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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영국인, 어머니는 프랑스인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 르 클레지오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 르 클레지오
ⓒ 대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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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르 클레지오(68)의 얼굴에선 아직도 신선한 청년의 모습이 느껴진다. 세속에 때묻지 않은 단아한 얼굴, 여전히 맑고 투명하며 서늘한 그의 눈매에서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임이 느껴진다. 그를 보고 있으면 늙는다는게 서럽지 않고 추하지 않다.

르 클레지오는 프랑스 국적을 소유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를 프랑스 작가로 소개하기에는 적합지 않다. 그의 태생이 우선 그를 그렇게 규정한다. 그는 영국 국적의 아버지와 프랑스 국적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부모는 사촌지간으로 둘 다 프랑스 서부 지역의 브루탄뉴 출신 태생의 조상을 두고 있다.

이 조상들은 18세기에 대서양의 모리셔스 섬에 이주해 간 사람들로, 르 클레지오는 1940년 니스에서 태어났지만 어려서부터 인도와 아프리카, 유럽 문화가 혼합된 모리셔스 문화를 접하게 된다.

어린 르 클레지오는 아버지를 볼 기회가 없었다. 8세가 될 때까지 그는 엄마와 할머니의 손에 의해 키워졌다. 그에게 있어 여성은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독서와 글쓰기가 중심이 된 자신의 어린 세계를 전적으로 구축해준 존재가 여성이기 때문이다. 올해 발표된 그의 최신작인 <배고픔의 소악장>의 여주인공인 에텔은 어머니에게서 그 모델을 따왔다.

르 클레지오는 8세때 처음으로 아버지를 보았다.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나이지리아 삼림지대에서 영국군 소속 외과의로 근무하고 있었던 아버지를 처음으로 보러 가기 위한 배 여행에서 그의 글쓰기가 시작된다.

핍박받고 추방당한 아웃사이더들에 따뜻한 시선

이렇게 시작된 글쓰기와 여행은 그와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며 이후 르 클레지오라는 작가를 규정하는 대명사가 된다.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항상 새로운 미지의 땅을 찾는 노마드 작가. 그 노마드의 끝에는 항상 글쓰기가 있다.

르 클레지오는 1963년 23세의 나이로 발표한 첫 소설 <조서>가 르노도 상을 받으면서 화려하게 문단에 등단한다. 초기의 그의 문학 경향은 당시 한참 유행하던 '누보 로망(신소설)'의 영향을 받아서 실험적인 스타일의 글에 가까웠다.

이 시기는 그가 클로드 시몽(1985년의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누보 로망의 작가)에 심취하기도 한 시기였다.

1967년에 그는 태국에서 대체복무를 하게 되는데 어린 소녀들의 매춘이 성행하는 걸 보고 이 사실을 고발한다. 이 일로 그는 태국에서 쫓겨나 멕시코로 이전되어 거기서 군 복무를 마감하게 된다.

1970년에서 1974년까지 4년 동안 그는 파나마 인디언들과 같이 생활하게 되는데 문명을 등지고 자연친화적이며 지도자나 종교 없이도 평화롭게 상부상조하며 사는 이들을 보면서 깊은 감동을 받는다.

이 시기의 색다른 경험은 이후의 그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물질주의와 합리주의 중심의 서양을 비판하고 자연 속에서 가진 것 없이도 행복하게 사는 원주민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이 시선은 이후 핍박받고 추방당한 세계의 모든 아웃사이더들에게까지 향하게 된다. 

1980년 발표한 <사막>으로 베스트셀러 반열에

르 클레지오의 문학 작품은 커다랗게 두 경향으로 구분되어질 수 있다. 첫 번째 경향은 1963년에서 1975년까지에 해당하는 시기로 주로 광증, 언어, 글쓰기 등의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혁신적이고 반항하는 작가의 이미지로 알려짐으로써 철학가 미셀 푸코와 질 들뢰즈의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78년에 발표된 단편집 <어린 여행자 몽도>를 계기로 르 클레지오는 일반 독자들에게 조금은 생소한 누보 로망의 형식에서 멀어지면서 좀 더 안정적인 책들을 발표하게 된다. 두 번째 경향에 해당하는 이 시기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는 어린 시절, 소수집단, 여행 등으로 차분한 문체와 함께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게 된다. 이후 1980년에 발표한 <사막>으로 그는 베스트 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1985년에 <리베라시옹>지가 그에게 "왜 글을 쓰느냐?"라는 질문을 던진바 있다. 다음은 그의 대답이다.

"그게 이렇습니다. 내가 10살인가 12살일 때 항구에 위치한 나폴리풍의 허술한 집에서 살았는데 안뜰에 나있는 창문가에는 이불보가 집집마다 널려있었고 테라스 위에는 반야생의 고양이들이 서로 싸움을 하고 있었는데 그 위로는 비둘기떼가 날아다녔죠.

그때는 소설가가 무엇인지 전혀 몰랐답니다. 그때 당시에 내가 살고 있던 집에서 이전에 쟝 로렝이라는 소설가가 살았다는 사실조차도 몰랐으니까요. 특히 여름이나 봄이 되기 시작할 무렵의 날씨 좋은 계절이 기억에 생생한데 모두들 창문을 열어놓고 살았으니까 갈매기가 내는 소리나 비둘기 울음소리가 종종 들리곤 했지요.

그 중에서 특별히 한 소리가 내게 뭔가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 소리를 들으면 왜 이유없이 근심스런 마음이 생기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도 그 생각만 하면 소름이 끼치고 일종의 멜랑콜리(우울증)에 사로잡히고 뭔가가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럴 때면 난 어디 아무데서나 앉아서 노트와 볼펜을 찾아들고 뭔가를 적지 않으면 안되게 됩니다.

그 소리는 뜰에서 내 또래의 애들이 서로 이름을 부르는 소리였습니다. 사내 녀석들은 휘파람으로 자기 친구를 부르는데 그 친구가 창가에 머리를 내놓으면 "움직이지 않을거야?" 합니다. 그러면 위에 있는 아이는 "어디 가는데?"하고 묻습니다. 이들이 바닷가에 가는지, 장터에 가는지 아니면 저쪽 길 구석에 가서 수다를 떠는지, 혹은 수업을 마치고 나올 여자애들을 기다리러 학교 앞으로 가는지 그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휘파람 소리와 안뜰에서 불려지는 이름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난 현재의 내 삶이 아닌 다른 삶을 상상해보곤 합니다.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멱을 감는다거나, 태양, 소녀들의 머리칼에서 나는 향기, 댄싱 홀에서의 음악, 모험, 밤 등을 상상하곤 합니다.

한 번도 안뜰에서 내 이름이 불려진 적이 없었고 한 번도 나를 위해 휘파람이 불러진 적이 없었습니다. 난 그 때 그 애들과 같은 집에서 살고 있었지만 우리가 살았던 세상은 달랐던거죠. 바로 그 이유로 글을 쓰게 된 겁니다." (2008년 10월 10일 <리베라시옹> 참조)
    
기자가 그의 긴 대답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은 그의 대답이 참 아름답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 책은 "작가가 심는 씨앗이고 그 씨를 꽃으로 피게 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1997년 5월 23일 <르 몽드> 참조)

"나는 여러 종족의 혼합물의 결산"

1994년에 문학잡지 <리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르 클레지오는 이미 '현존하는 최고의 프랑스 작가'로 선정된 바 있다. 그의 뒤를 이어 제 2위로 선정된 작가는 줄리앙 그린.

겸손하기로 유명한 르 클레지오는 당시 이렇게 말했다. "제게 질문을 했다면 저는 줄리앙 그린을 최고의 작가로 꼽겠습니다."

노벨문학상 발표 직후에 스웨덴 라디오와 가진 인터뷰에서 기자가 르 클레지오에게 "당신은 프랑스 작가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그게 그렇게 구분이 확실한건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프랑스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는 영국인이었고 유럽의 많은 사람들처럼 여러 종족의 혼합물의 결산입니다."

르 클레지오라는 그의 이름은 브루탄뉴어로 '울타리'라는 뜻을 가진다. 그는 조상에게 물려받은 울타리를 뛰어넘은 작가이다. 세계 각지로 돌아다니면서 한없이 자신의 울타리를 확장시키는 개방형 작가이다.

알 속의 새가 껍질을 깨지 않으면 날을 수 없듯이 자신을 가두는 울타리를 뛰어넘지 않고는 좀 더 높은 곳으로, 먼 곳으로 날아갈 수 없음을 르 클레지오는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노벨 문학상이라는 세계 최고 권위의 상이 그에게 더 큰 날개를 부여해 주기를 기대해본다.

노벨문학상 수상 프랑스 작가 명단 (총 14명)

2008: 장 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
2000: 가오 징지안
1985: 클로드 시몽
1964: 장-폴 사르트르 (노벨문학상 거절)
1960: 셍-존 페르스
1957: 알베르 카뮈
1952: 프랑소와 모리악
1947: 앙드레 지드
1937: 로제 마르텡 뒤 가르
1927: 앙리 베르그송
1921: 아나톨 프랑스
1915: 로멩 롤랑
1904: 프레데릭 미스트랄 (스페인 작가 Jose Echegaray y Eizaguirre와 공동 수상)
1901: 쉴리 프뤼돔므


태그:#르 클레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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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자유기고가, 시네아스트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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