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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단골집, ‘묵사랑’ 간판이 국도변에서 나를 반긴다. 23번국도 변에 있는데 신공주대교를 건너자마자 나오는 ‘여로주유소’ 바로 옆으로 난 길로 들어서면 된다.
 내 단골집, ‘묵사랑’ 간판이 국도변에서 나를 반긴다. 23번국도 변에 있는데 신공주대교를 건너자마자 나오는 ‘여로주유소’ 바로 옆으로 난 길로 들어서면 된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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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파란 도화지에 뭉게구름을 그리며 가을을 뽐내는데 기온은 여태 여름의 한낮을 서성인다. 이리 계절이 느려 터져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나님이 잠시 낮잠을 주무시는지 왜 계절의 질서를 잘 잡아주시지 않는지 모를 일이다. 온난화 때문이란 걸 모르진 않지만….

벼이삭이랑 다른 낱알들은 따끔한 햇살을 받으며 저마다 농익은 소리를 내지만 난 아직 여름을 벗어나지 못하는 초가을 날씨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차문을 열면 한여름보다 더 뜨거운 기운이 확 달려와 내 가슴에 안긴다. 지레 땀부터 흐른다.

‘앗 뜨거워!’, 그래도 가을이려니 생각하지만, 차문을 열 때마다 찜질방이 따로 없다. 엔진을 켜자마자 에어컨을 켜는 것은 엔진에도 안 좋지만, 무엇보다 연료절감에 역행하는 짓이라는 신문보도를 읽은 후로는 그 후끈한 기운을 온몸으로 받으며 시동을 켠다.

차창 네 개를 모두 화들짝 열어젖히고 잠시 앉았다가 출발하니, 온 가을이 내 품으로 들어온다. 화끈하게 입을 벌린 밤톨, 노릇하게 익어가는 벼들, 벌레 먹은 티를 안 내고 붉게 물드는 감잎, 그것도 힘에 겨운지 벌써 떨어져 뒹구는 낙엽들, 마냥 가을은 그렇게 차창으로 지나간다.

밥 한 끼니 안 하는 게 행복인 여자

“여보, 우리 외식하러 갈까?”
“그래요. 집에서 밥 안 해도 되는 행복이라면 난 무조건 오케이!”
“내 그럴 줄 알았지.”

여자들이 집에서 밥하지 않는 게 그리 좋은 일인지 나이를 먹어가며 새삼 깨닫는다. 예전에는 아이들 키우느라 전혀 짬이 없어서도 그랬지만, 그때만 해도 이런 낭만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아내가 외식을 즐긴다(엄밀하게 밥 안 하는 것)는 걸 안 후로는 가끔 아내가 즐거워할 제안을 한다.

아내는 맛있는 음식에 관심이 있다기보다 단지 밥을 한 끼니 안 하는 게 행복한가 보다. 우리의 가을 나들이(?)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엄밀하게 말하라면 ‘나들이’라기보다 ‘외식’이다. 외딴 시골의 심심산골에서 사는지라 우리 집이 아닌 곳에서 식사를 하려면 어차피 나들이를 해야 한다.

그러니 ‘나들이’도 맞고 ‘외식’도 맞다. ‘외식’이란 단어를 써놓고 보니 너무 웅장하다. 그럴싸한 외식을 할 여건이 아니니 말만 외식인데…. 일단 시동을 걸고 출발한 후 ‘어디’와 ‘무엇’이 결정되는 게 우리 내외의 나들이 스타일이다.

“무얼 먹고 싶어요?”
“글쎄요.”
“글세(학자금)는 학교에 이미 다 갔다 주고선 또 그 글세 타령?”
“호호호. 당신이 결정해요. 묵 먹으러 가자는 것만 빼고.”
“여보, 그러지 말고 묵 한 사발 먹고 옵시다.”

'묵사랑'의 메뉴판
 '묵사랑'의 메뉴판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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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차가 향기가 곱다. 물 대신 때에 따라 다른 야생화차가 제공된다.
 국화차가 향기가 곱다. 물 대신 때에 따라 다른 야생화차가 제공된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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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 사랑, 내 사랑

이렇게 하나마나한 의논을 하고 뻔한 나들이가 시작된다. 실은 아내도 묵을 좋아한다. 의논의 결론을 아는지라 괜히 그래보는 것이란 걸 나는 안다. 그러기에 결론은 ‘묵사발’로 나는 것이다. 30분정도 달리면 공주의 그 집에 이른다.

나의 묵 사랑은 실은 역사가 오래 되었다. 어머니께서 손수 상수리를 주워다 만들어주셨던 묵 맛을 잊지 못한다. 포들포들, 야들야들, 톡 건드리면 부스러질 듯 안 부스러지는 그 차짐, 변변한 양념이 없는데도 스르르 목 넘김이 좋았던 추억속의 묵이 그 원조다.

그 추억속의 맛은 예전에 서울 살 때 남한강변에 있는 도토리묵전문점을 자주 찾는 것으로 이어지다가 시골살이를 하며 이곳 공주를 단골로 만들었다. ‘원래 묵을 좋아하니 아무 묵집이나 좋아하겠구나.’ 생각하시면 오산이다. 차지기나 부드러움이 진짜가 아니면 아무리 묵이라도 먹지 않는다.

‘묵사랑’은 이미 <대전일보>나 <대전방송>을 통해서 널리 알려진 바 있다. 머리를 길게 길러 뒤로 묶은 사장님의 풍채가 특이하다. 사장님은 순 우리 콩으로 두부를 만들고, 우리 전통방식으로만 도토리로 묵을 쑨다고 자부심이 대단하다. 특허출원만도 네 건이나 되고, 음식 경연대회에도 나갔다고 한다.

깨가 송송 뿌려진 도토리전이다.
 깨가 송송 뿌려진 도토리전이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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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의 주메뉴라 할 수 있는 묵밥(묵사발)이다. 무우, 양파 장아찌와 무우김치가 정말 잘 어울린다.
 우리 부부의 주메뉴라 할 수 있는 묵밥(묵사발)이다. 무우, 양파 장아찌와 무우김치가 정말 잘 어울린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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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거양득, 음식 맛 그리고 싼 맛

거두절미하고 맛이 일품이다. 국산 서리태와 백태를 사용한 흑두부 맛과 야들야들하고 쫀쫀한 묵 맛은 가히 일품이다. 흑두부와 묵을 함께 먹을 수 있는 ‘묵사랑’, 묵만 먹는 ‘검은콩두부김치’, ‘김치묵무침’과 ‘도토리전’을 비롯하여, 우리부부가 갈 때마다 빼놓지 않고 먹는 ‘묵밥’이 있다.

‘묵밥’은 기호에 따라 따듯하게도 차게도 먹을 수 있다. 대부분 다른 묵집에서는 이를 ‘묵사발’이라 하는데 ‘묵사랑’에서는 그냥 평범하게 ‘묵밥’이라 부른다. 길쭉하고 푸짐하게 묵을 썰어 양념 듬뿍 넣은 묵국에 밥을 말아먹는 것이다. 단돈 5000원에 먹을 수 있다. 철에 따라 달리 제공되는 야생화차는 얼마나 향긋한지 모른다.

요즘 칼국수를 먹으려고 해도 5~6000원을 줘야 하고보면 아주 싼 가격이다. 다른 메뉴들도 모두 서민이 먹기에 적당한 가격이다. 우리가 이곳을 단골집으로 정한 데는 가격도 맛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어서오세요. 또 오셨네요?”
“예, 안녕하세요? 또 왔습니다.”

들어서자마자 주인아줌마가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러면 우리는 똑 같은 말로 응수를 한다. 우린 이렇게 주인과 손님 사이로 정이 들어가고 있다. 다른 때처럼 ‘도토리전’과 ‘묵밥’ 각각 한 개씩을 시켰다. 둘이 다 양이 적은 터라 많이는 못 시킨다.

아마 보통 양의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둘이 ‘도토리전’ 아니면 ‘묵사랑’ 한 개 시키고, ‘묵밥’은 각각 시켜야 하리라. 거기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직접 담근 동동주를 곁들여야 하리라. 그러나 우리는 양이 적어 이렇게만 시켜도 배를 두들기며 먹는다.

도토리묵이 각광받는 것은 도토리에 든 아콘산이 인체내부의 중금속이나 온갖 유해물질을 흡수, 배출시키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오염시대에 딱 맞는 웰빙식품이다. 도토리는 피로회복과 숙취에도 효과가 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권주가라는 게 있다는데, 난 묵에 중독되었으니 이리 외치고 싶다.

“도토리 영그는 이 가을, 묵 한 사발 어때요?”

마당 평상에 말리고 있는 도토리
 마당 평상에 말리고 있는 도토리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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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묵사랑 041-855-2032
천안에서 논산으로 가는 23번국도 변에 있습니다. 신공주대교를 건너자마자 나오는 ‘여로주유소’ 바로 옆으로 난 길로 들어서면 됩니다.

이기사는 갓피플,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도토리묵, #맛집, #묵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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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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