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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왜 그렇게 패기가 없느냐?"

 

기성세대는 꿈도 의욕도 없는 젊은이들을 보며 혀를 끌끌 차죠. 자기 때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았는데 요즘 애들은 고생을 모르고 살아서 그런지 고마운 것도 모른다는 말을 덧붙이며.

 

그렇죠. 시대는 정말 많이 달라졌어요. 고용 없는 성장시대, 자본만이 '자유'를 얻는 신자유주의시대지요. 어릴 때부터 경쟁만을 배운 젊은이들은 불안과 공포감을 조장하는 체제 안에서 놀라 어쩔 줄 몰라 허둥대고 있어요.

 

제도권에서 하란대로 했는데 직장이 없어

 

일본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이미 캥거루족, 백수, 인터넷 폐인, 니트족 등으로 불리는 몇백만의 젊은이들이 부모에게 빌붙어 살아가고 있고, 빌붙을 부모가 없는 이들은 국가가, 아니면 친구와 동료들이 짊어져야 할 부담스런 존재가 되고 있지요.

 

유럽의 '‘천유로 세대'와 일본의 '미니멈 라이프족'이 있듯이 한국에는 '88만원 세대'가 등장하였죠. 제도권 교육에서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했는데도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무더기로 쌓여가고 있지요. 어렵게 신입사원이 되어도 마구 잘려나가는 세태를 보면서 새삼 사회현실을 깨닫게 되죠.

 

"지금까지 하란 대로 경쟁을 하며 살아왔는데, 이거 평생을 긴장해야겠구나."

 

오랫동안 교육과 청소년에 대해 연구하고 참여해온 조한혜정 교수의 칼럼집 <다시, 마을이다>(2007, 또하나의 문화)을 보면 왜 젊은이들이 현실에 낙담하는지 날카롭게 설명하고 있어요.

 

암울한 미래를 감지한 불안세대

 

88만원 세대는 어린 나이에 IMF 금융 위기를 접하고 암울한 미래의 도래를 일찌감치 감지한 '불안 세대'예요. 안정된 직장을 얻기 힘들고 직장이 있더라도 독립할 집을 마련하기 어렵지요. 어릴 적에 갖게 된 소비수준을 유지하려면 부모에게 기대는 수밖에 없고, 이런 경제적 의존성은 젊은이들을 나약한 기회주의자로 만들고 있다고 조한 교수는 분석하네요.

 

다섯 개의 선택 항목이 주어지는 객관식에 익숙한 청년들은, 부모나 어른세대의 말을 들어야 돈이 나오는 세상에서 그들의 말에 순종하거나 숨어드는 생활 외에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것을 알지요.

 

좋은 미래가 올 거라는 믿음이 없기에 그들은 긴 계획은 세우지 않지요. 하루살이처럼 살아가는 것이 적응력 있는 삶의 방식임을 이미 알고 있지요. 생각할 틈도 없이 일할 수밖에 없는 '소모성 건전지'로 살면서 패기가 있기란 어렵지요. 지성과 낭만으로 가슴이 뛰어야 할 청년들은 영어와 학점에 연연하며 취직에 몰두하고 있네요.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눈빛이 반짝여야 할 청소년들은 무기력증에 빠져서 학원에 틀어박혀 있지요. 청년 실업과 불안한 현실, 영리한 십대들은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가 지나갔다는 것을 어른들보다 일찍 간파한 듯합니다. 학교라는 '제도'에 남아있으면서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그나마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린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책은 전하네요.

 

시대의 덫에 걸린 청년들

 

배고픈 시절에는 더 잘 먹고 살고 싶다는 바람이라도 있었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꿈이 없죠. 그저 기성세대가 물려주는 생존기반 유지에 급급하지요. 잘나가는 사람은 '속도의 덫'에, 빈자는 '제도의 덫'에 걸린다고들 하네요. '시대의 덫'에 걸린 젊은이들은 언제 그들의 날개를 펼 수 있을까요?

 

이대로 가면 세상은 점점 험악해질 것이고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는' 진퇴양난이 될 것이라며 조한 교수는 교육으로 사회를 살려야 하고 '소통하면서 서로를 살리는 마을을 만드는 돌봄사회'로 전향해야 한다고 주장하네요. 그러면서 20대를 위해서 클린턴 정부에서 구상했던 제안을 소개하지요.

 

"미국에서는 클린턴 정권 때 노동 정책을 담당했던 로버트 라이시 장관이 청년 기금을 마련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그는 '고용 없는 성장' 정책을 고수할 때 초래될 사회적 파탄을 경고하면서 해결책의 하나로 모든 젊은이가 18세가 될 때 일정한 금융 자본금을 주어서 계속 공부를 하건, 벤처를 하건, 무엇을 하건 각자의 생각대로 재투자를 하게 하자고 했다. 국가의 미래를 청년들과 함께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 책에서

 

절망스런 현실이지만 포기하지 않아

 

노인은 어린아이와 함께 있을 때 행복하고, 청소년 역시 든든한 후원자들과 잘 늙어가는 어른들이 곁에 있을 때 건강하지요. 그러나 가족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공동체 기반'이 여지없이 허물어지고 있지요.

 

생존의 기본은 소통과 나눔이지요. 꿈도 없고 직업도 없고 이웃도 없는 젊은이들은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지요. 통계청 발표에서 알 수 있듯이 20대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것은 절망스런 88만원 세대의 소리 없는 절규이지요. 소수만 잘 먹고 잘사는 사회를 만들어놓고 모든 젊은이에게 꿈을 가지라고 말할 수 없지요. 꿈을 소중히 갖고 세상을 나오는 순간 바스러지는 게 보이니까요.

 

자기 속도로 배우면서, 타인과 건강한 관계 속에서 안정되게, 그리고 자존감을 지키며 살기가 어려운 세상살이네요. 그럼에도 희망을 얘기하고 싶네요. 지나친 속도에 내내 치었기에 집단화된 경쟁의 폐단을 배웠고 파편화되는 세태에서 외로움을 겪었기에 협력의 소중함을 몸으로 느꼈지요. 절망을 알기에 바꾸려는 욕구가 강하지요. 

 

패기 없다고 꾸지람을 듣는 88만원 세대지만 살기 힘든 세상에서 눈물겹게 자신의 나래를 간직하고 있어요. 꿈이 없는 그들이 누구나 꿈을 갖는 사회를 꿈꾸며 자신들의 산뜻한 비상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곧, 88만원이 주도하는 시대가 오니까요.


다시, 마을이다 - 위험 사회에서 살아남기

조한혜정 지음, 또하나의문화(2007)


태그:#다시마을이다, #조한혜정, #위험사회, #88만원세대, #신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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