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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부동산세 자진 신고납부가 시작된 2006년 12월 1일 '조세저항 국민운동' 결성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종합부동산세 납부 거부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힌 뒤 구호를 외치고 있다.
 종합부동산세 자진 신고납부가 시작된 2006년 12월 1일 '조세저항 국민운동' 결성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종합부동산세 납부 거부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힌 뒤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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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유세는 쓰지만 몸에 좋은 약

마침내 정부 여당이 종부세를 사실상 무력화하기로 결정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격언 하나가 불쑥 떠올랐다. 양약고구(良藥苦口).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다는 뜻이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부모라면, 약이 쓰다고 투정하는 아픈 아이에게 치료제를 치우고 진통제나 마약을 먹이는 어리석은 결정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쓴 약이 병을 치료하고 마약이 몸을 망친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아는 사실이다.

보유세는 우리 사회의 고질병을 근본적으로 고칠 수 있는 정말 좋은 치료제다. 양극화의 주범인 부동산 불로소득과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기 때문이다. 그 뿐 아니다. 보유세가 제대로 부과된다면 투기 목적으로 부동산을 다량 보유하면서 저사용(低使用) 상태로 방치하는 경향이 사라질 것이므로, 부동산 이용의 효율성도 높아진다. 또 부동산 가격 변동의 진폭이 축소되기 때문에, 부동산시장이 금융시장과 거시경제를 불안하게 만드는 일도 줄어든다.

이런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대체로 보유세를 무겁게 부과하는 경향이 있다. 양식을 가진 경제학자들은 모두 보유세를 무겁게 부과하고 다른 세금들은 가볍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보유세 강화가 양약임을 우리나라 역대 정부도 알고 있었다. 비록 중도에 좌절하고 말았지만 노태우 정부, 김영삼 정부, 김대중 정부 모두 보유세 강화 정책을 추진했으니 말이다.

종부세는 노무현 정부 보유세 강화 정책의 상징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지만, 보유세 강화 정책을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는 공적은 인정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는 2017년까지 장기 로드맵을 장착한 보유세 강화 정책을 법제화했다. 이 정책이 중단되지 않고 추진된다면, 현재 0.3%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보유세 실효세율(부동산 가격 대비 세금 부담의 비율)이 2017년에는 0.61%가 된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와 있다.

현재 미국과 영국의 경우 이 비율이 1%를 넘고 일본과 캐나다의 경우 1% 수준이므로, 이 정책이 성공하더라도 우리나라 보유세는 주요 선진국의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지금까지 노무현 정부가 달성한 성과는 0.1%대에 머물렀던 보유세 실효세율을 0.2%대로 끌어올린 정도다. 물론 최상위 종부세 대상자(주택 공시 가격 25억원 정도)의 보유세 실효세율은 이보다 높아서 이미 선진국 수준(약 1%)에 도달했지만, 해당자는 극소수다.

종부세는 노무현 정부 보유세 강화 정책의 상징이다. 법 제정 당시에도 보수 언론들과 국회의원들은 맹렬히 반대했다. 그 결과 정부 원안에서는 6억원(주택의 경우)으로 되어 있던 부과 기준이 9억원으로 올라가서 부과 대상이 대폭 줄어버렸다. 2004년 내내 안정세를 유지했던 부동산 시장에 다시 부동산 투기 광풍이 불었던 것은 여기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종부세법이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은 우리 사회가 투기병(投機病)을 한 차례 더 앓고 난 후의 일이다.

마침내 꺼내든 종부세 무력화 카드

얼마 전 재산세와 종부세의 과표를 동결시키고 세부담 상한선을 낮추겠다는 방침이 발표되었을 때 '보유세 무력화가 최종 목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드디어 오늘 마지막 카드가 나왔다.

마지막 카드답게 내용도 화끈하다. 종부세 부과 기준을 끌어올려 과세 대상을 대폭 축소하고, 세율을 인하하며, 장기보유 특별공제 및 고령자 감면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사업용 토지에 대해서는 아예 종부세를 폐지한다고 한다. 이번 방침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우리나라 보유세 실효세율은 강화 정책이 시작되기 전보다 낮은 수준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조세제도는 물길과도 같다. 투기의 바다로 이끄는 물길을 만들어두면 물은 물길을 따라 흐를 수밖에 없다. 많은 부동산을 갖고서 국가나 사회로부터 엄청난 혜택을 받고도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제도 하에서, 누가 부동산 구입에 열을 내지 않겠는가.

사업용 토지라는 명목으로 아무리 토지를 많이 확보해 두고 있어도 제대로 세금을 매기지 않는다면, 토지 수익이 훨씬 크고 안정적인데 어느 기업이 생산적 투자에 열심을 내겠는가. 땀 흘려 벌어들인 소득을 알뜰히 저축해서 내집 마련을 하는 것보다 대출받아 집 사두는 것이 훨씬 이익이 되는데, 어느 누가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려 하겠는가.

종부세 무력화로 수혜가 예상되는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등 고층아파트 밀집지역.
 종부세 무력화로 수혜가 예상되는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등 고층아파트 밀집지역.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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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 대한민국

지난 수 십 년 간 우리는 정말 이상한 나라에서 살아 왔다. 사람이 만든 물건의 가격은 시간이 가면 떨어지기 마련인데도 집값은 오른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 기업이 일자리를 많이 제공해 주기를 바라면서도 그 기업들이 생산적 투자와는 무관한 부동산에 관심을 가져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나라.

부동산 값의 양극화로 인해 서울 사람들은 가만히 앉아서 부자가 되고 지방 사람들은 지은 죄도 없이 가난뱅이가 되어 가도 그냥 넘어가는 나라. 직장인들이 모이면 이구동성으로 부동산 이야기에 몰두하면서도 고위 공직자 후보가 부동산을 많이 갖고 있다는 소식에는 격분하는 나라.

수도권의 아파트 분양에 전국 곳곳의 사람들이 몰려드는 기현상이 일어나는 나라. 부동산 값 폭등을 잡지 못했다는 이유로 정권을 심판하고도 자기 지역 부동산 값 올려주겠다는 국회의원 후보를 당선시키는 나라.

보유세 강화는 상식적인 사회를 만드는 기초

보유세 강화 정책은 이런 이상한 일을 막고 상식이 지배하는 사회를 만드는 기초라고 할 수 있다. 국정을 책임진 사람들은 그 정치적 기반이 어디에 있건 간에 이런 정책을 함부로 처리하지는 못한다. 보수적 성격을 가졌던 노태우 정부와 김영삼 정부가 보유세 강화를 시도했던 것도 그 최소한의 책무를 감당해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보유세 무력화는 우리 사회의 기초를 뒤흔드는 결정이다. 이대로 가면 대한민국은 부동산  공화국, 투기 공화국이 될 것이 뻔하다. 또 다시 투기 광풍이 분다면, 우리 국민들에게도 이명박 정부에게도 비극이다.

정책에는 시차가 있어서 잘 하면 다음 정부에 부담을 떠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이명박 정부의 임기가 너무 많이 남았다. 결과가 뻔히 보이는 길을 막무가내로 계속 가겠다는데, 어쩌겠는가. 피해가 최소화되는 요행을 기대할 수밖에.

덧붙이는 글 | 전강수 기자는 대구가톨릭대 교수로 토지정의시민연대 정책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보유세, #종부세, #투기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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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실련 토지주택위원장, 토지정의시민연대 정책위원장, 토지+자유연구소 소장, 지식인선언네트워크 운영위원장, 대구가톨릭대 교수 등을 역임했고, 현재는 헨리조지센터 대표,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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