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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어의 냄새가 진동하는 계절이 듯 해남은 온통 고산의 향기로 가득했다. 9월 27일부터 10월 4일까지 일주일 동안 펼쳐진 제8회 고산문학축전 때문이었다. 행사 기간 중에 전국 고산 청소년 백일장을 비롯하여 청소년 시서화 백일장, 고산시가 낭송대회, 고산문학과 음악의 만남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연이어 열렸다. 이 행사의 절정을 이룬 것은 고산문학대상 시상식이었다. 해남군과 해남문화원이 주최하고 고산문학축전운영위원회가 주관하는 이 행사는 벌써 8회째를 맞이하여 이제 전국에서 많은 시인들과 학자들이 모이는 전국 규모를 갖춘 축전이 된 것이다.

 

 고산문학축전 행사의 하나인 전국시조시인대회에는 서울과 대구, 익산, 광주 등에서 50여명의 시인이 모였다. 윤금초, 백이운, 신필영, 이승은, 정수자, 권갑하, 이종문, 양점숙 등 중진급의 시조시인이 해남을 찾았다. 이외에도 ‘고산 윤선도 시조의 미적성취와 그 가치’ 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한 성균관 대학교의 김학성 교수, 서울대 장경렬 교수, 고산문학상 공동운영위원장인 경기대 이재식 교수 등 시조 평론을 하는 학자들도 자리를 함께 하였다. 논문 발표와 시조낭송 외에도 해남문화원 학생들의 가야금 병창으로 고산의 ‘어부사시사’ 와 ‘만흥’ 이 이어졌고 국립국악원 문현 교수의 시조창과 이병채 명창의 소리로 수궁가가 갈채와 추임새로 시끌벅적하게 펼쳐졌다.

 

 10월 3일 서울과 지방에서 모인 시인들은 해남 유스호스텔에서 1박을 한 후 4일 시상식이 열리기 전까지 땅끝마을과 미황사를 둘러 보았다. 특히 땅끝마을 답사 코스에는 고은, 김지하, 윤금초시인등의 시비가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조성되어 있었는데 주제는 다 ‘땅끝’에 관한 것들이어서 더욱 눈길을 끌었다.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달마산 미황사는 이름이 아깝지 않을 만큼 수려한 달마산과 어울리는 잘 정돈되고 절제된 건축물로 균형잡힌 절집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대웅보전과 응진당이 각각 보물 제947호와 제1183호로 지정될 만큼 우뚝하고 세련된 모습이었다.

 

 고산문학대상은 수상자가 해남윤씨 종택인 녹우당에 찾아와 고산의 사당에 예를 올리는 것을 시작으로 행사가 시작되는 것이 이채롭다. 제8회 수상자로 결정된 박기섭 시조시인과 일행은 옛 멋이 우러나는 녹우당을 찾아 해남 윤씨 종손으로부터 집의 유래와 구조 등 사연이 듬뿍 담긴 이야기를 듣다가 가을 햇살을 받으며 단물이 야물어 가는 주렁주렁 매달린 곶감의 아름다운 모습에 잠시 혼을 빼앗기게 된다. 예쁜 담장과 사람 때가 묻어나는 마루며 야트막한 돌담장등 어느 것 하나 예사로운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시조집 ‘엮음 수심가’ 로 제8회 고산문학대상을 수상한 박기섭 시인은 198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래로 줄곧 한눈팔지 않고 시조에 매진해온 시인이다. 고산이 한문투성이의 시절에 아름다운 우리말로 시조를 써온 것을 생각하면 아주 잘 어울리는 수상자가 아닐 수 없다. 그도 이런 연유를 의식한 듯 수상소감에서 “앞으로도 좁고 가파른 정형시의 길을 주저 없이 가겠다는 다짐으로 이 과분한 수상의 감당키 어려운 힘든 무게를 다소나마 덜고자 합니다. 만약 이 땅에 시조가 없었다면 우리의 국문학은 얼마나 적막했겠습니까. 만약 이곳에서 고산 선생님 같은 큰 시인이 나지 않았다면 우리의 시조문학은 얼마나 허전했겠습니까” 라고 말하여 박수를 받았다.

 

 사실 이번 수상시집은 발간되면서부터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60여 편의 시가 모두 전국 방방곡곡의 살아있는 ‘입말의 미학‘ 들을 모아 다듬고 엮은 살아있는 작품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십 년 남짓한 세월을 여기에 매달려온 시인의 노고가 새록새록 귀하게 보이는 시집인 것이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신경림시인과 심사위원인 정진규 시인, 윤금초 시인도 심사평에서 이러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고산문학축전은 고산문학대상 시상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주최 측인 해남군과 문화원 그리고 해남윤씨 종친회에서는 고산문학축전을 ‘고산문화제’ 의 형식으로 고산의 정신을 계승하는 차원에서확대 발전시킬 것이라고 하였다. 고산이 정치가이며 학자요 75수의 시조를 우리말로 담아낸 시인인 것을  감안한다면 ‘문화제’의 형식으로 확대발전 시키는 것도 바람직한 방향이 아닐까 한다. 전국에 축제가 넘쳐 나는 요즘이긴 하지만 ‘고산’ 의 학문적, 문학적 가치는 다른 것에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태그:#고산문학대상, 박기섭, 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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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사무총장. 한국문학평화포럼 사무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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