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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과 양양을 잇는 56번 국도에서 구룡령을 만날 수 있습니다.
▲ 1,013m 구룡령 옛길 정상 표지석 홍천과 양양을 잇는 56번 국도에서 구룡령을 만날 수 있습니다.
ⓒ 문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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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과 양양의 경계에 있는 1,013m 구룡령 정상. 구룡령은 백두대간 중 하나입니다. 북으로는 갈전곡봉과 조침령으로 이어지고, 남으로는 응봉산과 오대산으로 이어집니다. 단풍시즌 북적거림이 가득할 구룡령 정상의 휴게소는 더없이 한산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영업을 하지 않는지 휴게소 입구에는 차단봉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고개를 넘던 사람들이 잠시 쉬어가던 휴게소는 생기를 잃은 지 오래된 듯합니다. 필요에 의해 생겼다가도 금세 사라지는 것들, 저 대관령과 미시령의 애틋함이 담긴 휴게소를 보는 것 같아 애잔해집니다.  휴게소 뒤편으로 이어지는 산세의 붉은 기운만이 화려한 옛 명성을 보듬고 있습니다.

구룡령 정상에서 약 10분 정도 오르면 편안한 오솔길이 이어집니다.
▲ 편안한 오솔길로 이어지는 구룡령 옛길 구룡령 정상에서 약 10분 정도 오르면 편안한 오솔길이 이어집니다.
ⓒ 문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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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령 옛길을 가기 위해서는 구룡령 정상에서 홍천방면으로 조금 내려오다 보면 만나는 가파른 나무계단을 올라야 합니다. 나무계단을 올라 숲의 터널로 들어서면 단풍나무와 참나무를 위시해 가을옷을 갈아입은 나무들이 반갑게 다가옵니다.

가파른 길을 따라 10분도 채 안되어 금세 평탄한 길이 나오고, 가쁜 숨을 돌리며 편안한 산책을 즐기듯 걸을 수 있습니다. 조붓한 오솔길을 따라 낮게 깔린 산죽도 만나고, 산짐승이라도 튀어 나올 것 같은 아름드리나무 밑동의 굴도 만납니다.

단풍나무의 붉은 기운과 참나무의 갈색기운, 다릅나무의 노란기운들이 숲 사이로 간간히 비치는 푸른 하늘을 배경삼아 물감을 풀어놓은 듯합니다. 오른 지 30분도 채 안되어 구룡령 옛길 정상의 널찍한 공간에 이릅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단풍의 붉은 느낌이 가득한 길입니다.
▲ 단풍이 붉게 물든 구룡령 옛길...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단풍의 붉은 느낌이 가득한 길입니다.
ⓒ 문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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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령 옛길은 양양과 홍천을 연결하던 길이었습니다. 영동과 영서를 잇는 이 길로 수많은 사람들이 넘나들었습니다. 영동과 영서의 특산물들을 짊어지고 상인들이 넘기도 했고, 한양에 과거를 보러가기 위해 선비들도 넘었으며, 혼인을 위해  신랑을 태운 노새가, 신부를 태운 가마가 넘었을 그 길입니다.

양양, 속초, 고성을 잇는 한계령, 미시령, 진부령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탄한 길이어서 주로 이용되었다고 합니다. '아홉 마리의 용이 고개를 구불구불 넘어가 갈천약수에서 목을 축이고 지났다'해서 구룡령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전해집니다. 죽령 옛길, 문경의 토끼비리, 문경새재 등 4곳의 옛길이 명승으로 지정되었는데, 구룡령 옛길은 명승 2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숲과 단풍과 낙엽이 어울어진 가을만끽의 멋진 길입니다.
▲ 아름다워 걷고만 싶은 구룡령 옛길 숲과 단풍과 낙엽이 어울어진 가을만끽의 멋진 길입니다.
ⓒ 문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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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령 옛길 정상에는 구룡령에서 오던 길과 백두대간인 조침령으로 가는 길, 명개리와 갈천리로 가는 길로 이정표가 세워져 있습니다. 갈천리로 가는 길은 문화재청이 지정한 명승으로 약 2.8km가 이어져 있고, 명개리로 가는 길은 옛길의 흔적을 잃고, 숲만 무성한 채로 남아 있습니다.

구룡령 옛길을 따라 하산하는 길은 내려가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산행하는 사람들이 줄지어 내려가는 모습이 저 아래까지 겹쳐 보일 정도로 갈지자로 내리막길이 이어집니다. 아홉 마리 용이 굽이굽이 따라 내려갔던 길일까요?

길이 적당히 휘고 구불구불 이어지다가도 갑자기 솟구쳐 올라 내려가기도 합니다. 모나지 않고 숲과 어울린 오솔길은 자연 그대로의 자연입니다. 오솔길은 용의 둥근 몸통이 지난 간 것처럼 오목 들어가 있으니 그 오래 전 이 길을 따라 내려갔던 용을 찾아가는 길일 것만도 같습니다. 아마도 갈천약수에서는 목을 축이고 있는 용을 만날지도...

구룡령 옛길의 단풍은 화사하진 않지만 오붓한 느낌이 가득합니다.
▲ 형형색색의 단풍이 눈을 즐겁게 해줍니다. 구룡령 옛길의 단풍은 화사하진 않지만 오붓한 느낌이 가득합니다.
ⓒ 문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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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령 옛길 정상에서 얼마 안 가 횟돌반쟁이라는 곳을 만납니다. 내려갈 때야 큰 어려움이 없었겠지만, 올라올 때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자주 쉬었을 겁니다. 횟돌반쟁이 역시 구룡령 정상으로 향했던 힘겨운 걸음을 잠시 쉬어갔던 곳입니다.

예전부터 전해오는 양양의 매장 문화 가운데 나무뿌리가 관을 파고들지 못하게 하기 위해 하관시 횟돌을 불에 구워 가루를 내 섞어 쓰게 되었는데, 그 횟돌이 이 주변에 많이 있었다고 하여 붙은 지명입니다.

인적이 드문 옛길에 쌓인 낙엽길을 걷는 느낌을 어디다 비할까요?
▲ 수북히 쌓인 알록달록한 낙엽길 인적이 드문 옛길에 쌓인 낙엽길을 걷는 느낌을 어디다 비할까요?
ⓒ 문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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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둑 투두둑' 하늘에서 갑자기 침묵을 깨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립니다. 바람 한 점이 머물 때마다 가지에 달린 마른 잎들이 떨어지는 소리였습니다. 힘겹게 지탱하며 가지를 붙들고 있던 잎들이 떨어지면서 이 가지 저 가지에 부딪치면서 내려오는 소리입니다.

흩날리듯 떨어지는 마른 낙엽의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눈이 내리는 듯한 풍경을 자아냅니다. 낙엽들은 또다시 숲길 위로 차곡차곡 쌓입니다. 두툼한 이불이 되기도 하고, 푹신푹신한 침대도 되며, 누군가 정성스럽게 짠 양탄자도 됩니다. 마른 잎들이 만들어내는 바스락 바스락 거리는 길 위로 한 해의 생명을 다한 잎들의 마지막 진한 여운이 길게 이어집니다.

구룡령의 금강송은 경복궁 복원 때 쓰였습니다.
▲ 두 명이서 맞잡아야 할만큼 우람한 소나무 밑동 구룡령의 금강송은 경복궁 복원 때 쓰였습니다.
ⓒ 문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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횟돌반쟁이에서 솔반쟁이에 이르는 약 1km 남짓 되는 구간은 가장 아름다운 숲길입니다. 아름드리 나무와 잡목들 사이로 단풍의 색감이 유난히 요란스럽기도 하고, 아직 채 단풍이 들지 않은 나무들과 뒤섞여 묘한 대조를 이루기도 합니다.

유난히 푹신거리는 낙엽들이 길을 점령합니다. 수북이 쌓인 낙엽 속으로 나 있는 길은 길인지 아닌지도 구분이 쉽지 않습니다. 그저 흔적만으로 따라 내려가는 그런 길입니다. 두 사람이 맞잡아야 잡힐 듯 커다란 나무의 밑동이 잘린 흔적도 자주 만납니다.

이곳의 금강송은 1986년 경복궁 복원 때 쓰였다 하는데, 바로 그 흔적인 듯합니다. 이름도 예쁜 솔반쟁이는 구룡령 옛길의 딱 절반으로 소나무가 많아서 붙은 지명입니다.

수령을 들쳐업고 뛰어간 양양의 청년의 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구룡령 옛길에 있는 묘반쟁이 수령을 들쳐업고 뛰어간 양양의 청년의 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문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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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반쟁이에서 묘반쟁이 구간은 0.2km 정도로 금세 이릅니다. 옛날 홍천과 양양의 수령이 각각 만나는 지점에서 고을의 경계를 정하자고 내기를 했는데, 양양의 건장한 청년이 수령을 들쳐 업고 홍천의 명개리에서 홍천의 수령을 만나 경계를 정하게 되었는데, 돌아오는 길에 너무 지친 청년은 그만 죽게 되고, 그 공적을 기려 묘를 만들었다고 전해지는데 이곳이 묘반쟁이입니다.

전해오는 이야기를 뒷받침 하듯 묘반쟁이 표지판을 지나면 길 옆에 묘지 하나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철광석을 반출하기 위해 만들었던 삭도길도 남아 있어 수탈의 쓰디 쓴 역사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구룡령 옛길에는 하늘로 치솟은 금강송의 우람하고 위엄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수 백년된 금강송이 듬직하게 서 있습니다. 구룡령 옛길에는 하늘로 치솟은 금강송의 우람하고 위엄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문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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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반쟁이에서 시작되는 하산길은 경외감이 절로 드는 길입니다. 뿌리를 드러내놓고 건재함을 과시하는 고목도 있고, 태풍으로 쓰러져 누워버린 나무들도 만납니다. 오솔길을 가로질러 보란 듯이 누워버린 세 그루의 큰 나무를 지날 때면 어김없이 고개를 숙이고 지나야 합니다. 마치 신성한 나무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는 예를 갖추라는 듯...

수백 년을 살아온 아름드리 금강 소나무들이 지나는 길손들을 맞이합니다. 수 백년된 금강송들은 철갑옷을 입고 있는 위엄 있는 장수의 모습이기도 하고, 흰 도포에 단아한 모습을 하고 있는 신선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떡 하니 언덕 위에 자리한 금강소나무는 수령만도 500여 년인데다 하늘을 찌를 듯한 높이에 가지들이 사방으로 뻗쳐 있어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외경심이 절로 듭니다. '보란 듯이 잘 살아줘서 고맙다'며 어루만지는 한 분의 말씀이 참 정겹습니다.

구룡령 옛길 정상에서 내려오면 시원한 계곡을 만날 수 있습니다.
▲ 구룡령 옛길 끝자락인 갈천리에서 만나는 계곡 구룡령 옛길 정상에서 내려오면 시원한 계곡을 만날 수 있습니다.
ⓒ 문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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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반쟁이를 지나 1km정도를 내려오다 보면 계곡 물소리가 청정하게 들립니다. 힘들게 내려온 길도 아닌데 계곡을 보니 그저 반갑습니다. 바위 위에 걸터앉아 흐르는 물줄기 소리도 들어보고, 물속에 발도 담그며 쉬어가기 좋은 곳입니다.

계곡을 건너 돌아 나오는 길... 건너편 우람한 산세가 하늘을 가릴 듯 서 있습니다. 고즈넉한 오솔길 위로 낙엽을 맘껏 즈려 밟아보고, 숲속에서 느껴보는 단풍의 눈요기도 꼬박 챙기느라 3시간이 넘는 시간이 걸렸어도 전혀 지루함을 느낄 수 없는 산책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숲 사이로 느슨하게 늘어져 올라가는 옛길의 흔적들이 눈 속으로 사무쳐 들어옵니다. 나중에라도 다시 한 번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그저 간절하기만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바실리카(열린공론장)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구룡령옛길, #구룡령, #가을,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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