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국현대사진60년전 전시장 입구. 구성연(1970~)의 '팝콘시리즈'(2007) 작품 앞에 관객들. 구성연의 팝콘시리즈를 '현대판사군자'라고도 한다
 한국현대사진60년전 전시장 입구. 구성연(1970~)의 '팝콘시리즈'(2007) 작품 앞에 관객들. 구성연의 팝콘시리즈를 '현대판사군자'라고도 한다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과천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국현대사진60년(1948~2008)'전이 10월 26일까지 열린다. 한국사진을 대표하는 작가 106명의 작품 380여점이 선보인다. 지면상 여기서는 시대를 대표하는 10여명의 작가를 통해 우리 사진 역사를 훑어보고자 한다.

많은 사진 전문가가 참가한 이번 전은 한국사진 60년을 회고하고 앞으로의 비전을 전망하는 데서 그 의의를 찾으면 어떨까 싶다. 4월혁명, 5월, 6월항쟁 그리고 서울올림픽과 한일월드컵 등 결정적 순간들이 담긴 사진이 적어 그런지 전반적으로 관객의 마음을 확 끌지는 못하는 것 같다.

사진은 한 시대를 비추는 거울로, 우리의 자화상을 제대로 그려낼 수 있는 도구는 없을 것이다. 1948년~2008년 사진을 보니 나는 누구이며 우리는 누구인지를 다시 묻게 한다. 해방 후 이념갈등, 전쟁, 분단 그리고 개발독재 속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 사회로의 이행과정을 사진을 통해 한눈에 볼 수 있어 편리하기도 하다.

사진 한 장으로 한 시대의 리얼한 현장을 읽는 기적

정범태(1928~) I '우유배급(서울 만리동)' 젤라틴 실버프린트 22×35cm 1955
 정범태(1928~) I '우유배급(서울 만리동)' 젤라틴 실버프린트 22×35cm 1955
ⓒ 정범태

관련사진보기


정범태(1928~)의 '우유배급'은 1955년 작으로 휴전한지 2년이 채 안됐으니 궁핍으로 찌든 시대다. 그런 삶의 구차함도 아이들의 발랄함까지 없애지는 못한다. 하여간 당시로는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고, 작가가 이를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그 자체가 앞선 생각이다.

그런데 사진에서 보듯 하루 끼니를 잇기 힘든 시절에 아이들 표정에는 그림자가 전혀 없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다. 오히려 티 없이 맑고 순수하다. 뭐든지 열심히 하면 잘 살 수 있다는 꿈과 희망으로 넘쳐 보인다. 사는데 꼭 먹는 것만이 다는 아닌 듯싶다. 그릇의 크기를 보니 배는 많이 곯았어도 아이들의 온기는 여전히 따뜻하게 느껴진다.

다시 묻는다. 사진의 힘은 무엇일까? 그 어떤 수사(修辭)도 이런 한 장의 사진보다 그 시대를 더 생생하게 증언할 수는 없다. 사진 한 장의 사진이 주는 감동과 기록이 주는 위력은 그래서 하나의 기적을 보는 것 같다.

이형록 등 '신선회'의 리얼리즘계열 사진들

이형록(1917~) I '강변 서울한강' 젤라틴 실버프린트 51×41cm 1957
 이형록(1917~) I '강변 서울한강' 젤라틴 실버프린트 51×41cm 1957
ⓒ 이형록

관련사진보기


1950~60년대 사진은 해방 전 예쁘게만 보이는 살롱사진과는 달리 '생활주의 리얼리즘'이 주류였다. 관념적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것을 거부하고, 현실의 속임이 없는 재현을 앞세운다. 이런 사진의 흐름을 주도한 것은 '신선회(新線會 1956년 결성)' 회원들이었다. 

이형록(1917~) 역시 이 모임의 산파 역할을 한 회원으로 사진의 기록성과 사실 묘사에 초점을 두었다. 하지만 '강변 서울 한강'은 그 시대의 리얼리즘 문법을 따르면서도 작가의 개성과 참신한 구도를 연출하는, 조금은 과도기적 작품이라 할 수도 있다.

젖먹이를 매고 머리엔 빨 거리를 인 어린 소녀는 정말 고단한 일상을 보여주면서도 앞면에 폐품처럼 뒤집어진 나룻배와는 묘한 대조를 이룬다. 물이 빠져 나가지 못하는 배의 상황과 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소녀의 처지가 서로 닮아 사진에 극적 효과를 낸다. 이런 점을 포착할 줄 아는 작가의 빼어난 관점이 신선하다.

작가주의의 정착 1970-80년대

이창남(1943~) I '누드' 디지털 실버프린트 60×90cm 1980. 김중만(1954~) '젖' 잉크젯프린트 180×120cm 2006 부분화. '젖'은 혜원 신윤복의 그림을 사진으로 재창조한 것 같다
 이창남(1943~) I '누드' 디지털 실버프린트 60×90cm 1980. 김중만(1954~) '젖' 잉크젯프린트 180×120cm 2006 부분화. '젖'은 혜원 신윤복의 그림을 사진으로 재창조한 것 같다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1970년대부터는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가동됐다. 사진에도 '공모전'이 생기고 한국문화의 뿌리를 찾아보려는 <샘이 깊은 물> 등 월간지의 기획물이 연재되고 거기에 작가의 개성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런 와중에 육명심(1933~)이 한국인의 혼을 탐색하는 '백민'시리즈 등을 발표하여 인물사진의 새 지평을 연다.

사진기법에서도 클로즈업, 앵글의 다각적 시도, 사진의 질감보다는 명암의 효과주기, 거친 입자 등이 등장한다. 작가의 미적 감각과 자유로운 사고와 개성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리얼리즘의 틀에 박히는 정형화에 반대하여 그 형식의 다양성을 추구한다.

1980년에 발표된 이창남(1943~)의 '누드'는 그 속에 작가의 어떤 강한 메시지가 담겨있음을 짐작케 한다. "누드는 대지의 생명력을 갖춘 자연의 일부이며, 디오니소스적 해방감과 도취감을 맛보게 하는 것이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김중만(1954~)의 누드 '젖'과는 시대 차는 있으나 삶의 에너지를 분출한다는 면에서는 같다.

전통문화의 시각적 승화

김수남(1949~) I '제주도 영등굿(제주도 북제주 하도리)' 디지털 실버프린트 50×70cm 1982
 김수남(1949~) I '제주도 영등굿(제주도 북제주 하도리)' 디지털 실버프린트 50×70cm 1982
ⓒ 김수남

관련사진보기


1980년대 한국사회는 '광주'가 곧장 떠오르듯, 민주화 여정에서 엄청난 시련기였고 사회의 갖가지 모순과 갈등이 폭발하는 변혁기였다. 창작과 표현의 자유가 극도로 제한되어서인지 80년대 작품은 별로 없다. 간신히 신복진, 김영수 등의 현실비판적 사진을 볼 뿐이다.

그 자신 사진의 박수무당이었던 김수남(1949~)은 굿이야말로 우리문화의 혼이자 원형으로 삶과 죽음, 고통과 환희, 좌절과 희망, 이런 것들을 가장 극렬하고 감동적으로 담아내는 그릇으로 봤기에 대중의 외면에도 이런 사진들을 끝까지 지켜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숭고하고 신령한 한국미로 넘친다. 1995년에는 일본의 '히가시카와(東川)상을 받기도 했다.

우리나라 발전의 원동력 '아 어머니!'

윤주영(1928~) I '갯벌의 어머니' 잉크젯 프린트 160×80cm(4) 1980
 윤주영(1928~) I '갯벌의 어머니' 잉크젯 프린트 160×80cm(4) 1980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1980년 작으로 이번엔 교수, 장관, 대사, 언론인, 정치가 등 화려한 경력의 윤주영(1928~)의 '어머니' 사진을 보자. 그는 자식을 위해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어머니를 사회발전의 원동력으로 보았고, 밭과 시장과 갯벌에서 몸을 던지는 어머니들을 애착을 가지고 찍어왔다. 그의 진지함은 현장감 그 이상이다. 

80년대 후반기로 들어서면서 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과 해외여행의 자유화 등으로 외국과의 교류가 봇물처럼 한꺼번에 터졌고 해외유학파들도 국내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때부턴 '반(안티)사진'도 등장하고, 현실에 대한 왜곡 없이 카메라의 눈으로 빌려 포착한다는 것에서도 벗어나려 한다. 이런 과정에서 사진은 세계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객관적 언어의 차원에서 벗어나 개인적 자의식과 욕망을 표현하는 주관적 언어로 변한다.

수많은 영원 속에 한 찰나를 어떻게 잡을까

임영균(1955~) I '비디오 첼로' 디지털프린트 134×89cm 1982
 임영균(1955~) I '비디오 첼로' 디지털프린트 134×89cm 1982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이번엔 임영균(1955~)의 1982년 작 인물사진을 보자. 그는 중앙대를 나와 뉴욕대대학원에서 사진을 공부하다가 80년대 뉴욕에서 활동하는 김원숙, 전찬승, 황규백, 홍신자, 장 두이 등을 두루 사귀면서 한국예술가들의 사진을 많이 남긴다. 그 중엔 백남준도 있었다.

위 사진은 백남준을 알게 된 첫해에 찍은 것으로 백남준의 동료이자 분신이기도 한 첼리스트 '샬럿 무어먼'이 비디오첼로를 연주하는 모습이다. 하긴 샬럿은 명문 줄리아드 출신의 첼리스트로 전위예술가의 냄새도 강하게 풍기는 여신 같은 존재다. 이 사진은 바로 그런 인간적 매력을 잘 포착했다.

그는 사진을 흘러가는 수많은 영원 속에 한 찰나를 기록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그 영원 속 찰나도 결국 우연이라는 필연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영감과 함께 엄청난 노력을 쏟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사진만큼 인내가 요구되는 예술도 없는 것 같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사진과 회화의 경계 모호

이강우(1965~) I '생각의 기록' 제라틴 실버프린트 240×600cm 1994
 이강우(1965~) I '생각의 기록' 제라틴 실버프린트 240×600cm 1994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포스트모더니즘과 페미니즘이 등장하는 1990~2000년대에 와선 사진과 회화의 경계가 점점 흐려진다. 사진이 여러 매체를 담을 수 있는 도구임이 증명되면서 기존미술의 개념이 달라지고 사진의 위상도 높아진다. 현재 최고의 그림값을 갱신하고 있는 세계적 독일작가 리히터(1932~)도 사진회화(photo-painting)로 현대미술의 위기를 뚫고 있다.

또한 사진에 허구와 시뮬레이션과 환영(幻影)과 환상의 세계가 도입된다. 이젠 사진이 기록이나 재현을 넘어 창조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아예 사진을 찢고 태우고 흙·돌·나무에 매달고 일상품에 사진을 입히고, 인화지 대신 한지 등으로 출력하기도 한다.

위 이강우(1965~) 작품은 인물과 칼로 찍은 두 장의 필름을 합성해 만든 몽타주사진인데 그림처럼 보인다. 작가가 서울대미대에서 회화를 전공했기 때문인가. 미술평론가 이주헌씨는 위 작품을 "권력에 저항해 자아를 지키려는 한 개인이 겪는 정신적 갈등을 그린 작품"이라고 평했다.

세계시장에서 경쟁력 갖춘 사진작가들

배병우(1950~)I '만남과 헤어짐' 제라틴 실버 프린트 169×80×(10)cm 1995. 구본창(1953~) I '태초에(10-1)' 177×480cm 흑백사진 면천 실재봉 1995/1996
 배병우(1950~)I '만남과 헤어짐' 제라틴 실버 프린트 169×80×(10)cm 1995. 구본창(1953~) I '태초에(10-1)' 177×480cm 흑백사진 면천 실재봉 1995/1996
ⓒ 배병우 구본창

관련사진보기


이제 한국사진의 스타작가들을 살펴보자. 우선 뚝심 있고 사람들을 구름처럼 몰고 다니는 배병우(1950~)의 '소나무시리즈', 그는 사진으로 우리의 전통미와 그 맥을 이어간다고 할 수 있다. 누구보다 빛의 속성을 잘 알기에 이를 사진에 적용하여 먹빛의 농담과 여백을 살린다.

이 시리즈는 겸재 정선이 카메라 붓으로 그린 수묵화 같다. 화면의 앞은 어둡고 뒤는 되레 밝다. 소나무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마치 땅과 하늘을 연결해 주는 영혼의 매개체로 보며 사진을 찍는 것 같다.

또 다른 스타작가는 구본창(1953~)이다. 그는 연세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대기업에 입사했으나 답답함을 못 이겨 회사일을 핑계로 독일로 간다. 그리고 거기서 아예 사진인생을 시작한다. 그의 사진이 주는 신선함은 바로 사진에 늦깎이로 데뷔하여 경험이 달라서인가보다.

'태초에'시리즈는 90년대 구본창의 수작들로 사진을 바느질하듯 이어 붙인 것이다. 그는 사진의 표현가능성이 다양함을 깨닫고 이렇게 꿰매는 것뿐만 아니라 구성사진, 연출사진, 상업사진 등 지금도 여러모로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역설적 무(無)와 공(空)을 사진 찍는 세계적 스타, 김아타

김아타(1956~) I '온에어프로젝트 055-2' 크러머제닉프린트 168×225cm 2004
 김아타(1956~) I '온에어프로젝트 055-2' 크러머제닉프린트 168×225cm 2004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끝으로 김아타(1956~)의 작품을 보자. 로댕미술관에서 처음 그의 사진을 봤을 때 정말 사진의 위력이 큼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작품은 만 컷을 찍어 중첩시켰는데 허옇게 보였다. 장시간 노출과 중첩된 사진이 주는 힘과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그는 "존재하는 것은 다 사라지나 그 정체성은 남는다"라는 역설적 무(無)와 공(空)의 철학을 바탕으로 사진을 찍는다. '섹스시리즈' 역시 존재하는 것이 사라지는 과정을 1시간동안 '생방송(on-air)'으로 중계하고 있는 셈이다. 누드가 진화된 이런 시리즈가 나올지 누가 예상했겠는가.

하여간 한국사진 60년, 짧은 기간에 놀란 발전을 했다. 앞으론 테크닉이 아니라 아이디어가 문제다. 사진은 쉬워 보이나 실은 발로 뛰는 가장 힘든 예술장르 아닌가. 좋은 작가가 나오려면 사회적 분위기와 함께 본인도 사진 외에도 여행, 독서, 풍부한 인생경험 등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 보강이 된다면 우리나라 사진분야의 전망은 밝아 보인다.

덧붙이는 글 | 전시: 10월26일까지 입장료: 만 18-65세 성인만 3천원 나머지 연령층은 무료.
전화 02)2188-6114. http://www.moca.go.kr/index.htm 교통편 홈페이지 참조
'한국현대사진특강(1990-2000년대)' 언제: 9월 26일(금) 오후3시~5시 강사: 박영택교수과 신수진씨
*도록에 나오는 사진전문가 박주석, 박평종, 박영택, 신수진 등의 내용 중 일부 참고함.



태그:#한국현대사진60년전, #김아타, #배병우, #구본창, #김중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