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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체결을 앞두고, 농촌은 대적할 의지마저 잃어버리고, 패색이 완연하다. 이미 전망을 잃어버린 농촌의 이농현상은 매년 심화되어, 2000년대 인구 대비 20% 대였던 농촌 인구는 이제 무려 7%에도 못 미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FTA가 아니더라도 스스로 무너지고 말 것이다.

수도권의 농촌이라고 뾰족한 수는 없다. 땅값이 오르면서 수지 안 맞는 농사를 버리고, 창고나 공장부지로 팔고 도시로 떠나거나, 아니면 급격한 개발의 변화에 부응하듯 농촌 스스로가 도시화의 과정을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농토를 지키며, 새로운 농촌의 길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있다. 수도권에 인접한 남양주시를 시작으로 이러한 새로운 농업의 대안들을 찾아나서 본다.

배나무를 빌려 드립니다

이상원(수동면 지둔리)씨는 80년대부터 온갖 농업 모임을 열심히 쫓아다니며 파주, 가평, 연천 등지의 젊은 농민들과 교유와 정보를 나누어온 공부하는 농민이다. 오리 농법으로 유기농 논농사를 짓던 그는 지난해부터 2천여 평의 배나무 과수원을 도시 사람들에게 분양하고 있다.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일손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변동이 심한 과일 시세를 따라잡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몇 년 동안 저농약 과수 재배로 친환경 유기농을 준비하였으나, 토양검사에서 탈락되고 말았다. 이에 굴하지 않고 꾸준히 땅심을 기르고, 친환경 농법을 적용한 결과 이태 전부터 친환경 유기농 인증을 받게 되었다.

친환경 인증 과수원
▲ 성지농원 친환경 인증 과수원
ⓒ 이형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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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기회로 인근 기업체나 도시민에게 배나무를 분양하기로 했다. 서울에서 가까운 거리에 생태환경이 수려한 남양주시 수동면의 지리적 이점을 살려, 봄에 신청을 받아 1그루당 7만원씩 분양하였는데, 첫 해에 300여주의 배나무 가운데 무려 100주를 분양하는 호조를 보였다.

분양된 배나무
▲ 성지농원 분양된 배나무
ⓒ 이형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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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자는 마음에 드는 나무에 이름표를 붙이고, 자기만의 작은 과수원을 갖게 되는데, 분양 받은 사람은 봄에 배꽃이 핀 후 열매가 매달릴 무렵 솎아주기, 그리고 배가 커지기 시작할 무렵에 봉지 씌워주기만 하면 된다. 나머지 거름주기, 병충해 방지, 김매기 등은 과수원 주인이 해결해 준다. 가을에 배가 익으면 가족들과 함께 와서 자신의 나무에 매달린 황금 배를 거두어 가게 되는데, 대략 그루당 70~80개의 배를 거두게 된다. 많은 경우에는 100개의 배가 열리기도 한다고.

성지농원의 내년 생각

이상원
▲ 성지농원 이상원
ⓒ 이형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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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원주 이상원씨는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있다. 배 과수원에 울타리를 치고, 토종닭을 방사하여 기르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배 밭의 거름도 공급하며 과수원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농촌 체험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아울러 과수원과 붙어 있는 자신의 논에 우렁이나 미꾸라지를 넣어 유기농 쌀을 생산하는 한편, 도시민들이 잃어버린 추억을 되살릴 수 있도록 체험거리를 마련한다는 생각이다.

유기농 배
▲ 성지농원 유기농 배
ⓒ 이형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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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농원의 배는 달고 시원하기로 유명한데, 꾸준한 유기농 재배와 친환경 저농약 농법으로 배를 길러온 오랜 노력의 결과로 여겨진다. 까치나 까마귀가 쪼아먹는 걸 막기 위해 몇 년 전 거금 500만원을 들여 새 쫓는 종 장치까지 설치했다. 성지농원에서는 갑갑한 그물이나 삭막한 총소리 대신에 바람에 흔들리는 종소리가 울린다.

무엇보다 성지농원의 장점은 친척집을 찾아가는 듯한 인간적 유대감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주말마다 아무 때나 찾아와도 반갑게 맞아주며, 아예 누구나 따 먹으라고 상추와 고추, 들깨까지 길러놓고 기다린다. 봄이면 배꽃이 하얗게 핀 배나무 밭 아래 평상을 내어 놓고, 거기 앉아 가족들과 삼겹살을 구워 먹는 호젓한 주말을 보낼 수 있도, 여름이면 바로 곁에 붙은 개울에서 멱을 감고, 논에서 우렁이를 건져내는 즐거움을 자녀들과 함께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남양주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배나무, #과수원, #농장, #남양주, #수동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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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면 광대울에서, 텃밭을 일구며 틈이 나면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http://sigo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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