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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등문화역사마을 소금 잘되게 해주시고 부자마을 되게 해주십시오."

 

100여 명의 마을 주민들이 사등리 검당마을 벌막(소금굽는 막) 앞에 모였다. 벌막고사를 시작으로 '선운사 보은염 바치기' 행사 막이 올랐다. 사등마을에서 소금(보은염)을 바치는 것은 선운사를 창건한 검단선사와 인연 때문이다. 마을 주민들이 전하는 검단선사 이야기다.

 

검단선사가 산적과 부랑자들을 모아놓고 현재 검당마을이 위치한 곳에 소금샘이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그리고 흙가마를 만들어 소금을 구워 생계를 유지하도록 했다. 하지만 검단선사는 이들 중 힘센 사람들이 힘이 약한 사람을 부려먹고 소금을 차지하자 샘을 없애버렸다. 그리고 염전을 만들어 소로 갈고 구덩이를 파서 함수를 얻어 소금을 생산하도록 했다.

 

 

검단선사와 소금이야기

 

선운사는 신라 진흥왕이 창건했다는 설과 백제 위덕왕 24년(577)에 고승 검단(檢旦, 黔丹)선사가 창건했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한다. 이곳은 신라와 세력다툼이 치열했던 백제 영토였기 때문에 신라 왕이 이곳에 사찰을 창건하였을 가능성은 낮다. 시대적·지리적 상황으로 볼 때 검단선사의 창건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검단스님의 창건과 관련해서도 여러 가지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본래 선운사 자리는 용이 살던 큰 못이었다. 스님이 이 용을 몰아내고 돌을 던져 연못을 메워 마을에 눈병이 심하게 돌았다. 그런데 못에 숯을 한 가마씩 갖다 부으면 눈병이 씻은 듯이 낫곤 했다.

 

이를 신이하게 여긴 마을사람들이 너도나도 숯과 돌을 가져옴으로써 큰 못은 금방 메워지게 되었다. 검단스님은 이 자리에 절을 짓고, "오묘한 지혜의 경계인 구름(雲)에 머무르면서 갈고 닦아 선정(禪)의 경지를 얻는다"하여 절 이름을 '선운(禪雲)'이라 지었다고 전한다.

 

이 지역에는 도적이 많았다. 검단스님이 불법(佛法)으로 이들을 선량하게 교화시키고, 소금을 구워서 살아갈 수 있는 방도를 가르쳐주었다. 마을사람들은 스님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해마다 봄·가을이면 절에 소금을 갖다 바쳤다. 이를 '보은염(報恩鹽)'이라 불렀다. 그리고 자신들이 사는 마을이름을 '검단리'라 하였다.

 

실제로 선운사에서 멀지 않는 곳에 검당리가 있다. 고창군 심원면 사등마을 검당리가 그곳이다. 이곳 마을사람들은 1950년대 중반까지 검단선사가 알려준 방법으로 소금을 구워 생활했다. 논과 밭이 없는 바닷가마을에 300여 호가 모여 살 수 있었던 것은 소금 때문이었다.

 

<덕원군 별원당 선운산 선운사 중창 산세사적형지안>(1483)에는 '검단마을은 신승(神僧) 검단이 처음으로 염정(鹽井)을 설치한 곳으로 지금까지도 성현의 고적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선운사에 보은염을 바치다
 

벌막고사를 마친 보은행렬이 누런 황금들판을 지났다. 소달구지에 실려 큰 도로까지 이동한 보은염은 선운사 입구 삼인초등학교까지 차로 옮겨졌다. 이곳에서 선운사까지는 걸어서 이동할 것이다. 보통 어른 걸음으로 30여 분이면 충분할 거리다. 하지만 보은염 행렬은 풍물패, 소금을 운반하는 소달구지, 백제 전통복장을 갖춘 마을주민들이 함께 이동하기 때문에 적잖은 시간이 필요했다.

 

선운사 일주문에 보은염행렬이 모습을 보인 것은 학교에서 출발한 후 1시간 30분이 지난 시간이었다. 목탁소리도 들린다. 주변에는 꽃무릇이 활짝 피었다. '선운문화축제'를 맞아 많은 관광객들이 선운사를 찾았다. 관광객들에게 풍물을 치고 소달구지를 끌고 전통의복을 입고 행진하는 모습은 큰 구경거리였다.

 

너도나도 카메라를 꺼낸다. 스님도 직접 나오셨다. 두 손을 합장하고 보은염에 감사했다. 선운사에서 소금을 운반하기 위해 사찰 밖 다리에 화려한 가마를 준비했다. 검단선사가 전해준 방법으로 구운 소금은 질그릇에 곱게 담겨 가마에 옮겨졌다. 주민들 고생에 비해 부처님 전에 올리는 의식은 간단했다.

 

 

조금 아쉽기도 했다. 고생한 마을주민들이 사찰에 들어와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은근히 화가 나기도 했다. 차라도 한잔 대접하며 감사하다는 덕담이라도 나눴으면 마을주민들은 큰 힘을 얻고 돌아갈 수 있으려만. 두 시간 이상 걸어서 도착한 마을주민들이지 않는가. 스님 법문 중 마을주민들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로 만족해야 했다. 어디 첫술에 배부를 수 있는가. 그래도 마을주민과 사찰의 만남은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이제 시작이다. 전통소금은 만들어졌다. 이것이 도깨비방망이는 아니다. 주민들이 원하는 것처럼 돈이 되려면 만드는 것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어렵게 복원되고 있는 마을공동체도 제자리를 잡아야 한다. 아름답고 소중한 전통, 자자손손 이어져야 한다. 검단선사도 사찰과 마을주민들이 모두 번창하길 빌고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사등마을은 고창군 심원면에 위치한 마을입니다. 이 마을은 3년전 '전통소금(자염)'을 테마로 문화관광부 '문화역사마을가꾸기' 사업에 선정되었습니다. 2년간 기초조사와 준비과정을 거쳐 '전통소금'을 복원했습니다. 그리고 설화로 전해오는 '선운사 보은염'을 축제로 만들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 주민들이 직접 참여했습니다. 이 번 행사를 바탕으로 사등마을은 전통소금을 관광과 소득사업에 연계하고 마을공동체 회복을 위해 노력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태그:#전통소금, #자염, #사등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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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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