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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슬슬 불 때면 잃어버린 옛사랑처럼 간절하게 떠오르는 가을 아욱국
▲ 아욱국 찬바람이 슬슬 불 때면 잃어버린 옛사랑처럼 간절하게 떠오르는 가을 아욱국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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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다림 시름시름 시들어가는 시월
동원시장 노점상 아낙네 한숨으로 떠돌다가
천 원짜리 아욱 한 다발 산다
아욱국 자주 끓여 먹으면
속살 부드러워져 기분이 너무 좋다던
그 여자 도톰한 입술 떠올리며  
아욱을 빤다, 내 마음을 빤다 
뻣뻣하던 잎 이내 나른하게 풀어지고
그 여자 마음에 들어앉을 즈음
아욱국이 제 홀로 뽀글뽀글 끓는다
후루룩 쩝쩝 후루룩 쩝쩝  
그 여자 혀처럼 미끌거리는 아욱국
차암~ 맛이 너무 좋아
그리움 앓을 때마다 아욱을 빤다
원룸에 쪼그리고 앉아 옛사랑을 먹는다  

- 이소리, '아욱국' 모두

날씨가 제법 쌀쌀해지면서 몸과 마음을 포근하게 데워주는 따스한 음식이 그리워지는 때다. 지난 여름 땡볕에 몹시 지친 몸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어주는 음식, 일교차 땜에 불쑥 찾아든 불청객 감기를 뚝 그치게 하는 음식, 쓸쓸한 가을날 마음을 포근하게 어루만져주는 그런 따끈따끈한 음식은 없을까.      

시월 이맘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이 구수한 아욱국이다. 된장을 풀어 끓이는 아욱국은 예로부터 '아욱국 3년 먹으면 외짝문으로 못 드나든다', '며느리 마실 간 사이 방문 걸어놓고 먹는다', '가을 아욱국은 사위에게만 준다'라는 속담이 여럿 있을 정도로 건강에도 아주 좋고 맛도 뛰어난 음식이다.   

가을 아욱은 특히 1년 중 영양가가 가장 많아 그 맛이 더욱 좋다. 값도 싸다. 가까운 시장에 나가면 3~4인 가족이 한 끼 먹을 수 있는 아욱 한 다발을 천 원짜리 한 장에 쉬이 살 수 있다. 조리하기도 그리 어렵지 않다. 아욱껍질을 벗긴 뒤 소금을 뿌려 치댄 뒤 냄비에 된장을 풀고 새우와 갖은 양념을 넣어 끓이기만 하면 그만이다.

"아욱은 기를 북돋워주고, 맥을 고르게 하며, 유즙(乳汁)분비를 잘되게 한다"
▲ 아욱국 "아욱은 기를 북돋워주고, 맥을 고르게 하며, 유즙(乳汁)분비를 잘되게 한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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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가 되가꼬 사위가 왔는데 된장국이 대체 뭐꼬?"

"니 퍼뜩 뒷마당 밭에 가서 아욱잎 한 소쿠리 따온나."
"뭐 할라꼬예?"
"아, 너거 서방 멕일라꼬 그라지. 너거 서방 얼굴 본께네 비쩍 마른 기 참말로 못 봐 주것구마."
"그라모 씨암탉이라도 한 마리 잡아줄 일이지, 풀이파리 그거 쪼매(조금) 멕이가꼬 머슨(무슨) 힘이 나것노?"

1960년대 중반. 길라잡이(나)가 초등학교에 막 입학한 그해 가을 이맘때, 마산으로 시집을 간 이웃집 누님이 남편과 함께 오랜만에 친정나들이를 했다. 그때 우리 마을에서도 사위가 처가에 오면 앞마당에서 모이를 콕콕콕 쪼아 먹던 살이 통통 오른 씨암탉 한 마리 잡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하지만 이웃집 어머니는 주말을 맞아 가을걷이를 돕기 위해 처가를 찾은 사위에게 씨암탉을 잡아주지 않고, 우리 마을 곳곳에 잡풀처럼 흔하게 자라고 있는 아욱잎을 따서 된장국을 끓여주었다. 그렇다고 그 집에 씨암탉을 키우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 때문에 이웃집 누님이 친정어머니에게 꽤 쌀쌀맞게 대들었다.  
     
"장모가 되가꼬 사위가 왔는데 된장국이 대체 뭐꼬? 저기 마당에 흔해 빠진 기 씨암탉인데, 그거 한 마리 잡는 기 그리도 아깝나?"
"야(얘)가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모양이네. 내가 씨암탉 한 마리 잡는 기 아까워서 백년손님이라는 사위한테 아욱된장국이나 끓여주고 있는 줄 아나?"

"그라모 와 그라는데?"
"니 서방은 열 체질이라 씨암탉보다 아욱국 이기 최고라카이. 오서방! 장모가 끓여주는 아욱국 맛이 우떻노?"
"한 그릇 더 주이소. 술술 그냥 넘어가는 기 맛이 기가 막힙니더."
"우리 사위 아욱국 저리 먹다 가을바람 날라."

아욱을 줄기를 톡톡 부러뜨려가며 껍질을 벗긴다
▲ 아욱국 아욱을 줄기를 톡톡 부러뜨려가며 껍질을 벗긴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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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붓고 잎사귀가 흐물거릴 때까지 바락바락 씻어 물기를 꼭 짠다
▲ 아욱국 물을 붓고 잎사귀가 흐물거릴 때까지 바락바락 씻어 물기를 꼭 짠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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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이 없다면 아욱을 먹지 마라

아욱은 여러 가지 영양가가 골고루 들어 있어 중국에서는 오채(五菜, 아욱, 콩잎, 부추, 염교(달래과 식물), 파) 중 으뜸으로 여겼던 채소이다. 네이버 백과사전에 따르면 아욱은 "한방에서 종자를 동규자(冬葵子) 또는 규자라 하여 분비나 배설을 원활하게 하는 약재로 사용한다. 유럽 북부가 원산이며 한국을 비롯한 북부 온대에서 아열대에 걸쳐 분포한다"고 나와 있다.

한의학에도 "아욱은 기를 북돋워주고, 맥을 고르게 하며, 유즙(乳汁)분비를 잘되게 한다"고 나와 있다. 이와 함께 "뼈를 튼튼하게 하며, 오장육부를 잘 다스리고, 열을 없애주며, 신장의 기능을 튼튼하게 하는 효능이 있어 변비, 피부발진, 주독을 풀어 주는데 사용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한의학에서 동규근(冬葵根), 동규엽((冬葵葉)이라 불리는 아욱 뿌리와 아욱잎도 뛰어난 약효를 지니고 있다. 아욱 뿌리는 피부의 악창과 임질, 당뇨, 기침, 여성, 대하 등을 치료하고, 독충에 물린 상처를 치료하며, 사람들이 국이나 나물, 쌈으로 먹는 아욱잎은 황달, 대소변 장애 등을 치료할 때 쓰인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조심할 점도 있다. 중국 명나라 때 본초학자 이시진(1518∼1593)이 엮은 약학서 <본초강목>에는 "아욱을 먹으려면 모름지기 마늘이 함께 있어야 한다. 만약에 마늘이 없다면 아욱을 먹지 말아야 한다"고 씌어져 있다. 이는 아무리 우리 몸에 좋은 음식도 음식궁합이 맞지 않으면 독이 될 수도 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매콤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갖은 양념을 할 때 매운 고추를 송송 썰어 넣으면 국물에서 매콤하게 톡 쏘는 맛이 군침을 돌게 한다
▲ 아욱국 매콤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갖은 양념을 할 때 매운 고추를 송송 썰어 넣으면 국물에서 매콤하게 톡 쏘는 맛이 군침을 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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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비에 쌀뜨물을 붓고 아욱잎을 넣은 뒤 마른 보리새우와 갖은 양념(마늘, 파, 양파, 고추, 간장)을 넣고 센 불에 보글보글 끓여 집간장으로 간을 맞추면 끝
▲ 아욱국 냄비에 쌀뜨물을 붓고 아욱잎을 넣은 뒤 마른 보리새우와 갖은 양념(마늘, 파, 양파, 고추, 간장)을 넣고 센 불에 보글보글 끓여 집간장으로 간을 맞추면 끝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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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그대로 약이 되는 가을 아욱국

"아욱 이거 한 묶음에 얼마죠?"
"1단에 천원, 3단에 2천원입니다. 3단 드릴까요?"
"아니, 1단만 주세요. 혼자 살거든요."
"아욱 하면 가을 아욱이 최고지요. 자~ 여깄어요. 맛있게 드시고 또 사러 오세요."

10월19일(일) 저녁 8시. 먹는 그대로 약이 된다는 가을 아욱국을 끓이기 위해 중랑구 면목동에 있는 동원시장에 나가 아욱 천원 어치를 샀다. 시월 들어 행사가 너무 많아 주말마다 한 번도 쉬지 못한 탓인지 영 기운이 없고 입맛마저 떨어져 오늘 저녁은 또 뭘로 때울까 고민하던 중에 갑자기 아욱국이 어른거렸기 때문이었다.  

아욱국은 길라잡이가 술을 많이 마신 그 다음 날 속풀이용 해장국으로 즐겨 먹는 음식 중 하나이다. 특히 요즈음처럼 물가가 비쌀 때 천 원짜리 한 장으로 손쉽게 조리해 먹을 수 있는 해장국은 그다지 흔치 않다. 게다가 길라잡이는 술을 아주 좋아하는 편인데다 열까지 많은 체질이어서 차거운 성질을 지닌 아욱국이 궁합에 꼭 맞다.

까닭에 길라잡이는 술을 많이 마셔 속이 쓰릴 때나, 까닭 없이 몸이 나른할 때면 아욱국을 즐겨 끓인다. 된장을 풀고 새우와 갖은 양념을 넣어 센 불에 끓인 아욱국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하얀 쌀밥을 말아 한 수저 떠는 순간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그 수저 위에 묵은지나 깻잎조림을 척척 걸쳐 입에 넣으면 씹을 틈도 없이 술술 넘어가면서 속까지 후련하게 풀리기 때문이다.   

마른 보리새우가 없다면 멸치 맛국물에 된장을 풀어 아욱국을 끓여도 구수한 맛이 참 좋다
▲ 아욱국 마른 보리새우가 없다면 멸치 맛국물에 된장을 풀어 아욱국을 끓여도 구수한 맛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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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아욱국 한 그릇이면 열 해장국 부럽지 않다

그날 길라잡이는 동원시장에서 산 아욱을 줄기를 톡톡 부러뜨려가며 껍질을 벗긴 뒤 식초를 약간 뿌린 물에 30분 동안 담아 두었다. 아욱은 습기가 조금만 있는 곳이라면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 농약을 거의 치지 않지만 식초 몇 방울 떨어뜨린 물에 담아 놓아야 행여나 있을 지도 모를 병해충을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욱국을 만드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먼저 아욱의 껍질을 벗겨 양푼에 담아 소금을 뿌린 뒤 물을 붓고 잎사귀가 흐물거릴 때까지 바락바락 씻어 물기를 꼭 짠다. 그래야 풋내가 나지 않는다. 그 다음 냄비에 쌀뜨물을 붓고 아욱잎을 넣은 뒤 마른 보리새우와 갖은 양념(마늘, 파, 양파, 고추, 간장)을 넣고 센 불에 보글보글 끓여 집간장으로 간을 맞추면 끝.      

만약 집에 마른 보리새우가 없다면 멸치 맛국물에 된장을 풀어 아욱국을 끓여도 구수한 맛이 참 좋다. 특히 매콤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갖은 양념을 할 때 매운 고추를 송송 썰어 넣으면 국물에서 매콤하게 톡 쏘는 맛이 군침을 돌게 한다. 아욱국은 먹을 때 미끌미끌하게 씹히는 아욱잎과 줄기에서 나는 향도 참 은근하다.

아욱국을 먹을 때는 밑반찬도 별로 필요치 않다. 묵은지 하나만 있어도 밥 한 그릇 게눈 감추듯 뚝딱 비울 수 있다. 길라잡이는 그날 구수한 내음 풍기는 아욱국에 고춧가루를 약간 뿌려 묵은지와 함께 후루룩 쩝쩝 후루룩 쩝쩝 소리를 내어가며 먹었다. 씹을 틈도 없이 부드럽게 술술 넘어가는 아욱국 속에 떠오르는 아픈 사랑 하나 떠올리며.     

아욱국은 먹을 때 미끌미끌하게 씹히는 아욱잎과 줄기에서 나는 향도 참 은근하다
▲ 아욱국 아욱국은 먹을 때 미끌미끌하게 씹히는 아욱잎과 줄기에서 나는 향도 참 은근하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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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슬슬 불 때면 잃어버린 옛사랑처럼 간절하게 떠오르는 가을 아욱국. 시인 윤재걸(61·언론인) 선배와 여러 문인들이 시인 고은 선생 댁에서 밤새도록 술을 마신 뒤 아침 해장국으로 즐겨 먹었다는 가을 아욱국. 길라잡이는 아욱국 위에 '가을 아욱국 한 그릇이면 열 해장국 부럽지 않다'는 글을 남긴다. 


태그:#가을 아욱국, #동원시장, #우리 사위 아욱국 먹고 바람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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