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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즐긴 민족음식 중 하나인 산나물밥
▲ 산나물 가마솥밥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즐긴 민족음식 중 하나인 산나물밥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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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치 뒷산에 곤드레 딱죽이 임의 맛만 같다면
올 같은 흉년에도 봄 살아나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 '평창 아리랑' 몇 토막

강원도 힘은 찰옥수수나 감자 메밀 다래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강원도 산에서 신선한 이슬을 받아먹고 자라는 산나물에서 나온다. 강원도에서 나는 산나물이 오죽 흔하고 맛이 좋았으면 평창 아리랑에 '곤드레 딱죽이 임의 맛만 같다면 / 올 같은 흉년에도 봄 살아나네'라는 노랫말까지 있겠는가.

지금은 거의 모든 음식이 널리 퍼져 어느 지역에 가더라도 그 지역 특산물이 아닌 여러 가지 음식을 맛볼 수 있다. 하지만 반드시 강원도에 가서 먹어야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음식이 꼭 한 가지 있다. 산나물 가마솥밥이 그것이다. 왜냐하면 강원도에서 조리하는 산나물 가마솥밥은 다른 지역에서 조리하는 산나물밥보다 그 맛과 향이 훨씬 뛰어나기 때문이다.

강원도에 가면 산나물 가마솥밥을 잘하는 식당이 곳곳에 널려 있다. 산이 높고 계곡이 깊어 어느 산에 오르더라도 산나물이 지천으로 깔려 있으니 그럴 수밖에. 근데, 웬 뜬금없이 가을에 와서 봄에 많이 나는 산나물 타령이냐구? 모르는 소리 하지 마시라. 산나물은 봄에만 나는 것이 아니다.

가을에 나는 산나물도 꽤 많다. 강원도에서는 봄에 나는 산나물이든 가을에 나는 산나물이든 언제나 맛나게 먹을 수 있다. 강원도 사람들은 봄에 나는 산나물은 1년 치 먹을 것을 살짝 삶은 뒤 포장을 해서 냉동고에 넣어두고 틈틈이 꺼내 먹는다. 여름과 가을에 나는 산나물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강원도에 가면 계절에 관계없이 산나물밥을 즐길 수 있다.

'우리가 몸을 조금씩 겹쳐 앉으면 가을 햇살 머금은 그리움 마주할 것 같아 비좁지만 이곳으로 모셨습니다.-태백사람들'
▲ 산나물 가마솥밥 '우리가 몸을 조금씩 겹쳐 앉으면 가을 햇살 머금은 그리움 마주할 것 같아 비좁지만 이곳으로 모셨습니다.-태백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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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나물밥은 불린 쌀에 산나물을 섞어 지은 밥이다
▲ 산나물 가마솥밥 산나물밥은 불린 쌀에 산나물을 섞어 지은 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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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몸 살려내는 음식, 강원도 산나물 

산나물은 낱말 그대로 산에서 자라는 나물을 말한다. 우리가 흔히 먹는 채소도 처음에는 산나물이었다. 산나물은 이른 봄부터 가을까지 우리나라 산 곳곳에서 자란다. 들과 야트막한 산에서 자라는 나물에는 쑥, 쑥부쟁이, 원추리, 개미취, 참취, 두릅 등이 있다. 높은 산에서 자라는 나물로는 나물취(참나물), 곰취, 은어리, 곤드레 등이 있다.

산나물은 자연 그대로 자라기 때문에 웰빙시대를 맞아 더없이 좋은 먹을거리다. 산나물은 음식을 잘못 먹어 생긴 여러 가지 병에서부터 비만, 당뇨, 암 등 여러 가지 성인병 예방과 치료에 뛰어나다. 산나물은 산이 높은 곳에서 자라야 향이 진하고 맛이 뛰어나며 기(氣)가 많이 담겨 있다.

특히 산이 높고 골이 깊은 강원도에서 나는 산나물은 공해, 스트레스 등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으뜸가는 보약이라 할 수 있다. 산나물연구회에 따르면 산나물에는 미네랄, 칼륨, 칼슘, 인, 철이 골고루 들어 있으며, 섬유질이 많고 사포닌까지 많아 몸의 저항력을 길러준다. 이와 함께 산성화되어가는 인체를 알칼리성으로 바꾸어 주는 역할까지 한다.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즐긴 민족음식 중 하나인 산나물밥. 산나물밥은 불린 쌀에 산나물을 섞어 지은 밥이다. 산나물밥은 꼬들꼬들하게 지어야 제 맛이 난다. 산나물밥은 처음 먹을 것이 귀한 봄철에 산에 나는 나물을 쌀과 함께 지어 주린 배를 채웠던 음식이다. 하지만 지금은 보리밥처럼 별미로 즐기는 음식으로 탈바꿈했다.

오징어젓갈과 열무 국물김치, 된장찌개, 양념장, 음나무 새순나물, 취나물, 도라지나물, 멸치볶음, 양파 김치 등이 밑밭찬으로 나온다
▲ 산나물 가마솥밥 오징어젓갈과 열무 국물김치, 된장찌개, 양념장, 음나무 새순나물, 취나물, 도라지나물, 멸치볶음, 양파 김치 등이 밑밭찬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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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나무 새순 무침
▲ 산나물 가마솥밥 음나무 새순 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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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조금씩 겹쳐 앉으면 가을 햇살 머금은 그리움 마주한다

"저희 집에서는 재배하는 산나물은 아예 쓰지 않아요. 저희 집 산나물은 제가 직접 산에 올라가 뜯기도 하고, 산나물을 뜯어오는 사람들한테 한꺼번에 사기도 해요. 봄에 나는 산나물은 살짝 데친 뒤 1년 치 포장을 해서 냉동고에 넣어두었다가 산나물 가마솥밥을 할 때마다 조금씩 꺼내 쓰지요."

20일(토) 저녁 5시. 가을비가 여름 장마비처럼 내리는 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탄광촌 막장에서 일하다 진폐증을 앓고 있는 병원요양 진폐환자와 재가 진폐환자들을 어루만지는 '태백문학축전'을 펼친 '한국문학평화포럼'(회장 김영현) 일행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찾은 태백시 삼수동에 있는 산나물 가마솥밥 전문점.

이 집에 들어서자 '우리가 몸을 조금씩 겹쳐 앉으면 가을 햇살 머금은 그리움 마주할 것 같아 비좁지만 이곳으로 모셨습니다. - 태백사람들'이란 현수막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현수막에 쓰인 글씨가 참 살갑다. 마치 힘겨운 태백 사람들이 태백을 찾은 사람들에게 베푸는 작은 정성처럼 여겨져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50여 명의 식객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진폐환자들을 찾아와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성희직(51·한국진폐재해자협회 후원회장) 시인의 모습은 아름답다. 한꺼번에 찾아온 50여 '한국문학평화포럼' 일행들을 위해 손수 산나물 가마솥밥을 짓고 밑반찬을 나르며 반갑게 인사하는 이 집 주인 김선화(54)씨의 모습도 정겹다.   

양념장
▲ 산나물 가마솥밥 양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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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무 물김치
▲ 산나물 가마솥밥 열무 물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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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나물 가마솥밥 맛 비결은 곱슬곱슬하게 지은 밥에 있다

"20여 년 넘게 곰탕집을 꾸려오다가 5년 전부터 산나물 가마솥밥을 조리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음식을 조리할 때 인공 조미료는 쓰지 않습니다. 특히 공기 맑고 물 좋은 곳에서 자란 산나물에 인공 조미료를 쓰면 음식 맛이 느끄리(느끼)해요. 그래서 저는 집에서 가족들이 먹는 음식처럼 천연 조미료만 고집해요."

김씨는 "산나물 가마솥밥은 무엇보다도 밥을 곱슬곱슬하게 잘 지어야 된장과 양념간장을 넣고 밥을 비빌 때 엉겨 붙지 않고 제 맛이 난다"고 말한다. 김씨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동해안에서 잡히는 굴밥(7천원)도 조리하는데 꼭 한 번 먹으러 오라"면서 "강원도 힘은 산나물과 굴밥에서 나온다"고 덧붙였다.

이 집 산나물 가마솥밥(6천원)을 만드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먼저 불린 쌀을 안치고, 태백의 산에서 자라는 곤드레, 나물취(참나물), 은어리(어수리), 두릅, 음나무 새순 등에 소금과 들기름을 넣어 밑간을 한 뒤 살짝 주무른다. 이어 불린 쌀 위에 여러 가지 산나물을 얹고 밥을 곱슬곱슬하게 지으면 끝.

산나물 가마솥밥에 넣어 비벼먹는 된장찌개와 양념장 맛도 독특하다. 된장찌개는 집에서 담근 강원도 특유의 거무스레한 된장에 채소가루와 멸치가루를 넣고 푹 끓여낸다. 양념장은 집에서 담근 조선간장과 양조간장을 반반 섞은 뒤 잔파, 고추, 빻은 마늘, 고춧가루 등을 넣어 만든다.   

먼저 불린 쌀을 안치고, 태백의 산에서 자라는 곤드레, 나물취(참나물), 은어리(어수리), 두릅, 음나무 새순 등에 소금과 들기름을 넣어 밑간을 한 뒤 살짝 주무른다. 이어 불린 쌀 위에 여러 가지 산나물을 얹고 밥을 곱슬곱슬하게 지으면 끝
▲ 산나물 가마솥밥 먼저 불린 쌀을 안치고, 태백의 산에서 자라는 곤드레, 나물취(참나물), 은어리(어수리), 두릅, 음나무 새순 등에 소금과 들기름을 넣어 밑간을 한 뒤 살짝 주무른다. 이어 불린 쌀 위에 여러 가지 산나물을 얹고 밥을 곱슬곱슬하게 지으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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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나물 가마솥밥에 넣어 비벼먹는 된장찌개와 양념장 맛도 독특하다
▲ 산나물 가마솥밥 산나물 가마솥밥에 넣어 비벼먹는 된장찌개와 양념장 맛도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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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나물이 초록빛으로 예쁘게 박혀 있는 가마솥밥 맛 기가 막혀

이 집 주인 김씨와 이런 저런 음식 이야기를 잠시 나누고 있는데 오징어젓갈과 열무 국물김치, 된장찌개, 양념장, 음나무 새순나물, 취나물, 도라지나물, 멸치볶음, 양파 김치 등이 밑밭찬으로 나온다. 이어 보기에도 맛깔스러워 보이는 초록빛으로 물든 산나물 가마솥밥이 식탁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 잡는다.

산나물이 초록빛으로 예쁘게 박혀 있는 가마솥밥을 주걱으로 퍼내 하얀 그릇에 담자 짙은 산나물향이 혀를 끝없이 희롱하기 시작한다. 된장찌개와 양념장을 넣기 전에 산나물 가마솥밥을 숟가락으로 조금 떠내 맛을 보자 쫄깃쫄깃하게 씹히는 밥알에서 향긋한 산나물향이 입 안 가득 퍼진다.

산나물 가마솥밥에 강원도 특유의 거무스레한 된장찌개와 양념장, 음나무 새순나물을 넣고 쓱쓱 비벼 한 숟갈 입에 넣자 입 안 가득 향긋한 산나물이 쑤욱쑥 자라나는 듯하다. 산나물 가마솥밥을 먹으며 가끔 집어먹는 음나무 새순나물과 취나물, 도라지나물 등도 향이 깊고 맛이 아주 좋다.

그렇게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산나물 가마솥밥 한 그릇 뚝딱 먹어치우고 나자 온몸에서 산나물향이 나는 듯하다.

자리를 마주하고 앉은 효림(법랍 39) 스님은 "봄에 먹는 산나물 가마솥밥 맛보다 가을에 먹는 산나물 가마솥밥 맛이 훨씬 더 향이 깊고 맛이 뛰어난 것 같다"며 "공해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산나물보다 더 좋은 보약은 없다"고 말했다. 

산나물 가마솥밥에 강원도 특유의 거무스레한 된장찌개와 양념장, 음나무 새순나물을 넣고 쓱쓱 비벼 한 숟갈 입에 넣자 입 안 가득 향긋한 산나물이 쑤욱쑥 자라나는 듯하다
▲ 산나물 가마솥밥 산나물 가마솥밥에 강원도 특유의 거무스레한 된장찌개와 양념장, 음나무 새순나물을 넣고 쓱쓱 비벼 한 숟갈 입에 넣자 입 안 가득 향긋한 산나물이 쑤욱쑥 자라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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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들이 온통 가을빛으로 곱게 물드는 요즈음. 가족들과 손에 손을 잡고 산 높고 골 깊은 강원도 태백으로 가서 산나물 가마솥밥 한 그릇 나눠 먹어보자. '신보릿고개'가 낳은 세상사 온갖 시름과 땅 꺼지는 한숨이 향긋하고도 쫄깃거리는 산나물 가마솥밥 속으로 깨끗하게 사라지리라.


태그:#산나물 가마솥밥, #강원도 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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