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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시작된 티베트인들의 평화시위에 대해 중국 정부가 폭력적인 방식으로 탄압하고 있습니다. 티베트로 향하는 교통과 통신이 차단되었고 시위대가 피신한 사원들은 봉쇄되었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티베트에 평화를'이라는 주제로 '티베트평화연대'에서 마련한 릴레이 기고를 싣습니다. 학자, 시민운동가, 국제문제전문가, 문인 그리고 문화예술인들의 릴레이 기고로 티베트 사태를 균형잡힌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편집자말]
티베트평화연대 회원들이 지난 4월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세종로네거리까지 티베트 평화를 기원하는 '평화의 성화 봉송' 행사를 열었다.
 티베트평화연대 회원들이 지난 4월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세종로네거리까지 티베트 평화를 기원하는 '평화의 성화 봉송' 행사를 열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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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은 빈부격차와 인권 탄압, 쓰촨성 지진으로 드러난 지방 관리들의 부실 공사 문제 등 중국의 여러 가지 문제들이 국제적 이슈로 부각된 해로 기억될 것이다.

특히, 3월 중순에 티베트 수도 라싸에서 발생한 티베트족들의 항쟁과 이어진 중국 정부의 강경 진압은 전 세계적으로 큰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다. 또, 티베트인들 항쟁의 파장이 아직 느껴지는 상황에서 신장의 위구르인들 중 일부가 중국 경찰을 노린 공격을 감행한 것도 주목 받았다. 이런 사건이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는 해에 발생했기 때문에 관심이 더 뜨거웠을 것이다.

사실, 이번이 티베트인들의 첫 번째 항쟁은 아니었다. 티베트에서는 1959년과 1980년대에 대규모 항쟁과 거리시위가 있었고, 신장 위구르인들도 여러 차례 항의 행동을 벌였다.

이들은 모두 중국 정권의 성립 이후 계속돼 온 중국 정부의 억압 정책에 맞선 행동이었다. 이 행동에 참가한 사람들 모두가 독립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좀 더 많은 자치권을 누리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중국 정부는 큰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들 지역에서 물러서려 하지 않는 것일까?

왜 예컨대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 지지자들처럼 상대적으로 매우 온건한 요구(독립이 아닌 일부 자치권 확대)를 하는 세력들도 잔인하게 탄압하면서 통제력을 완화하기를 그토록 두려워하는 것일까?

경제적 이익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티베트와 신장 지역에서 취할 수 있는 물질적 이득이 한 요인임은 분명하다.

티베트에는 중국의 경제 개발에 필요한 여러 가지 천연자원들이 풍부히 매장돼 있다. 신장의 경우 중국 내 최대 석유 생산기지가 될 잠재력이 있다. 또, 중국 정부는 이란에서 생산된 석유와 가스를 육로송유관을 통해 수입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그 송유관은 신장을 관통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이들 지역에 대한 정책은 단지 경제적 이득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경제적 이득이 부각된 것은 상대적으로 최근의 일이지만 이들 지역에 대한 점령은 1950년대 초반까지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연 경제적 이득이 이들 지역을 점령하면서 치러야 했던 정치적·군사적 비용보다 반드시 작다고도 할 수 없다. 중국 정부의 티베트·신장 억압 정책에는 좀 더 근본적 이유가 존재한다.  

'완충지대'

아마도 가장 중요한 이유는 지정학적 중요성일 것이다. 사실 중국의 소수민족 중 상당수가 국경 지역에 몰려 있다. 특히, 티베트와 신장 지역은 국경 지역일 뿐 아니라 매우 방대한 영토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 전체 영토에서 티베트가 차지하는 면적은 10퍼센트가 넘고, 신장의 경우 무려 15퍼센트가 넘는다. 이 두 지역이 독립하면 중국은 전체 영토의 4분의 1이상을 잃는 것이다.

1949년 정부를 수립하면서 공산당 정부는 주변국들과의 '완충지대'로써 티베트와 신장의 가치에 주목했다. 예컨대, 마오쩌둥은 1950년에 티베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비록 티베트의 인구가 많지 않으나, 이곳의 국제적(전략적)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곳을 점령해야 한다."

이런 냉혹한 입장은 소수민족들의 민족자결권을 지지한다는 초창기 중국 공산당 강령과 어긋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오쩌둥이 중국 공산당에서 주도권을 행사하고 스탈린식 부국강병책으로 외부 위협에 맞서기로 마음먹은 이상, 이런 원칙은 사문화됐고 나중에는 아예 삭제됐다.

그래서 1950년대 초반 중국 정부는 이들 지역에 군대를 파병했다. 겉으로는 이들 지역을 '해방'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상은 지역민들의 의사를 무시한 군사 점령이었다.

1950년대 중반 이후 티베트와 신장 위구르인들은 몇 차례 대규모 저항활동을 벌였고 티베트에서는 불교가, 신장에서는 이슬람이 저항 이데올로기의 구실을 했다. 중국 정부는 종교 활동을 강하게 규제하고 심지어 종교 사원을 파괴하기도 했다.

중국 정부는 개혁 개방 이후 1980년대 이른바 '자유화' 시대에 이들 지역에 대한 통제의 정도를 다소 낮추다가 1990년대 이후 통제를 다시 강화했다. 이는 한편으로는 지역민들의 저항에 대한 반응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옛 소련의 붕괴 과정을 보면서 지배층이 국경의 소수민족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깨달았기 때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1990년대 이후 동화정책과 함께 각종 탄압이 강화됐다.

중국내 역사학과 역사학 교과서에서는 과거 전자본주의 시대 중국 한족 왕조들이 주변국과 맺었던 다양한 책봉·조공 관계들이 난데없이 근대적 의미의 통치-피통치 관계로 확대해석 됐다. 오랜 옛날부터 한족이 소수민족 지역을 통치해왔다고 주장하기 위해서였다.

또, 한족의 이주가 좀 더 장려됐고, 주요한 건설 프로젝트에는 주로 한족 노동자들을 동원했다. 이 과정에서 한족 이주자들과 토착민들 사이의 각종 사회적 격차 문제가 발생했다. 티베트인은 한족에 비해 일자리, 의료, 주거, 교육 등 거의 모든 중요 분야에서 차별 받았다. 그래서 티베트 청년 실업률이 거의 70퍼센트에 달하며, 한족은 무료로 의료보장 혜택을 누리지만 티베트인은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한다. 신장의 대규모 유전은 오직 한족만 고용하며, 이 지역 한족 평균수명은 위구르족보다 10살이나 높다.

중국 정부는 이런 차별 정책에 반대하는 세력들을 주기적으로 소탕했다. 그래서 1990년대 중반 이후 이른바 '사회주의 조국을 위협하는 분리주의 세력'을 색출하기 위한 작전('엄타(嚴打, 혹독한 공격)'로 불렸다)을 벌였고 수십 명의 티베트와 위구르인들이 '본보기'로 사형을 당했다.

내부 결속

또, 중국 정부가 티베트· 신장 위구르인들을 억압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내부 결속이다. 중화민족주의(사실 한족민족주의)를 강조해 내부 모순을 감추고 사람들의 분노를 엉뚱한 방향으로 돌리기 위해서다.

사실, 중국 정부는 항일투쟁부터 건국 이후까지 중국 정부는 민족주의를 통합 이데올로기로 활용해 왔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개혁·개방 이후 첨예해지는 빈부격차에 따른 갈등을 대처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특별히 강조되고 있다.

1978년부터 시작된 경제 개방 이후 중국은 연평균 9퍼센트 이상의 고도성장을 해 왔다. 그러나 경제 성장의 과실은 매우 불평등하게 분배됐다. 한편에서는 부자들이 넘치는 돈을 주체 못해 헬기를 타고 골프를 치고 다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1억 명이 넘는 농촌 이주 노동자들 절반 이상이 임금 체불을 경험했다. 중국 사회의 지니계수는 약 0.5(2006년)로, 이는 대중 항쟁과 급진화 속에 좌파 정부가 들어서고 있는 라틴아메리카 수준에 육박한다.

최근 중국 정부는 이런 문제에 대처하려고 온건한 개혁 조처들, 농업세 폐지, 노동권을 약간 더 보장하는 노동법 개정을 도입했다. 그러나 중국 지배층은 한족 민족주의를 부추겨 지배층과의 동질성을 인민에게 강조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훨씬 값싼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한족 우월주의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른바 '통일 조국의 분열을 책동하는 모든 외부 세력'에 맞서 단결을 호소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타이완, 티베트, 신장의 '분리주의 세력'에 맞선 투쟁을 부각시켰다. 어느 지역이든 중국 본토 정부에서 분열해 나가는 것이 공식화되면 다른 지역의 분리주의 운동을 고무할 것이고 중국 정부의 민족주의적 위신이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중국 정부가 티베트와 신장을 계속 점령·억압하고 있는 이유는 다른 유럽과 미국 제국주의 열강들이 약소국을 침략·점령했던 이유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는 중국이 사회주의이기는커녕 제국주의 열강의 하나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한국의 진보 진영이 중국의 티베트·신장 정책에 반대하고 티베트인들과 위구르인들의 민족자결권을 지지하는 것은 억압받는 사람들에 대한 연대의 의미에서 매우 중요할 뿐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중국 제국주의가 벌일 수 있는 패권 정책에 반대하는 행동을 건설하기 위한 준비로써도 매우 중요하다.

덧붙이는 글 | '티베트에 평화를' 릴레이 기고에 사용된 글씨체는 서예가 김성장님의 글씨입니다. 김용욱 기자는 주간 <저항의 촛불> 기자입니다.



태그:#티베트평화연대,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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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발발한 티베트인의 평화시위에 대하여 중국정부의 폭력적인 탄압에 항의하고 한국인들의 지원과 국제적인 연대의 흐름에 동참하기 위해 시민,평화,종교,인권단체등이 모여 3월25일에 결성한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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