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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는 피하고 소고기는 본전이며 오리고기는 찾아서 먹어라"
▲ 오리로스구이 "돼지고기는 피하고 소고기는 본전이며 오리고기는 찾아서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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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한낮에는 아직 찌는 듯한 여름 무더위가 마지막 몸부림을 치고 있다. 하지만 아침저녁으로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면서 새벽에는 이불을 덮어야 할 정도다. 가까운 들녘으로 나서면 코스모스가 방긋거리고, 알차게 여물고 있는 나락 알갱이 위를 고추잠자리가 한가롭게 날고 있다. 

저만치 산비탈 과수원에는 대추와 감, 배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주황빛 능소화가 예쁘게 매달려 있는 담장 안에는 석류가 바알간 햇살을 머금고 있다. 우물가에 선 모과나무에도 어른주먹만 한 연초록 모과가 뽀얀 얼굴을 은근슬쩍 드러내고 있다. 어느 곳으로 고개를 돌려도 거기 알찬 가을이 따가운 햇볕 위에 앉아 그네를 타고 있다.  

어디를 바라보아도 입에 침이 가득 고이는 먹을거리로 가득 찬 가을. 하지만 지난 여름 열독이 너무 깊이 파고든 탓일까. 향긋한 햇과일을 한 입 깨물어도 제 맛이 나지 않는다. 상큼한 단맛이 혀를 끝없이 희롱하는데도 풋과일을 씹는 듯한 느낌이 난다고나 할까. 이런 때 반드시 먹어줘야 할 보신음식이 오리고기다.

예로부터 "돼지고기는 피하고 소고기는 본전이며 오리고기는 찾아서 먹어라"는 속담이 있다. 이는 오리고기가 그만큼 몸에 좋다는 얘기다. 특히 가을철에 먹는 오리고기는 지난여름 내내 무더위에 지쳐 있었던 사람 몸의 기를 북돋워주고, 비위(비장과 위장)를 조화롭게 하는 것은 물론 여름철 열독까지 깨끗하게 풀어준다. 

오리고기는 한방과 민간에서 중풍, 고혈압, 열독, 설사, 폐결핵 등을 치료하거나 예방하는 명약으로 쓰였다
▲ 오리 오리고기는 한방과 민간에서 중풍, 고혈압, 열독, 설사, 폐결핵 등을 치료하거나 예방하는 명약으로 쓰였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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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고기 먹으면 태아 손발이 오리발 된다?

"아가! 니는 앞으로 오리괴기는 절대로 묵지 말거라이."
"와예?"
"아(애기) 밴 년이 오리괴기로 묵으모 아 손발가락이 오리발처럼 붙어서 나온다 카더라."
"어무이~ 그기 머슨(무슨) 말인교? 지는 미신 따위는 안 믿거덩예."
"야(이 아이)가 큰 일 날 소리로 하고 자빠졌네. 옛날 말이 틀린 기 하나도 없다 안 카더나. 시에미가 묵지 말라카모 고마(그냥) '야(예)~'하모 될 꺼로 머슨 토를 다노?"

1960년대 중반. 길라잡이(나)가 까까머리로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마을사람들은 오리를 많이 길렀다. 오리는 때가 되어 모이를 줘야 하는 닭보다 기르기가 훨씬 더 쉬웠기 때문이었다. 오리는 그저 이른 아침부터 저녁나절까지 마을 앞을 가로질러 흐르는 도랑에 풀어놓으면 그만이었다.

마을 어르신들은 그렇게 키운 통통한 오리들을 벼가 마악 고개를 숙일 즈음이면 두어 마리 잡아 백숙을 만들어 나눠먹곤 했다. 여름철에 걸린 열독에 그만이라며. 하지만 임산부에게는 절대 먹지 못하게 했다. 임산부가 오리고기를 먹으면 태아 손발이 오리발처럼 붙는다는 잘못된 속설 때문이었다.

닭도 마찬가지였다. 마을 어르신들은 임산부가 닭을 먹으면 태아 피부가 닭살로 변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루는 동산마을(지금의 창원시 상남동)에 갓 시집 온 새댁이 들일을 나간 시부모님 점심으로 가마솥에 포옥 삶아둔 오리고기와 오리죽을 챙기다가 오리고기가 하도 댕겨 다리 하나를 떼 내 맛나게 먹은 뒤 들로 나갔다.  

저만치 고즈넉한 시골마을 황토 담벼락에는 주황빛 능소화가 길게 늘어뜨려져 있고, 민가 마당 한 귀퉁이에는 연초록빛 큼직한 모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 오리로스구이 저만치 고즈넉한 시골마을 황토 담벼락에는 주황빛 능소화가 길게 늘어뜨려져 있고, 민가 마당 한 귀퉁이에는 연초록빛 큼직한 모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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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반찬으로 부추와 당근이 섞인 잘게 썬 양배추, 연초록빛 무전병, 양파조림, 마늘, 된장, 양념장, 상추와 풋고추, 마늘쫑조림 등이 나온다
▲ 오리로스구이 밑반찬으로 부추와 당근이 섞인 잘게 썬 양배추, 연초록빛 무전병, 양파조림, 마늘, 된장, 양념장, 상추와 풋고추, 마늘쫑조림 등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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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오리피는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도 살린다

"거 참! 헷갈리네."
"와 그러십니꺼?"
"분명 내가 잡은 오리는 다리가 두 개였는데, 다리 하나가 감쪽같이 없어졌다 아이가."
"......"
"하긴, 며늘애가 아(아기)로 낳아 보모 금방 알 것제? 아 손발이 오리발인가 아인가. 며늘아! 내 말이 틀맀나?"

예로부터 오리고기는 한방과 민간에서 중풍, 고혈압, 열독, 설사, 폐결핵 등을 치료하거나 예방하는 명약으로 쓰였다. 특히 오리 피는 맛이 짜고 독이 없으며, 막힌 혈을 풀어주기 때문에 빈혈이나 이질 걸린 사람들에게 특효약이었다. 오죽 오리피가 좋았으면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에게 흰 오리피를 입 속으로 흘려 넣으면 살아나기까지 한다는 말이 있었을까. 

조선 중기 명의 허준(1539~1615)이 쓴 <동의보감>에는 "오리는 맛이 달고 짜며 성질은 평하다. 허한 것을 돕고 열을 덜어주며 장부를 편하게 한다"고 씌어져 있다. 이와 함께 "갑자기 일어나는 번열과 복수 차는 것을 치료하며 부은 것을 내리게 하고 기침 폐결핵을 다스린다"고 나와 있다. 

<동의보감>은 또 "오리머리를 달여서 먹으면 수종을 치료하고 소변을 잘 통하게 한다. 오리알은 음기를 보하고 폐열로 인한 기침과 목 안이 아플 때, 이질 등에 삶아서 먹는다. 짜게 해서 먹되 너무 많이 먹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리기름은 성질이 찬데 치질의 일종인 치핵에 바르거나 적목(결막염) 초기에 넣어준다"고 되어 있다.

치이칙 맛있는 소리를 내며 하얀 연기 속에 노르스럼하게 익어가는 오리로스를 바라보자 소주 생각이 절로 난다
▲ 오리로스구이 치이칙 맛있는 소리를 내며 하얀 연기 속에 노르스럼하게 익어가는 오리로스를 바라보자 소주 생각이 절로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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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여, 아름다워지려면 오리고기 자주 먹어라

"오리고기는 알칼리성 식품이기 때문에 피부노화를 막아줄 뿐만 아니라 노인들 건강을 지켜주는 뛰어난 스테미너 음식이지요. 특히 여성들이 오리고기를 자주 먹으면 새색시처럼 아름다워진답니다. 그리고 오리고기에는 비타민이 많이 들어 있어 공부하는 아이들에게는 지구력과 집중력까지 키워주지요. 피로를 쉬이 느끼는 사람에게도 참 좋아요."

8월 19일(화) 저녁 5시. 처서를 며칠 앞두고 소요산행 1호선을 타고 가다가 회룡역에 내려 의정부 수락산 자락으로 향했다. 그곳 산자락 한 귀퉁이에 오리로스구이를 잘한다는 입소문이 제법 난 식당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길라잡이는 오리고기는 별로다. 하지만 가을을 타는지 기운이 없고 피로해 오리고기로 몸보신을 한번쯤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룡역에서 306보충대를 지나 농업기술센터를 지나치는 길목 곳곳에는 코스모스가 예쁘게 피어나 가을빛을 누릇누릇 익어가는 벼논에 톡톡 튕기고 있다. 저만치 고즈넉한 시골마을 황토 담벼락에는 주황빛 능소화가 길게 늘어뜨려져 있고, 민가 마당 한 귀퉁이에는 연초록빛 큼직한 모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그 용현마을 들머리 오른 편에 오리로스구이집이 아직은 짙푸른 녹음 속에 포옥 파묻혀 있다. 수락산 발목쯤에 둥지를 튼 이 집은 100여 평 남짓한 숲속마당까지 딸려 있어 입요기, 눈요기까지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 이 집 주인 황종연(48)씨는 "오리고기는 양념고기보다 불판 위에 지글지글 구워서 먹는 생고기 맛이 으뜸"이라고 귀띔한다.    
 
연초록빛 무전병에 오리로스를 싸먹는 맛도 상큼하다
▲ 오리로스구이 연초록빛 무전병에 오리로스를 싸먹는 맛도 상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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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과 양배추까지 올려 한 입 넣자 쫄깃쫄깃 고소하게 씹히는 깊은 맛이 으뜸이다
▲ 오리로스구이 마늘과 양배추까지 올려 한 입 넣자 쫄깃쫄깃 고소하게 씹히는 깊은 맛이 으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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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계절 내내 즐길 수 있는 21세기 웰빙음식 대표

"음식물을 처리하다 보면 삼겹살 기름은 바닥에 기름이 허옇게 붙어있지요. 하지만 오리기름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아요. 게다가 돼지기름은 뜨거운 물로 닦아야 잘 지워지지만 오리 기름은 찬물로 닦아도 잘 닦여요. 아마 그 때문에 오리기름은 몸에 들어가더라도 분해가 잘돼 모두 빠져나온다고 그러는 것 같아요."

올해로 5년째 이 집을 꾸리고 있다는 주인 황씨는 "보통 사람들은 여름철 보양음식으로 오리고기를 많이 찾아요. 하지만 오리고기는 사 계절 내내 즐길 수 있는 21세기 웰빙음식의 대표주자"라고 말한다. 황씨는 이어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오리고기를 먹어줘야 공해도 이기고 몸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다"며 오리예찬론을 폈다.

오리로스구이를 시키자 밑반찬으로 부추와 당근이 섞인 잘게 썬 양배추, 연초록빛 무전병, 양파조림, 마늘, 된장, 양념장, 상추와 풋고추, 마늘쫑조림 등이 식탁 위에 올랐다. 이윽고 반 토막 낸 양파, 잘게 찢은 표고버섯과 함께 오리로스가 푸짐하게 나온다.

불판 위에 오리 생고기와 양파, 마늘, 표고버섯을 척척 올리는 황씨는 "오리는 몸 안에 소금 함량이 높기 때문에 병에 잘 걸리지 않고, 상처를 입어도 잘 곪지 않는다"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한 가지 좋은 것은 오리고기는 식어도 그 쫄깃하고 달착지근한 맛이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 오리로스구이 한 가지 좋은 것은 오리고기는 식어도 그 쫄깃하고 달착지근한 맛이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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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고기는 아무리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

치이칙 맛있는 소리를 내며 하얀 연기 속에 노르스럼하게 익어가는 오리로스를 바라보자 소주 생각이 절로 난다. 커~ 소주 한 잔 입에 털어 넣고 상추 위에 연초록빛 무전병을 올린 뒤 노릇노릇 잘 익은 오리로스 한 점 양념장에 포옥 찍어 올린다. 이어 마늘과 양배추까지 올려 한 입 넣자 쫄깃쫄깃 고소하게 씹히는 깊은 맛이 으뜸이다.

노릇노릇 익어가는 오리로스를 된장에 찍어 연초록 무전병과 함께 싸먹는 맛도 상큼하고 깔끔하다. 노릇노릇 익은 표고버섯과 양파를 상추 위에 올려놓고 잘 구워진 오리로스를 동그랗게 싼 뒤 풋고추를 된장에 포옥 찍어 함께 먹는 맛도 색다르다. 한 가지 좋은 것은 오리고기는 식어도 그 쫄깃하고 달착지근한 맛이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초가을, 수락산(638m)이 숲속에 숨겨둔 빼어난 산세를 은근슬쩍 훔쳐보며 소주 한 잔 캬~ 한 뒤 오리로스 볼 터지게 넣고 먹는 그 황홀한 초가을 맛이라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오리로스를 다 먹어갈 때쯤이면 나오는, 입맛을 자꾸 당기게 하는 고소한 오리죽도 혀를 또 한 번 까무러치게 만든다.     

동화작가 김종만(51)씨는 "우리 집은 매일 오리고기를 먹는다. 아마 그 때문에 가족들 모두 잔병치레가 없는 것 같다"라며 빙그시 웃는다. 김씨는 이어 "오리고기는 아무리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 특히 이 집 오리로스는 생고기만을 고집해서 그런지 이명박 정부를 씹는 그 맛처럼 너무 고소하다"고 덧붙였다. 

초가을 저녁, 도토리가 투둑투둑 떨어지는 수락산 자락에서 삼림욕을 하면서 지글지글 구워 소주 한 잔과 함께 먹는 오리로스구이. 이명박 정부 들어 스트레스에 수없이 시달려 건강이 걱정되는 요즈음, 가족끼리 둘러앉아 오리로스구이 서로의 입에 살갑게 넣어주며 티 없는 가을하늘처럼 활짝 웃어보는 것은 어떨까.


태그:#오리로스구이, #수락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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