'로 '귀'를 즐겁게 해주는 그런 존재를 넘어 빅토르 하라가 노래한 바로 그 '열심히 노동하는 기타'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우리는, 부끄럼 없이 '기타를 정말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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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기타 치며 노래하기를 좋아해요. 자연, 문화, 예술, 여성, 노동에 관심이 있습니다. 산골살이 작은 행복을 담은 책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를 펴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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