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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의 참맛은 동치미 국물에 메밀로 만든 막국수를 말아먹는 것
▲ 동치미 막국수 강원도의 참맛은 동치미 국물에 메밀로 만든 막국수를 말아먹는 것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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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알간 쎗바닥 낼름거리는 가을노을 따라가다가 
지금도 이효석 소설 쓰고 있는 메밀밭 보았네

그해 가을, 종이학 하나 남기고 떠난 그 가시나처럼
메밀꽃 지고, 메밀꽃은 사라지고
오랜 그리움 촘촘촘 박힌 그 자리

동치미 국물에 기다림표 찍는 메밀 막국수 
그 가시나 쎗바닥처럼 낼름거리네

*쎗바닥 / 혓바닥(창원 말)

- 이소리, '사랑의 끝' 모두

강원도 두메산골 곳곳에 이효석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그 메밀꽃이 진다. 달밤에 바라보면 하얀 소금을 뿌려놓은 것 같다 하여 소금꽃이라고도 불리는 메밀꽃이 하나 둘 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그 자리에 열매가 촘촘 매달려 있다. 이제 곧 강원도 사람들은 저 메밀을 거둬들여 햇 메밀묵이나 메밀국수를 만들 것이다.    

고혈압과 당뇨, 비만에 그만이라는 메밀. 메마르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메밀은 세모진 열매가 익으면 갈색 혹은 어두운 갈색을 띤다. 메밀은 크게 여름 메밀과 가을 메밀로 나눈다. 하지만 사람들이 메밀묵을 만들어 먹거나 메밀국수, 냉면을 만들어 먹는 메밀은 대부분 가을메밀을 말한다. 

네이버 백과사전에 따르면 메밀의 고향은 바이칼호(湖)와 중국 북동부 아무르 강 일대를 중심으로 한 동부 아시아 북부 및 중앙아시아로 어림짐작되고 있다. 메밀은 녹말작물이면서도 단백질 함량이 아주 높고 비타민 B1, B2, 니코틴산 등이 듬뿍 들어 있어 밥을 지어 먹어도 맛이 좋으며 영양가도 높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메밀로 만든 음식을 즐겼다. 메밀밥, 메밀묵, 메밀국수, 냉면, 메밀차 등이 그것들이다. 그중 얼음이 동동 뜨는 동치미에 말아 먹거나 양념 고추장에 비벼먹는 메밀국수는 강원도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강원도에는 논보다 밭이 많은 데다 메밀은 아무 곳에 씨만 뿌려 놓아도 잘 자라기 때문이다.  

여름철에는 아이스크림처럼 얼려 낸다는 동치미 국물을 한 술 떠서 입에 넣자 갑자기 풋자두를 씹는 것처럼 귀쪽 턱이 찌리해지면서 새콤달콤 시원한 감칠맛이 혓바닥을 톡톡 친다
▲ 동치미 막국수 여름철에는 아이스크림처럼 얼려 낸다는 동치미 국물을 한 술 떠서 입에 넣자 갑자기 풋자두를 씹는 것처럼 귀쪽 턱이 찌리해지면서 새콤달콤 시원한 감칠맛이 혓바닥을 톡톡 친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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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칫집에서나 맛 볼 수 있었던 메밀묵 

"니 이거 좀 묵어봐라. 아주 귀한 기다."
"가을만 되모 흔해 자빠진 기 꿀밤(도토리)묵인데, 뭐가 귀하다 캅니꺼?"
"이거는 꿀밤으로 만든 묵이 아이라 메밀로 만든 묵이라카이."
"메밀예? 메밀로 묵도 만듭미꺼?"
"기운이 없거나 배가 더부룩할 때 메밀묵 이거 묵어봐라. 약이 따로 없다카이."

1960년대 중반. 내가 초등학교 2~3학년에 다닐 때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태어나 자란 동산마을(지금의 창원시 상남동)에선 메밀농사를 따로 짓는 집이 거의 없었다. 우리집에서도 메밀농사는 짓지 않았다. 메밀은 밭 귀퉁이 언덕바지에 저절로 자라는, 마치 잡초처럼 다루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우리 마을 사람들은 늦봄이 되면 개간을 할 수 없는 땅에 메밀씨를 대충 뿌려놓았다가 가을이 되면 메밀을 거두었다. 주인도 따로 없었다. 그저 메밀을 먼저 거두는 사람이 임자였다. 하지만 혼자 독차지하지는 않았다. 메밀을 거둔 사람이 메밀묵을 만들면 마을 사람들을 모두 불러 막걸리 잔을 돌리며 나눠먹었다.

우리 마을 사람들에게 있어 메밀은 메밀국수를 만들어 먹는 음식이 아니라 도토리처럼 그저 묵을 만들어 먹는, 그야말로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인 하찮은 식물이었다. 하지만 마을에 잔치가 벌어지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음식이 메밀묵이었다. 때문에 마을 아이들은 잔치가 벌어져야 메밀묵을 맛 볼 수 있었다.

밑반찬은 열무김치와 백김치뿐이다
▲ 치 밑반찬은 열무김치와 백김치뿐이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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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치미 막국수 위에는 노오란 참깨가루가 듬뿍 뿌려져 있고, 그 참깨가루 속에 김가루가 숨겨져 있다
▲ 동치미 막국수 동치미 막국수 위에는 노오란 참깨가루가 듬뿍 뿌려져 있고, 그 참깨가루 속에 김가루가 숨겨져 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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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혈압과 당뇨, 비만, 열 체질에 아주 좋은 메밀

"아나! 너거들은 오늘부터 그 베개로 베고 자거라."
"이기 머슨 특별한 베개라도 됩미꺼?"
"몸에 열이 많고 땀을 많이 흘리는 우리집 아들(아이들)한테는 메밀껍질 넣은 베개 그기 최곤기라."

그랬다. 나와 형제들은 어릴 때부터 몸에 열이 많이 나고,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땀이 줄줄줄 흘러내렸다. 까닭에 뜨거운 음식을 잘 먹지 못했다. 게다가 땡겨울에도 밥을 먹고 난 뒤 따뜻한 숭늉을 마시지 않고 살얼음이 살짝 낀 우물물을 벌컥벌컥 마셔야만 속이 후련하게 풀리는 듯했다.

특히 잠을 자고 일어나면 이불과 속옷이 촉촉하게 젖어 어머니로부터 자다가 이불에 오줌을 싼 걸로 오해받기도 했다. 하지만 메밀껍질을 넣어 만든 그 베개를 베고 자면서부터 희한하게 몸이 뜨겁지도 않았고 땀도 많이 나지 않았다. 자다가 몇 번씩 일어나 찬물을 마시는 일도 사라졌다. 나의 메밀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메밀은 자연 그대로 자라는 무공해 식물이다. 농진청 작물 시험보고에 따르면 메밀은 고혈압과 당뇨, 비만에도 큰 효과가 있으며, 위와 장을 튼튼하게 하고 기력을 북돋워주는 건강식품이다. 특히 메밀로 차를 만들어 먹으면 동맥경화와 같은 순환기 질환에 아주 좋으며, 다이어트에도 그만이다.    

조선시대 명의 허준(1539~1615)이 쓴 <동의보감>에는 "메밀은 비위장의 습기와 열기를 없애주며 소화가 잘 되는 효능이 있어 1년 쌓인 체기도 내려간다"고 적혀 있다. 중국 명(明)나라 때 본초학자 이시진(1518~1593)이 엮은 약학서 <본초강목>에는 "메밀은 위를 실하게 하고 기운을 돋우며 정신을 맑게 하고 오장의 노폐물을 훑는다"고 나와 있다.

막국수 위에 연초록빛이 맴도는 동치미 국물 세 국자를 붓는다
▲ 동치미 막국수 막국수 위에 연초록빛이 맴도는 동치미 국물 세 국자를 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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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한 귀퉁이에 참기름, 식초, 겨자, 노란 설탕이 놓여있다
▲ 동치미 막국수 식탁 한 귀퉁이에 참기름, 식초, 겨자, 노란 설탕이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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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참맛은 동치미 국물에 막국수 말아먹는 것

"강원도의 참맛은 동치미 국물에 메밀로 만든 막국수를 말아먹는 것이지요. 저희 집 동치미는 강릉에 있는 무밭에서 자연 그대로 키운 가을 김장 무를 사용하지요. 저는 1년 쓸 김장 무를 한꺼번에 저려놓았다가 2~3일에 한 번씩 담그는데 화학조미료는 절대 쓰지 않습니다. 화학조미료를 쓰면 동치미 국물 맛이 느끼해지거든요."

지난 9월21일(일). '한국문학평화포럼'이 주관한 '속초 아바이 문학축전'에 갔다가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들렀던 동치미 막국수 전문점. 이 집 주인 최종춘(51)씨는 동치미 만드는 법에 대해 "여름철엔 보름에서 한 달 정도 숙성시키고, 겨울철엔 3~4개월 숙성시켜야 동치미 특유의 시원하고도 새콤달콤한 맛이 난다"고 설명했다.
 
최씨는 "다른 집에서는 동치미 막국수를 낼 때에도 빨간 양념(다진 양념)을 쓰지만 저희 집에서는 비빔국수가 아니면 빨간 양념을 쓰지 않는다"고 말한다. 최씨는 "동치미 막국수의 참맛은 맑고 깔끔함에 있다"며 "2004년 특허청에 특허를 받아 형제끼리 강릉과 속초에서 동치미 막국수집을 꾸리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 집 한 쪽 벽에 걸린 '막국수 맛있게 드시는 방법'도 눈길을 끈다. 먼저 동치미 막국수(5천원)를 맛있게 먹는 방법을 살펴보면 "동치미 세 국자 설탕 2스푼 식초와 겨자를 넣고 달걀 노른자를 풀어서 드세요"라 씌어져 있다. 그 아래 비빔 막국수에 대한 설명에는 "설탕 식초 겨자 비빔장 기름을 넣으시고 열무김치를 조금 넣어 드세요"라고 적혀 있다.

노란 설탕 2스푼과 식초, 겨자도 넣어 젓가락으로 쓰윽쓱 비빈다
▲ 동치미 막국수 노란 설탕 2스푼과 식초, 겨자도 넣어 젓가락으로 쓰윽쓱 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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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막국수는 깊어가는 가을이 제철

"저희 가게에는 동치미 막국수와 비빔 막국수가 달리 없어요. 손님들의 입맛에 따라 '맛있게 드시는 방법'을 참고해 드시면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막국수 하면 여름철에 즐기는 별미라고 여기고 있는데 그것은 막국수를 잘 몰라서 그런 거예요. 메밀로 만드는 막국수의 참맛은 그해 가을에 수확한 메밀로 만든 햇 막국수가 가장 맛이 좋지요."

"강원도 막국수는 가을이 제철"이라고 말하는 최씨의 설명을 들으며 식탁 위에 올려진 동치미 국물 맛을 본다. 여름철에는 아이스크림처럼 얼려 낸다는 동치미 국물을 한 술 떠서 입에 넣자 갑자기 풋자두를 씹는 것처럼 귀쪽 턱이 찌리해지면서 새콤달콤 시원한 감칠맛이 혓바닥을 톡톡 친다.  

밑반찬은 열무김치와 백김치뿐이다. 한 가지 특징은 식탁 한 귀퉁이에 참기름, 식초, 겨자, 노란 설탕이 놓여있다는 점이다. 커다란 양은그릇에 담긴 동치미 막국수 위에는 노오란 참깨가루가 듬뿍 뿌려져 있고, 그 참깨가루 속에 김가루가 숨겨져 있다. 삶은 달걀 반쪽은 막국수 곁에 붙어 노오란 속살을 내비치고 있다.

막국수 위에 연초록빛이 맴도는 동치미 국물 세 국자를 붓는다. 노란 설탕 2스푼과 식초, 겨자도 넣어 젓가락으로 쓰윽쓱 비빈다. 이어 달걀 노른자를 동치미 국물에 노랗게 푼 뒤 한 젓갈 집어 슈르릅 소리를 내며 입에 넣는다. 입 안 가득 고소한 맛과 함께 새콤달콤한 동치미 국물이 향긋하게 맴돈다.

저희 가게에는 동치미 막국수와 비빔 막국수가 달리 없어요
▲ 비빔 막국수 저희 가게에는 동치미 막국수와 비빔 막국수가 달리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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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막' 먹는다 하여 이름 붙여진 막국수

쫄깃쫄깃 향긋한 메밀국수 면발을 씹는 맛도 깔끔하고 깊다. 슈르릅 쩝쩝... 슈르릅 쩝쩝... 그렇게 면발 몇 젓갈 입에 떠 넣고 나자 어느새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양은그릇을 들고 달걀 노른자빛과 연초록빛이 어우러진 동치미 국물을 후루룩 마시고 나자 입에서 시원한 가을바람이 부는 것만 같다.

갑자기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에 나오는 싯귀처럼 한 잔의 소주를 마시고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 목마를 타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 가을 속으로" 떠나고 싶다. 동치미 막국수 한 그릇 안주 삼아 수확이 끝난 텅 빈 메밀밭에 앉아 소주를 마시고 싶다.

세상에. 동치미에 만 막국수 한 그릇이 이렇게 사람의 마음까지 뺏을 수가 있다니. 아마 이게 예로부터 메밀로 만든 음식을 즐겨온 강원도가 주는 맛의 즐거움 아니겠는가. 자리를 마주한 이승철(50) 시인은 "가을날 산세 좋은 강원도에 앉아 새콤달콤하면서도 깔끔한 깊은 맛이 감도는 동치미 막국수에 소주 한 잔 하고 있으면 신선이 따로 없다"고 말했다.   

강원도가 낳은 오묘한 맛 동치미 막국수. 남녀노소, 신분 높낮이에 관계없이 누구나 '막' 먹는다 하여 이름 붙여진 막국수. 깊어가는 가을날, 단풍이 예쁘게 물드는 강원도 산골에 앉아 졸졸졸 흘러내리는 맑은 물소리를 들으며 동치미 막국수 한 그릇 먹어보라. 세상사 온갖 시름이 갈바람에 날아가면서 온몸이 뭉개구름처럼 가벼워지리라.


태그:#막국수, #비빔 막국수, #메밀, #동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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