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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3월 31일, 일본 공산주의자동맹 적군파(赤軍派)의 간부 다미야 다카마로(田宮高磨)를 포함한 9명의 적군(赤軍)병사들은 전 일본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요도호 하이재킹(공중납치) 사건을 일으킨다.

하네다발 후쿠오카행 보잉기 '요도호'는 적군(赤軍)병사들을 태우고 이다스키 공항, 김포공항을 거쳐 평양에 도착하게 된다(승객 전원을 석방함). 북(조선)은 이들의 비행기 납치 행위를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이들의 망명을 받아들였다.

적군파 간부가 거사 위해 일본 떠날 때 남긴 말

당시 일본은 학원민주화투쟁과 안보투쟁(일본이 미국 주도의 냉전에 가담하는 미일상호방위조약 개정에 반대하여 일어난 대규모 투쟁)등을 통해 학생운동이 거대한 기세로 솟아오르던 시기였다. 이러한 학생운동은 '전공투(전국학생공동투쟁회의) 운동'이라 불렸다. 이 중에서도 적군파는 '무장시가전 - 전 단계무장봉기'를 제기하며 이를 통해 '세계혁명전쟁'으로 나아가는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매우 과격한 섹트(분파)였다.

적군파는 자신들의 신념대로 1969년 11월 4일 다이보사스 고개에서 군사훈련을 감행한다. 그러나 다음날 5일, 훈련 중이던 53명 전원이 체포되어 적군파는 조직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이들은 군사훈련을 통해 수상 관저를 무력으로 점거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다이보사스의 치명적인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계획된 것이 바로 '요도호 사건'이었다.

적군파의 좌경맹동주의 방식은 일본의 학생운동에 큰 상처를 남겼다. 평양으로 간 9명의 적군파들은 북(조선)에 체류하면서, 북(조선)의 사회주의 건설과정을 직접 체험하고 학습하는 과정에서 자신들 적군파의 좌경맹동주의, 그리고 쁘띠부르주아적 급진성과 관념성으로 인한 과오를 크게 뉘우쳤다. 적군파 간부였던 다미야 다카마로가 지은 <우리사상의 혁명>이라는 책에는 이러한 과정이 자세히 나와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요도호 납치의 총책임자였던 다미야 다카마로는 1970년 3월 당시, 거사(?)를 위해 일본을 떠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한다.

"우리는 '내일의 죠'다."

잘못된 투쟁방식이기는 해도,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에 반대해서 전 세계 인민의 계급해방을 위해 목숨을 건 젊은 혁명가의 출정 발언이라는 무게감이 느껴지는 순간, 그런 엄중한 발언에 등장한 <내일의 죠>는 만화책의 제목이다. 도대체 어떤 만화이기에 적군파를 포함한 전공투 세대의 가슴을 울렸을까?

무엇이 젊은 대학생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나?

TV 애니메이션 <내일의 죠 2>에 나온 주인공 야부키 죠
 TV 애니메이션 <내일의 죠 2>에 나온 주인공 야부키 죠
ⓒ 내일의 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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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의 별>, <타이거마스크> 등으로 유명한 다카모리 아사오(필명 카지와라 잇키)의 원작에 치바 테츠야의 작화로 1968년부터 주간 <소년매거진>에 연재를 시작한 <내일의 죠>는 1970년에 데자키 오사무 감독의 지휘 하에 TV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79화에 걸쳐 방송되기도 했다.

1980년에는 역시 데자키 오사무가 감독을 맡아 <내일의 죠 2>라는 제목으로 47화에 걸쳐 TV 애니메이션으로 방송된다. 70년대의 애니메이션이 다카모리 아사와와 치바 테츠야의 연재만화 중에서 1부를 다룬 것이라면, 80년대의 애니메이션은 2부를 다뤘다. 한국에서도 <내일의 죠 2>가 MBC를 통해 공중파를 타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당시로는 전례가 없던 스포츠 근성물의 전형을 보여준 기념비적 작품 <내일의 죠>는 만화와 애니메이션 팬에게는 고전으로 자리매김해서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그 빛을 잃지 않고 있다.

그러나 당시에 뛰어난 만화나 애니메이션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세상의 변혁을 꿈꾸는 전공투 세대들에게 깊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철완 아톰>, <사이보그 009>, <철인 28호>, <타이거 마스크>, <루팡 3세>, <데빌맨>, <독수리 5형제>, <마징가 Z> 등 60년대와 70년대에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수많은 걸작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그저 인기 있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이었을 뿐이다. 그에 비해 <내일의 죠>는 이 작품들과는 분명히 달랐다.

<내일의 죠>의 배경은 철저하게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야기의 상당부분이 빈민가와 소년원 등을 중심으로 진행되는데, 주인공 야부키 죠는 부모의 얼굴도 모르는 고아에 소년원을 제 집처럼 들락거리는 문제아 중의 문제아. 동네 길바닥에서 싸움질하기 일쑤이며 태연하게 사기를 치기도 한다.

그런 그가 빈민가에서 만난 왕년의 권투선수 출신 단뻬이와 소년원의 리키이시를 통해 권투에 눈을 뜨게 된다. 이야기 중간 중간에 사실적으로 그려낸 빈민가의 모습들은 분명 그 당시의 만화나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지금으로서도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이러한 점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해방을 꿈꾸는 전공투 학생들의 이념적 성향과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계급적 지향의 동일성보다 더욱 강한 영향을 끼친 것은, 쓰러져도 쓰러져도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야부키 죠의 모습이었다. 상대 선수의 무차별적 가격에 피투성이가 되어 다운을 당해도 카운트 나인이 되면 무엇에 홀린 듯 다시 일어나 상대에게 전진하는 야부키 죠. 그리고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에 노가드(No Guard) 상태로 맞받아치는 크로스 카운터(Cross Counter)는 젊은 대학생들의 가슴에 불을 당겼다.

'550엔 대 9,550엔의 싸움'

세계챔피언 호세 멘도사와의 경기에서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는 야부키 죠
 세계챔피언 호세 멘도사와의 경기에서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는 야부키 죠
ⓒ 내일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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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챔피언 호세 멘도사와의 경기에서 트리플 크로스카운터를 터트리는 야부키 죠
 세계챔피언 호세 멘도사와의 경기에서 트리플 크로스카운터를 터트리는 야부키 죠
ⓒ 내일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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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전공투 학생들의 투쟁이란 것은 패배가 보이면서도, 패배할 줄 알면서도 싸울 수밖에 없는 그러한 투쟁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잘 나타내는 말이 '550엔 대 9,550엔의 싸움'이다. 전공투 학생은 500엔짜리 안전 헬멧과 50엔짜리 각목을 착용한 반면에 경찰기동대는 전투복 상하 2,900엔, 방어복 2,400엔, 헬멧 1,100엔, 방석(防石)면 800엔, 방어장갑 1,700엔, 경찰봉 200엔, 목재 방석(防石)용 방패 450엔, 합계 9,550엔 장비로 무장했다.

여기에 두랄루민제 방패, 더욱이 방석(防石)네트까지 구비되니 가격 차이는 더욱 벌어지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힘겹게 투쟁하는 전공투 학생들은 <내일의 죠>에서 야부키 죠가 보여주는 불굴의 정신력과 근성에 전율했다.

최후의 순간까지 다 불태워 버리겠어!

<내일의 죠>가 전공투의 시위를 과격화시킨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로 야부키 죠의 비타협적이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 권투는 일본 대학생들의 심금을 울렸다. 게다가 리키이시, 카를로스 리베라 등과 주먹을 교환하면서 보여준 우정과 의리는, 자본과 권력에 맞서 동지애로 단결해야 하는 전공투 학생들에게 훌륭한 모범이 되었다.

야부키 죠와 링에서 겨루기 위해 살인적인 체중감량으로 자신의 체급을 벤텀급까지 끌어내린 리키이시는 야부키 죠와의 경기 후 사망한다. 소년원 친구였던 리키이시의 사망에 폐인이 된 야부키 죠.

그러나 베네수엘라에서 날아온 천재 복서 카를로스 리베라와의 만남은 죠에게 새로운 의욕을 불어넣는다. 역시 베네수엘라의 빈민가 출신인 카를로스 리베라는 죠와 주먹을 나누며 친구가 된다. 그러나 죠와의 경기의 후유증, 그리고 이어 벌어진 세계 챔피언 호세 멘도사의 강펀치로 인해 머리를 크게 다친 카를로스 리베라는 정신이 나가 버린다.

자신과 주먹을 나누었던 친구들의 불행은 야부키 죠에게 큰 정신적 트라우마를 남기고, 신체마저 중증의 펀치드렁크로 병들게 된다. 자신을 사랑하는 요코의 만류에도 링에 오른 죠는 세계 챔피언 호세 멘도사와의 경기를 통해 눈부시게 타오른다. 그러고는 자신이 말한 그 유명한 명대사의 내용처럼 새하얀 재가 되어 세상과 이별한다.

"껍데기만 타다가 꺼져버리는 것처럼 어설픈 젊음을 보내고 싶진 않아. 비록 한 순간일지언정 눈부실 정도로 새빨갛게 타오르는 거야. 그러다 결국엔 하얀 잿가루만 남게 되겠지. 미련 없이 불태웠을 땐 남는 건 새하얀 잿가루 뿐이야. 그래. 최후의 순간까지 다 불태워 버리겠어! 아무런 후회도 없이 말이야!"

그들의 진심마저 잿가루가 된 것은 아니다

호세 멘도사와의 경기 후 모습. 바로 그 유명한 장면이다.
 호세 멘도사와의 경기 후 모습. 바로 그 유명한 장면이다.
ⓒ 내일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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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 눈부실 정도로 새빨갛게 타올랐다가 새하얀 재로 변해버린 야부키 죠의 모습은 자본과 권력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싸구려 헬멧과 각목으로 달려들었던 전공투 학생들의 모습과 너무도 닮아있었다. 전공투 학생들은 야부키 죠의 모습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했고, 그들에게 <내일의 죠>는 단순한 만화 이상의 것, 자신들의 교과서가 되었다.

하지만 새하얀 잿가루가 된 야부키 죠처럼 전공투 운동도 잿가루가 되어버렸다. 시대적인 한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학생운동 내부 분파들의 갈등과 반목도 실패의 큰 원인이었다. 그러나 <내일의 죠>가 40년이 지나서도 우리의 마음속에 살아있듯이 전공투 운동의 진심마저 잿가루가 된 것은 아니다.

최근에 일본에서 <게공선>이라는 소설이 화제가 되었다. 고바야시 다키지라는 작가가 1929년에 지은 이 소설은 당시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대표작이었다. 캄차카 바다로 나가서 게를 잡아 통조림으로 가공하는 배 안의 가혹한 노동조건과 폭력, 노동자 착취를 고발한 이 작품은 8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2008년 1월부터 6월까지 6개월 동안 20만권이나 판매되는 놀라운 성적을 올렸다. 이러한 바람을 타고 일본 공산당의 지지율이 올라가기도 했다.

<게공선>의 독자들은 대부분 30살 이하의 젊은이들이라고 한다. 신자유주의의 광풍 속에서 실업자로, 비정규직으로 내몰린 젊은이들 말이다. 어쩌면 이들이 <내일의 죠>를 읽으며 혁명을 위해 투쟁하던 전공투 세대의 꿈을 이뤄줄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번 24회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세상을 바꾼 예술작품들>에 보여주신 많은 관심과 애정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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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 <세상을 바꾼 예술 작품들>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등 몇 권의 책을 쓴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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