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날이 슬슬 추워지는 연말이면 여러 매체나 기관 등에선 선심성 프로그램을 진행시킨다. 단지 아픈 아이들에 대한 딱한 심정도 발동되었겠지만 단발성에 그치고 만다는 지적도 늘 있어왔던 것도 사실이다.

유리처럼 깨질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을 갖고 있는 '유리공주 원경이'의 엄마 문희정씨 또한 그런 프로그램등에 '이용당한 느낌'을 지울 수 가 없다고 씁쓸하게 말한다.

아파서 울면 엄마에게 미안해서 주사 맞을 때 웃어요

아프지 않다고 말하며 도리어 주변 사람들을 안심시킨다. 선천적으로 면역체가 없어서 강아지도 못만지고 놀이터도 못가는 유리처럼 여린아이지만 큰 소리로 웃으며 밝은 생각만 하는 속 깊은 아이다.
▲ 주사만 5시간! 하나도 안아파요~ 아프지 않다고 말하며 도리어 주변 사람들을 안심시킨다. 선천적으로 면역체가 없어서 강아지도 못만지고 놀이터도 못가는 유리처럼 여린아이지만 큰 소리로 웃으며 밝은 생각만 하는 속 깊은 아이다.
ⓒ 김유현

관련사진보기

원경이는 하이퍼 아이지엠 신드롬(hyper igm syndrom)이라는 '선천성 면역 결핍증'을 앓고 있다. 이 병은 우리 몸의 항체를 이루는 iga, igd, ige, igg, igm중 igm이란 세포가 너무 많아 병균과 싸워 이길 수 있는 힘이 없어, 항생제에 의존해야만 하는 희귀 난치병이다.

가장 오래산 아이가 10살. 올해 원경이는 딱 10살이다. 감기나 작은 상처에도 아주 위험할 수 있어서 놀이터에서 노는것도 강아지를 만져보는 것도 어려운 원경이다.

기자가 만난 그 날은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원경이가 주사를 맞는 날이라고 했다. 정기적인 면역 주사를 맞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원경인 오히려 "주사 맞는 게 하나도 아프지 않다"며 환하게 웃어보인다. 그러나 주사를 맞는 그 부위는 이미 벌겋게 부어 올랐다.

아무렇지도 않게 엄마랑 농담도 주고받는 모습은 엄마와 딸 사이가 아니라 친구라고 보여질 정도이다.

"엄마 아파서 미안해!"라며 울면서 엄마를 위로하던 그 장면이 방송에 나온 이후로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게 했었기에, 사람들은 당연히 원경이에게만 집중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뒤에 항상 그림자처럼 있던 엄마 문희정씨의 삶을 보고 싶었다.

원경이 엄마 문희정씨 새로운 일에 착수하다

그녀는 올해 이화여대 신학대학원에 덜커덕 입학을 했다. 면접 당시에도 교수님들께서 과연 공부를 제대로 해 나갈 수 있을 것인지를 물었단다. 문희정씨는 사실 세종대 음악과(피아노전공)를 나왔다. 음악인의 삶을 살고 싶어서 아버지의 반대에도 재수를 해서 들어간 것이다. 해외 유학도 꿈꾸며 나름 야무진 계획을 세우며 열심히 살았던 그였다. 결혼 후 원경이를 낳고 3년간은 그래도 무탈하게 지내왔다.

문희정씨는 아이가 아프면서 사회제도 때문에 상처를 많이 입었다. 희귀병 아이들에게는 어떤 제도로도 만족할 만한 혜택이 돌아오기가 힘들다는 냉정한 현실만 부딪혔던 것이다. 희귀병 가족들은 그래서 더 힘들다.

▲ 아픈것도 서러운데 없기까지 하라고요? 의료보호 1종을 따내기까지 1년간 안다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발품을 팔아가며 싸웠다는 문희정씨. 통장에 300만원이상이 넘어가면 바로 전화 연락이 와서 무슨 돈이냐고 묻는 나라가 이상한것 아니냐고 한다. 전세금도 금을 그어놓고 그 이상 집도 얻지 말라는 말에 달동네가서 살라는 말이냐고 되묻는다. '아픈것도 너희들 사정, 돈 없이 사는 것도 너희들 사정'이라는 식의 제도가 제대로 된것이냐고 문희정씨는 묻고있다.
ⓒ 김유현

관련영상보기


그래서 문희정씨는 교회가 이들 가정의 문제들을 돌봐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스스로 예배학을 전공하려고 마음 먹은 것이다. 배고팠던 사람만이 배고픈 이의 심정을 알아준다는 말이 꼭 맞다.

"교회가 성경 공부로만 끝내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도움과 적용 방법을 연구해야 해요."

예배를 통해 희귀병 환자 가족들은 위로와 은혜 받기를 늘 간구하는 것이다. 그만큼 삶이 보통사람들에 비해 더욱 지쳐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 뿐 아니라 실제 이들의 경제적인 부분들도 더욱 어깨를 무겁게 한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방송에도 나가고 CF도 찍고 음반이며 책도 나왔으니 돈 좀 있겠다'며 괜한 너스레를 떠는 것 아니냐"며 오해를 하고는 한다.

그러나 유명한 연예인이 아니기에 받는 돈은 얼마되지 않는다고 한다. 기본적인 보험의 적용 대상도 안 되는 희귀병 환자의 가족들은 그런 말 한 마디마다 마음은 이미 걸레처럼 너덜거릴 정도로 닳고 닳아버린지 오래되었다.

▲ 희귀병 앓는 이들을 위한 전문 멘토역할 해볼터 오랜 병원 생활을 하면서 문희정씨는 환자와 환자 가족에게 어떤 것들이 구체적으로 필요한 것인지 깨달으면서 특히나 희귀병 환자와 가족들을 위해서 다각적인 도움을 주는 멘토이자 전문가로서 이들을 위한 공동의 네트워크를 형성해 나가려고 한다. 의료보호 1종을 따내기까지 온갖 차별과 편견들에 맞서 싸우면서 그토록 지키고 보호해 주고 싶은 딸 유리공주 원경이를 위한 엄마 문희정씨의 각고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 김유현

관련영상보기


엄마는 "실땅님!"

올해부터 문희정씨는 김석년 서초교회(기성) 목사의 제안으로 '패스 브레이킹 연구소'에서 기획실장으로 사역을 돕기 시작했다. "'실땅님~'이라고 원경이가 놀려요"라며 웃는다. 일을 하기 전까지 마음에 갈등이 심했단다.

"아이가 아직 어리고 아픈데 과연 일을 잘 할 수 있을지…. 그때 목사님의 적극적인 지지로 힘을 얻어 일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유리공주'원경이의 엄마 문희정씨와 원경이가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유리공주'원경이의 엄마 문희정씨와 원경이가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있다
ⓒ 김유현

관련사진보기


"엄마의 삶도 소중하니까요"

평생을 아픈 아이의 '엄마로만' 살아갈 것이지를 묻는 질문에 대답할 말이 없었단다. 아이의 인생이 따로 있듯이 자신의 인생 또한 소중한 것인데 왜 가꾸어가질 않느냐는 말에 많은 고민을 했단다.

원경이가 밝고 씩씩한 이유는 엄마의 성격을 닮아서 일것이다.
 원경이가 밝고 씩씩한 이유는 엄마의 성격을 닮아서 일것이다.
ⓒ 김유현

관련사진보기


문희정씨가 약국을 간 사이 원경이에게 물었다.

"엄마가 일하면 원경이가 심심하지 않겠어?"
"아뇨~ 컴퓨터로 게임도 하고 공부도 해야하고 저도 할일 많아요. 엄마의 삶도 소중하니까요. 엄마가 공부 열심히해서 제 공부도 가르쳐주고 다른 사람들도 도와야해서요. 전 괜찮아요."


아주 야무지고 당당하게 말했다.

문희정씨는 원경이가 주사를 다 맞고 나서 집에서 저녁 먹고 놀다 가라했다. 원경이가 주사 맞고 힘들 것 같고, 행여 부담되지 않을까 싶었다.

원경이가 어느새 날 '이모'라고 하면서 장난도 치고 노래도 불러준다. 아롱아롱한 눈망울로 집에 같이 가자고 한다. 자고 가라고도 한다.

10억짜리?! 원경이네 집

창문너머로 보이는 한강과 하늘. 문희정씨는 서울 하늘 아래 이렇게 전망 좋은 곳이 또 어디있겠냐면서 모든것이 다 감사하다고 고백한다.
 창문너머로 보이는 한강과 하늘. 문희정씨는 서울 하늘 아래 이렇게 전망 좋은 곳이 또 어디있겠냐면서 모든것이 다 감사하다고 고백한다.
ⓒ 김유현

관련사진보기


차를 타고 가면서 '차를 얻게 된 사연'을 들었다. 차가 있기 전까지는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그 아픈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다니느라 너무나 힘이 들었단다. 그들의 딱한 사정을 알고는 작은 소형차를 잠시 빌려주겠다는 분이 생겨서 감사하게 탔다. 그러던 어느날, 택시와 정면 충돌 사고가 났다. 다행히도 원경이는 무사했고 보상으로 받은 돈으로 동생 후배로부터 더 좋은 차를 더 싸게 구매 할 수 있었단다. 참으로 드라마같은 이야기다.

집을 얻게 된 사연은 더하다. 오피스텔 생활을 전전긍긍하던 가족들은 한달 관리비며, 생활비에 너무 지쳐 있었다. 지난해 12월 말에 사회복지사로부터 "영구임대 아파트에 들어가게 될 순위가 아닌데 이상하게 사람들이 갑자기 다 빠져나가게 되어서 순위 안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통보를 받았은 것이다.

사람들이 욕조가 없는 12평 아파트인줄 알고 순서를 부르는 현장에 와 보지도 안았단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간 그날 기적 같이 욕조가 있는 13평 아파트로 낙점을 받았고, 게다가 도배 장판까지 새로 해주게 되는 계획에 결려서(?) 너무나 기뻤단다. 엄마랑 이야기하는 동안에 원경이는 차 안에서 참 조용했다. 기특하다.

원경이네 13평 영구임대아파트는 아주 작았다. 어느 지인이 이 집은 10억짜리보다 더 귀하다고 했단다. 문희정씨는 "서울 하늘 아래 이렇게 전망 좋은 곳이 어디 있느냐"면서 환하게 웃는다. 그리고 "이런 귀한 집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눈물을 글썽인다. 월세와 관리비도 만만치 않지만 집이 있음에 감사하고 답답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탁 틔게 해줄 시원스런 한강과 하늘이 내다보이기에 행복하단다.

한 때 광고 모델했던 원경이
 한 때 광고 모델했던 원경이
ⓒ ktf

관련사진보기


원경이는 엄마가 자기의 일을 갖고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면서 더욱 힘을 얻어 건강해 질 것이다. 그날 내가 본 것은 '아픈아이 원경이와 아픈아이를 돌보는 슬픈 엄마 문희정씨'가 아니라 '씩씩한 명랑소녀 원경이와 유쾌하고 당당한 워킹맘 문희정씨'였다. 이들의 지난한 삶의 희비의 발자국은 병중에 있는 많은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지난 8월 말에 '씩씩한 명랑소녀 원경이와 유쾌하고 당당한 워킹맘 문희정씨'를 만났습니다.



태그:#유리공주, #희귀병, #문희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