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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수영 바다에 거북선유람선이 출항을 준비중이다.
 우수영 바다에 거북선유람선이 출항을 준비중이다.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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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갯사람들의 삶을 닮은 것일까. 거칠게 숨을 쉬던 물길은 멈추었다. 호수 같다. 잠시였다. 물비늘을 곧추 세우고 서서히 소용돌이를 치더니 방향을 바꾸며 거친 숨소리를 내뱉는다. 고를 매고 푸는 씻김굿처럼, 청어 엮는 강강술래처럼 물길은 질베가 되어 합쳐지고 풀어진다.

'명량해협에서 물은 겨울 산속 짐승의 울음소리로 우우 울면서 몰려갔다. 물은 물을 밀쳐내면서 뒤채었다. (중략) 해남반도에서 목포 쪽으로 달려가던 북서해류는 돌연 거꾸로 방향을 바꾸어 남동쪽으로 몰려가는데 하루에 네 차례씩 이 엎치락 뒤치락을 거듭했다.'

김훈은 <칼의 노래>에서 '명량에 순류와 역류가 없다'고. 적에게도 충무공에게도 명량은 사지라고 했다.

 진도대교와 울돌목, 오른쪽 다리 왼쪽편 움푹 들어간 곳이 '명량리'이며, 그 뒤 크게 움푹 들어간 바다에 접한 마을이 임진왜란 당시 우수영이 있었던 곳으로 마을 이름도 '우수영'이다.
 진도대교와 울돌목, 오른쪽 다리 왼쪽편 움푹 들어간 곳이 '명량리'이며, 그 뒤 크게 움푹 들어간 바다에 접한 마을이 임진왜란 당시 우수영이 있었던 곳으로 마을 이름도 '우수영'이다.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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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람은 호랑이가 무섭고, 왜놈은 '우~'가 무섭다?

영웅은 시대가 만든다지만 그 시대를 만드는 것은 민초라 했다. 민초들의 도움이 없이 울돌목 싸움을 승리로 이끌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게다가 물길 아는 토착지식을 갖춘 해남과 진도, 그리고 인근 지역 갯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말이 도움이지 강제였을 것이다.

사지에 나설 사람이 누가 있었겠는가. 고기잡이 배를 끌고 나와 수군으로 위장하고, 강강술래와 노적봉으로 군사력을 과시한 것도 전략이었다. 진도여자들은 바닷가 언덕에 모여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춤추고 노래했다.

해남에는 전라우수영이 있고, 진도에는 벽파진이 있다. 그 사이에 흐르는 물이 바닷길을 엮고 푸는 울돌목이다. 우수영에서 만난 정장석(78)씨. 나이에 비해 건장한 체격에 용모가 반듯하다. 마을에 남아 있는 우수영 흔적이라며 성터, 영창, 망재를 알려줬다.

 명량대첩비
 명량대첩비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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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좁은 해협을 가로질러 줄을 감아  수 많은 적함을 수장시켜 대승을 거두었다고 전한다.
 좁은 해협을 가로질러 줄을 감아 수 많은 적함을 수장시켜 대승을 거두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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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은 장씨 집앞에 도로와 집의 경계가 되어 있었다. 영창의 흔적은 얼마 전 공공건물을 짓는다며 사라졌다. 망재는 이름만 남아 있다. 목포바다와 진도 울돌목을 바라볼 수 있는 고개로 그곳에서 수군들이 망을 보았다고 전한다. 여기까지는 흥미롭지 않았다. 자료를 조금만 찾아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우수영이 탯자리인 할머니가 점심을 권한다. 할아버지도 더 이상 알려줄 것이 없다며 점심이 먹자고 한다. 식당에서 대접하겠다는 걸 한사코 집에서 먹잖다. 일어서려는데 장씨가 던진 한 마디에 다시 의자에 앉았다.

"조선사람은 '호랑이가 무섭다'고 하잖아. 일본사람들은 '우--' 소리가 무섭데."

이게 무슨 귀신 나락 까먹는 소리람. 그놈들은 울돌목이 겁났으면 '우--' 소리만 들어도 무섭다는 거야. 울돌목 바다 울음소리가 저승사자의 목소리로 들렸던 모양이다. 명량해전이 있었던 그날은 음력 보름 무렵으로 물살이 가장 거친 '사리'였을 것이다.

해남 문내면에는 울돌목 싸움과 관련한 마을로 우수영 외에 충무리와 명량리가 있다. 명량리에는 20여 호 주민들이 울돌목의 거친 물소리를 시간 삼아 생활하고 있다. 충무리에는 1688년 세운 명량대첩비가 모셔져 있다. 이 비는 원래 우수영에 있었다. 1942년 일제가 비를 철거해 버렸다. 비석도 무서웠던 모양이다. 해방이 되고 마을주민들이 경북궁 근정전 뒤뜰에서 찾아와 지금 자리에 모셨다.

이젠 물소리보다는 자동차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그림으로 재현한 명량해전
 그림으로 재현한 명량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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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량해전은 진도, 해남 등 인근 수 많은 주민들과 어선이 참여한 싸움이었다.
 명량해전은 진도, 해남 등 인근 수 많은 주민들과 어선이 참여한 싸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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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울돌목의 거친 숨소리를 잊지 못할까. 그런데 이젠 물소리보다는 자동차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충무사 코 밑으로 고가도로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자꾸만 작아져 가는 울돌목 소리가 아쉽다.

우수영은 한때 1000여 명의 주민들이 거주했다. 자연마을만 해도 10여 개에 이른다. 지금은 600여 명으로 줄었다. 1984년 진도대교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인근 갯바위에서 채취한 미역, 톳 등 해초들이 우수영으로 집결되어 뭍으로 나갔다. 바다가 워낙 거칠어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잠시 동안 섬과 뭍을 연결하는 나루사공이 물산을 운반했다.

진도대교는 우수영 몰락의 시작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세워졌던 어업협동조합 우수영지점은 문을 닫았다. 간혹 낚시꾼들을 태운 배들이 오갈 뿐이다.

모처럼 우수영 포구가 부산한다. 쓰러져 가는 건물 왼쪽에는 판옥선이 지어지고 있다. 오른쪽 바지선 옆에는 거북선 모양을 한 유람선이 외장 도색 등 마지막 공정을 하고 있다. 명량대첩 축제 때문이다. 모처럼 활기를 띠는 우수영, 사지에 울돌목의 거친 숨소리가 복원되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 오는 11일부터 12일까지 전라남도가 주관하는 명량대축제가 개최됩니다. 지난 9월 22일 미리 명량대축제가 있는 울돌목을 다녀와 작성한 글입니다.

이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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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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