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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중인들은 노비 같은 매매의 대상도 아니었고, 상놈 소리도 듣지 않고 살 수 있었다. 대대로 가업을 계승하는 전문인들이었고, 때로는 부자 소리 들으며 살기도 했다. 양반을 수행하여 외국 방문도 했고,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양반들은 그들을 멸시했다. 그들보다 신분이 낮았던 상민과 천민들조차 중인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양반에 의한 양반을 위한 양반의 사회에서 중인들의 설 땅은 그다지 넓지 못했다.

 

능력은 전문인, 일은 양반 뒤치다꺼리

 

중인도 양반들처럼 과거를 통해 관직에 진출했다. 양반은 승진할 때마다 다른 관청으로 옮

겼다. 하지만 중인들은 평생 한 직장, 한 분야에서만 근무했다.

 

양반 관료들도 뛰어난 지식인이었지만, 한 해에도 몇 번씩 관청을 옮겨 다니다 보면 모든 실무에 능할 수는 없었다. 결국 해당 관청의 실무는 중인이 맡아 처리했다. 관청 책임자는 중인의 실무 능력에 따라 자신의 능력을 평가받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중인 관원을 선발하는 과거는 잡과라 해서 천시했다. 역과, 율과, 의과, 음양과, 율과를 통해 중인들을 관원으로 선발했다. 같은 과거 합격자였으면서도 양반들과는 격이 달랐다.

 

잡과에도 채택되지 않은 과목은 예조에서 취재라는 형식으로 선발했다. 의학, 천문학, 지리학, 율학, 산학 등을 전공한 기술관과 화원, 악공 등의 예능인이 대상이었다. 조선시대 중인들은 ‘전방위 지식인’이었다.

 

비록 차별은 받았지만  재산을 모은 중인들도 꽤 있었다. 역관으로 한양 최고의 부를 축적했던 장형의 딸은 왕비가 되었으니 그가 장희빈이었다. 한때 장희빈 가문은 최고의 권력을 누리기도 했지만, 비정한 권력다툼에서 밀려 몰락했다. 최남선이 조선 최고의 갑부라 극찬했던 변승업도 중인 출신이었다.

 

인왕산의 호걸 임준원도 한때 가난을 이기지 못해 내수사 서리로 취직했지만 큰 재산을 벌어들이자 곧 사임하고 가난한 중인들을 자기 집에 불러들여 문학모임인 시사(詩社)를 결성했다. 이들이 있었기에 중인의 세력이 결집될 수 있었다.

 

중인들 중에 역관은 외국에 나가면 특히 진가를 발휘했다. 외국에 파견된 양반들은 대개 외국어를 하지 못해 중인 출신 역관이 모든 대화를 통역했다. 따라서 갑작스런 외교 현안이 생기면 역관의 수완에 따라 해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39가지 야담과 전설로 그 행적을 전하는 역관 홍순언의 삶이 대표적이다.

 

일본에 파견했던 조선통신사의 경우에는 중인의 역할이 더욱 컸다. 막부에서 요청하는 전문직이 별도로 있을 정도였다. 조선통신사 일행이 되어 일본에 가서 열풍을 일으켰던 무예 사절 마상재(말 위에서 하는 재주)가 대표적이다. 

 

역관은 외국에 나가면 대접받으며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지만, 국내에 돌아오면 신분과 사회적인 차별이 기다리고 있었다. 양반들의 뒤치다꺼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중인들이 꿈꾸던 세상

 

자신들을 차별하는 조선 사회에 대한 불만이 중인들에게는 많았다. 그 불만을 문학적으로 해소하려는 움직임이 문학 동인 ‘시사(詩社)’였고, 역량을 결집시키기 위해 중인의 전기를 편집하는 움직임도 다양했다. 그러한 문화 운동에도 불구하고 조정에서 신분 상승을 인정하지 않자, 왕의 행차에 상소문을 올리려는 집단적인 움직임까지 일어났다.

 

중인들은 천주교가 들어오자 다른 계층보다 앞서서 신앙을 받아들였다. 신자와 지도층에서 중인의 비율은 박해가 심할수록 더 높아졌는데, 기득권을 가진 양반 신자가 조정의 교화 정책에 순응하여 신앙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천주교 신자 가운데는 평민이 많아 한문을 읽기 힘들었으므로 역관이 청나라에서 수입해 온 『성경』을 비롯한 천주교 교리를 한글로 번역했다.

 

중인들이 꿈꾸던 세상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의 능력에 정당하게 인정되는 사회,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않는 사회였다. 19세기 말  조선왕조와 신분질서가 무너지는 상황 속에서 중인들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개화의 물결 속으로 뛰어들었다.

 

벽을 넘고자 꿈꾸던 조연들의 인생실록 50선

 

한양을 남촌과 북촌으로 나누면 그 중간 지대인 청계천 일대에 역관이나 의원부터 상인에 이르기까지 재산이 넉넉한 중인들이 살았고, 인왕산 언저리에는 주로 아전들이 살았다. 이들은 대부분 중인 계급이었다.

 

연세대 국어국문과 교수 허경진은 중인들의 갖가지 삶을 실타래처럼 풀어 놓았다. 양반 뒤치다꺼리로 한 세상 보내면서도 시대의 질곡에 맞서던 이들의 곡진한 이야기들이다.

 

인왕산 굽이진 기슭에서 시처럼 살았던 문학동인들, 세상의 우여곡절을 그리고 노래한 예술인들, 계급의 질곡에 맞서 시대를 끌어안은 전문 지식인들, 대륙과 바다를 넘나들며 신세계를 꿈꾼 역관들.

 

신분에 밀려 조연이 되었지만, 그 벽을 넘고자 애쓰고 몸부림쳤던 중인들의 삶이 쿵쿵 가슴을 울린다.

덧붙이는 글 | 허경진/랜덤하우스/2008. 8/19,000원


조선의 르네상스인 中人 - 누추한 골목에서 시대의 큰길을 연 사람들의 곡진한 이야기

허경진 지음, 랜덤하우스코리아(2008)


태그:#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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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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