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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지면서 전어 맛 또한 한층 더 깊어지고 있다
▲ 전어회덮밥 가을이 깊어지면서 전어 맛 또한 한층 더 깊어지고 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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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선이 전어라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오죽 가을 전어맛이 고소하고 건강에 좋았으면 길라잡이와 가까운 벗 한 명은 가을만 되면 전화를 걸어 너스레를 떤다. "지금 전어를 먹지 못하면 겨울철 내내 후회한다. 가을전어를 먹어야 땡겨울 추위와 내년 여름 무더위까지 이길 수 있다"고.

가을이 깊어지면서 전어 맛 또한 한층 더 깊어지고 있다. 전어는 찬바람이 슬슬 부는 9월 중순부터 낙엽이 투둑투둑 지는 11월초까지가 가장 맛이 좋다. 왜냐하면 전어는 이때가 되어야 살이 오르고 속이 꽉 차기 때문이다. 전어는 아침에 일어날 때 손발이 자주 붓고 소화가 잘 되지 않는 50대 이후 장년에게 매우 좋은 생선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을전어 하면 회를 쳐서 먹거나 굵은 소금을 뿌려 석쇠에 구워먹는 생선쯤으로만 여긴다. 하지만 그것은 전어에 대한 실례다. 전어는 초밥, 찜, 무침 등으로 먹어도 그 맛이 끝내준다. 특히 전어 속에 든 내장으로 담근 전어젓은 젓갈 중 으뜸으로 칠 정도로 맛이 기막히다.   

전어에 얽힌 속담도 많다. '전어 한 마리가 햅쌀밥 열 그릇 죽인다',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 돌아온다', '가을 전어는 며느리가 친정 간 사이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문 걸어놓고 먹는다', '전어 머리속에는 깨가 서 말', '죽을 결심을 하고 강둑에 오른 사람이 전어 굽는 냄새를 맡고 자살을 포기한다' 등등.

전어는 고혈압과 우울증 등 건강에도 그만이다
▲ 전어회덮밥 전어는 고혈압과 우울증 등 건강에도 그만이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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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에서 자랑하는 가을 대표음식이 바지락국과 함께 나온다
▲ 전어회무침 이 집에서 자랑하는 가을 대표음식이 바지락국과 함께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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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 없이 불안 초조한 사람들은 전어 뼈째 먹어야

전라도 지역에서 '귀한 새서방에게만 준다'고 해서 '새서방고기'라고도 불리는 전어. 전어는 물론 회로 먹거나 구워서 먹어도 맛이 좋다. 하지만 갓 지은 곱슬곱슬한 쌀밥에 싱싱한 횟감과 여러 가지 채소를 올린 뒤 초고추장과 참기름을 끼얹어 회덮밥으로 만들어 먹으면 새콤달콤 쫄깃하게 씹히는 맛이 그만이다.

전어회덮밥은 내장과 머리 부분을 떼고 뼈를 발라낸 뒤 가늘게 썬 회에 여러 가지 채소와 초고추장을 곁들여 만든다. 전어회덮밥은 전어를 뼈째 먹는 것을 싫어하거나 전어 특유의 비릿한 내음을 싫어하는 아이들도 아주 잘 먹는다. 전어회덮밥은 사각사각 씹히는 채소와 함께 고소하고 쫄깃하게 씹히는 전어 맛이 일품이다.  

전어는 고혈압과 우울증 등 건강에도 그만이다. 조선 중기 명의 허준(1539~1615)이 쓴 <동의보감>에 따르면 전어는 음기를 북돋워주고 기를 북돋으며, 위장을 보호하고 장을 깨끗이 하는 것은 물론 이뇨작용을 돕는다고 기록돼 있다. 어디 그뿐이랴. 전어에는 불포화지방산 뿐 아니라 필수 아미노산이 많아 여러 가지 생활 습관병까지 막아준다.

사람들이 흔히 가을 전어를 으뜸으로 여기는 까닭은 가을이 되면 전어에 들어있는 지방성분이 3배나 높아지면서 맛이 좋아질 뿐만 아니라 영양가까지 풍부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뼈째 먹는 전어는 불안, 초조, 신경쇠약이 있는 사람들에게 좋고, 몸이 무겁고 어깨가 뻐근한 사람들은 저녁에 전어를 먹고 자면 효과를 볼 수 있다.

간장게장도 짭쪼름하면서도 뒷맛이 달다
▲ 간장게장 간장게장도 짭쪼름하면서도 뒷맛이 달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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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들은 전어회덮밥이라고 해서 따로 따로 내지 않아요
▲ 전어회덮밥 저희들은 전어회덮밥이라고 해서 따로 따로 내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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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도암만에서 잡히는 자연산 전어가 맛깔스럽다  

"저희 집에서는 강진 도암만 쪽 바다에서 잡히는 싱싱한 자연산 전어를 조리해요. 그쪽 바다에서 잡히는 전어가 등에서 푸른빛이 반짝반짝 나는 게 보기에도 맛깔스러워 보이지요. 저희들은 계절에 따라 음식이 달라져요. 요즈음은 가을이니까 전어회덮밥을 조리하지만 겨울에는 낚지회무침을 조리하고 봄에는 병어회무침을 조리해요."

3일(금) 저녁 7시. '고산문학축전'에 갔다가 시인 윤금초, 윤재걸 등과 함께 들른 자연산 회무침 전문점. 해남터미널 뒤편에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는 이 집 주인 박유복(59·여)씨는 "30여 년 동안 자연산 회무침만 전문으로 하고 있다"고 말한다. 박씨는 ""밑반찬도 계절따라 달리 낸다, 그 계절에 나는 음식이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고 귀띔한다.

박씨에게 소주와 전어회덮밥(3~4인분, 3만원)을 시키자 밑반찬으로 고구마순무침, 도라지나물, 간장게장, 묵은지, 열무김치, 감자볶음, 전어속젓, 숙주나물 등을 주섬주섬 식탁 위에 올린다. 소주 한 잔 들이킨 뒤 전어속젓을 젓가락에 찍어 입으로 가져가자 달착지근하면서도 구수한 맛이 몹시 깊다.

가끔 찍어먹는, 짭쪼롬하면서도 뒷맛이 달착지근한 간장게장과 새콤달콤 혀끝에 착착 감기는 묵은지 맛도 소주를 자꾸 당기게 한다. 잠시 뒤 이 집에서 자랑하는 가을 대표음식이 바지락국과 함께 나온다. 근데, 그릇 속에는 하얀 쌀밥만 덩그러니 담겨 있고 식탁 한가운데에는 전어회무침 한 접시만 덩그러니 놓인다.

그저 쌀밥 위에 자신이 먹을 수 있는 양 만큼 전어회무침을 올려 쓰윽쓱 비벼 드시면 돼요
▲ 전어회덮밥 그저 쌀밥 위에 자신이 먹을 수 있는 양 만큼 전어회무침을 올려 쓰윽쓱 비벼 드시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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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콤하면서도 달착지근한 초고추장 내음이 입에 침을 가득 고이게 만든다
▲ 전어회덮밥 매콤하면서도 달착지근한 초고추장 내음이 입에 침을 가득 고이게 만든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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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치는 술잔 속에는 문학이야기가 서 말

"저희들은 전어회덮밥이라고 해서 따로 따로 내지 않아요. 그저 쌀밥 위에 자신이 먹을 수 있는 양 만큼 전어회무침을 올려 쓰윽쓱 비벼 드시면 돼요. 그게 저희 집에서 말하는 전어회덮밥이지요. 손님들 대부분은 그렇게 전어회덮밥을 드신 뒤 남은 전어회무침을 술안주 삼아 먹곤 하지요."                

이 집 전어회덮밥의 특징은 손님들 스스로 양에 맞게끔 알아서 전어회무침을 밥 위에 올려 비벼먹어야 한다는 점이다. 박씨에게 "전어회무침에는 어떤 재료가 들어가느냐"고 묻자 "배, 미나리, 채 썬 오이와 당근, 무 등이 들어간다"고 말한다. 박씨의 설명을 들으며 벌겋게 버무려진 전어회무침을 쌀밥 위에 적당히 올려 쓰윽쓱 비빈다.

그렇게 몇 번 비비자 매콤하면서도 달착지근한 초고추장 내음이 입에 침을 가득 고이게 만든다. 잠시 뒤 소주 한 잔 입에 탁 털어 넣고 잘 비빈 전어회덮밥을 한 술 떠서 입에 넣는다. 새콤달콤 쫄깃하게 씹히는 고소한 전어회와 사각사각 향긋하게 씹히는 채소가 어우러진 기막힌 맛에 갑자기 혀가 기절할 것만 같다.

먹어도 먹어도 자꾸만 먹고 싶은 전어회덮밥을 먹으며 가끔 떠먹는 시원한 바지락 국물 맛도 뒷맛이 아주 깔끔하다. 전어회덮밥이 바닥을 드러낼 때쯤 소주 한 병이 뚝딱 비워진다. 자리를 마주한 윤재걸(61·언론인) 시인은 "전어 머리 속에는 깨가 서 말이라더니 마주치는 술잔 속에는 문학 이야기가 서 말이네 그려"라며 즐거워했다.

박씨의 설명을 들으며 벌겋게 버무려진 전어회무침을 쌀밥 위에 적당히 올려 쓰윽쓱 비빈다
▲ 전어회덮밥 박씨의 설명을 들으며 벌겋게 버무려진 전어회무침을 쌀밥 위에 적당히 올려 쓰윽쓱 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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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떠먹는 시원한 바지락 국물 맛도 뒷맛이 아주 깔끔하다
▲ 바지락국 가끔 떠먹는 시원한 바지락 국물 맛도 뒷맛이 아주 깔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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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한 병 더 시킨 뒤 남은 전어회무침을 안주 삼아 도란도란 문학이야기를 주고받는 저물어가는 가을밤. 해남에서 맞이하는 시월의 밤은 그렇게 전어회덮밥과 함께 끝도 시작도 없이 점점 깊어만 갔다. 깊어가는 가을, 아름다운 사람과 마주 앉아 살가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먹는 전어회덮밥 한 그릇, 오늘 어때요?    


태그:#전어회덮밥, #바지락국 , #해남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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